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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4/13 00:03:05
Name 이븐할둔
File #1 이븐할둔.jpg (1.13 MB), Download : 54
Subject 이븐 할둔은 누구인가? (수정됨)


오늘날 아랍 세계라는 명칭은 한국, 서방 세계의 대중들에게 썩 우호적인 이미지가 아닙니다. 전근대적인 후진 사회, 극단주의자들의 발호, 세계적인 낙후 지역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아랍-이슬람 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 학문적으로 발달하고 번영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이슬람교의 후진성"이라고 불리는 교리들이 당대인 관점에선 "선진적이다"라고 할 만한 부분들도 제법 있었거든요. (물론 오늘날 와서 이슬람이 마냥 자애의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긴 합니다만...)

아랍 세계는 인류사에 수많은 지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0이나 파이와 같은 많은 수학적 개념들이 인도에서 먼저 구상되었고 이들은 아랍 세계를 거쳐 서유럽으로 넘어가 근대적인 수학 체계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많은 용어는 아랍 세계의 학자들이 고안한 것입니다.

가령 알콜은 아랍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의학용도로 사용되었다거나, 알고리즘은 9세기의 아랍학자 알콰리즈미의 학문을 뜻하는 라틴어였습니다.  아랍 이슬람 세계가 한창 절정에 이르렀던 8~9세기에는 당대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을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나 학문에 대한 논의도 굉장히 심도 있게 논의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 시대치고는 말이죠.

하여간 아랍세계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부상하기 전까지는 굉장한 개방성과 잠재력을 지닌 문명권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아랍 세계가 교조화, 근본주의화 된 것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정치적 분열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침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교조화되었다, (몽골 침공, 십자군 등), 혹은 이슬람교 자체에 내재되어있던 문제가 제때 개혁되지 못했다는 주장들이지요.

무엇이 옳은 지는 저는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천년 전의 일이니 현대인 중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하여간, 이븐 할둔은 그런 이슬람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학자 중 한명입니다. 아랍 문명권을 멸시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도 그의 저작은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할둔 가문은 이슬람의 스페인 정복 당시에 따라와 세비야에 자리 잡았던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때 유럽 전체를 석권할 것 같던 기세의 우먀미야 왕조도 결국 쇠퇴했고 기독교도 레콩키스타들에 의해 세비야를 빼앗기지요. 할든 가문은 그렇게 튀니지로 도망쳤고, 현지의 지배자를 섬기는 가신 집단으로 연명했습니다.

이븐 할둔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븐 할둔은 쿠란, 법학, 역사, 수학, 논리학, 그리스 철학 등을 배우며 자라났습니다. 물론 중세 시대 사람답게 쿠란에 대한 공부도 잊지 않았지요. 아마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 공부였을 것입니다. 뉴턴이 성경을 진리가 담긴 텍스트라고 여기며 꼼꼼히 탐구했듯이 말이지요. (현대의 사우디 와하비스트들도 쿠란 외의 학문을 좀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

할둔은 젊어서는 정치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썩 잘 풀린 편은 아니었습니다. 계파 싸움에서 패배해서 감옥에 갇히거나, 주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도망쳐야했거든요. 그렇지만 튀니지, 그라나다(스페인남부), 틀렘센(모로코지역)의 술탄을 번갈아가며 섬겼으며 그 때마다 외교관, 관료로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그라나다에선 기독교 군주들과의 외교전을, 틀렘센에선 유목민 부족들 간의 평화를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지요. 그 와중에 학문적 저작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정치적으로는 어찌보면 실패한 가득한 삶이었지만 그의 학술적인 성과는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게 이븐 할둔에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주지요. 메카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와중에 그의 명성을 들은 현지 군주들이나 명사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편을 잡을 기회를 얻거든요.

위대한 스승으로 명성을 쌓은 이븐 할둔은 아예 맘루크 정권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되는 영예도 누립니다. 그러다가 정권 전복 음모에 연루되어(....) 붙잡히지만 맘루크 정권은 이븐 할둔에게 학계에만 종사할 것을 요구하며 순순히 풀어주지요. 맘루크 정권은 노예군인들의 정권입니다. 통치가 굉장히 터프하던걸 감안하면 할둔이 누리던 영예를 알 만 하지요.

