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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4/04 23:26:08
Name 깨끗한선율
Subject 지나간 2010년대의 추억 - 영화
 2020년 새해가 밝은지는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올해는 2010년대를 떠나보내는 해입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할 순간에 갑작스레 해가 바뀌고 딱히 작년까지 2010년대였다는 감각조차 없이 지난 3개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그 감각이 달라질까요? 아마 조금은 더 2010년대라는 세월이 그리워지겠죠.

 저는 최근 들어 왓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에 비해 뚜렷한 장점이 있냐고 하면 잘 모르겠고, 제각기 장단점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왓챠를 고른 이유는 혼자 정액제 끊고 보기에 3천원 가량 왓챠가 저렴했다는 점, 그리고 별점매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별점매기기를 즐기는 편인데 모든 영화에 별점을 매겨보려는 시도는 여러 번 해봤지만 매길수록 기준이 불명확해져 끝까지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왓챠 가입을 전후로 나름대로의 감각과 직관에 의거해 영화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나갔습니다. 한줄평도 열심히 적었고요. 지금까지 삼백 몇십개 가량 했는데 앞으로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영화는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사소한 오락행위가 코로나 사태 이후 다소 심심해진 제 인생의 일부였습니다.

 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죠. 이 글에서는 왓챠 별점 4.0 이상 준 2010년대 작품들을 열거해놓고 조금이나마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제 생각에 대한 글뭉치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저 자신의 노스텔지어적 일기이기도 합니다.

 숫자배열은 편의상 국내 개봉순으로 했습니다만 아마 큰 의미 없을 겁니다. 저 순서로 본 것도 아니고, 저 순서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 글에 스포일러 요소가 있다고 봐야할지 고민인데, 일단은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Let me in (미국판)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영화를 향유하고 즐긴다는 말입니다. 그걸 위해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든, 섬세하게 자극하든, 새로운 걸 보여주든 뭔가를 해야만 하죠. 그 '뭔가를 할' 때 제작자 입장에서 가장 따라가기 쉬운, 그리고 명료한 기준은 바로 장르입니다. 특히 상업영화에서는요.

 저는 뱀파이어가 나오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흡혈귀 스토리가 가지는 특유의 음산함은 좋아하지만, 뱀파이어를 소재로만 쓰고 로맨스를 섞어봤자 허무한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노 후유미의 소설 시귀와 시귀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재밌게 보았지만 그 정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지 않는 한 뱀파이어가 가지는 장르적 특성은 B급으로 빠지기 딱 좋다고 보거든요.

 아, 물론 저는 렛미인이 A급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B급 정서가 가득하죠. 주인공은 패배의식에 찌든 예민한 사춘기 소년이고 주변은 괴롭히는 아이들과 무관심한 어른만 가득한데 우연히 만난 신비로운 뱀파이어 소녀(예쁨)를 좋아하게 됩니다. 설정부터가 걸작입니다. 어디서 많이 봤죠.

 그런데 이 작품은, 제가 초반 몇 분 사이에 무슨 주문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낡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세련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뱀파이어 소녀가 가지는 분위기에 진짜로 압도돼서 보고, 노골적으로 감추지 않은 복선들에도 뒷이야기 전개를 두려워하며 봤습니다. 중간에 굴다리에서 소녀가 지나가는 남자 하나를 말 그대로 잡아먹는 장면은 호러로 연출된 점을 포함해 그 광경 자체가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무슨 마법에 걸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숨도 못 쉬고 몰입해 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왕따 가해자들 관련해서는 참 웃긴 전개가 많이 섞여있었는데 원래 뇌는 한 번 믿어버린 쪽을 확증 편향하지 않습니까? 뭐,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극에서 몰입을 깰 만한 부분들은 뇌가 적당히 세탁해서 봐버린 모양이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울려퍼진 장엄한 노래는 구슬프게 마음을 찌르더라고요.

