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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9/26 22:11:07
Name 딸기우유먹보
Subject [일반] 염철론 - 중국 통일왕조들의 근본 사상이 유교가 된 이유

[제국]은 항상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합니다. 적국을 상대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주로 전쟁으로 귀결됩니다.-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하고 제국의 막대한 국가역량을 적절히 소모함으로써 체질 개선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 외부로 투사되지 못한 그 막대한 에너지는 내부의 권력 항쟁을 발발시키고 그 결과 몇몇 소수 가문의 국가권력 독점, 부패와 학정으로 귀결되는 쇠퇴기로 이어지게 되죠. 사람이 먹고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이 줄고 지방이 붙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제국은 '피를 마시는 새'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의 통일왕조들은 다른 지역의 제국들과는 달리 이렇게 중요한 [외부의 적]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외부의 이민족 국가(흉노, 동이, 월지, 남만 등등)들은 통일중국에 비해 체급이 너무 낮았기 때문입니다. 한고조 유방 시절엔 대초원을 통일한 유목민족 국가 흉노가 중국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으나(백등산 전투) 뒤이어 바로 한무제때 행해진 흉노 원정에서 중국과의 힘의 차이를 여실히 과시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유목민 통일왕조는 중국 통일왕조가 부패와 반란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결코 중원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송나라뿐입니다. -송나라는 스스로 칼을 포기했죠.- 그리고 근처 지역국가중 유일하게 중국과 체급이 맞는 인도제국들은 하필 티베트와 히말라야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었죠. 이것이 결국 중국 통일왕조들의 멸망이 항상 부패와 반란으로 귀결되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외부의 적을 찾을 수 없다면 내부의 근본정신을 바꾸는 것이 차선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역대 통일왕조들이 택한 길이기도 했죠. 그리하여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것에 최적화된 법가사상은 전국시대에서 진나라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건설하는 데에 결정적 요인이었으나 한나라 대에 이르러서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유교 사상에 배턴터치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후로도 혼란기가 다시 도래했을 때 부분적인 수요가 있었기에 필요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법가사상이 자신의 자리를 순순히 유교에 내어주진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도교와 나중에 중원으로 유입된 불교 등의 사상들이 중화사상의 정수 자리를 노리며 치열하게 싸우고 섞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유교에도 법가사상이 섞여 들어가 법가의 명맥이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교가 최종승자가 되기까지 이후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염철 회의]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서곡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염철론은 기원전 81년 중국 전한 소제 시기에 이뤄진 염철 회의의 내용을 후에 환관이라는 유학자가 정리해 저술한 저서입니다. 주요 내용은 승상, 대부, 어사 등의 기존 조정 관리들과 현량, 유생 등의 신진 유학자 진영이 서로 대립하여 국가에 의한 염철주 전매제의 폐지 여부를 다룬 1차 회의와 -염철주는 각각 소금, 철, 술을 의미하는데 이것 들은 당시 농민들에게 필수품이었습니다.- 흉노 등의 이민족 세력에 대한 대응 방법, 그리고 한나라가 백성에게 부과하는 각종 의무(각종 세금과 요역 등등)를 놓고 벌인 2차 회의를 다룬 토론입니다. 토론의 결과에서 유학자 진영이 승리를 거두었고 이에 따라 주의 전매 해제와 철의 부분적 전매 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염철주 전매보다는 오히려 변경 이민족에 대한 법가와 유가의 태도 차이입니다. 법가 관료들은 적극적인 변경 확장정책, 이민족에 대한 선제적 공격으로 방어를 도모한다는 국방전략을 -이것은 로마제국과 게르만족의 관계, 조선과 여진족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주장했습니다. 또, 변경에서 나오는 여러 특산물로 이전에 없었던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이는 나중에 실크로드의 번영으로 증명되게 됩니다.