그렇게 할둔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중동 지방에서 계속 교편을 잡고 지내다가 죽기 전에 특별한 이벤트를 맞이합니다. 다마스커스에 초청 강연을 와서 명사들을 모아두고 강의를 하는데 갑자기 도시가 포위당한 것이죠. 하필이면 그게 정복자 티무르였고요. 그런데 정복자는 할둔을 주둔지로 초대해 자신에게 역사 교습을 요구했고, 티무르는 이븐 할둔의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릅게 들었습니다. 덕분에 할둔은 무사히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마스쿠스는 불타고 약탈당했습니다. 티무르는 같은 무슬림들에게도 일말의 자비를 보이지 않았으며 모든 포로는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자비를 청하던 이맘들마저 산 채로 불타죽였다고 사서는 전하고 있지요.)

어찌되었든 이븐 할둔은 이집트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다가 74세의 나이로 죽게 됩니다. 그의 저작은 여럿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건 "집단의 흥망성쇄는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해설한 역사서설입니다. 

할둔은 "아샤비야", 굳이 한국어로 바꿔보자면 "사회적 연대"가 높은 집단이 "사회적 연대"가 낮은 집단을 정복해왔다고 주장합니다. 할둔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연대는 "함께 고생하면서 동고동락하는 집단"에서 매우 높아집니다. 덕분에 험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유목 부족들이 자신들보다 인구수가 훨씬 많은 도시와 정주민들을 정복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렇게 유목 부족이 정복자가 되면, 1세대는 자신들 간의 끈끈한 연대를 잃지 않기에 성공적으로 지배를 이어나갑니다. 2세대도 부모의 인생을 직접 지켜보았으니 성공했던 비결을 압니다. 하지만 3세대가 되면 유목민의 야성도 잃고, 아샤비야도 떨어지기 때문에 지배권이 흔들리고 결국 새로운 유목 부족에게 지배권을 내주게 된다는 이론이지요.

오늘날의 시점으로 보면 그의 설명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학문이 없던 세상에서 과학적으로 인간 사회의 흥망성쇄를 파악해보려는 노력은 굉장히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샤비야"나 "3세대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제법 통용이 되는 경우가 많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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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달린뱀
21/04/13 01:2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이런 유럽이 아닌, 전성기의 타 문명의 이야기를 읽으면 정말 가슴이 두근댑니다.
까놓고 산업혁명 이전 유럽 역사는 별로 특별할 게 없다고 전 생각해요. 그저 승리자가 어떻게 승리했는지 돌아보기 위해 공부할 뿐, 당시 역사 그 자체로는 유럽 역사가 특출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후진적인 부분이 많았죠. 전성기의 이슬람도, 유목 민족과 투쟁하고 흡수한 중화문명도, 깨달음과 힘이 맞부딪히던 인도 문명도, 모두 하나하나 다채롭고 찬란했습니다. 정말 파보면 유럽 역사 이상으로 무궁무진한 흥밋거리가 넘쳐나는데, 단지 최종적으로 승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모두 묻혀버리고 저평가 받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유럽 문명이 세계를 제패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서구의 우월성과 보편성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죠. 우리 그 자체가 서구가 되어버렸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어쩌면, 이런 인식은 그저 당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좁은 시야일 수밖에 없지 않나는 생각이 들어요.
이슬람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동안 유럽은 그저 동로마 방패빨로 버티던 후진적인 지역이었을 뿐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결국 그 이슬람의 찬란했던 학문적 성과를 흡수하고 세계에 우뚝 선 것은 또 유럽이지요. 당대 이슬람교도가 나중에 유럽이 세계를 제패할 거란 소리를 들었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보면, 이슬람도 그 번영의 근원은 그리스와 동로마, 페르시아의 학문, 제도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거잖아요? 결국 또 돌고 도는게 아닌가 싶고.
지금으로써는 서구의 우위가 영원할 것 같지만, 어쩌면 또 다른 곳에서 서구를 이어받아 새롭게 부흥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현대 구미는 지금 우리가 이슬람과 인도를 바라보는 정도의 시선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기에 너무 즐겁습니다. 수백년간 안정적인 제국의 신민 입장에선 절대로 자기 문명권이 퇴조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언젠간 영원할 것만 같은 현대가 붕괴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미래가 전개될 것을 생각하면 참 가슴이 뛰어요. 그 시대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븐할둔
21/04/13 02: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말씀하신 역사의 즐거움에 크게 동의합니다. 사라진 문명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었으나 지금은 쪼그라들었거나 사라진 문명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슴이 설레이는 면이 있지요. 사회와 인간, 역사에 대해서 되돌아보기도 하고요.

