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모두가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유머글을 올려주세요.
- 유게에서는 정치/종교 관련 등 논란성 글 및 개인 비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Date 2014/04/04 11:25:05
Name wook98
Subject [유머] [유머] [펌]며칠 전, E마트에서 프로시식꾼을 만났습니다
잔잔하던 제 일상에 그이가 들어온 건, 떄이른 벚꽃이 한창이던 3월 말의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그날 저녁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해서 부랴부랴 칠레산 대패삼겹살을 사러, E마트에 들른 참이였죠
주말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식품매장에서는 이런저런 시식행사들이 많기도 참 많더라만은.

시식이란게 사실 그렇습니다. 오며가며 만두 한두개쯤 부담없이들 드시라고 벌려 놓은 판이지만서도
우리 같은 촌사람들이야 어디 그리 쉽게 발이 떨어지나요, 거 노릇노릇하니 만두 한번  집어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만서도,영 남사스럽기도 하고 두 눈을 부라리고 서있는 시식아줌마들만 보면 영판 오금이
저리니,시식대의 군만두도 떡갈비도 괜시리 내꺼 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인지라 그저 썸이나 좀 타다가
볼장 다 보는게 태반이지요. 술기운에 아니고서야 시식코너랑 진도 한번 빼보는게 여간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은,파크랜드 양복에 랜드로바도 신었겠다,대처에 나온지 벌써 십년이겠다, 이만하면 나도 일류는
못되도 시식코너 앞에 설만한 규모있는 손님은 된다싶어 "거 만두나 두어개 먹어 볼까!" 하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못난 발걸음을 내심 나무래가며  뱃심 좋게 한번 나서보려는 참인데, 때마침 간드러진 명품정장에
멋스러운 발리구두를 매치한 왠 송중기 닮은 젊은 친구가  사뿐사뿐허게 만두시식코너로 가더군요

1 시식코너당 1 시식인이 불문율이라 좀 기다려볼 양으로 저이를 슬쩍 보니, 왠 손가방에서 뭘 꺼내는 눈친데
가만보니 개인식기함에 소금통입디다. 그리곤 꺼내든 번쩍번쩍 빛나는 스댕젓가락으로 만두를 척하니 집고는
갖고온 소금에 착착 찍더니만 만두 댓개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길래 거 젊은 친구가 만두 한번 걸지게도
먹는다 허허하는데 이내 아줌마한테 세련된 북유럽미소를 살짝 건네고는 경쾌한 투스텝으로 어딘가로 사라지
길래 이제 가나보다 싶은데 아뿔사 순식간에 떡갈비코너에 떡하니 등장하더니만 어느새 또 삼겹살코너에
나타나지를 않나, 제가 잠깐 한눈 판 사이에는 아 글쎄 너비아니코너에 가있지 뭡니까.

발리구두에는 GPS도 달려나오는가, 내치는 스텝마다 매번 다른 시식코너 앞이니,도무지 당해낼 재간은 없고,
그저 만만한 제 랜드로바놈한테나 이놈아 너는 왜 저렇게 못하느냐하고 공연한 화풀이나 부려볼 밖에요.
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그 젓가락 앞에 유린당한 시식코너가 무려 6곳이니 이거 예삿놈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시식코너를 활보하길래 혹시 E마트의 위트가이 정용진씨인가 싶어 유심히 봤지만 아직 뼈가
영판 덜여문게 암만봐도 새파란 숫총각이라 이상한 노릇이다 싶은데 가만보니 나한테는 장비마냥 서슬이 시
퍼렇던  너비아니아줌마도 이 친구 앞에서는 새초롬하니  다소곳이 서있는 모양이 따끔한 한마디는 고사하고
우리 낭군님  고운 손에 나뭇잎 동동 띄운 냉수 한사발 못건네드려 매양 아쉽기만한 새색씨 꼴이라,

세상 참 더럽다,이제는 시식도 완얼이구나,이 놈의 E마트 확 다 망해버려라하며 샐쭉해선 그 친구를 보는데.
이제사 이 친구도 막판이라,예의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젓가락 무빙과 신명나는 퀵스텝으로 입구쪽의 족발
세네개를 낼름 집어먹고는 총총히 전자매장쪽으로 떠나가는 눈치입니다.

아아.말로만 듣던 프로 시식인이였구나. 개인장비 들고다닐때 눈치챘어야 하는건데하며 못난 저를 탓해보는데,
그 순간, 제 몸을 덮쳐오는 미묘한 위화감,그리고 순식간에 팽팽해진 매장안의 긴장된 분위기.
곧 그 이유를 알게된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쳐와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자세히보니 그가 마지막으로 집어먹은 그 족발은 시식용이 아니라 팔려고 담아놓은 판매용 족발.

넋놓고 있다가 졸지에 통수맞은 족발아줌마도 송아지마냥 눈만 끔뻑끔뻑하다 뒤늦게 어하지만 이미 끝난 일.
그는 제이슨 본씨 마냥 인파속에 종적을 감추어버렸고 식품매장안엔 그가 던지고 간 화두만이 오롯이 남아
영롱히 빛나고 있을 뿐입니다

젓가락이 나고 내가 젓가락인 젓아일체의 순간, 소유의 구분은 오로지 젓가락만이 결정할 뿐이니.
젓가락으로 집을 수만 있다면,그리고 들어올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세탁기라도 이제는 나의 것.

