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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01 09:55:38
Name orbef
Subject [유머] 연재 - 중첩(6. 탈출)
ㅇ. 대가급 소설가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국 제 성격의 여러 단면을 극단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의 성격이 좀 제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좀 드네요.

ㅇ. 뭔가 힌트라면 힌트인 글 -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애착을 가지는 인물과 주인공이 일치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ㅇ. 이번화에 나오는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은, 대체적으로 맞긴 하지만 용어에 있어서 약간의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용어를 아시는 분은 쪽지나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ㅇ. 따옴표에 대한 지적 감사합니다. 이후 연재분에서는 큰 따옴표와 작은 따옴표를 구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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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에서 우리는 인간 이상의 존재 – 그것이 신이든, 외계인이든간에 – 를 통해서 인간을 한차원 이상의 존재로 진화시킨다는 상상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인간과 크게 다를 리가 없지않은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가 어떻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만약 사자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 비트겐슈타인


Chapter 6. 탈출

계단의 레일에 머리를 부딪히며 순간적으로 기절했던 지영은, 손가락이 타는 듯한 아픔에 겨우 눈을 떴다. 그녀의 손가락이 상진의 머리와 계단 사이에 끼어서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진에게는 전혀 움직임이 없없다. 그녀는 상진을 그냥 내버려두고 도망가야할지 아니면 깨워서 같이 도망가야할 지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꿈에서 본 상진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결정지었다.

“상진씨, 괜찮아요? 정신 차려요.”

만약을 대비해서 한손에는 층계참에서 떼어온 소화기를 들고 한손으로는 상진을 깨우는 그녀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상식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행히 눈을 뜬 그에게는 아까의 살기는 보이지 않았다.

“지영씨 어서 도망가요! 그들이 곧 올거에요”
“같이 가요. 문을 잠궜으니 금방은 오지 못할 거에요.”
“저런 문같은 것을 여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도 아니에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뛰어요! 아야!”
“상진씨 오른쪽 발목을 삐었나보네요. 그래도 머리를 안다쳐서 다행이에요.”

지영은 그건 내 손가락 덕이에요라고 말하려다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고치며 그를 부축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렸다. 비틀거리는 두명의 남녀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순간, 옥상 바깥쪽에서는 정진이 씨아의 가방에서 꺼낸 바늘로 문을 열었다.

“니 말대로네. 박상진의 공진이 벌써 풀린 것같아. 조금 늦었네.”
“그래. 같이 도망간 것으로 봐선, 미치지도 않은 것 같아. 이래저래 힘들게 됐는데..??”
“괜찮아. 이지영은 몰라도 박상진의 행동패턴은 대충 알것 같으니까.. 둘 중에 박상진이 리드하는 입장이라면, 둘은 분명히 양재쪽에서 제일 큰 도로로 도망갈거야”
“그럼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가겠네”

이전 행동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목표물의 이후 행동패턴을 예측하는 능력은 형제회의 모든 집행관 중 그녀가 가장 우수했다. 10분뒤 씨아를 비롯한 4명은 양재 인터체인지 남쪽에서 지영의 마티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들은, 적어도 저들 중 3명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들중에 씨아를 빼고는, 그 여자에게 조종되는 로봇같은 존재에요”
“무슨 영화도 아니고, 제대로 말을 해봐요. 씨아는 또 누구에요?”
“아.. 그 키 큰여자가 씨아에요. 저도 솔직히 이해는 잘 안가요. 저도 저들이 아는 것 이상은 모르거든요… 일단, 원리는 저도 모르겠는데, 그 여자가 섬기는 종교단체가 있어요. 거기에서 그녀한테 '공진기'라고 불리는 무슨 장치를 줬는데, 저 여자는 그것이 무슨 신의 방패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여튼 그 장치로 다른 사람의 영혼과 두뇌의 접점을 끊어버릴 수가 있는 듯해요. 그리고는”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에요? 상진씨가 저 여자를 어떻게 아는데요?”
“전 방금 저 여자하고 두뇌를 공진했었어요. 악!”

그 순간 지영과 상진이 타고있던 마티즈의 오른쪽에서 상진의 레조가 나타나더니, 그들의 자동차를 1차선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차량의 흔들림에 지영의 부러진 손가락이 비틀리면서, 고통을 못이긴 그녀의 손이 핸들에서 미끄러졌다. 차는 맞은편 차선으로 바로 돌진해버렸지만, 다행히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했다. 마티즈는 이내 원래의 도로로 튕겨지면서 다시 3차선으로 밀려나갔고, 오히려 레조 뒷편으로 처져버렸다. 브레이크를 밟는 레조 오른쪽으로 침착하게 차를 다시 추월해  나가면서, 자기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이정도로 침착하다는 사실에 지영 스스로도 감탄했다.

“지영씨 이 차에 에어백 있어요?”
“없어요, 돈도 없어서 이거 타는데 누가 에어백을 달아요?”
“레조가 뒤로 바짝 붙으면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서 부딪혀요”
“아니 그게 말이..”
“그냥 해요!”

끼이이이익 –

두 차량이 부딪힌 순간, 레조의 에어백이 터지면서 운전하고 있던 진호의 머리를 덮어버렸다. 진호는 빠른 반응으로 사고없이 차를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더 이상 지영의 차량을 쫓아갈 수는 없었다.

