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의 첫 번째 놀이터는 장난감이었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공을 차고 놀았을 것이고, 네가 세네 내가 세네 하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힘겨루기를 했겠지만 내겐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었기에 엄마 등에 업혀 매일이고 사달라고 조른 장난감 친구들이 내 놀이터였다. 사내 녀석이라 그런지 로보트를 좋아했고 각종 자동차에도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환장하도록 좋아했다. 어렸을 적 나도 지금처럼 소유하고 있는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는지 때 지나고 오래된 장난감이라도 없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다 자랄 때 까지도 그것들을 버리지 않으시곤 내 허락을 받고 버리셨다.
나의 두 번째 놀이터는 PC다. 내가 처음 PC를 접한 건 예닐곱 살 때, 혹 그 이전이다. 당시 최고의 게임이었던 남북전쟁이나, 바바리안, 무도관, NBA 등을 보기 위해 큰 형 방에 앉아 몇 시간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고는 싶은데 내가 할 수는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나중에 형 나이가 되면 이 모든 걸 해보리라고... 훗날에 나는 명 컴퓨터였던 PC가 퇴물이 되고 난 후 그 소원을 이뤘다. 그러나 당시에 봤던 모든 타이틀은 해보지 못했다. 바이러스라는 적군 때문에....
나의 현재 놀이터 역시 PC다. 역시 나와 컴퓨터는 운명적 사이, 아니 환상의 짝꿍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내 앞에 놓여진 컴퓨터는 요즘 잘 나가는 쌩쌩이가 아니다. 하지만 이 컴퓨터는 가히 내 삶의 일부분이다. 요즘 같은 바깥 기후에는 바람 녀석과 조우하는 것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과 맞먹도록 힘들고 또 아무리 챙겨 입어도 바람의 한 자락이 내 심장을 뚫고 들어오기 쉽상이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이 녀석을 이용해 계절이 변하는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없고, 펑펑 눈이 쌓인 날에 눈사람을 만들 수 없고, 보고 싶은 이들을 향해 달려갈 수 없지만 대신 내가 함께할 수 없는 그 곳을 들여다 볼 수도 있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도 들을 수 있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고 내 감성을 흩뿌릴 낙서장도 있다. 그리고 일일이 친필로 서신을 보내지 않아도 맘만 먹으면 시공을 아우를 수 있는 세계인과의 교제도 가능하다. 물론 이것 모두를 직접 하면 좋으련만... 어찌 그러랴?
이 역시도 대리 만족이다. 가장 즐거운 건 마우스로 누군가와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왼손이 키보드 아래서 꿈틀 거리면 좋으련만 난 사실 이마저도 감사하다. 컴퓨터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를 알게 되었고 스타크래프트 덕분에 임요환을 알았고 그랬기에 팬이 되어 형과 동생이 되었다. 더불어 그를 만난 덕택에 난 평생 잊지 못할 한 명의 소울 매이트, 정확히는 또 다른 나를 만났다. 이처럼 PC라는 놀이터는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자유롭지 못한 내게 일정부분의 자유를 안겨 주었고, 희망도 움켜쥐었다. 그래서 난 내 아지트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 하지만 세상은 내게 자유를 주었던 선물을 통해 얻으려는 새로운 자유를 비관한다. 내 스스로 그 비관을 외면하면서 살아간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세상이 주는 굴복 앞에 힘들어 한다. 편견 따위가 내 맘을 오염 시킬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럴 놈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패배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 자유로운 내 놀이터에서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나? 내가 느꼈던 깨끗한 느낌의 날개 짓은 정녕 거짓이 아니었거늘 나는 이곳에서 이제껏 오해하고 있었나. 내가 이 공간에서 이루고픈 건 사이버 스포츠 선수 뿐 만이 아니다. 사회에 거짓된 편견들을 나의 펜대로 조금이나마 잠식시키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무릎 팍 도사의 강수진 편을 봤다. 하루 19시간 연습, 그렇게 미련한 강행군을 펼치는 건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보다 턱없이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내 하루는 언제나 꽉 찬 삶을 살지 않은 적 없다는 것이다. 가끔 게으름이 나에게로 찾아올 때, 또 다른 치열하지만 사소할 무엇을 향해서 갔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아직 조바심 낼 때가 아니다. 무엇인가 타인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 그로 인해 나는 더 강인해 질 것이고 그 환란으로 인해 내 영혼은 다듬어져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난, 아직까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포기란 이름을 보지 못했으니까. 당신이여 지금 내 말이 허언으로 들리는가? 동감하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상상 그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 놀이터에서도, 이곳을 벗어난 빛과 바람이 공존하는 꿈의 궁전에서도 나는 한 걸음씩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저 하늘과 하이파이브 할 것이다. 내가 아직 살아있으니...
간다. 그 지독한 편견을 깨러!!!
Written by Love.of.Tears.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1-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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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세요. 저두 지금 알바3개 뛰고와서 피곤에 쩔어, 아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며 신세한탄이나 하고있었는데, l.o.t.님 글읽고 나니 다시금 힘이 나는대요? 어서 기숙사 올라가 샤워하고 내려와야겠어요. 할수 있는데까지 도서관서 책이라도 좀 더 보고 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또 열심히 살고싶은 에너지가 마구마구 생기게 되었습니다....
love.of.tears님 이번 한주도 꼭 행복하시길!!!! 그리고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하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