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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08 07:48:38
Name 구밀복검
Subject [정치] 아무리 알토란 같아도.. 전광훈을 좋아하세요? (수정됨)
https://pgr21.co.kr/humor/409529
조금은 뜬금 없지만 위 글을 보고서 평소 하던 생각을 옮겨 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털없는 원숭이이기에 세계를 세계 자체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 미친 놈이 또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영역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저 노이즈로 들리기만 하는 경험을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당최 맥락도 정황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남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껄껄 낄낄 주고 받고 그러죠. 내 입장에선 도대체 이게 뭔가 싶고 좀 알아 보려고 해도 도통 머릿속에 흐름이 잡히질 않고요. 그럴 때 우리는 그냥 원숭이가 됩니다. 그냥 저그였습니다 저그 ㅜㅠ 아무리 세상이 알토란 같아도 대뇌가 원숭이인지라 맥락을 모르면 뭐 알아 먹을 수 있는 게 빤한 거죠.

그러하기에 우리의 인지를 대신해줄 수 있는 타인의 해석은 절실합니다.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라 눈앞이 깜깜할 때 옆친구가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고 김대중은 DJ고 김영삼은 YS야라고 슬쩍 힌트를 주면서 무분별하게 나열되어 있던 검은 글씨들에 질서를 부여해주면 그제서야 그럭저럭 무언가가 흰 종이 위에서 잡힐 듯 잡힐 듯 하는 거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게 바로 '분석'입니다. 도통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대상을 일정한 기준으로 쪼개고 분해하는 거죠. 분석이라고 하면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준선 안쪽과 바깥쪽을 과격하게 갈라놓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알기 쉽게 대상을 분해하는 방법은 정/오를 구별하는 거고요. 도무지 어떤 뉴스가 옳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특정한 외부 기준을 갖고 와서 이건 가짜 뉴스고 저건 진짜 뉴스고 하면서 분류를 해놓고 나면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트이는 것처럼요.

이것은 다시 말해 적군과 아군을 구분짓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연대함직한 아군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정보는 사기치는 적군으로 간주되는 거죠. 그렇게 적/아를 분별해야만, 바꿔 말하면 선/악을 식별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진화하는 종족이란 말이죠! 같은 흰소리도 그제서야 진영논리 속에서 좌표가 읽히는 거죠. 사피로 스타일! 피터슨 스타일을 다 내껄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진영을 가늠할 때, 곧 무엇이 악한 적이고 무엇이 선한 아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세계를 판독할 수 있는 렌즈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그 렌즈가 옳으냐? 그건 어차피 모르는 거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결과'입니다. 결과를 맞춘 렌즈는 당분간 고수되고 틀린 렌즈는 폐기됩니다. 그 과정이 몇 번씩 반복되어 추려진 잠정적 승자 렌즈를 우리는 '종교'라고 부르고요. 어떤 종교를 믿어야 하는 당위성은 그 종교가 지금까지 결과를 올바르게 예측해 왔으며 따라서 그 종교의 세계관에 의거하여 세계를 인지하고 해석하지 않으면 넌 아무 정보도 정확히 판독할 수 없다는 엄포를 놓을 수 있는 데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털없는 원숭이는 신앙의 힘으로 대상과 사물과 타인과 사건과 자연을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죠. 종교 이전에는 이런 인식틀은 갖출 수 없는 거고요.

물론 종교적 판단은 우연과 억견과 확증 편향에 의존하기에 딱히 들어 맞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 종교적 판단에 의거하여 세계를 해석해 오는 데 익숙해진 털없는 원숭이 입장에서는 국지적으로 이해가 어그러지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지엽적인 문제라 치부하며 뭉개고 갑니다. 토마스 쿤 말마따나 변칙 사례 한 두 개 나온다고 정상과학이 폐기되진 않는 거죠. 장관 시절 유시민 식으로 말하자면 "사람 하나 죽었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쯤 되겠네요. 이미 한참동안 특정한 세계관과 종교관에 의거하여 세계를 해석해 왔고 그게 옳으며 자연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는 확신이 있는데 자잘한 것 좀 틀린다고 그걸 일순간에 폐기하는 건 매몰비용도 기회비용도 너무 크니까요.

