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6/22 18:15:24
Name 두괴즐
Link #1 https://brunch.co.kr/@cisiwing/8
Subject [일반] 팬이 되고 싶어요 下편 (나는 어쩌다 태지 마니아가 되었나)
https://pgr21.co.kr/freedom/99014 (상편)

하편입니다.
제가 입문하게 된 종교는 YO태지였습니다. 흐흐.



-----------

팬이 되고 싶어요 (下편)
-신앙고백이 되는 음악



나에게 2000년 9월 9일은 매년 돌아오는 추석 연휴의 하루였다. 하지만 사촌 형과 누나들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손꼽아 기다려 온 날이다. 뭔 일인고 했더니, 그날 저녁에 서태지 컴백 공연을 MBC에서 방영한다는 것이었다. 1996년에 은퇴를 했던 서태지가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는데, 나는 딱히 그의 팬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며 송편을 우걱우걱 먹을 뿐이었다.



‘아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학창 시절로 보내면서 그의 팬이 아니 될 수가 있단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어쩌면 나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데뷔했을 때는 국민학생이었고, 그가 은퇴했을 때도 초등학생이었다. 물론 내 또래 아이들 중에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소풍을 가면 장기자랑 시간에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흥국의 아싸-<호랑나비>나 <꼬마 자동차 붕붕>을 더 좋아했다. 나는 또래보다 더 작은 아이였고, 그런 내게 서태지의 음악은 어려웠다.



하지만 사촌 형과 누나들은 사춘기 시절에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 그들은 X세대였고, 가요계에서 비롯된 혁명이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것을 체감했다. 바로 그 차이가 2000년 9월 9일 저녁의 온도를 결정했다. 시간이 됐고, 새빨간 레게머리를 한 서태지가 드디어 등장했다. “렛츠고!!!”



-

?

!



자막이 올라간다. 공연이 끝났다.



시청을 마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의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다고? 콘서트를 이런 식으로 해도 된단 말인가! 들뜬  온도에서 시작했던 사촌형누나들도 나와 같은 걸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달리 판단했다. “아…… 이제 서태지 노래 더는 못 듣겠다. 왜 이렇게 됐냐?”



나는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형누나와 달리 골로 갔다. 그들은 시청 후 식었지만,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음반숍으로 뛰쳐가고 싶었다. 그 음악을 계속 들어야 하는 몸이 되었다. 형누나들은 이제야 송편을 집어먹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이상 떡을 먹을 수 없었다.



2000년의 서태지는 누메탈이라는 과격한 음악을 들고나왔고, 우리 대중음악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그는 그 해에 조성모, 지오디와 경쟁했는데, 압도하기는커녕 대중적으로는 도리어 밀리는 형국이었다. 서태지는 매번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를 끌어와 한국 가요계를 혁신했고, 엄청난 인기몰이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정서 자체를 바꿨다. 하지만 이제는 21세기다. 그가 통치하던 90년대가 아니다.



그렇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나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서태지는 사촌 형1과 사촌 누나1, 2를 잃었지만, 새 팬을 얻었다.

셋을 잃고 하나를 얻은 서태지는 유감이겠지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팬이 되는 건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많은 서태지 팬들이 이 새로운 사운드를 낯설어 하며 떠났다. 그런데 나는 듣기 괴롭다는 이 음악이 왜 좋았을까? 그렇기에 취향은 신앙이 된다. 계시가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실했던 기존의 신자들 중에도 새 음악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이 숱했다. 반면 아무런 의지가 없던 내가 느닷없는 불세례를 받았다. 나는 비로소 짝퉁 테이프와 결별했고 진정한 경전을 얻었다. 경전의 수록곡들은 참기쁨으로 채워진 복음이었다. 예배에 필요한 음악은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었고, 앨범만이 경배를 받을 가치가 있었다.



‘음악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 조상이 곰이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순도 높은 ‘뻥’이었기에 코웃음을 쳐왔는데,