 강렬한 이미지가 한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조용한 사운드트랙이 한동안 귓속에서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밤에 전등빛이 약하게 비추는 복도 계단을 걸어갈 때면 한쪽에 수그린 뱀파이어 소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길함에 그쪽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아무도 없었지만요. 있었으면 꽤 놀라면서도 다가섰을 것 같습니다.

 네, 한동안 그랬습니다. 영화 본 후 한동안 그렇게 지냈죠. 왜 그랬을까요? 나중에 스웨덴판을 봤을 때는 그런 느낌을 거의 못 받았거든요. 미국판은 4.0점을 주고 스웨덴판에 2.5점을 줬으니 같은 내용에 연출도 비슷한데 참 재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어요. 배우가 달라서? 사운드트랙이 달라서? 감독의 스타일이 달라서? 그 제각각이 그렇게까지 같은 작품의 평가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다른 이들의 평가를 찾아보면 오히려 스웨덴판을 더 고평가하던데, 단순히 무엇을 먼저 봤는가의 차이일까요.

 렛 미 인이라는 작품에 대해 저는 묻고 싶습니다. 미국판을 다시 본다면 그 감각이 되살아날까요? 무섭다기보다는 서글픈, 다만 오싹한 어느 한겨울의 서늘함이 말입니다.


2. 도가니

 저는 사회고발 영화는 국가의 탄생부터 구소련 영화를 거쳐 그 줄기가 내려오는 선전영화들과 그 맥락이 사실 비슷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비판하든, 찬양하든 결국 사회에 대해 다루기 위해 영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은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요. 그렇다고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관객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영화의 가장 주요한 기능 중 하나니까요.

 논점에서 조금 멀 수도 있지만, 장애라는 개념을 잠깐 생각해봅시다. 장애라는 것은 사실 그들만의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개념학적으로 보면 결핍보다는 훨씬 창조적인 개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세상으로부터, 또 비장애인으로부터 유리되기 쉬운 것은, 그들이 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영역의 세계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가니에서 주로 묘사된 청각장애 같은 경우 그들이 쓰는 수화는 사실 하나의 문자고, 언어입니다. 세상에서 오직 그들만이 이해하고 사용할 언어 말입니다. 비장애인 중에도 수화를 배우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함입니다. 그들 자신을 위해 배우지는 않죠. 청각장애인들은 서로의 눈을 통해 소통합니다. 표정을 읽고 감정, 의사를 캐치하는 것이 비장애인 이상으로 매우 빠르다고 합니다. 같은 단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어감을 목소리로는 표현할 수 없기에, 오직 표정과 눈길만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보죠. 시작부터 무진기행 속 안개를 가지고 만든 은유 효과는, 안개 속 학교라는 도가니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다음, 학교의 음침하고 조용한 복도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 장소가 풍기는 냄새가 지독해서 주인공이 이상함을 깨닫고 거기서 고발을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전개를 대폭 압축시키며 진도를 빠르게 뽑아낸 점은 확실히 상수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인권센터 여자와의 관계라든지, 주인공의 과거라든지 참 알쏭달쏭한 부분 많았지만 뭐 하나같이 양념에 불과한 재료들이니까요. 스킵하면 작품의 완성도는 깎아먹어도 관객의 감정을 깎아먹지는 않습니다.

 네, 그 감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을 울먹이고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감정 말이죠. 진짜 기분 나쁜 행위의 기분 나쁜 묘사는 항상 미묘한 줄타기 위에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묘사하면 주제 몰입을 방해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직접적으로 가면 주제보다 자극이 주가 되어버린다는 문제죠. 귀향이 좋은 예시가 되겠네요. 저는 그 영화를 본 뒤에 위안부의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마음보다, 쇼킹하고 성적인 장면들만 머리에 남았습니다. 그런 것 없이 감정을 자극하려면 어떤 숙성된 절차가 필요합니다. 도가니는 잘 해냈어요. 과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장광의 연극적 연기와 양면적 캐릭터 표현, 아역들의 연기가 잘 매칭됐어요. 관객이 느끼는 감정, 즉 눈 돌리고 싶은데 그들이 당한 일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악물고 봐야한다는 그 교묘한 감정선의 이용이 좋았죠.