이걸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열리는 TV 토론입니다. 흔히들 TV 토론은 기존의 입장을 확고하게 할 뿐이지 이미 신념적으로 입장을 정한 이가 입장이 바꾸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죠. 왜냐하면 털없는 원숭이의 시선에서는 익숙한 해석틀에 의거해서 토론을 해석해야 토론이 잘 이해되거든요. 저건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아노미 상황이 아니라 한쪽이 후달리니까 억지 쓰는 명명백백한 상황인 거고, 이건 이쪽이 논리가 후달려서 주저하는 몰리는 상황이 아니라 그 정도까지 나가면 상대편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져 품위가 실추되니까 저어하는 고상한 태도인 거고, 그거는 쓸데없는 말꼬리를 잡는 게 아니라 말을 돌리려는 상대를 그렇게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응징할 수 없기에 하는 뚝심인 거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친숙한 신념과 당최 헤아리기 어려운 전연 새로운 정보를 그럴싸하게 조화시키면서 일정한 렌즈를 고수할 수 있어야 원숭이의 뇌는 터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생각되신다면 본인과 입장을 달리하는 가족이나 친지나 친구가 (나를 제외하고) 동지적 입장을 취하는 제3자와 100분 토론 같은 토론 프로그램 보고서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보셔요. 내가 방송 봤을 때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의 수사들이 오가기 마련입니다. 저걸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나 싶고 그렇죠. '슈발 XXX이 그래도 희망이라고?????'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대체로는 내 판단이나 그 판단이나 크게 뭐 차이나는 건 아닙니다. 서로 품고 있던 기성 관념이 달랐던 것뿐일 공산이 크죠. 다시 말해 종교가 달랐던 것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결과적으로 옳아서 생존하고 어떤 것은 결과적으로 틀려서 도태되고 할 뿐이죠. 트럼프 당선 당시 여론 조사 기관들과 그에 따른 유권자들의 반응이 딱 그렇죠. 어떤 종교는 과정은 다 틀렸지만 결과는 맞췄다고 거품이 끼고 어떤 종교는 과정은 다 맞았지만 결과는 틀렸다고 후려치기 당하고 합니다. 뭐 그건 추후에 다른 일전으로 상쇄될 수도 그렇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종교적인 도그마 대결인 거죠.

전광훈이나 김어준이나 가세연 같은 게 녹록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 이들이 성취를 거두고 인기를 누린 건 그네들의 세계 해석이 그만큼 아무 것도 모르는 털없는 원숭이들에게 선악과로 작용하여 눈을 밝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눈이 밝은 거냐고 다들 기함들 하시겠지만 적어도 그네들의 지지자들은 그런 견해를 고수해야만 세상이 더 밝게 보이고 질서정연하게 거를 것은 거르고 취할 것은 취할 수 있으며 그게 지금까지 나에게 득이 되어 왔다고 판단 해왔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 못하는 진실이죠. 즉 누군가에겐 문재인이 적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겐 영남노론친일독재 세력이 적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겐 586 운동권이나 3040대가 적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세상이 명징 명증하게 보이는 겁니다. 당연히 그게 오판일 수 있지만 그게 오판이라는 게 명명백백하다고 판정하여 모두를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우리는 갖지 못해요. 과학이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응 먼저 지구 평평설 베리칩설 큐애넌식 인신공양설부터 이기고 오시길.. 결국은 모든 사유체계는 정오와 적아와 선악를 분명하게 해주어야 하고 그 설득력에서 저런 스피커들만큼의 역량을 먹물들이 보여주긴 어려운 거죠. 학자들 까불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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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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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믿음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나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나면, 그 이후에는 진실을 알아내는 것 보다 자신이 이미 인생 몰빵한 패러다임이 맞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믿음이 헛되지 않아야하니까 내 믿음이 헛되다고 밝혀질 수도 있는 계기는 무의식적으로 아예 만들지를 않는 거죠.