내 젓가락이 닿은 것이라면 다 내것이라는 강한 소유욕과 규칙따윈 깨부숴버리는 파괴적인 박력을 무기삼아
천민자본주의의 첨병 SSM의 횡포에 홀로 맞서는 E마트의 게릴라이자 요식업계 최후의 로빈후드인 그가
내 손안의 작은 악마,젓가락이 이끄는 곳으로 유유히 흘러간 곳은 아직 그 어떤 젓가락아티스트도 감히 도전
하지 못했던 금단의 영역, 전자제품코너.

티브이나 냉장고야 젓가락리프트 40정도는 예사로 드는 그로서도 다소 무리이겠지만,
고까짓 알량한 전자렌지니 토스트기쯤이야 손 부끄러워 못할 노릇이지,마음만 먹는다면야 솔찬하겠지요.

프로는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엔 늘 죄가 없으니 그에게 돌을 던지는 건 못난 자들 뿐이리라
.....................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136170&cpage=&mbsW=&select=&opt=&keyword=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04/04 11:30
수정 아이콘
이분 그전 글들도 명문이 많더라구요..
미장원 거울이라던지.. 12CM라던지..
14/04/04 11:31
수정 아이콘
필력이 장난 아닌 아마추어 시식꾼이군요?
아티팩터
14/04/04 11:32
수정 아이콘
마지막엔 판매용 음식을 먹고 튀었으니 범죄자로 레벨업 했는데 막아야죠 저쯤 되면...
王天君
14/04/04 11:51
수정 아이콘
푸하하하 풍류가 넘쳐 흐르네요. 아예 지대로 1930년대 글을 패러디 했으면 진짜 걸작이 나올 뻔 했는데.
14/04/04 13:22
수정 아이콘
현실은 저런 시식막으면 컴플레인걸리고 난리나죠
임개똥
14/04/04 13:55
수정 아이콘
글 잘 봤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26235 [유머] [유머] 루리웹의 어떤 유저가 드신 영국산 축구장 치킨버거 평 [13] swordfish-72만세5918 14/12/01 5918
225095 [유머] [유머] (스포주의) 인터스텔라에 심취한 알바 [6] 마스터충달5665 14/11/20 5665
223917 [유머] [유머] 혹시 이번주말에 소개팅 출격예정인 PGRer분들 계신가요? [16] 이 분이 제 어머9048 14/11/08 9048
223632 [유머] [유머] 자취방 냉장고..jpg [10] k`9002 14/11/05 9002
223394 [유머] [유머] 냉장고 괴물 [20] 인간흑인대머리남캐9198 14/11/02 9198
220871 [유머] [유머] I love you [6] 마스터충달5420 14/10/10 5420
216023 [기타] [기타] 쿨치킨 상세샷.. [10] 현실의 현실6856 14/08/21 6856
215067 [기타] [기타] pgr 남자 여름 코디 [12] 현실의 현실6840 14/08/12 6840
214910 [유머] [유머] 영화계는 2002년이 제일 레알이죠 [15] Duvet7317 14/08/10 7317
210523 [기타] [기타] 냉장고를 열었는데 심쿵! [12] G드라군7223 14/06/30 7223
207428 [기타] [기타] 탐나는 천재 [39] 잔인한 개장수12463 14/06/02 12463
206423 [유머] [유머] 어떤 멍뭉이가 내 아이스크림 먹었냐 [3] 막장의춤4625 14/05/24 4625
201370 [유머] [유머] [펌]며칠 전, E마트에서 프로시식꾼을 만났습니다 [6] wook987514 14/04/04 7514
196998 [유머] [유머] [2ch 스레] 내가 무의식중에 한 뻘짓 [25] 王天君15127 14/02/27 15127
196806 [기타] [기타] 압류한 일베회원 재산은 기부 허나 다음엔 그냥 도끼로 일괄처리할랍니다. [19] 개평3냥6482 14/02/26 6482
196752 [유머] [유머] 퀴즈입니다. [13] 표절작곡가4499 14/02/26 4499
190569 [유머] [유머] 불곰국의 환기 클라스.swf [7] 지니-_-V4375 14/01/12 4375
189131 [유머] [유머] 제애그룹 지하 노역장의 실사판 [6] 요정 칼괴기7581 14/01/01 7581
182274 [유머] [유머] 날아올라라 주작이여 [40] Vienna Calling7137 13/11/15 7137
181691 [유머] [유머] 우리가 냉장고를 여는 이유..jpg [5] k`5739 13/11/11 5739
181553 [유머] [유머] [계층/스압] 여기에 다 해당되시는 분은 pgr 몇%일까요? [21] Vienna Calling16194 13/11/10 16194
180777 [기타] [기타] 정말 추웠던 어느 평범한 겨울날, [12] Darth Vader9551 13/11/05 9551
176978 [유머] [유머] pgr은 인증이다 자게 두루치기 관련. [27] 대경성8650 13/10/08 865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