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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2/08/29 17:07:59 |
Name |
aura |
Subject |
[일반] 낡은 손목 시계 - 2 |
머리 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짜르르한 전기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묘한 기시감이 저 아래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불쾌하게 나를 적신다.
두 번 다시 겪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두려웠던, 영혼이 찢어지고 쪼개지는 고통.
그 고통을 다시 상기한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빠, 괜찮아? 끔찍한 악몽이라도 꾼거야, 정말?
그런 내 모습을 눈치 챘는지, 아내는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괜찮아. 오빠. 괜찮을 거야.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아내는 살포시 나를 껴안고는 토닥토닥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 잔잔한 심장 박동과도 같은 토닥임에 불쾌한 감정이 조금씩 씻겨져 나간다.
놀란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고, 그제야 나는 정상적인 사고가 작동함을 느꼈다.
원래라면 출근 전 아내의 손목에 걸려있어야 할 낡은 손목 시계가 이불 속 파묻힌 내 손 끝에서 느껴졌다.
내가 아내의 죽음을 예지하는 끔찍한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정말 영화처럼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 끝에 현재에 와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애석하게도, 아내의 죽음이 오늘 다시 재현 될 것이라는 확신을 내게 주었다.
아아. 젠장.
속이 바싹 타 들어간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내 태연한 척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괜찮아. 무슨 꿈을 꾸긴 한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네.
뺨과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내에게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째각. 째각.
손에 쥔 손목시계의 초침이 움직인다. 어쩐지 그 초침의 박자가 마치 내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다행이네.
아내는 토닥거림을 이내 멈추고 맑게 웃었다. 어쩐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오빠, 혹시 내 시계 못 봤어?
째깍. 째각.
손을 타고 흐르는 시간의 감각이 오롯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짐짓 아내의 물음을 모른 채 했다.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내가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면 이 낡은 손목 시계가 다시 한 번 기적을 일으켜 줄지도 모른다.
아내에겐 굉장히 미안하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이 시계를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으음...
아내는 짐짓 모른 채 하는 내가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흘겼으나, 그 모습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고 해서 아내에게 시계를 돌려줄 순 없었다. 이렇게 된 김에 좋은 생각이 났다.
아내는 오늘 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살해 당했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끔찍한 재앙을 비켜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오늘 하루 쉬는 게 어때?
뭐?
윤아, 나도 오늘 출근하기 싫은데 그냥 같이 쉴까?
밤에 수박 서리를 하는 도둑처럼 목소리가 자꾸만 떨린다. 아내가 이상함을 눈치채길 바라지 않으며, 평정심을 되뇌었다.
오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래, 그러자며 아내가 침대 속 내 옆으로 쏙 들어오길 바란 것은 나의 헛된 희망이었나 보다.
생각보다 정색하며, 격하게 반응하는 아내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내 덕에 진정되었던 가슴에 다시금 불안한 싹이 움텄다.
휴. 오빠, 아무리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좋지 않은 표정이 다 드러났나 보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이를 달래듯 나를 위로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직접 아내를 지키는 것 뿐이다.
다짐은 빨랐다.
알았어. 출근 먼저 할 거지?
응. 근데 진짜 내 시계 못 봤어?
못 봤어.
아내는 몇 분 정도 더 시계를 찾다가 이내 출근 시간이 임박해서야 포기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내게 출근 인사를 건넸다.
에휴. 아무튼 오빠 꾸물거리지 말고 준비하고 출근해야 해?
아내가 떠난 뒤 나는 먼저 회사에 전화하여 연차를 썼다.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다며, 너 미친 거냐고 따지듯 묻는 팀장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채 씻지도 않고, 아무 옷이나 급히 챙겨 입었다. 밤까지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고 진정 되지를 않아 아내를 따라 나설 생각이다.
문을 나서기 전 발걸음을 멈칫 세운다.
그리고 신문지로 둘둘 두른 식칼을 백팩에 욱여 넣었다.
크게 숨을 내쉬며 착잡하게 엉겨 붙는 불안감을 애써 털어내며, 아내를 따라 나섰다.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쯤 되는 거리에 아내의 회사가 있었다.
대략 밤 10시에서 11시 사이 아내는 퇴근할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11시에서 12시 사이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
날 선 긴장감에 째각 째각 1초 1초가 생생히 느껴져 시간은 체감보다 더욱 느리게 흘러갔다.
마침내 적막하고 고요한 밤이 잦아들었을 때 퇴근하는 아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짠! 서프라이즈.
자연스럽게 마중 나왔다는 듯이 나는 아내에게 손깍지를 끼었다.
아내는 놀라기 보다는 퀭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화답하든 마주잡은 깍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짜기라도 한 듯 우리는 꼭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손을 타고 오가는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가는 길엔 서로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남겨둔 인적이 으쓱한 마지막 골목길에선 나도 몰래 잔뜩 긴장감이 고양됐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중얼거리면서도 언제든 챙겨 온 칼을 꺼낼 수 있게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고 지퍼를 슬쩍 열어두었다.
터벅. 터벅.
때마침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나와 아내에게 찾아왔던 끔찍한 불행의 발소리일까?
터벅. 터벅.
커다란 발 소리가 무척 크게 울린다.
오빠, 아파.
긴장한 탓에 손에 힘이 잔뜩 들어 갔는지 나도 모르게 아내의 손을 지나치게 세게 잡은 것 같다.
다만, 사과할 경황도 없이 더 빨리 아내의 발걸음을 채근할 뿐이다.
터벅. 터벅. 터벅.
짧아지는 발소리 만큼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극도의 불안감, 공포감, 조바심이 이상을 마비 시킨다.
터벅. 터벅. 터벅.
뒤를 돌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뒤를 바라 보았다.
우웩! 우웩!
기우였을까. 끔찍한 괴한 대신 취객 하나가 골목 벽을 붙잡고 토악질하고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긴장의 끝을 놓진 못하고, 마침내 아내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무탈히 지나갔나? 싶은 생각과 함께 팽팽한 긴장의 끈이 풀리고 저도 모르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내는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을 이미 눈치챘는지 아무 말 없이 지쳐 널브러진 나를 따뜻한 손길로 다독였다.
고마워. 오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오듯, 회사부터 집까지 왔을텐데도 무슨 일이냐며 이유조차 묻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는 아내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다행히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나오는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아내를 꼭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내는 다시 살해당했다.
3에 계속. (4에 끝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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