저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럴 때 부작용은 무슨 이슈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구밀복검
21/01/08 08:04
수정 아이콘
어떤 면에선 본문 같은 식으로 커뮤에 확고하게 의견의 증거를 안 남기는 게 좋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크크. 나 혼자 한 망상은 현실에서 그릇되었다고 증명되었을 때 머릿속에서 지우고 기회적으로 처신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식으로 객관적인 증거물을 남긴 상태에서 현실의 반박을 받으면 반발심과 오기와 아집 때문에 인정을 못하게 되거든요. 그걸 몇 턴 반복하다 보면 이제 음모론자 되어 있는 거고.. 목수정이 좋은 사례죠. 판돈을 이미 걸어놓아서 후퇴할 수가 없게 되니까 억지 쓰게 되는 거고. 이렇게 보면 유연한 사고와 폭넓은 수용력을 위해서는 의견 표명이 아예 없는 게 상책이다 싶기도 합니다 하하. 뒤집어 말하면 남이 판단을 착오하여 실기한 것도 끝까지 추궁하는 것보다는 못 본 척 넘겨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모른 척 눈 감아 주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문제인 건데 기어코 잡아채서 놀려대면 평생 기억에 남아서 궤도 수정을 못하게 되죠 크크. '야야 트럼프가 뭐 어쨌다고? 깔깔깔' 하는 순간 트럼프 싫어도 탈트럼프 못하게 되는 것.
시린비
21/01/0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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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것도 일부는 있지 않나 싶어요. 다만 인터넷 기록은 지울수 있고
본인도 그걸 지우고 아닌척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딱히 눈에 보이는 기록이 없어도 자기가 해온 일들이 있어서 그걸 없던일로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댓글이 문제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듯도 해요. 심하면 죽음으로 도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적겠고..

여튼 저는 댓글을 달면서도 내가 이댓글을 달면 사람들이 나를 어느 한쪽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 다른 방향의 댓글을 달면 그땐 그랬으면서 왜이러냐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댓글을 쉬이 못다는 느낌입니다. 달고 바로 지우기도 하고..
구밀복검
21/01/0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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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글쵸.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런 이율배반의 내적 갈등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플로우 되는대로 아무말 대잔치 하는 거 보면 '슈발 나는 윤리적인 고민 때문에 동공지진인데 왜 점마는 아무 생각 안 함?' 하는 생각 때문에 흑화하게 되기도 하고. 갠적으로 이럴 때 '내가 인터넷 영구하게 끊든 말든 인터넷 세계에는 아무 차이 발생 안 함 나 없는 인터넷은 똑같은 인터넷' 같은 생각하는 게 평정심에 도움 되더군요.
MaillardReaction
21/01/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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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문단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거 같은 게 씁쓸하네요. 남 놀리는 게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ㅠ.ㅠ
구밀복검
21/01/0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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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쵸 그러면 성인 군자죠 크크. 전 계속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안 놀리고 상대 안 해도 상관 없는 사람만 놀립니다 크크
21/01/0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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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쵸 그게 맞습니다. 지금 세상에 적이 미운게 아니잖아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는 사람이 짜증나는거지.
21/01/0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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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동의합니다. 그래서 요즘 점점 강한 의견을 피력하는 댓글 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말을 안 하고 있어야 틀렸을 때 슬쩍 의견을 바꿀 수 있더라고요.
21/01/0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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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됩니다.
각키 두번 보세요. 추천.
21/01/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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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는 호타루의 빛 이후에 본 기억이 없는데, 그 드라마 재미있습니까? 호타루의 빛은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21/01/0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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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긴 합니다만 근데 그게 입을 틀어막는다고 하는 요즘 주장하는 분들도 많아서...
그런 분들과 저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긴 하지만 사소한 차이라도 만들고 싶긴 한데 그게 어렵네요.
21/01/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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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흑백이 명확하며 흑에 의해서 나라가 멸망하기 5초전이라고 믿는 분들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입을 틀어막는다는 주장에 대해서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도 키보드 훈장질할 때나 우국지사들이지 키보드에서 손 떼고 나서도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요.
