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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6 21:38
그야말로 한판 싸움에 천하의 운명이 뒤바뀐 전투였죠.
이만큼 한판에 천하의 운명이 손바닥 뒤집든 뒤집힌 전투도 찾아보기 힘들듯 합니다 '';;
13/04/26 21:36
여담으로 해군성 장관님의 작전 입안력은 영 아닌 편이긴 했죠..(대표적으로 갈리폴리 전투 밀어붙이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적도 있고)
13/04/26 21:48
7월부터 11월까지 총 4개월에 걸친 공방전이었고,
사망자 뿐만 아니라 부상자도 포함한 숫자입니다. 그렇다고 적은 수는 아니지만.. 이 전투의 절정은, 작전 첫날 영국군 사망자가 5만6천명!! 입니다. 적 참호선에 보병들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독일군 기관총부대가 미쳐 날뛰었습니다(...)
13/04/26 22:16
포격 대부분은 진지 앞에서 터지거나 진창에 처박혀 불발탄.
최전선 약간 뒤의 2차 저지선 독일군 참호는 대부분 멀쩡. 멋도모르고 영국군 참호 앞으로 돌격; 1km 전진에 10만명 꼴로 사망. 기관총좌 2-3개에 대대병력이 전멸.
13/04/26 22:23
무기와 생활은 현대화되는 서구권인데 전투만큼은... 1차대전이 오묘합니다-_-a
다들 전투복에, 전투모&헬멧에 라이플, 기관총, 포까지 쓰는데 하는 짓은 창칼기병 쓰던 시절의 돌격... 물론 1차대전 이후라고 안 그런 건...(소련, 일본군, 중공군 등)
13/04/27 01:09
그런데 사실 저 때는 장군들만 멍청했던게 아니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국민 개병제 상황에서 특정 전역에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우리쪽이 더 많이 살아남으면 이길 수 있다는게(이긴거라는게)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상식'이라서...
당시 전쟁 상황을 두고 지식인들이 주고 받은 편지들 보면 나름 후세에 이름 알려지신 분들이 그 때 우리가 10만이 더 있었더라면, 20만을 더 징병할 수 있었다면 등등 우리가 코에이 삼국지 이야기 하듯이 전쟁에 대해 토론하는거 보면...
13/04/27 11:07
대등한 상대를 두고 교환비 5:2를 반드시 달성해야 가능한 작전을 세우는 걸 솔직히 비상식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독일군의 전략적 판단을 낮게 평가하는데 말이죠.
13/04/27 11:18
그건 당시 전략적 상황을 모르니 함부로 말할 수 없죠..저는 애초에 유머라길래 그런 전략적 관점에서 까시는건지 몰랐네요. 글로만 봤을 때는 독일군의 논리는 충분히 납득되던데요.. 결과적으로 작전이 실패한건데 저정도 수준의 실패는 그동안 전쟁사 에서 부지기수 아닌가요.. 지금 보니 제가 유머포인트를 전혀 못 잡은것 같습니다.
13/04/27 13:36
독일의 작전은 상대방과 싸워서 5:2 의 전력 교환비를 달성해야만 성공하는 작전이 정상적인 작전인가가 유머 포인트입니다.
솜전투의 영국군 작전은.. 우리가 더 많이 죽더라도, 독일군에게 피해를 누적 시키자.. 라는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저그의 소모전과 같은 작전입니다. 베르됭 전투 초반은 독일의 기습 + 포격지원이 완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수비하던 프랑스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런데 이건 작전 목표가 아니라.. 미끼) 목표로 했던 프랑스군이 대거 투입된 이후에는 지옥과 같은 참호전이 이루어지면서 거의 1:1 비율로 피해를 입고 맙니다. 에초에 목표가 프랑스군을 유인해서 다 때려잡고(??) 파리로 진격하자! 라는 정신나간 작전입니다. (뭐 슐리펜 계획을 생각하면.. 논리적이긴 합니다) 솜 전투는, 베르됭 전투 초반의 독일군 공격을 모방하려고 했던 영국군은 대거 삽질만 벌이면서 거의 자살과 같은 공격을 하게 됩니다. 베르됭 전투 결과로 프랑스군도 피해를 입었지만, 독일군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결국 파리 진격은 커녕 더이상 진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후 이번 본문에 나온 솜전투의 영국군 공세에 밀려서 이후로는 전선 유지만해도 버거운 상황에 들어갑니다. (이어서 터진 독일의 킬군항 항명사태 + 11월 혁명이 터지면서 제정이 무너지고 독일은 항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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