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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04 14:37:32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1853년, 서방의 이중잣대에 빡친 러시아인 (수정됨)
미하일 포고딘(1800~1875)

제정 러시아의 유명 언론인이자 역사가였습니다. 
차르 니콜라이 1세 또한 그의 글을 탐독했다고 하며, 심지어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853년 예루살렘 성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러시아제국-오스만제국(+영국&프랑스) 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일명 크림전쟁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당시 러시아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료이므로 한 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

"프랑스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알제리를 뺴앗았다. 그리고 영국은 매년 인도의 영토를 하나둘씩 합병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이를 세력균형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러시아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를 점령하면, 그것도 일시적으로 밖에 점령하지 않는데도, 저들은 이를 세력균형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프랑스는 평시에 로마를 점령하여 그곳에 수년간 머물렀다 (1848년 로마에 혁명이 일어나 교황이 프랑스군의 도움으로 혁명세력을 진압하고 프랑스군의 보호를 받은 사건). 누구도 이를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는 생각을 품으면 저들은 유럽의 평화가 무너진다고 비난한다. 영국은 개입할 권한이 없는데도 그들의 모욕받았다고 생각하여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아편전쟁을 말함). 그런데 러시아는 이웃국가들과 불화가 생겨 개입할 일이 생기면 유럽국가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영국은 어떤 빌어먹을 유대인의 거짓주장에 이끌려 그리스를 위협하고 그들의 함대를 불태웠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합법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그런데 러시아가 수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겠다고 하면 저들은 러시아가 동방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우리는 서방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다. 저들은 적개심과 음모로 가득차있으며,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니콜라이 1세의 메모: 옳소. 그대가 말한 것이 요점이오) 

유럽에서 우리의 동맹은 누구인가?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메모: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들을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우군은 오직 하느님이다). 유럽에서 우리의 진실된 동맹은 슬라브인이다. 혈통으로서, 언어로서, 역사로서 그리고 신앙으로서 그들은 우리의 동포이다. 그들은 터키에 천만명에 달하고, 오스트리아에는 수백만에 달한다. 오스만제국에 거주하는 슬라브인들은 우리에게 20만이 넘는 병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슬로베니아인들을 제외한 수치이다. (니콜라이 1세의 메모: 그것은 과장이오. 수치를 1/10로 줄이면 맞을게요)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투르크인들은 우리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조약을 파기했다. 따라서 우리는 슬라브인들의 해방을 주장할 수 있으며 전쟁으로,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전쟁으로, 우리는 이를 실현시킬 것이다. (니콜라이 1세의 메모: 옳소.)

우리가 슬라브인들을 해방시키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적, 영국과 프랑스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에서 그들은 친서방 정당들을 회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뭐가 되겠는가? (니콜라이 1세의 메모: 그렇소. 맞는 말이오!)

그렇다. 우리가 이 기회를 활용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가 슬라브 동포들을 희생시키고 그들의 희망을 배신한다면, 그들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광신적인 폴란드인 한명이 아니라 수십명을 상대야해야 할 것이다 (니콜라이 1세의 메모: 옳소!)