NoGainNoPain
21/01/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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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틀렸다는게 밝혀졌다면 사과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적어도 입이라도 닫고 있었으면 합니다.
정경심 1심판결 났어도 수사인력이 과도하게 투입되었네 검찰방식으로는 표창장 위조가 안되네라는 예전 주장을 수정없이 계속 주장하시는 분들 보면 이게뭔가 싶긴 하죠.
구밀복검
21/01/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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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은 판결문 읽어 보면 읽어볼수록 가관인데 그 판결문을 읽는 멘탈 자체가 이미 지지자의 멘탈은 아니긴 하겠죠.
매몰비용이 너무 크면 방향 틀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싶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1/01/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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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은 없다." 라는 관용구를 교묘히 끌어대서 "과도하게 털면 누구나 뭔가 나오므로, 뭔가 나온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과도하게 턴사람이 문제다." 라는 무적의 논리를 만들어놔서... 애초에 어이없는 프레임인데, 그분들 머릿속에 박혀서 어떻게 빼낼수가 없어요... 이 과한 '무오'의 프레임과 세뇌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조작자체는 있었다는 것이 명명백백히 드러났죠.. 근데 뭐 통치행위는 조사하는거 아니라느니.. 이정도 비리는 검사 2~3명만 넣어야 합리적인건데 윤석열이 정치하려고 20명 넣었다느니 수사관 100명 넣었다는건 정치행위라느니, 검언권력에 휘둘리고 사법부도 믿을 수 없으니 이런 기득권에 저항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황당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죠..

지지자들이 문제라고 할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권력을 잡은 일당들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추미애장관과 아들에 대한 공격이 과도하고 말고를 떠나서, 국정감사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되죠. 근데 23번(32번이었나?) 국회 발언이 거짓말이었음이 명명백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추미애는 "23번 국힘당 의원들이 나한테 억지를 부렸다는 증거죠." 라고 거짓말도 남탓으로 돌립니다. 나를 거짓말하게 한건 너네니 너네가 잘못했고, 내 입시비리가 나온건 너네가 과도하게 수사한거니 너네가 잘못했고, 내 원전평가조작이 나온건 너네가 통치행위에 시비건거니 너네가 잘못했다는 거죠..

한동훈이 말한 (아무리 권력이 억울한점이 있던, 과도한 수사던 간에) '걸리면 가야 한다.'는 건 이번정권 전까지는 국룰이었습니다. 그러니 뭔가 문제나 비리가 터지면, 이전 정권까지는 어느 선까지 꼬리를 자르느냐가 문제였지, 지금처럼 누구탓을 해서 우리 편을 보호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정인아미안해' 건도 일선 경찰이나 경찰서가 (문제가 없진 않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닐 겁니다. 시스템적으로 부모의 친권을 제어하고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것이 문제겠지요. 그래서 (이 출산율에 고통받는 나라에서) .. 이런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 양부모 심사를 까다롭게 하거나 아니면 뒷탈이 없는 해외로 입양보내버리는 쪽으로 시스템이 진화해왔고.. 그럴 경우 정인이 건처럼 양부모가 누가봐도 문제가 없어보일 경우(원래 아이있음, 경제력 괜찮음, 직업괜찮음, 교육 괜찮음, 양부모 가정임)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겠죠..

정인이 사건은 각설하고, 이 황당한 프레임 전략 - 우리편은 무오하다 - 은 한계가 분명히 올겁니다. 머지 않았다고 봐요. 이낙연까지 맛이 가면서 친노친문 이 다시 불임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재명은 애초에 결이 다른 사람이고, 열심히 주판을 튕기고 있을 겁니다. 윤석열은.. (이렇게까지 황당한 공격을 당해 무서움을 느낀마당에는..) 남은 6개월동안 나중에 본인이 정치를 하기 위해서건, 은퇴후 안전을 위해서건, 적당히 무마할 수도 있었던 껀까지 묶어서 전방위적으로 더 철저히 수사를 할겁니다. 한두건만 새로운게 더 터지면 (벌써부터도 문재인-이낙연 커넥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의원들이 있는판에) 경쟁적으로 탈당을 하던 신당을 하던 혹은 당내에서 대안세력이 되던간에 침몰하는 문재인 호에서 뛰어내릴 정치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타시터스킬고어
21/01/0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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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었네요. 그러면서도 저렇게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죠.