말씀대로 9세기의 지중해인들에게 유럽인들이 천년 뒤에 지구를 정복한다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겁니다. 애초에 지구에 대해서도 인식하질 못하겠지요. 현대로 치자면 천년 뒤에 인도에 기반한 비밀결사가 데스 스타와 제다이를 앞세워 우리 은하를 정복한다는 느낌이겠지요. 산업 혁명이후 인류 역사의 변화 속도는 지독할 정도로 빨라졌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가 열렸다고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럽사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굳이 한 지역의 역사만 배워야한다면 유럽사만 가르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세계와 현대 세계를 탄생시킨 문명이니까요. 제가 역사에 깊이 빠져든건 "왜 서양인들은 저렇게 강대한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유럽의 세계 정복은 산업 혁명으로 완성되었습니다만, 그 태동은 이미 르네상스 시대때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유럽 문명권이 다른 지역을 확실히 앞서갔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방방 곳곳으로 항해를 떠나서 벌어들인 자원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태동하고, 이들이 계몽 사상을 창조하고 수용하며, 과학 혁명을 이끌어가는 움직임은 유럽사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현대인들이 수용하고 있는 정치 체제, 사상, 학문이 모두 이때 태동되니까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콜럼버스의 교환 덕분일테고요.

이런 식으로 하나씩 타고 올라가다보면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 시대에, 중세 시대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저는 이 흐름을 타오르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동시에 말씀대로 문화와 학문은 뒤섞이고 변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서양인들에게 더 이상 열등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배우면 배울수록, "서구인" 혹은 "현대인"의 기준은 (역사 속에서는 "문명인"이라고 통칭되던)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사고 방식, 가치 체계,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저한테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서양사"는 굉장히 역동적이어서 좋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지중해 세계의 변방이었으나 대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지중해를 장악하고 그리스 세계를 열었지요. 이런 그리스 세계에서 마케도니아는 야만족이었으나 알렉산더의 등장으로 마케도니아는 헬레니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헬레니즘 세계의 변방이던 로마는 그들에게서 문물을 열심히 배워서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었지요. 시간이 지나자 로마는 쇠퇴했지만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던 그리스인의 후예들은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부르며 로마의 이름을 천년 더 이어갔습니다. 로마 제국을 세웠던 라틴인들은 제국의 이름을 버렸으나 옛 바르바로이들과 융화되서 새롭게 라틴 유럽을 만들었고요. 이들과 죽일듯이 싸우던 바이킹 족, 마자르 족들은 결국 개종해서 기독교 세계의 일원이 되었지요.

종교의 영향력이 희미해지자 기독교 세계는 무너졌지만, 다음에는 근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지요. 이런 혼돈 속에서 신대륙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근본없는 국가"를 세우고 변방의 못배워먹은 놈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것도 재밌습니다. 이 망명자들의 후손은 구 대륙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굉장히 젊고 역동적인 제국을 만들었지요.

저는 이래서 서양사가 너무 좋습니다.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매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등장하는 세력들의 이름과 구호가 달라지는 것도 아주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들의 역사도 굉장히 흥미롭지만, 서양사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현대에서 역사를 공부한다면 가장 먼저 공부해야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하고요:)
21/04/13 08:55
수정 아이콘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두 분의 댓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이네요. 두 분의 멋진 댓글 감사드립니다!

한국 공교육이 매우 서양사에 편중되어 있고, 그 이유는 두 분이 언급하신 서양사의 보편성과 중요성에 있겠습니다만...
저는 교육적인 측면이 아니라 단순히 역사 취미 측면에서는, 비잔틴 제국사, 중근동사, 이슬람사를 공교육에서 거의 다루지않고 남겨둔 점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주입식 공교육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접했더라면, 이 찬란했던 문명들의 역사가, 이전에 전혀 맛보지않은 진수성찬처럼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깨달았을때의 황홀함, 미지의 신대륙을 더듬어 탐험하는듯한 그 설레임은 없었을테니까요.
깃털달린뱀
21/04/13 13:06
수정 아이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반발로 '유럽은 특별할 게 없다!'라고 중2중2하게 선언하긴 했지만 사실 저도 서양사 좋아합니다 흐흐흐.
전 제국뽕이 있어서(영토 크기가 아니라 수많은 문화와 민족을 하나로 묶는 포용성과 보편성) 로마제국을 좋아하는데, 지중해 세계라는 큰 관점에서 서유럽보단 동방과 이집트 쪽이 좋더라고요. 서로마 멸망 이후야 서유럽 쪽은 흥미가 사라지고 그대로 동로마뽕으로 이어지는데 이 역시 훗날 카이세리 룸을 자처하는 오스만이 야금야금 집어먹고... 흑사병만 아니었어도!