 또 한 가지 생각해본 점은 캐릭터 조형입니다. 아역들은 청각장애를 가졌다고 나오지만 우리가 알 법한 장애인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제각기 캐릭터로서 기능하며, 극중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기력도 작용해, 단 한 명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하는 것이, 연두가 주인공인 도가니입니다. 기본적으로 구원자지만 제3자로 설정된 강인호가 관객의 시각에서 사건을 접하고, 반응하고, 대응하고, 느끼면서 관객이 극에 몰입할 단초를 제공하지만 그 강인호로부터 이끌어낸 스토리는 사실 없습니다. 타지에서 온,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더라도 그게 나쁜 줄 아는 교사가 있었으면 -그게 강인호가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성립해요. 그런데 연두는 피해 당사자면서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나선 주체고, 법정싸움도 법조인들을 빼면 연두와 가해자들의 대결처럼 묘사됩니다. 연두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끌렸다면 훨씬 깊고 풍부한 이야기가 가능했겠죠. ...연두는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청각장애, 그리고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많이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 당해야만 했던 짓에 어이가 없습니다... 사람인데.. 인격체인데 말이죠.

 잠깐 각설. 영화는 종종 삐걱거리고, 과몰입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능을 충분히 수행했습니다. 영화의 가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나옵니다. 첫 문단과 동어반복인가요? 생각할 여지가 없이 재미로 보는 상업영화들조차도 관객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죠. 도가니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그 명성만큼 좋은 평가를 주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아이들이 울 때 같이 울어주고 싶었습니다. 잠시라도 따뜻하라고,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보면서 마음 한구석을 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가 아픕니다.


3. 도희야

비오는 날 비를 맞는 사람이 있다면 우산을 씌워줍시다.
길 잃은 강아지가 있다면 같이 엄마를 찾아주고.
배고픈 고양이에게는 우유를 주고.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차림으로 선물을 나눠주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누군가와 같이 웃을 수 있는 일만 해나갑시다.
- 소설 사쿠라다 리셋 중 -

 기본 얼개가 좋았어요. 시골 파출소로 처음 온 여파출소장, 그곳에서 모두에게 왕따당하며 사는 영약한 여자아이의 관계성. 여기까지만 봐도 각 나옵니다. 그 아이는 복합적인 면모를 가졌겠죠? 여파출소장은 그 아이를 챙기려 들다 주변과 척을 지겠죠?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이 극의 동력이겠죠? 관계라는 단어는 항상 달콤하고, 찌릿찌릿한 무언가를 제게 먹여줍니다. 관계성이야말로 이 영화에 반하게 된 가장 큰 요소입니다. 동성애나 가정폭력, 외노자, 이촌향도 같이 이런저런 사회 문제를 같이 끼워넣었지만 어디까지나 끼워넣은 겁니다. 결말만 봐도 그래요. 감독의 눈은 더 먼 지점을 보고 있습니다.

 도희야.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옵니다. 도희를 보는 영남의 시선이 사실상 극의 전부죠. 도희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은 이상한 어른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도희가 정상으로 보입니다. 영남의 시점임을 감안해도, 정말 그 아버지부터 할머니, 동네 주민들까지 하나같이 괴짜만 모여있는데 그게 또 너무 있을 법합니다. 정말 시골 어딘가에 온 것 같습니다. 고립된 영남은 도희를 만나고, 먹이고, 돌보고, 시간을 보내고... 외톨이 도희도 자연스레 따스한 영남에게 의지합니다.

