꽤 오래전 일입니다.

저희 가족이 친척집을 방문했습니다. 꽤 부유한 전원주택으로 당시에 보통 집에 없던 물건들도 있는 그런 집이었죠.

거실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 저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잠시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에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고 보니까 변기가 우리집 애랑 좀 다르게 생겼더군요.

이걸 요래요래 하면 물이 내려가겠구나 하는 바로 그 녀석이 아무리 봐도 없는 겁니다.

일어나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대신에 변기 커버 주변에 그 비슷한 녀석이 있어서 건드려봤죠.


'쉬익!'

'어푸! 어푸!"


강력한 물살에 눈조차 뜨기 어려웠지만 화장실이 물바다가 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겠기에 전 필사적이었습니다.

폭풍우 속 인명 구출 작전이랄까요.


간신히 성난 변기를 진정시키고 나자 얼굴 뿐 아니라 상의도 폭삭 젖어있더군요.

좀 씻고, 위에 젖은 겉 옷은 벗고 속옷 대신 입은 흰 반팔 티만 입고 화장실을 나섰습니다.

"아니, 화장실 간다더니 세수는 왜 했어? 옷은 왜 그거만 입고 있어?"

하는 어머니 물음에 한 마디 했습니다.


"The war"


아마도 저게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면 저도 쿨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