르네상스 이후 얘기부터는 완전 공감합니다. 사실 산업혁명이 쐐기를 박은 거지 실제로는 대항해시대가 많은 걸 갈랐죠. 식민지에서 유입되는 자본, 역내 시장 크기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 시장 형성과 통제가 유럽이 멜서스 트랩을 끊고 승천할 수 있도록 해줬으니까요. 당시 국제시장 형성이나 식민지 지배 구조 전략 등 팔수록 신기한 게 무궁무진해요.

물론 여전히 Age of Discovery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서부 '개척'같은 내러티브는 굉장히 싫어하긴 하지만요.
너희가 승리하고 제패한 건 인정하는데 좀 너무 너희 일변도로만 생각하지마! 정도일까요. 흐흐.

재밌는 답글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1
아난시
21/04/13 02: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런 전근대 시대의 문명 교류를 접하면 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해서 서로 대화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저는 영어 하나 사용하기도 벅찬데요. 과거로 돌아가 티무르에게 해준 역사 강의에도 꼭 참여해보고 싶군요.
이븐할둔
21/04/13 02:43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감사합니다. 전근대 사람들도 아난시님이나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모국어 외에는 다들 버거워했습니다. 단지 오늘날처럼 지식인층, 지배 계층은 훈련을 통해 다양한 언어를 익혔을 뿐입니다. 매스미디어도, 공교육도 없는 시대이니 지역별 방언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다른 경우도 있었겠지만요.

이븐 할둔의 경우엔 모국어가 아랍어였던 것이 학자로서 큰 이점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스페인 남부에서 페르시아 인근까지 굉장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언어거든요.무엇보다 아랍어는 무슬림들에게 "쿠란을 읽으려면 반드시 배워야하는 언어"여서 티무르도 배웠을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날도 "정통 이슬람교도"들은 아랍어를 할 줄 알거든요.

전근대엔 백성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지배 계급의 언어, 학술 언어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세계의 사람이면 통역이 없어도 필담이라도 나누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을 거에요. 유교 세계에선 한자, 이슬람 세계에선 아랍어, 기독교 세계에선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통용되었습니다.
담배상품권
21/04/13 12:56
수정 아이콘
페르시아어는 어떤 지위에 있었나요?
이븐할둔
21/04/13 13:0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제가 알기로 페르시아어는 이란지방, 이란인들의 언어를 넘은 적이 없던 것으로 압니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 시절에는 지배계층의 언어이긴 했던 것 같지만, 지배력이 느슨한 편이라 깊숙히 자리잡진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 알렉산더의 침공으로 한번 종교/문화 전통이 단절되고, 부활한 사산조 페르시아도 이슬람 침공에 멸망하면서 또 단절되지요. 즉, 페르시아어는 쭉 지역언어론 사용되었지만 학술/공용어로서의 위상은 아랍어에 영원히 밀려버렸습니다. 지금도 페르시아 어의 절반 가까이가 아랍어 영향을 받았다고 하네요.
담배상품권
21/04/13 13:46
수정 아이콘
그리스 헬라어와 비슷한 처치로 떨어졌나보군요. 저는 페르시아 문명이 중동의 근본이라길래 페르시아어가 한자같은 역할인줄 알고있었습니다.
21/04/13 14:31
수정 아이콘
제가 아는 버젼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어는 튀르크 유목제국들의 언어로 남으면서 지금까지 이슬람세계에서 아랍어에게 흡수되지 않고 남은 언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 우르 등으로 유명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쓰이던 시리아어 계열의 언어를 밀어낸 페르시아어는, 사산왕조의 멸망 이후 큰 문화적 위기에 처하지만, 이슬람-아랍 세계의 일부에 편입되었음에도 페르시아 특유의 문화력과 지역 강국을 계속해서 배출할 수 있는 지정학을 유지했습니다. 페르시아 본토의 북동쪽 호라산 지역에서 계속해서 유입되어 유목제국을 세우고 아랍인들을 정복시키기까지 했던 튀르크 유목제국들은 본래의 투르크어를 마치 만주족의 만주어처럼 소수 지배계층의 말로 유지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국가집단으로서는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이고 지배언어로 페르시아어를 쓰고는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셀주크 제국-룸 술탄국-오스만 튀르크/사파비 왕조로 이어지는 튀르크의 지배는 페르시아를 '튀르크화'했으면서도 동시에 튀르크를 페르시아화 했습니다.