내가 믿게 됐다. 정말 곰이 우리의 조상이었고, 나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 중한 죄짐을 지게 되었다. 아무렴 어때, 할 수 없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06/22 18:46
수정 아이콘
요새 가끔 들으면 6집은 구성이 꼭 메들리같아요.
두괴즐
23/06/23 08:14
수정 아이콘
그런 느낌이 있지요.
하위1%
23/06/22 21:35
수정 아이콘
서태지가 6집을 들고 나왔을 때 팬이 아니었던 당시의 저는 그 과격한 퍼포먼스를 보고 막연히 무서워했죠.
아이러니하게도 팬이 된 지금은 제일 많이 듣고 있는 앨범이 6집이네요 크크
두괴즐
23/06/23 08:15
수정 아이콘
그러셨군요. 어쩌다가 팬이 됐는지 궁금하네요.
하위1%
23/06/23 09:07
수정 아이콘
고3때 공부는 안하고 티비보다가 MBC에서 방영했던 서태지심포니를 봤는데 그때부터 홀린듯이 팬이 됐죠
두괴즐
23/06/23 11:38
수정 아이콘
오! 저보다도 늦게 팬이 된 경우네요. 저는 당시 팬카페 활동하면서 살짝 소외감을 느꼈거든요. 대부분 아이들 때부터의 팬이라 저 같은 경우는 소수였고, 뭔가 정서도 다르더라고요. 지능형안티 취급도 받았었지요. 흑흑. 여하튼 반갑습니다. 흐흐.
미고띠
23/06/22 21:56
수정 아이콘
이때가 라이브와이어 였나요?
버블티
23/06/22 23:02
수정 아이콘
라이브와이어는 2004년에 나온 7집 타이틀곡입니다. 본문은 은퇴 후 컴백때 얘기니까 울트라맨이야가 타이틀이었던 6집을 말하네요.
두괴즐
23/06/23 08:15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솔로2집 앨범이에요.
미고띠
23/06/23 15:52
수정 아이콘
아! 울트라맨이야가 있었네요. 슈퍼초울트라맨이야!
엘렌딜
23/06/22 23:35
수정 아이콘
컴백하고 난 뒤의 서태지 앨범은 더이상 태지보이즈와는 무관하므로 1집, 2집 새로 카운팅해서 부르는게 맞는데 다들 이어서 5집, 6집 이라고 부르는게 전 좀 어색한 느낌입니다.
두괴즐
23/06/23 08:16
수정 아이콘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솔로 몇 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보이즈 시절 합산해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서태지 본인이 그렇게 지칭하는 것도 같고요.
분쇄기
23/06/23 08:24
수정 아이콘
6집 리레코딩 앨범부터 6th로 칭한 이후에 그냥 5집 6집이 되어버린 셈인 것 같아요.
23/06/22 23:43
수정 아이콘
사실 서태지가 음악을 시작한 건 밴드뮤직이었기에 어찌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보여준 음악은 서태지 자신의 음악적 루트와는 좀 많이 다르긴 합니다.

뼛속까지 60-90년대 흐름의 락키드인 입장에선 누메탈은 솔직히 좀 별로긴 한데, 뭐 어쩌겠습니까 크크크
두괴즐
23/06/23 08:18
수정 아이콘
대학 시절에 같이 록음악 듣던 선배도 누메탈은 치를 떨더군요. 이 무슨 저급한 음악이냐고. 크크. 물론 그 분은 얼터너티브(그런지) 음악부터는 록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셔서.
Janzisuka
23/06/22 23:53
수정 아이콘
대자아아앙
두괴즐
23/06/23 08:19
수정 아이콘
새 앨범 좀~!!!
23/06/23 00:48
수정 아이콘
1992년 어떤 봄 날 오후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세 명의 형(특히 한 명이 더)들이 요즘엔 별 것도 아닐 것 같은 독설을 듣고 있던 그 모습이 ...
지금은 없지만 그 모습을 비디오 테이프(ㅜ.ㅜ)에 저장하면서 경악하던 그 때의 제가 그립네요
두괴즐
23/06/23 08:20
수정 아이콘
시절을 함께 하는 대중 스타가 있다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HOT 세대에 가까워서 서태지 세대가 부럽기도 했었지요.
23/06/23 08: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중간에 읭? 하는 지점이 있긴 하네요.
서태지가 충격과 공포(부정적인 의미로)를 대중에게 선사한건 솔로1집이었고, 뭐 물론 take5가 있긴 했지만..

울트라맨이야 있던 앨범은 상대적으로 다시 대중친화적으로 돌아온 앨범이었을텐데요. 이 앨범 색깔에 놀란 사람은 거의 없었을겁니다. 왜냐하면 1집때 이미 충분히 돌아설 사람들은 돌아섰거든요.

탱크 오렌지 인터넷전쟁 대경성 울트라맨이야 등등 굉장히 폭넓게 사랑받고 소비된 노래들이었죠. 노래방에서도 인기곡이었고...

