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우리 동네에 철물점 아재가 있었다. 집안이 대를 이어 철물점을 하는 아재였는데,
철물점 장사 잘만 됐었는데, 외국 좀 나갔다오더니, 이제는 고철의 시대는 갔고 에너지의 시대다 이러면서
철물점 싹 접고 주유소로 바꾸더라. 뭐 어쨌든 난 철물점 아재라고 부르는 게 익숙해서 계속 철물점 아재라고 불렀다.
이 아재가 우리 동네 핵인싸여서 동네 일에 안 끼는 데가 없었다.
철물점 아재는 내가 어릴 때부터 먹을 거 많이 사줘서 내가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철물점 아재 말고도 우리 동네 명물로는 해병대 출신 할배도 있었는데, 이 해병대 할배는 좀 꼰대기질이 있어서 난 개인적으로 싫어했다.
철물점 아재랑 해병대 할배는 서로 사이가 좋았...었나? 모르겠다.
어느 날 우리 동네 마을 체육회가 열렸는데, 청군 백군처럼 철물점 아재팀, 해병대 할배팀으로 나눠서 경기했다.
근데 할배가 경기 잘만 하다가 뭐 맘에 안 들었는지 깽판을 쳤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심판한테 가서 화를 내는는 거다. 낮술한 줄 알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재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할배를 말리려고 했는데 할배가 아재한테도 패드립을 내뱉는 바람에 빡친 아재가 할배랑 싸우기 시작했다.
둘이 싸우면
말려야 되는데 우리 동네가 어지간히 또라이만 모였는지, 이게 동네 패싸움으로 번졌다 미친...
근데 나도 철물점 아재 편에 서서 할배랑 싸웠다. 나중에 엄마한테 혼났지만
아무튼 이 할배가 싸우다가 눈이 돌아가서, 동네 아지매들이 요리하고 있는 데로 가서 가마솥 뚜껑 같은 걸 가져오더니만 그걸로 사람 머리 찍고 난리 부르스를 하더라.
나도 하마터면 찍힐 뻔 했는데, 할배가 싸움 그렇게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경찰이 출동해서 싸움은 진정됐고, 동네 주민들끼리니까 알아서 잘 합의보고 끝냈다.
우리 동네가 이것 말고도 좀 스펙타클한 일이 많았는데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썰을 마무리하겠다.
하루는 이상한 사람이 우리 동네로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무슨 특수부대 출신에, UFC 선수도 했었다는데
아무튼 이 사람이 손에 커다란 식칼을 들고 우리 동네에 와서 깽판을 부렸다.
반대쪽 손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 상자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자기 말로는 반경 100km를 날려버리는 폭탄이라더라.
미친, 말이 되냐, 핵폭탄도 아니고... 그래도 덩치 좋고 싸움 잘하는 놈이 칼들고 설치는 건 위험하니까, 동네 아재들이 나서서 제압하려고 했다.
체육회 이후로 말도 안 섞던 철물점 아재랑 해병대 할배도 언제 화해했는지, 같이 싸우고 있더라.
그런데 그 정신병원 환자가 진짜 UFC 선수가 맞긴 한 것 같은게, 영화에서나 보던 17대 1을 진짜로 실현하더라.
나도 옆에 있다가 주먹 한 방에 거의 기절할 뻔 했고, 이미 웬만한 아재들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근데 해병대 할배가 이번에도 가마솥 뚜껑이랑 이번에는 오함마까지 가져와서 설치니까 이 미친 놈도 좀 당황하더라고.
미친 놈이 당황해서는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했다. 누가 봐도 장난감 상자인데...
철물점 아재는 혹시나 그걸 빼앗으면 얘가 자포자기할까 싶었는지 몰래 뒤로 가서는 뭐라뭐라 하면서 장난감 상자를 들고 튀었다.
근데 몇 걸음 못 가서 진짜 그게 폭발하더라. 100km는 오바고, 반경 1m는 날아갔다. 철물점 아재가 죽은 거다...
그래도 그 아재가 폭탄을 빼앗은 덕분에 미친 놈은 무사히 제압되어서 지금은 감옥에 있다.
철물점 아재 장례식에서는 내가 우리 삼촌 돌아가셨을 때만큼 울었던 것 같다.
이제 다 그것도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그 철물점 아재가 3000만큼 보고 싶다.
나중에 철물점 아지매한테 들었는데, 그 아재가 장난감 상자를 들고 튀면서 했던 말이, 예전에 TV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그 아재 취재하러 왔을 때, 그 아재가 했던 말이랑 같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다시 눈물이 왈칵 나더라. 그 아재의 유언인거지.
그 아재 유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