 재밌는 것은 여기부터입니다. 영남은 레즈비언입니다. 과거의 연인이 찾아오고, 그 목격을 도희네 아버지가 목격하고. 여기서 한 번 전환입니다. 그동안 봤던 영남의 따뜻한 모습은 일종의 그루밍이었나?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죠. 극이 반전되고 영남은 악역으로 변모해 도희와의 관계를 성적으로 변화시키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영남은 끝까지 연민어린 애정으로 도희를 돌봅니다. 어디서도 욕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동성애는 하나의 기능이 됩니다. 영남을 옥에 가두는 기능 말이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분법적 잣대와 주관적 직관에 매달리고 있나 보여주는 역할로서 말이죠.

 영화 도희야에는 온갖 사회문제가 잘 녹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문제들은 그 각각으로는 그렇게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가정폭력은 모호하게 (오히려 폭력의 주체인 도희 아버지에게 딱히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형태로) 묘사되고, 동성애는 동성애자지만 욕구에 따르지 않는 영남의 모습이 강조되며, 도희네 아버지가 가지는 마을에서의 위치와 폭력성 표현을 위해 이촌향도나 외노자 문제가 나오는데, 그것도 잠깐입니다. 이 많은 문제들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기능적으로 소모되며, 결국 이 이야기는 어디를 향해 전진하는가 하는 고민을 낳는데, 이는 결말에서 드러납니다.

 결말부, 영남은 도희를 데리고 떠납니다. 지탄받을 것이 당연한 길을, 모든 불합리한 시선과 손해를 각오하고, 도희를 돌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용기의 본질은 굳이 표현하자면 두 사람의 순수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복합적이지만 결국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는 관계. 영남도, 도희도, 그 순수한 관계성의 대변자로 설정된 것일까요?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간적 욕구와 잣대에 사로잡힌 우리는 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왜곡되고 세상에 물들어버렸음을,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항상, 추악한 상상으로 가득찬 시선이라고요.


4. Nightcrawler

 영화를 볼 때 누구나 기대를 합니다. 그 기대는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습니다. 충족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가 높은데 충족시키지 못하면 졸작인데 기대가 낮았지만 그 이상 충족됐다면 괜찮은 수작이 되죠. 흥미로운 기준이지 않나요? 그런데 나이트크롤러는 제가 설정한 별로 높지 않은 기준을 뛰어넘어, 매우 높게 기대치를 상정하고 봤어도 충족될 만한 무언가를 보여줬습니다. 이건 명작이라 불러도 좋겠죠?

 먼저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파 프럼 홈에서 나왔던 모습이 그 배우를 인지하고 본 첫 모습이었는데, 헐리웃 최고 연기파를 저렇게 써먹냐는 비아냥을 듣고 뭐하는 배우인가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찾아보니 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분이었는데 나이트크롤러에 나온 모습을 보고서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이거나 속여넘기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길, 사람들은 선호합니다. 그런데 저는 정신병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이해의 저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적 인간도 그들 나름의 기준과 정의에 입각해서 움직일 뿐이죠. 하물며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의 결여에서 출발하는데, 그게 반드시 충격적인 연쇄살인마에게나 붙을 법한 '위대한 범죄자의' 칭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이트크롤러의 루이스 블룸은 사이코패스가 맞는 것 같아요.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준 말과 행동, 표정과 눈빛이 모두 그가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미치광이가 아니에요. 미치광이와 정신병은 다른 거죠. 그는 단지 어떤 정신병에 걸렸을 뿐입니다. 미친 연기는 맞지만, 미치광이 연기는 아닌 거죠.

 자, 여기서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언론윤리나 기자정신이라는 말은 제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상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각도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기자는 그 다양한 면모를 모두 볼 줄 알아야합니다. 누군가의 시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도 또다른 누군가의 시점에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그 속에 담긴 전체적인 형상의 의미와 의도를 깨달아갑니다. 비록 그 진실이 허무하거나 암울하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알아내는 정신을, 저는 동경합니다. 그런데 나이트크롤러는 이러한 생각을 곧이곧대로 비틀어 짜버렸습니다. 걸레 짜듯이요.