반면 유학자 진영은 막대한 유지비용이 드는 변경의 험지와 요새들을 버리고 국가 내부의 안정에 집중하고 이민족에 대해서는 덕으로서 복속시키자고 주장했습니다. 또, 중국 내부의 물산으로도 천하의 수요를 충당하기에 이미 충분하며 변경 특산물의 가치보다 그 특산물을 수확하고 운송하는 데 소모되는 비용이 더욱 많이 든다며 법가 의견을 반박했습니다. 또한, 농민들을 쥐어짜서 국력을 집중하는 법가사상을 비판하며 과중한 노역과 세금을 철폐하고 덕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습니다. 국가에 의한 염철주 전매제 해제주장 또한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학자들은 확장정책을 포기하고 대신 긴 안정기를 가지도록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물론 안정기의 끝에는 쇠퇴만이 기다릴 뿐입니다만 흉노가 더 이상 경쟁국의 역할을 못 하게 되는 것이 명백한 당시 상황으로서는 저는 유학자들의 주장이 국가 시책으로서는 타당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중국의 역대 왕조들 이상으로 철저하게 유교 사상을 국가통치이념에 적용한 조선은 수많은 대내외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려 500년 동안 존속하게 됩니다.- 다만, 이것이 결국 중국의 중화사상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만들어내게 되어 [중국의 한계] 또한 규정해버린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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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날흙비린내
22/09/2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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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게 유교 사상에서 나오는 덕치의 부작용으로 과도하게 근검절약과 청렴결백을 강조하면서 너무 낮은 세율을 유지한 나머지 나라가 길게는 가도 도저히 굵게 갈 수가 없었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작물 생산량이라면 차고도 넘치는 중국조차 같은 길을 택했다는 건 굉장히 신기하네요.
22/09/26 22:28
수정 아이콘
근데 덕치를 해서 정말 민생이 풍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율만 보면 낮지만 조선이든 중국이든 중간에서 떼어먹는 게 많아서 전국시대 일본이랑 별 차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래도 더 낫긴 했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만.
물론 세계관 단절이 없어서 사방에서 침략당한 중동, 인도에 비하면 그래도 덜 혼란스러웠던 건 맞겠군요. 근데 그건 유학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네...?
닉네임을바꾸다
22/09/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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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전국시대 일본이라고 안떼어먹었을리는 없으니?
딸기우유먹보
22/09/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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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를 국시로 삼는다고 모든 농민들에게 덕치가 적용되는건 아닙니다. 그러기위해선 군주의 확고한 의지. 행정기관과 담당관리의 확실한 배치와 꾸준한 감사관운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전근대 국가에서 이게 재대로 이루어지는 상황은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서 따져볼건 농민을 대놓고 일개 '소모품' 따위로 취급하느냐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국가의 근본대접을 해주고 차별 개혁도 가끔씩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딸기우유먹보
22/09/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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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국시대 일본과 비교하면 단언코 조선과 중국 농민들의 사정이 나았습니다. 물론 가끔가다 만력제같은 암군이 국정은 안살피고 만력3대정 같은 짓거리만 안한다면의 가정이지만요.
크레토스
22/09/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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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세율은 그런 각종 수수료 포함해도 25~30% 정도 였는데 일본 세율은 50% 이상이었습니다.
22/09/2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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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한데 추가로 공납(이라기보다는 방납)도 있고, 요역도 있고, 잡세도 있고, 아전에게 뇌물도 줘야 하고, 소작농이면 소작료도 내야 하고 해서 계산하기가 난망한 점이 있습니다.
크레토스
22/09/26 23:34
수정 아이콘
제가 말한 퍼센티지는 그런 잡세 포함한 겁니다. 조선의 공식적인 세금은 10% 미만이에요
동굴곰
22/09/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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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기본세율 50퍼인 일본엔 그런 잡세+뇌물이 없냐가 되죠.
Liberalist
22/09/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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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납 요역 잡세 및 뇌물 등등은 우리만 있었던게 아니죠. 전국시대 일본에서 온갖 잡세를 혁파한, 오다 노부나가가 최초로 도입한걸로 유명한(실제로는 아닙니다만) 라쿠이치라쿠자가 괜히 혁신 소리 들은게 아닙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22/09/27 23:54
수정 아이콘
최초로 도입한 건 롯가쿠 가문이죠. 오늘날의 시가현 남부를 거점으로 했던
크레토스
22/09/26 23:11
수정 아이콘
유목민족 대상으로 법가 입장이 그다지 현실성 없었다고 봅니다. 결국 유목민족의 땅을 점령하지 않으면 끝없이 전쟁해야 하는데 화약무기가 발전하기 전엔 유목민족 본토 점령은 말도 안됐거든요. 그렇다고 끝없이 전쟁은 돈이 남아나질 않죠.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중국이라는 거대제국에 맞서 유목민족이 힘을 합칠수도 있고요.