21/01/08 09:03
수정 아이콘
많은 부분에 동감하면서도 인간이 그러한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공론장이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링크하신 유게글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얘기로 잡아놓으려고 하는 뉴스피드, 유튜브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확증편향의 대량재생산 대충 그런 얘기일텐데, 커뮤니티만 해도 그런 식으로는 안돌아가거든요. 커뮤니티를 나가지 않는 이상 아무리 맘에 드는 것만 보고 싶어도 누가 자꾸 반박을 하고 다른 논거를 가져오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것을 종용하는 거죠. 그게 '대화' '변증법' 의 존재이유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이 되는 짓거리가 그런 공론장을 부수는 행위라고 봅니다. 마음에 안드는 얘기가 나올 때 논박을 하고 반대증거를 모아오는 게 아니라 다구리를 쳐서 내쫓으려고 하는 것 말이죠.
척척석사
21/01/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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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맘에 드는 것만 보고 싶어도 누가 자꾸 반박을 하고 다른 논거를 가져오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것을 종용하는] 걸 힘을 모아 내쫓고 한 세력이 [그런 공론장을 부수는 행위] 를 통해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것은 지난 20년간 수도없이 많이 본 상황이라 웬만하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양쪽에서 치고받는 게 중요하기는 한데 그러다보면 목소리 큰 아저씨들이 모여들어서 피곤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크크 어렵죠
파르티타
21/01/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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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21/01/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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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프레임에 과학을 포함시키시는 것인지 아닌지 모호하군요. 만약 전자라면 우연이나 확증편향 같은 것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는 없고, 후자라면 잠정적 승자 렌즈가 무조건적으로 종교로 귀결되지 않을 테니까요. 여하튼 anti-intellectual한 사상을 너도 종교 나도 종교 우리 모두 도그마티스트라고 간단하게 상대주의로 몰고 가면 간단한 설명이야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법은 현실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네요. 같은 맥락에서 일제 위안부 부정론자들도,가부장적 쇼비니스트들도 다들 '나와는 다른 그들의 종교' 라고 퉁쳐서 설명해버리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이 사회는 꽤나 좁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구밀복검
21/01/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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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툴은 매우 합리적이고 멋진 툴이지만 과학에 임하는 인간의 마음은 종교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야 역사적으로 종교로부터 과학이 발전해온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되죠. 많은 과학자들과 수학적 테크니션들이 때로 이상한 '과학주의'에 빠져서 유사과학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요. 과학이 우월한 이유는 결국 장기적으로, 거시적인 과학계가 진위판단에서 훨씬 압도적인 유용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일따름이지, 과학 참여자 개인 단위에서 단기적 사건에 있어서는 유사과학자보다 딱히 역량으로나 지적으로나 우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느낍니다. 뭐 흔히 말하는 근거의 피라미드에서도 전문가 일개인의 의견은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 연구에 비해 한참 아랫 레벨에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종교적인 인간의 미망과는 독립적으로 작동해줄 수 있다는 게 과학의 독자적인 힘이기도 하죠.