 성취욕구가 극단적으로 크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보다 현대사회에서 성공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루이스 블룸이 그렇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의 이야기는 성공신화입니다. 바닥부터 시작해 쓰레기 줍던 사람이 영화 마지막에는 언론사 CEO가 되어있어요. 정말 노력 많이 했고, 재능도 따라줬죠. 그가 자기계발서를 쓴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겁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서스펜스 속에서 느끼던 긴장감은 마침내 충격과 경악으로 귀결됩니다. 나이트크롤러는 그게 다입니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이야기니까요. 다만 영화를 보면서 소소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흔히 들어볼 법한 벤쳐기업 성공신화의 뒷면에 나이트크롤러가 있을지,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5. 아가씨

 박찬욱이라는 감독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그의 작품 중 심판,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스토커 네 작품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봉준호 감독이 세계로 비상하기 전까지 박찬욱이야말로 한국영화 원탑 감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감독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그에 준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영화제작 실력이 이창동, 홍상수와 다른 길을 가면서 진정한 장인의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이조차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여 마구 파고드는 저력이 박찬욱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저와 스타일이 딱딱 맞는 감독은 아니에요. 그의 작품세계는 혼란스러운 인간과 그 욕망을 장르를 변용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에서 장점을 발휘합니다. 위에 언급한 작품 중 공동경비구역 JSA 정도가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데 박찬욱 커리어에서 보면 그건 상업성을 위해 타협한 영화고, 이외 박찬욱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면모가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저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과 상실을 목격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에서까지요. 우울한 영화나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창작작품이라면 진짜 우물 밑까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찬욱 작품은 끝까지 들어갑니다. 잔인성과 선정성을 완전히 거세해도 19금 판정이 나올 법한 작품들입니다. 박찬욱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그 비틀린 욕망과 추악한 동기부여에서 찾고 싶은 것일까요?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해놓고 한 가지 재밌는 점을 알려드리자면, 전 그의 작품들을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위에서 실컷 이야기 해놓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보고 실망하거나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서 다시 같은 결론이 나오죠. 박찬욱은 진짜 끝내주게 영화 잘 만들거든요.

 유미주의라는 말, 낭만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자가 아니니까 그 학술적 정의를 길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미학적 표현의 극단적 강조와 현실상황의 관조 혹은 방관을 저런 단어로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가씨는 낭만주의 색깔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들여 예쁘게 꾸민 화면이 나오고, 배경과 미술은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섭외해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배우들도 자칫 저급해질 수 있는 블랙 코미디의 향연 속에서 중심을 잡으면서도 비주얼이 괜찮은 배우만 뽑아서 썼습니다. 시종일관 경쾌하면서 클래식풍 짙은 사운드트랙도 흘러나옵니다. 원작 핑거 스미스가 어땠는지 몰라도 아가씨는 노린 작품입니다. 대놓고 영화적 미학표현의 끝을 추구하면서 더럽게 보일 수 있는 부분까지 블랙코미디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경쾌하게 물 흐르듯 이야기가 진행되며 온갖 흥미로운 상황 설정이 나오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나면 이야기 다 끝나있기 십상입니다. 여러 번 봤고, 감독판으로도 봤습니다. 재밌어요. 꼭 보세요.

 그런데, 낭만주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한 가지 더 말해야만 합니다. 바로 사상과 철학의 비개입입니다. 어떤 사상도, 철학도 낭만주의에서는 미학을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가씨는 페미니즘 표현이 일부 있지만 페미니즘 작품은 아닙니다. 일제시대라는 민감한 시대를 다루면서 친일파를 악역으로 설정해 관객이 보편적으로 생각할 법한 반일 요소는 미미하게 삽입했지만 그 이상의 사상이나 철학이 드러나진 않습니다. 박찬욱은 친일파를 나쁜 사람으로 표현했다기보다는,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친일파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악역으로 넣은 겁니다. 그렇다고 동성애에 대한 어떤 고찰을 보여주나요?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 이야기는 한쪽 주체를 남성으로 바꿔도 무리 없이 성립합니다. 사랑에 장해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남녀간 로맨스물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수준의 장해물이지 관계 자체가 부정되는 여타 동성애물에 비하면 표현을 아에 안 한 수준입니다.

