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에세이중에서..
이젠 우리 두리 녀석도 제법 컸다. 분데스리가 선수들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가진 전형적인 꼬마 팬이다. 아빠인 내가 얻어다 주지 않으니까 레버쿠젠 팀의 리벡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서는 '내가 두리인데 우리 아빠가 자꾸 까먹어서 그러니까 사인 두 장만 보내달라' 고 해서 기어이 사인지를 손에 넣을 만큼 열성이다. 한번은 장차 독일 국가대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 국가대표선수가 될 것인가 하는 주제 넘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또 1986년 겨울엔 내가 깁스를 해서 한쪽 밖에 양말을 신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도 아빠가 하는 것이라 좋아 보였는지 녀석도 겨우내 한쪽 양말만 신고 다녔다.
1986년 9월의 일이다.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두리 녀석과 마당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이 날도 두리 녀석은 11번이 새겨진 유니폼에 팬츠,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기다란 스타킹에 뽐이 제법 뾰족뾰족한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볼을 갖고는 뺏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내 정강이를 향해 두 발로 덮치는 것이었다. 어찌나 아픈지 '악' 소리만 하고 두 손으로 정강이뼈를 붙들고 주저않고 말았는데 두리 녀석은 옆으로 쓱 오더니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냉큼 돌아서는 것이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야! 볼을 보고 태클을 해야지 다리를 차는 게 어딨어? 그리고 아빠가 아파 죽겠다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어?' 하고는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런데 녀석의 하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
'월드컵 선수들은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어쩐지 그렇지 않아도 건방진 폼이
멕시코를 다녀오면서 더 건방졌다고 생각했더니만 역시나다. 거기다 한 수 더 떠서 독일 애들하고 마당에서 축구를 하면서도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볼을 발 앞에 놓고 양발을 적당한 간격으로 벌린 채 두 손을 뒤로 한 다음 애국가를 아는 부분까지 생 음악으로 불러댄다. 그리고는 끝 부분에서 '와' 하는 관중의 함성도 자기가 지르고는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몸푸는 시늉도 한다. 게다가 가끔은 오른손을 들어 흔들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출처-베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