솔로1집에 take2를 정말 좋아하지만 당시 나오자마자 앨범 사서 들었을때 내가 이거 서태지 앨범 산거 맞나.. 뭔가 잘못된거 아닌가 뭐지???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
본문이 솔로1집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참 공감됐을듯요 흐흐
23/06/23 11:17
수정 아이콘
솔로 2집이 1집 보다 대중 친화적이었던건 맞는데 그 1집 때는 그냥 음반만 내고 아무것도 안해서 컴백으로 쳐주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워진 아티스트의 일탈 정도로 치부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솔로 2집 때가 진짜 컴백이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cOO6Gk6AXOk
두괴즐
23/06/23 11:33
수정 아이콘
그랬군요. 저는 사실 당시에는 솔로1집이 나왔었는지도 몰랐어요. 형누나들과 공연을 보고 나서 들었었죠. 형이 그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1집도 좀 그랬는데, 이번에는 진짜 최악이다. 이제는 도저히 못 듣겠다. 라고. 솔로 1집의 경우에는 제가 친구한테 중고로 샀는데, 걔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솔로 2집 듣고는 손절. 그래서 음반을 방출하더라고요. 그냥 제 경험이니, 전체 팬덤의 분위기는 모르겠네요. 흐.
23/06/23 11:38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흐흐. 당시 제 주변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그랬나봅니다.
당시 솔로 1집은 활동은 안했지만 서태지 음반이 다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제 주변 한정- 어마어마한 파장이었고,
거기서 '난 그래도 좋다, 서태지 짱짱맨'과 '아 이건 좀.....' 으로 나뉘었는데 후자 쪽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2집이 나왔을 때는 -제 주변 한정- 저포함 다들 미쳤어 날 가져요 서태지 짱짱맨 ㅠㅠ CD플레이어로 맨날 반복재생하면서
누군 오렌지가 제일 좋니, 누군 대경성이 좋니 하면서 온통 서태지 열풍이었거든요. 흐흐
-제 주변 한정- '관심없고 안들음' 은 있었어도 '아 서태지 기대했는데 실망 ㅠㅠ'은 한명도 없었어서..
두괴즐
23/06/23 11:46
수정 아이콘
오, 상당히 다르네요. 재밌습니다. 저는 84년생인데, 사실 반내에서 서태지 솔로 시절의 팬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다 합쳐도 3~4명 정도? 아이들 때 좋아하던 애들은 많았지만, 솔로 때는 다들 별로라고 하더군요. 반에는 원래 록 음악을 듣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놈들은 사실상 서태지 안티였지요.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노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애들한테 별난 음악 좋아하는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있고, 그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애썼던 흑역사(?)가 떠오릅니다. 크크.
설탕가루인형
23/06/23 11:09
수정 아이콘
그 엠비씨에서 방송했던 공연을 직관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발산동 88체육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엄청난 공연이었습니다.
두괴즐
23/06/23 11:35
수정 아이콘
오! 그 현장에 계셨군요. 부럽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060 [일반] [서베이] 정시와 수시 중에 무엇이 더 공평할까? [141] youknow0414230 23/06/26 14230 14
99059 [일반] 사람 인연이란게 참 어렵습니다 [22] 비니루다9945 23/06/26 9945 5
99058 [일반] 집 나간 적 없는 꿈을 찾습니다 下편 (내가 찾은 꿈의 결론은? 또태지) [2] 두괴즐8195 23/06/25 8195 6
99057 [일반] 네덜란드와 일본이 조만간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시작합니다. [39] dbq12315048 23/06/25 15048 9
99056 [일반] [웹소설] 이번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주목할 만한 신작들 [21] meson11392 23/06/25 11392 6
99055 [정치] 티베트 망명정부의 입장이 나왔네요 [101] 아이스베어15693 23/06/25 15693 0
99054 [일반] 바그너 쿠데타 사태 - 결국엔 정치싸움. [127] 캬라18381 23/06/25 18381 18
99053 [일반] "본인의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21] 회색사과10308 23/06/25 10308 8
99052 [일반] [속보] 프리고진 "유혈사태 피하고자 병력 철수 지시" [66] 강가딘15807 23/06/25 15807 0
99051 [일반] [팝송] 조나스 브라더스 새 앨범 "The Album" 김치찌개6175 23/06/25 6175 1
99050 [일반] [개똥글] 이성계와 가별초 [17] TAEYEON9382 23/06/24 9382 27
99049 [일반] 바그너그룹에서 발표한 공식 입장문(BBC 피셜) [113] 김유라30856 23/06/24 30856 13
99047 [일반] 러시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20] TAEYEON15923 23/06/24 15923 2
99046 [정치] 몇 십년도 지난 일을 가지고 부각하는게 국익에 도움이 됩니까? [115] dbq12319929 23/06/24 19929 0
99045 [일반] 여러분은 '성찰'하고 계신가요? [20] 마스터충달8700 23/06/24 8700 11
99044 [일반] [잡담] 참을 수 없는 어그로...그 이름 황우석 [33] 언뜻 유재석10637 23/06/23 10637 19
99043 [일반] 초대교회는 어떻게 성장했는가?(부제: 복음과 율법의 차이) [17] 뜨거운눈물7954 23/06/23 7954 4
99042 [일반] 소곱창 집에서 화상을 입어서 치료비 배상 청구를 했습니다. [12] 광개토태왕13881 23/06/23 13881 6
99041 [일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약스포) 최악의 스파이더맨 영화 [25] roqur8307 23/06/23 8307 3
99040 [일반] 집 나간 적 없는 꿈을 찾습니다 上편 (꿈 찾는 에세이) [2] 두괴즐6568 23/06/23 6568 5
99039 [일반] 사라진 신생아 2236명… 감사원발 ‘판도라 상자’ 열렸다 [81] 로즈마리18067 23/06/23 18067 7
99038 [정치] 정시가 정말 못 사는 집에 더 좋은 게 맞나? [308] 티아라멘츠17844 23/06/23 17844 0
99037 [일반] 타이타닉 근처에서 잔해 발견 [75] 우스타19212 23/06/23 1921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