 저는 그 점에서 아가씨가 좋습니다. 일제시대의 낭만적 풍경.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랑. 친일파 악역. 그 안에서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 위험해지기도 쉽고, 안일해지기도 쉬운 요소가 참 많은 작품입니다. 그 속에서 박찬욱은 철저하게 보편적 코드만을 삽입하되 어떤 사상이나 철학은 배제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게 어찌보면 낭만주의가 장르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아닐까 싶고, 또한 제가 아가씨를 극찬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6. 우리들

 우리들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요? 과거는 과거로 훌훌 털어버렸을 어린시절의 나는 왜 이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우리들이 시작된 곳은 어디였을까요? 이런 이야기는 이 글 마지막에서 다룰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지만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말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른치고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초등학생 시절 김일성 사망 소식을 접하고, 중학생 때 처음 응원한 대선후보가 아깝게 패배하는 모습을 봤고, 고등학생 때는 탄핵 심판을 학교에서 생중계로 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나 역사, 사회에 관심이 많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면서 교사들과는 사이가 안 좋았고 주변으로부턴 달관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 친구관계가 마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친구관계 때문에 사력을 다하는 아이였기도 합니다.

 친구라는 단어는 참 매력적이면서 확 다가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만화 20세기 소년과 영화 친구보다는 한층 뒷세대라서, 어린 시절의 저는 그 단어를 듣고 엉뚱한 것을 떠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친구는 순수하게 친구관계를 가리키는 말이었죠.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하면서 사람을 좋아하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친구라고 부를 아이를 사귀었습니다. 주변 아이들에게 베스트 프렌즈의 전형으로 불릴 만큼 친했는데 그 친구랑은 이듬해 반이 갈리면서 왠지 서먹서먹해졌어요. 그때는 아직 핸드폰도 없을 때라 연락은 이후 완전히 끊겼습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산 게 그로부터 2년 뒤였고 초중학교를 같은 학교 나왔으니 그 뒤로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번만 그랬으면 지금까지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 시절 이후 저는 그 친구와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그 친구 어머니도 친했을 텐데 언젠가부터 어머니들도 연락을 안 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중학교까지 같이 진학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왕따 비슷한 일을 당해보기도 하고, 시켜보기도 했습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나락까지 떨어진 기분도 느껴보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많이 느껴 혼자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해 한동안 친구를 만들지 않고 살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습니다.

 영화 우리들은 따를 당하던 아이와 전학생 아이의 관계를 그 나잇대에 있을 법한 여러 심리를 섞어 전개해나갑니다. 가장 친했던 두 친구는 가장 심하게 싸웁니다. 마음은 통하고 싶었으면서, 누구보다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요. 그런 미묘한 감정이, 바로 어리고 여린 아이들의 친구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이기 때문일까요. 어른이 된 입장에서는 그 아이들의 심리나 속사정이 손바닥 보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런 아이가 주변에 있다면, 또 무언가 조언을 해줘야 할 상황이라면 저는 뭐라고 이야기해줘야 좋을까요. 고민 많이 하겠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너희 마음이야말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제가 과거에 그랬듯이.




--

 사실 4.0 이상 별점 준 최근 영화는 우리들 이후로 여섯 작품이 더 있는데, 일단 1만 자 가까이 왔으니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쓰게 된다면 제목에 (2)를 달고 올라오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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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술생
20/04/05 00:23
수정 아이콘
와 푹 빠져드네요 크크
여기나온것들을 나중에 한번씩 봐야겠습니다.
bongsala
20/04/05 10:38
수정 아이콘
도가니
우리 사회를 바꾼 영화... 원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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