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주제인 [추석]을 보고, 저는 가장 먼저 '사촌'을 떠올렸습니다. 항상 추석 이맘때 쯤엔, 명절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사촌이나 조카들에게 고통받는 썰들을 숱하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저로써는 이런 썰들을 재밌게 보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 아버지가 형제들 사이에선 막둥이 뻘이였고, 저 역시 나이 차이나는 손윗 사촌밖에 없기에 친척에게 고통받는다는 상황자체가 저완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겐 사촌 형들과 명절동안 즐겁게 놀았던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잠깐, 정말 재밌게 놀았었나?'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어릴적의 저는 '고통받는 입장' 이 아니라, 반대로 '고통을 주는 입장' 이었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어릴적의 제 행적을 떠올려보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분명 즐거웠지만 [사촌들은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란 생각이 뇌리에 스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불리한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지우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동안 생각치도 않던 어린시절을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자, 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피어 올랐습니다. '최연소자' 라는 무소불위의 직위로 칼을 휘두루던 끔찍하고 잔혹한 나날들 말입니다. 갑자기 글쓰기가 두려워지고 있습니다. '리틀 사탄' 시절을 구체적으로 떠올릴수록, 자기혐오로 숨이 가빠지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괴롭지만 자기 속죄겸 저의 끔찍한 만행보따리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포의 사촌몬이 온다.
참고로 제겐 사촌 '형'이 한 두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중 다섯은 기껏해야 한 두살 차이일 정도로 또래였고, 다들 저와는 최소 7살 차이가 났습니다. 같은 핏줄 아니랄까봐 사촌 형들은 하나같이 게임과 만화에 관심이 매우 많았고, 고등학생인 큰 형은 리니지를 하느라 큰고모에게 등짝을 맞을 정도의 게임 광이었습니다. 중고딩 형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하나같이 게임. 게임. 게임이었습니다.
즉 막둥이인 제겐 큰집이 커다란 테마파크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야말로 문화컨텐츠의 본거지 였거든요. 집에는 없는 고성능 펜티엄 컴퓨터. 게임시디로 꽉 차 있는 시디롬 보관함. 호 수 별로 정리된 아이큐점프. 자기만의 개인방을 쓰는 사촌형. 뭔 얘긴진 모르겠으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게임토크. 그냥 모든게 멋졌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놀이문화들을 사촌형들은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 처럼 보였거든요.
뭐.. 순수했던 제 관점은 이쯤하고, 슬슬 제가 어떻게 형들에게 피해를 끼쳤는지를 서술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범한 악행들은 일반적으로 상상하시는 '만화책에 손에 묻은 기름기 치덕치덕 바르기', '게임씨디 달라고 조르기', '와! 루-우피 피규어다!' 뭐 이런 '사촌몬' 의 스테레오 타입은 아닙니다. 기억을 정리해 보니 물질적인 피해보다는 대부분 정신적으로 괴롭혔던것 같습니다.
1. 컴퓨터 독점
당시의 시대 상황을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접속'이 히트 치던 PC통신 시절은 아니면서 지금은 미국 가신 스티븐 유씨가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를 외치던 메가패스 시절도 아닌, 그 둘의 중간 과도기. 그러니까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를 '윈도우'로 실행하는 시절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즉 컴퓨터도 귀하지만,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는 말 그대로 초-레어 했던 시절입니다. 기껏해야 TV에서 틀어주는 '디즈니 만화동산' 이나 몇 십번씩 돌려본 비디오, 합본 저질게임으로 차있는 패미콤 정도가 문화생활의 전부였던 저에겐 큰집에 있는 컴퓨터는 기묘하면서도 '어썸한' 기기였습니다. 제가 큰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컴퓨터는 사촌형 들에게 선점된 상태였으나, '리틀 사탄'의 쥐똥같은 눈물이 안방에 떨어진 뒤, 이내 컴퓨터를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레어함이 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슬슬 보급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동네에 PC방이 한두개씩 생겨나며,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상륙한지 얼마 안된 시절. 아마 컴퓨터를 하고 싶은 순수한 욕망은 저보다 중학생인 사촌형들이 압도적으로 컸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한창 그럴 나이니까요. 오랜만에 관심사 같은 또래 친척들을 만나 게임썰을 풀고 같이 놀아야 했던 사촌형들에게 제 존재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컴퓨터를 놔주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겐세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너 많이했잖아. 비켜' 처럼 사촌형들은 물리적으로 저를 컴퓨터에서 격리시키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악한 '리틀 사탄' 은 잃어버린 그의 주권을 되찾을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작은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불만과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선즙필승은 진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돋는 점인데, 겐세이를 당할 때 마다 저는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둘째 형에게 컴퓨터를 뺏겼으면 둘째 아버지에게, 넷째 형한테 뺏겼으면 작은 고모에게 다이렉트로 찔렀습니다. 자기 아들이 컴퓨터하는 꼴을 탐탁지 않아하던 부모의 심정을 공략한 효과적인 전략이였던 겁니다.
"집에서도 죽어라 하는 컴퓨터. 작작하고 작은 동생 하게 둬라."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게임은 거의 '악(鍔)' 으로 묘사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고모와 작은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들을 타박하며 제가 컴퓨터를 잡을 수 있도록 명분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장기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2. 죽이고 싶은 일름보.