내배는굉장해
22/09/26 23:23
수정 아이콘
기본적으로 그게 이익 되냐? 이건데 중국은 중국 밖으로 나가서 딱히 크게 이익 볼게 없었죠. 중국의 거의 모든 대외 원정은 변방을 어지럽히는 외적을 섬멸 하는 거 이상의 이익을 내부의 집단들에게 이익을 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한무제의 흉노 원정도 흉노를 물리쳤다. 이거지 흉노를 물리쳐서 흉노에게 존재하는 금은 보화를 가져오고 흉노의 영토를 정복해서 그게 이익이 되고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명나라 영락제도 그렇고 청나라의 여러 대외 원정들도 땅을 넓히긴 했지만 그게 제국에게 도움이 됐냐고 하면 좀...?
딸기우유먹보
22/09/27 01:24
수정 아이콘
중국 변방에 중국수준의 국력 -군사, 경제, 문화를 종합해서- 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는게 중국의 행운인 동시에 족쇄였습니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비슷한 체급인 인도마저 티베트와 히말라야로 가로막혀있었으니까요. 주변국과의 패권경쟁을 통한 국가체질개선, 기술발전, 시대관발전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다못해 유목제국들이 다른건 몰라도 군사력이라도 중국제국과 비슷했으면 그나마 나을텐데 중국이 전성기를 맞이해 열심히 대외원정을 나가면 유목민들은 일시적으로 복속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잠시 더 깊은 대초원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중국의 시도를 손쉽게 파훼했습니다. 중국 내부도 완전한 행정력 투사를 못하는 중국제국이 유목민들의 똥땅에 지속적인 파병과 점령시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리곤 중국제국이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갈때를 기다려 카운터펀치를 날렸죠. 중국입장에서는 뭐 이런 가불기가 있나 싶었을 겁니다.
내배는굉장해
22/09/27 07:58
수정 아이콘
대초원을 가로질러 쫓아가지 않았다고 중국 왕조들을 비판할 수도 없으니까요. 중국이 유목민을 쫓아가서 원정이 지속될만한 이득을 거두려면 몽골처럼 위로는 러시아, 밑으로는 페르시아, 터키 이정도까진 가야 한다는 건데 이건 몽골이나 하는 거지 정주민족 왕조가 못했다고 비판 할 수도 없어요.
닉네임을바꾸다
22/09/27 09:50
수정 아이콘
한무제나 영락제의 대규모 원정들 보면 쓰는거에 비해서는...얻을거라곤 체면밖에 없으니...
펠릭스
22/09/27 00:30
수정 아이콘
애초에 중국은 외국의 부를 가져올 필요가 없는 나라니까요.

송대 전세계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물론 정확하지는 않은 수치입니다.) 나라가 외부의 부를 가져와아겠다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하지요.
동년배
22/09/27 01:04
수정 아이콘
나일-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권은 서로 열심히 싸우고 교류했던 반면
황화-중국 문명은 초원길은 유목민족에게 대부분 막힘/실크로드-타클라마칸 북로남로 모두 험하고 인구가 적어 수요 부족으로 자급자족전 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무역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고
해양로는 일단 중국에서 말라카 해협까지는 남북으로만 긴 항로라 편서풍, 무역풍 같은 향상풍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고 베트남 이남으로는 딱히 대도시도 없어서 지중해나 홍해, 페르시아 만 같이 좁은 바다에서 가까운 도시끼리 내륙 수운처럼 운영도 어려웠고.... 여러모로 중국 제국이 단일 제국으로 밖에 운영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초원 제국이었던 몽골은 제외하면 중국에서 서쪽으로 최대한 진출했던게 카슈가르 지역인데 여기는 당이 8세기 수십년 지배했다가 탈라스에서 패배하고 물러나고 그 이후 중국이 진출했던게 17세기 청입니다. 그냥 지리적 운명이 고립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죠.