지금 후대에는 '타지크인'이라는 말이, 1920-30년대 소련 내부 민족분할선에 의해서 '타지키스탄'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바뀌었지만, 본래는 튀르크화되어 유목문화를 받아들인 페르시아인들, 이라는 의미였는데, 호라산은 전부 이런 타지크들의 땅이었고, 또 많은 수가 이 중에서는 페르시아어를 배운 튀르크인, 이기도 하였지요. 사파비-카자르-팔라비-이란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페르시아어의 국가적인 지위는 한번도 부정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수백년 어치의 역사적 흐름을 퉁치니, 페르시아어 자체의 형태나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도 곁들어야 형평성에 맞겠지만요)

이븐할둔님의 '이슬람 문명세계의 공용어로서의 아랍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랍어에 흡수되어 아랍어 방언의 구사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된 시리아어, 콥트어, 베자어 등등과는 그대로 지금까지 나름 잘 버텨온... 한 큰 문화권의 언어라고 저는 봅니다~
내우편함안에
21/04/13 04: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븐할둔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은
사실상 500여년의 시간차를 둔 스승과 제자사이로 보이기까지
하느 유명한 서구역사가이자 석학이 아놀드 토인비죠
토인비의 고난과 역경에 의한 문명의 발생 번성은 그자신도
인정했듯이 이븐할둔의 집단의 결속과 흥망을 바탕으로 완성해낸
문명론이기도 합니다.
대놓고 가장 위대한 고금미증유등등 최고의 찬사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사실상 스승인 이븐할둔을 추앙하기까지 했는데
아쉽게도 이븐할둔의 국내번연본이 아직도 원본을 충분히 이해가능하고
읽기쉽게 나오지 않았다는게
물론 이삼십년전 국내출판 번역본에 비하면 훨씬 좋은 퀄리티인걸로 압니다
깃털달린뱀
21/04/13 13:10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이슬람 전성기의 발달한 문명 자체는 단절 됐을지 몰라도 결국 그 성과는 다른 문명으로 갈아타서 퍼졌다는 것이니까요.
닉네임을바꾸다
21/04/13 09:39
수정 아이콘
본인 홍보(?)글이군요?
21/04/13 13: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슬람 문명은 어쩌면 지금 서구만큼이나 '글로벌 시대'에 가장 가깝게 도달했던 문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런 글을 볼때마다 듭니다. 이븐 바투타가 말리를 답사하고, 라시드 앗딘이 몽골의 역사를 쓰고...

21세기가 되어서는 '다르 알 이슬람'이라는 말은 극단주의자의 환빠같은 표현이나 되었지만, 당시에 알려진 모든 문명 세계를 '일신교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패기는 허풍이 아니라 단순히 있는 사실을 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좋은 인물을 하나 배워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히히.
율리우스 카이사르
21/04/13 16: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1/04/13 23:11
수정 아이콘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로 정주민족이 유목민족을 압살할 수 있게 되면서 세계의 흐름이 많이 달라진거 같습니다. 좀 만들어 놓으면 털려먹던 정주민족의 기술이 계속 축적되면서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리고 지금이야 이슬람이 후진성의 상징 같지만 600년대부터 전성기 때는 기존 종교들을 관용하는 최첨단 종교였던거 같습니다.
아라비아반도의 기존종교들을 아는 무하메드가 계시를 받은지라 그 당시에는 합리적인 종교였고 그 결과 순식간에 퍼져나갔게 아닌가 싶어요.
안 믿어도 세금만 더 내게하는것도 코란에 대한 믿음과자신감이 있기 따문에 가능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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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88 [역사] 기술 발전이 능사는 아니더라 / 질레트의 역사 [31] Fig.15519 24/04/17 55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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