21/01/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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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불완전한 사람들에 의해 이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따르는 방법론이 우연이나 확증편향에 의존한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그 비교대상이 전통적인 종교라면 말이죠. 과학에서 일어나는 확증편향의 문제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확증편향의 문제와 비교할수조차 없습니다. 그 둘을 같은 선상에 두는 건 의도하신 부분이건 그렇지 않던 굉장히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구밀복검
21/01/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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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신뢰 수준의 차이는 있죠. 그걸 부정하는 이야기는 아예 한 적이 없습니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과학을 신념체계로서 받아들이며 내러티브로 소화하는 '행위자'의 심리적인 작동 방식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흔히들 지구 평평론자 하면 세상에 그리 무식한 놈들이 어딨나 싶죠. 하지만 막상 논쟁 맞붙어 보면 지구 평평론자의 논변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건전한 상식인은 그런 헛짓거리 논쟁거리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며 대뇌 바이트를 아끼고 살지만 지구 평평론자는 그 논점 하나만 붙들고서 그거 이기자고 온갖 논리의 칼을 갈아왔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그 논리 수준은 현대 과학의 수혜를 받지 못한, 증거에 기반하지 못하는, 하지만 꽤나 고도로 정교한 전근대 이론가들이나 고대 소피스트들 수준이고요. 스스로 그 증거의 체계들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명할 자신이 있는 준비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지구평평론자의 정신승리에 대해 제논의 역설만큼이나 반박하기가 쉽지 않죠. 결국 까놓고 보면 지구의 형태라는 주제에 한해서만은 지구평평론자가 건전한 상식인에 비해 훨씬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색 과정을 거친 겁니다. 건전한 상식인은 그냥 과학계의 일반론을 무비판적으로 '믿은' 거고요.

물론 누가 옳고 그른지는 명확합니다. 당연히 지구는 둥글죠. 수백 년 전에 이미 관측에 따라 확증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근데 일 개인이 이런 과학적 사실을 신뢰하는 과정은 연역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그저 꽤나 장기적이고 오랜 세월을 거쳐서, 즉 다년간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과학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낳는 '결과'를 보니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더라, 나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어련히 다 교차 검증 해줬겠거니 하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느냐 아니냐 차이가 제일 큽니다. 이걸 유사과학자나 음모론자나 독단론자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고요. 혹은 심지어는 경험해본 이들도 되려 그 경험 때문에 덫에 빠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보도된 '위상 수학으로 평양성이 만주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가 빈축을 먹은 수학과 교수들이라든가.

결국 개인이 과학을 믿는 과정을 분해해 보면 별 게 없어요. 내가 내 자신의 인지로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한 체계가 현상과 의견을 대조하여 정오 판단을 하고, 나는 이 체계가 나보다 크고 위대하고 강력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믿는' 거죠. 이 과정 자체는 인신공양을 하는 고대인의 사유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저 결과에 대한 해명을 대체로 과학계 어르신들이 깔끔하게 대신 처리해 주니까 스스로 정신승리를 하는 데 따르는 인지 부담이 훨씬 가벼울 뿐인 걸 테고요. 전 현대 과학계를 완전히 신뢰하지만 그걸 신뢰하는 제 지성 수준은 솔직히 열등하죠.
21/01/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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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과학과 종교의 차이를 너무 나이브하게 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과학이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과학이 취합하는 정보는 인식적 보증(번역어인데, 영문으로는 epistemic warrant입니다)단계를 거친 상태이기 때문에 지구 구형론같은 과학적 합의가 된 정보가 독단적이지 않게 거부되려면 기존의 인식적 보증을 뛰어넘는 어떤 이론 혹은 관찰을 거쳐야 합니다.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아 나는 이 근거는 내가 믿을 수가 없으니 안믿을래" 같이 간단한 것이 아닌, 과학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항의를 함의합니다. 때문에 '과학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믿지 않음'은 '종교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믿지 않음' 과 일대일 대응이 아닌 겁니다. 종교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고 때문에 합의를 반대하는 것이 그 믿음 시스템의 전체적 거부를 의미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구평면론자가 기존의 물리학적 연구를 뒤집을 만한 이론과 그 근거를 가지고 오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색 과정을 거쳤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자기 논리를 가다듬을 수야 있겠지만, 그건 궤변론자가 단순히 말싸움에서 양민학살을 위해서 잔머리를 굴린 것이지, 그 사람이 특별히 더 이성적인 사고를 한 건 아닙니다. 때문에 언급하신 '이성적인 지구평면론자' 같은건 자가당착적 표현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그 지구평면론자가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연구에 엑세스가 불가능한 경우 (책, 인터넷, 교사가 전부 없다거나...) 정도에나 성립되는 논리일 겁니다.