투토끼헌터
22/09/27 01:54
수정 아이콘
염천교님.. 안 그립습니다
아수날
22/09/27 02:29
수정 아이콘
삼탈워 키러 갑니다
일루인
22/09/27 02:5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국가 간 경쟁시스템의 부재가 유럽과 중국의 차이, 소위 대분기를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행정-군사시스템을 끊임없이 변혁해야 했었다면 (Military Revolution, 그리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할 관료제 및 세수체계), 중국은 Mark Elvin 이 말하는 High-Level Equilibrium 에서 벗어나올 유인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딸기우유먹보
22/09/27 03:46
수정 아이콘
중국제국중 자신의 전성기에 진정한 적수를 만나 포텐셜이 만개한 케이스가 하나 있었죠. 바로 남송입니다.
문자 그대로 세계(유목민 세계, 중원, 서하, 아랍, 동유럽 등등)를 집어삼키던 전성기 시절 몽골제국을 상대로 불과 강남과 파촉지방만 가지고도 강남재계발을 해가면서 국력을 뽑아내어 정면대결을 하며 구속구가 해제된 중국왕조의 실력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숨고르기
22/09/27 10:17
수정 아이콘
그 포텐셜 만개한 송나라조차도 물량 한타에 다 리셋되버린걸 생각하면 유럽에 비해 혁신이 꾸준히 지속되기 어려웠던게 이해가 갑니다. 머릿수 앞에 기술이며 과학이며 그딴게 무슨 소용?
딸기우유먹보
22/09/27 12:41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kr/recommend/2856?page=3&sn1=on&divpage=1&sn=on&keyword=%EC%8B%A0%EB%B6%88%ED%95%B4
'세계를 정복한 최강의 제국, 여기에 맞서던 지상 최대의 장벽' 이글에서 진심모드 중국의 저력을 알 수 있습니다.
계층방정
22/09/27 09:46
수정 아이콘
너무나 자질구레한 얘기지만, 한무제의 흉노 원정 맨 마지막 전투인 연연산 전투가 너무나 참담한 패배였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흉노 원정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연연산 전투에서 이긴 흉노가 다시 한의 위협이 됐냐면 그건 또 아니고요. 그리고 대외 원정을 주도한 한무제가 정작 죽을 무렵에는 '윤대의 조'를 내려서 원정 위주의 정책을 뒤엎고 휴식을 하고자 한 것도 염철회의에서 법가가 패배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Liberalist
22/09/27 10:04
수정 아이콘
염철 논쟁이 향후 중화권 이천년의 방향타를 결정지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논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요성에 비해 언급은 그리 많이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마행처우역거 같은 대체역사물에서 염철론을 중요하게 다룬 걸 보고 엄청 신선하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숨고르기
22/09/27 10:09
수정 아이콘
그때 염철논쟁에서 승리한 이데올로기가 중국의 방향타를 결정한걸까요 아니면 여러가지 지정학적 한계가 중국을 자연히 그렇게 만든것일까요 결론은 안나겠지만 참 재미있는 생각거리 같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안군-
22/09/27 18:1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중간에 국경선을 긋기가 애매한 중국의 지정학적 요소와, 풍부한 중원의 곡물생산력, 인구.. 등등도 유교사상이 자리잡기 좋은 환경이었다고 봅니다.
파워크런치
22/09/27 21:49
수정 아이콘
현대의 중국이 발전하는 이유도 외부의 적이 있기 때문일까요... 재밌네요. 강력한 중화사상이 없으면 나라가 무너질거라 생각해서 동북공정, 문화 예속 시도를 하면서 강한 중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외부에서는 납득가지 않는) 전랑외교를 굳이 하는건가... 미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네요. 지금 돌아가는 모습으로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출산율 여파로 타격을 분명 받을 것 같은데
딸기우유먹보
22/09/27 22:30
수정 아이콘
외부의 적은 양날의 검입니다. 외부의 적이라는 시련을 잘 극복하면 국가발전의 기회가 되지만 반대로 대응을 그르치면 멸망의 위기가 도래하죠. 전근대 중국은 이러한 외부의 적 자체가 없어서 발전이 뎌뎠지만 현대의 중국은 반대로 과거에는 조공국 수준이었던 주변국가들의 체급이 강력해졌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강의 제국인 미국까지 상대해야하죠. 때문에 중국의 앞날은 살얼음판과 같다볼 수 있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22/09/27 23:55
수정 아이콘
유학자 이름이 환관이라는게 뭔가 살짝 진중한 글에 숨구멍을 틔워주는 느낌입니다 후후... 중국식 발음으로는 무관했겠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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