한숨을 쉬며 정진이 말했다.

“큰일이네”
“그래. 이제 박상진 아저씨는 우리 모두의 기억을 가지고 있게되었네. 우리 사고방식을 짐작할 수있을테니, 마음먹고 숨어버리면 잡기 힘들겠는걸? 씨아누나 이제 어떻게 해?”

영민의 질문에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씨아가 말했다.

“모짜르트의 기억을 전부 복사해서 나한테 넣어줘봤자 내가 모짜르트같은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야.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기억을 누가 더 빨리 잘 활용하느냐지… 좋아..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이지영은 여의도 주공아파트에서 남동생과 둘이서 살고있어. 환자의 주소를 이정도로 기억하다니.. 관심이 좀 있었나보네? 경부선을 타고 내려갔으니 어느쪽으로 돌더라도 여의도까지 1시간 이상 걸릴테니까, 지금 빨리 가면 동생을 납치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의도라면.. 진호가 몇년전까지 살던 곳이네. 이동하자. 이 자동차는 버려.”

.        .        .        .        .        .        .        

2시간 뒤, 용인 휴게소의 뒷편에 차량을 세운 지영과 상진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좋아요.. 솔직히 실감은 잘 안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빛의 형제회라는 것이 있고, 씨아라는 여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상진씨의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 받아들이더라도, 왜 저 여자가 저를 죽이려고 하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안가요.”
“엄밀히 말하면, 마음을 조종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저 여자가 하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자는 다른 사람의 '정신의 영역'과 '두뇌의 영역'을 끊어버리는 능력이 있어요. 그 공진기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과 두뇌를 분리해버리고, 자신의 정신을 대신 타인의 두뇌에 심어버리는 거지요."
"두뇌가 정신 아닌가요?"
"저도 잘 모른다고 했잖아요. 자.. 생각을 좀 해보죠. 지영씨 바이러스의 원리를 알아요?"
"아뇨 몰라요."
"일반적인 생물은 세포 속에 단백질이 있고, 그 속에 DNA 핵이 들어있어요. 말하자면 단백질은 몸뚱이고, DNA 는 그 세포가 무엇을 할지를 정해주는 정신이죠. 그런데 바이러스는 세포벽도 없고 단백질도 없고, 그냥 세포의 DNA 에 해당하는 핵산 구조물만 가지고 있어요."
"그럼 몸뚱이 없이 어떻게 살아요?"
"다른 세포속에 자신의 핵산을 집어넣은 뒤, 그 세포의 원래 DNA 를 봉인해버리죠. 그러면 그 세포는 침입해 온 바이러스를 자신의 정신이라고 믿어버려요."
"기생충이네요"
"기생충보다 더 나쁘죠. 제 생각에는 씨아라는 여자가 두뇌에 하는 일이 바이러스와 비슷한 것 같아요. 원래의 의식을 봉인해버리고, 자신의 간단한 명령 - 예를 들면 '이지영을 죽여라'라는 것을 그 사람의 존재의 목적인 양 넣어버리는 것이죠"
"정신을 봉인하면 생각도 못하는 것이잖아요?"
"아뇨. 인간의 기억이나 판단, 감정같은 것은 전부 물질 작용이에요. 이미 그런건 의학적으로 다 밝혀진 사실이에요."
"아.. 너무 어려워요. 기억이나 판단, 감정을 빼면 뭐가 남는데 그걸 봉인한다는거죠?"
"나도 잘 모른다니까요! 하여튼 뭔가를 봉인한다고 그녀는 생각하더군요."

그때 지영의 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안좋은 예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녀는 셀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지석이?”
“지금쯤 우리가 뭘 하려는 지는 이미 알았겠죠 지영씨. 우리가 쓸데없이 살육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니까 당신만 나타나면 동생은 풀어주리라는 것도 알거에요. 솔직히 박상진씨도 같이 없애버리고 싶지만, 이지영씨 동생으로 그를 불러올 수 있다는 확신은 안드네요. 일단 당신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 당신이 씨아에요?”
“그래요. 여의도까지 온 뒤에 이 셀폰으로 전화를 해서 다시 제 지령을 받으세요. 간단히 끝냅시다. 동생분은 자신이 왜 납치당했는지 아직 전혀 모르니, 당신만 온다면 해치지 않겠어요.”
"....알았다고 치죠. 근데 저를 왜 죽이려는거죠?"
"우리 형제회는 신전 속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당신같은 '수신자'들이 있는 한 형제회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죠. 지영씨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아.. 박상진씨가 상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거에요. 1시간 내로 연락이 없으면 동생분을 다시 보시지 못할 거에요."

씨아의 짤막한 말은, 그녀가 자신을 왜 죽이려고 하는지에 대해 너무나 간단명료하게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상진이 지난 두시간 동안 설명해주려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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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aeTo[HammeR]
06/05/01 12:24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이번글은 이전까지의 글보다 좀 이해하기 쉬운것 같아서 좋네요~ 재미있구요. 저도 뭔가를 연재해봐서 아는데, 연재를 하면 그것을 봐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힘이 되더라구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봐주고 있다라는 것이... 힘내세요~
06/05/01 13:44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뭐 할 수 없죠. 그래도 궈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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