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프로 3년차였던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9회말 2아웃에서 역전 쓰리런을 쳤으며 그 해 정규시즌 타율 4할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다. 이 기록은 그 이후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누구도 깨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긴 호칭이 '최후의 4할 타자'. 더욱이 무서운 것은 그러한 교타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도 장타력도 뛰어나 통산 홈런이 521홈런이며, 30홈런을 넘긴 시즌이 8시즌이나 된다.
1941년 마지막 날 더블헤더를 앞두고 4할이 인정되는 .39955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테드를 감독이 빼고 라인업을 구성하자 당장 감독을 찾아가서
[내가 오늘 안타를 못치면 4할 타자가 아닌 거지. 그렇게까지 해서 4할을 달성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고 경기에 출장했다. 결국 그는 그날 8타수 6안타를 기록, 4할 6리의 타율로 20세기 마지막 4할 타율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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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윌리엄스는 1943년 방망이를 내려놓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 정도면 이혼한 어머니를 부양하기 충분하다." 테드가 참전을 선언하며 외친 말이다. 테드는 꼬박 3년을 해군에서 비행 교관으로 복무했다. 선수 생활의 절정이었던 만 24세에서 26세 사이를 군대에서 보낸 것이다. 거기에 1952년 다시 한국전 참전을 선언하였다. 1952년 4월 30일 보스턴은 다시 군복을 입게 되는 테드 윌리엄스를 위해 'Ted Williams Day'를 정했고, 이날 그는 디지 트라웃으로부터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통산 324호 홈런을 뽑아냈다. 모두가 이를 테드의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홈런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후일 알게 되지만 그것은 모두의 오판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테드 윌리엄스 중위는 비행 파일럿으로 복무하며 총 39회의 폭격을 수행했다. 한번은 적군의 대공포에 맞아 동체 착륙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무사히 동체 착륙을 성공한 테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한다. 한국전 휴전 후 1953시즌 중반 테드는 보스턴에 복귀했다. 급작스레 끝난 전쟁에 전혀 야구에 대한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테드는 복귀 후 37경기에서 .407의 타율에 13홈런 34타점이라는 신들린 타격을 선보였다. 그의 나이 만 34세였다.
테드 윌리엄스는 나이를 생각하면 최고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43, 44, 45, 52, 53년, 총 5시즌간 군에 복무하였다. 그가 만약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5시즌을 온전히 뛰었을 경우 그의 통산 성적은 어떻게 되었을까. 참고로 테드 윌리엄스의 참전 전후의 5시즌을 평균 내면 연 183안타 34홈런 124타점이 나온다. 3500안타, 700홈런, 2400타점의 기록이 꿈만은 아니었을 것. 하지만 그의 잃어버린 기록은 훗날 1991년 대통령 자유 훈장(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이란 명예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가 남긴 명언들은 너무 많아서 기니까 항목으로 직접 가서 보세요... 크크크크
http://mirror.enha.kr/wiki/%ED%85%8C%EB%93%9C%20%EC%9C%8C%EB%A6%AC%EC%97%84%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