구밀복검
21/01/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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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과학과 종교의 차이가 아니라 과학을 믿는 개인의 마음과 종교를 믿는 개인의 마음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과학의 위대함은 이런 게시판에서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실은 몰라도 아무 문제없이 작동합니다. 무식한 인간들 따위가 뭐라고 과학적 사실을 뒤엎습니까. 말씀하신 과학의 내적 완결성이나 자기 검증적인 성격이야말로 제가 말하고 싶은 바입니다. 과학은 완전히 개인의 외부에 있는 것이고 그에 좌우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돌아가기에 역설적으로 일 개인은 과학을 쫓아갈 수 없으며 어느 정도는 막연히 믿으며 따라갈 뿐이죠. 심지어 업계 전문가들조차 그렇고요. 과학은 집단적 협업과 상호 검증에 의존하는 철저한 집합적이고 일 개인이 전 분야와 공정을 망라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역설적으로 신뢰에 맡기는 부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논리적/비판적/이성적 같은 것은 상식적인 용법으로 쓴 것입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죠. 지구평평론자가 비이성적이라면, 지구평평론자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를 반박하지 못하는, 거의 90% 이상의 머릿수를 차지하는 건전한 상식인은 이성적일까요? 어차피 지구 평평론자나 건전한 상식인이나 본인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고 접근할 만큼만 접근해서 내린 결론이라는 건 동일합니다. 과학 자체는 그 연결고리를 모두 해명가능하지만 과학적 진술을 믿고 사는 건전한 상식인은 그 연결고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건지 사실 정확히 모르고 삽니다. 설명해줘도 그냥 어련히 맞는 말이겠거니 하면서 넘어가는 거죠. 그렇게 믿고 사는 이유는 '지금까지 결과를 보니까 대체로 맞아서'인 거고요. 그래서 그런 건전한 상식인들은 과학의 작동 원리를 잘 모르기에 지구 평평론과는 또 다른 영역에서는 유사과학 약팔이에 헤까닥 하기도 합니다. esotere님 입장에서는 그런 무지렁이들 판단이 뭔 의미가 있느냐 교육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과학을 종교처럼 믿는 게 아니라 절차적으로 검증 가능한 영역을 다 체득하고 있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무지렁이들이 세계의 절대다수고 그런 무지렁이들이 적당히 설득되고 살지 못하면 코비드 백신 음모론 선거조작론 같은 논리에 경도되어 깽판 치는 인간들이 나오고 그때 과학계는 무력해져버리죠. 과학의 현실권력은 과학을 종교로서 믿고 사는 다수의 순진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 말이 과학의 위명을 가리고 과학을 종교 수준으로 격하한다고 느끼신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도리어 그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서 과학이나 종교나 별 차이 없게 내러티브로서 소화되더라도 과학은 무적이고 철옹성이기에 진짜 위대한 거죠. 인간의 우매함에 의해 내적 구조가 손상되지 않는 아마 거의 유일한 체계일 테니까.
21/01/08 13: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숭이의 뇌]라는 단어가 나오네요.

실제로 인간의 뇌는 진화 단계상 아래의 순서대로 진화해왔습니다.
1) 뱀의뇌(파충류의 뇌) : 간뇌 / 본능적 생명유지관련 기능 담당 (숨쉬기,체온조절,맥박조절 등)
2) 원숭이의 뇌(포유류의 뇌) : 변연계 / 감정기능 담당 및 사회적 포지션 인지 (감정, 성욕, 식욕, 느낌 등)
3) 인간의 뇌(영장류의 뇌) : 대뇌피질 中 특히 전두엽 / 고차원적 이성기능 담당 (기획, 조직, 우선순위, 신중한 판단, 결과예측, 충동,감정 조절) → 인간이 동물과 달라지는 부분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늦게 진화한 인간의 뇌는 그 지배력이 매우 약합니다. 다양한 환경적(국가/교육/성장환경 등) 요인에 따른 개개인의 의식수준에 따라 어느 뇌가 우세하게 작동하느냐 하는 비율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진화한 뱀과 원숭이의 뇌의 지배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 원숭이의 뇌 기능 중 [감정 기능](혹은 뱀의 뇌의 공포(위협)감지 기능)은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진화했어야만 하는 기능이었습니다. 건너편 풀숲이 사르륵 움직일 경우, 저게 사자와 같은 위험한 동물이 아닐지 변연계에서 위협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도망치는 것이 가능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지요. 이런 생존과 직결되는 본능은 도망치냐 마느냐. 적이냐 아군이냐 와 같은 [이분법적 판단]을 내리게 되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Yes or No의 답을 내려주는 이분법적 판단은 생존을 위해 진화한 기능인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원숭이의 뇌에서 진화한 기능(생존을 위한 감정 등)들은, 의식적으로 인간의 뇌를 더 활용하고자 하지 않으면 다양한 부작용들을 낳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생존과 직결되지 않지만 무의식과 본능은 그렇게 인지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및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분법적 판단]입니다.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간은 이러한 두뇌 작동체계 하에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죠.