러시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쩌면 폴타바 전투와 보로디노 전투보다 위대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지금 전진하지 않는다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과연 후퇴할 수 있을까? 신께서 그것을 바라실까? 절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러시아의 위대한 영혼을 인도하신다. 우리는 조국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하느님께 바쳤다. 표트르 대제는 동방진출의 초석을 다졌고, 예카테리나 여제는 이를 공고히 하셨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황제는 이를 더욱 넓혔다. 그런데 니콜라이 황제가 이를 라틴인들에게 넘기게되는 불명예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니콜라이 1세, 해당 단락 전체에 밑줄 세번 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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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rlando Figes, "The Crimean War" (2010), p.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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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령술사
20/12/04 14:44
수정 아이콘
니콜라이 1세의 추임새가 참 재밌네요. 하지만 결과는...
요즘 중국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Karoliner
20/12/04 14:53
수정 아이콘
크림전쟁 당시 영국이야 뭐 러시아랑 그레이트 게임하던 시기이니 개입이 당연하다 치더라도 왜 프랑스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이것도 루이 나폴레옹의 뻘짓이었나?
가고또가고
20/12/04 14:53
수정 아이콘
영국과 프랑스의 움직임과 러시아 움직임의 차이를 들자면 영국, 프랑스는 식민지 확대 및 국제적 영향력 확대에 그치겠지만 러시아는 움직이는 영역들이 영토 근처라서 바로 영토 확장 및 국력 신장으로 이어져서 좀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20/12/04 14:56
수정 아이콘
러시아가 시베리아 그 똥땅 먹느라 했던 짓 생각하면 그닥... 그렇게 똥땅 잔뜩 먹어서 배불린 탓에 영프의 경계를 산 게 저 결과였죠.
깃털달린뱀
20/12/04 14:57
수정 아이콘
대슬라브주의 같은게 참 재밌죠. 본인은 신념에 차서 우리 동포를 해방해야한다!!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으아악 침략자다! 하고 있고.
aurelius
20/12/04 15:05
수정 아이콘
그런데 19세기 초 그리스 독립운동 당시 러시아의 지원이 생각보다 지대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은 슬라브인이 아니지만 정교회라는 신앙으로 뭉쳐서, 당시 그리스인을 지원하는 것이 정교회와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러시아 귀족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하며, 실제로 오스만제국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에 망명을 떠난 그리스인들이 다시 복귀해서 혁명을 이끄는 등의 활동을 했다더군요.
류지나
20/12/04 15:00
수정 아이콘
이랬던 영프 vs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다시 동맹이었으니 외교 관계란 부질없는 것...
aurelius
20/12/04 15:01
수정 아이콘
그것이 유럽 외교사의 재미있는 점이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이자 내일의 적이고... 변화무쌍한 외교관계.
훈수둘팔자
20/12/04 15:00
수정 아이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헌병 노릇을 하며 러시아군이 각국의 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폴란드 3갈죽 이후 러시아령 폴란드의 통치 또한 가혹하기로 유명한지라
적어도 그 당시 유럽이 러시아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냐 한다면 글쎄요...
aurelius
20/12/04 15:03
수정 아이콘
실제로 1848년 프랑스를 시발점으로 하여 유럽 전역 혁명의 불길이 번지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집결한 독일 최초의 국민의회는 프랑스와 연합하여 유럽군대를 창설해서 러시아 야만인(꼭 야만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겠냐만은...)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훈수둘팔자
20/12/04 15:10
수정 아이콘
뭐 적어도 나름 시민사회 라는게 형성될 수 있었던 서유럽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 대다수가 농노에다 착취도 극심하고
차르를 신의 대리인으로 여기며 마치 오스만과 다를 바 없는 광신의 이미지가 있던 러시아에 대해 좋게 생각할 이유가 없긴 할 것 같습니다.
이스칸다르
20/12/04 15:23
수정 아이콘
1850년대의 국가간 파워 밸런스를 보면, 1. 영국 2. 프랑스 3. 러시아, 프로이센 5. 오스트리아 였습니다. 나머지는 심지어 이탈리아(통일이 안되었으니) 마저 잔돈 푼 취급받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외교적 상황은 러시아는 왕따였습니다. 러시아 스스로 유럽의 헌병, 경찰 역할에 너무 심취해 있다보니 서유럽 각국의 여론 주도층으로부터 심하게 질투 또는 견제를 받았습니다.
이때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은 절제없는 힘의 낭비였습니다. 아프리카 진출, 동아시아 진출, 멕시코 진출, 크림전쟁 참전, 이탈리아 독립전쟁 참전 등으로 그야말로 성과도 없이 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나폴레옹 3세가 견실하게 군사력을 사용하고 새로운 전술과 병기 도입에 힘썼다면 독일의 탄생은 없었겠지요.
20/12/04 15:43
수정 아이콘
러시아 -> 중국으로 바꾸고 몇몇 단어만 맞추면 현재 중국외교부가 주장하는 논지와 같네요. 패권국과 신흥세력과의 갈등양상이 유사하다는걸 보여주는 사례인가 싶습니다
삭제됨
20/12/04 15:53
수정 아이콘
러시아의 동맹은 육군과 해군 뿐...
20/12/04 16:50
수정 아이콘
하지만 그 결과는....
어디서 많이보던식의 마지막 문단이 가장 절망적이군요. 대중 선동에는 좋을지 모르나 지도자가 저런말에 넘어가버리면...
사딸라
20/12/07 08:53
수정 아이콘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가진 감정이 꽤 전통이 있는 거란 걸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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