통제가 어려운 하위 뇌의 특성을 적극 이용하려는 곳들이 많기까지 한데,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정치'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인간의 뇌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숭이의 뇌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 것 같네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는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원숭이의 뇌로 사고하는 상태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 만사에는 '맥락'이 있기 마련이지만, 쉬이 흑과 백, 아군과 적군, 착한놈 나쁜놈 등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는, 그런 작용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원숭이의 뇌가 주도적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조금 더 벗어나기 위해, 또 선악/흑백 기반의 분란이 줄어드는 세상을 위해 개개인 각자 모두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밀복검
21/01/08 14:05
수정 아이콘
예 본문의 중언부언한 서술을 과학적 진술로 깔끔하게 요약해주신 듯합니다 후후.
스칼렛
21/01/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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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파충류 뇌 등등으로 유명한 triune brain hypothesis에는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중추신경계의 진화적인 발달 과정을 봐도 실제로 기능하는 방식을 봐도 그렇지요. 하지만 뇌의 작동 방식을 단순화시켜 보여주기에는 아주 매력적인 설명이긴 합니다. 아마 그런 용도로 사용하셨을거 같고 혹시 누군가 오해하시지 않도록 첨언합니다...
드러나다
21/01/08 14:51
수정 아이콘
역시 중요한 건 팩트보다는 팩트와 팩트를 이어주는 해석 또는 스토리인것 같습니다. 물론 그 해석도 허무맹랑해서는 안되요. 근본있는 해석이 있고 근본없는 해석이 있죠. 팩트도 잘 가져다 써야합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도 제 나름 근거를 충실히 두고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해석의 근본을 명료히 세우는 법 또는 팩트를 교차검증하는 법을 익히기보다는 그저 '마음에 쏙 드는 스토리 만들기'가 성황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근데 또 그게 인간의 본성 같단 말이죠. 그래서 슬퍼요.
스칼렛
21/01/08 15:01
수정 아이콘
결국 인간은 세계를 내러티브로 이해하는 거 같습니다. 그건 정치에서도 예외는 아니고, 요새 들어 생긴 문제도 아니라 원래 그래왔죠. 음모론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좀더 합리적인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결국 내러티브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스스로 절제하는지가 중요한데 왜 점차 폭주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21/01/08 15:16
수정 아이콘
원숭이의 뇌...는 그냥 예전 그 유명했던 사건...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의 패러디라고 생각했습니다 ^^;
생각해볼만한 아젠다로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사딸라
21/01/08 15:30
수정 아이콘
개신교계가 깔끔하게 이단 판정을 내려주어야 하는데...
요한슨
21/01/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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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이라는 관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정작 종교에 심취한 이들에게는 그 함의와는 전혀다른 용례로 쓰인다는것이 어찌보면 상당히 심란한 일이겠습니다만... 말씀해주신 부분들은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영화, 축구 관련 팟캐스트 잘보고 있었는데 요새는 활동이 뜸하셔서 아쉽습니다. 어제 책장 정리하다보니 직접 친필사인해주신 저서가 딱 나오길래 기분이 묘하더라니...
구밀복검
21/01/08 16:02
수정 아이콘
엌크크 감사합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생업 이외의 것까지 손대기가 힘들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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