'리틀 사탄' 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게임도 하고 CD도 한개씩 돌려보고,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 가는지 모르게 컴퓨터에 열중했지만 뭔가가 허전했습니다. 사촌형들이 집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은 고스톱에 열중하고 술에 취해 잠을 자느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사라진 기척을 느꼈던 건 오직 '리틀 사탄' 뿐 이었습니다.
"작은아빠. 형들 어디갔어?"
"응. 축구하러갔어."
"아냐, 형들 게임하러 간다고했어."
"뭐?"
물론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듣진 못했습니다....만 심증은 있었습니다.
전 날 침상머리에서 형들의 얘기를 엿들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팀전이 된다더라.'
'나는 테란을 잘하는데 너는 저그라 나한테 안된다더라'
같은 단편적인 얘기를 들은게 전부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저였지만, 왠지 느낌 적인 느낌으로 형들이 축구가 아닌, 컴퓨터 게임을 하러 갔을거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저는 피시방을 한번도 가지 않았었지만, 형들의 대화. 내재된 겜돌이의 피. 각종 추리 가능한 요소로 피시방의 존재에 대해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짐작... 아니, 확신에 찼기에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제보를 받은 작은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큰집 근처 피시방을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피시방에 처음으로 가게된 경험이었습니다. 자욱한 담배연기. 뭔가 숨을 쉴수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폐쇄감. 제가 상상하던 천국과는 다르게 현실의 피시방은 상당히 음침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작은아버지는 피시방 구석에 앉아 있는 형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화를 내며 형들을 검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잠깐! 이 부분은 좀 해명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작은 아버지에게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형들을 찾아 혼내고 싶어 그런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사촌형들이 하는 것에 저도 껴서 같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였고, 형들이 있는 곳으로 작은 아버지가 저를 데려다 달라는 의도였습니다. 제 입장에선 악의 없는 순수함이지만 지금 보면 형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죽이고 싶은 일름보' 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3. 멈추지 않는 패악질.
형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의 주도권을 아예 포기하고, 작은 방에 모여 형들끼리 '알라딘보이' 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심통이 난 저는 컴퓨터를 포기하고 형들에게 갔습니다. '거, 형들이 됐으면 재현이좀 봐줘라.' 작은 아버지의 일갈로 끼어들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조이스틱은 2인용이지만 머리는 많았던 탓에, 서로서로 순서를 돌아가며 하면 문제없을 일이였겠지만.. 리틀 사탄은 '나 더할거야' 를 시전. 분위기는 싸해지고... 아...
...
음..
기억을 더듬을수록 혐오감이 들어 쓰기 괴롭네요.
이 쯤 하겠습니다.
4. 업보.
연휴가 끝나고 다들 집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
저는 형들의 놀이에 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컴퓨터 게임이 아닌, 뜬금없는 '원카드' 였습니다.
원카드 하는 방법은 다들 아실겁니다. 필드에 있는 카드와 공통점이 있는 본인의 카드를 순차적으로 털어내는 게임입니다. 원카드 룰을 몰랐던 저는 형들이 하고 있는 게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동안 패악질로 서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있던 터라, 뻔뻔했던 '리틀 사탄'도 선뜻 껴달라하기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사촌 형 중 가장 어렸으면서 컴퓨터 비키라고 가장 겐세이를 많이 놓았던 '영근이 형' 이 같이 하자고 제게 선뜻 손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간 쌓여왔던 앙금이 녹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룰이 워낙 쉬웠기에 게임에 적응하는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몇 판 게임을 하며 감을 익히고 조금씩 재미를 붙여갔습니다. 다만 제가 낀 뒤 룰 한가지가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진 꼴등이 벌금을 냈지만 재현이는 돈이 없어 게임 성립이 안되니, 앞으로 꼴등은 나머지에게 딱밤을 맞는다' 는 룰이었습니다. 음.. 그 다음 일은 아마 상상이 되실겁니다.
"재현아. 폭탄이야. 2나 A 없어?"
"형이 K 냈으니 네 차례야."
"Q 알지? 반대로 도니까 또 재현이네."
"와! 재현이가 꼴등이다. 이마 딱대"
당시 저는 단순히 제 실력이 미숙했기에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른의 무서움을 모를 나이기도 하고, 제 기준에서 멋진 형들이 저를 전략적으로 멕일거라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매번 꼴등을 하진 않았지만, 초딩이 힘줘서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고 '틱' 하고 헛손질만 남발했던 저완 달리. 형들은 자비없는 풀파워 진심 딱밤을 가련한 소년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딱밤포화에 '리틀 사탄' 은 서럽게 울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재밌는 점은, 그때 울었던 이유가 '물리적으로 고통을 못견뎌' 아팠던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촌형들에 대한 원망이나 야속함은 없었습니다. 그저 '게임을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자괴감' 이 눈물의 가장 큰 원인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명절 마지막 날. 다행히 '리틀 사탄'의 닭똥같은 눈물이 그동안 쌓여왔던 사촌형들의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객관적으로 제 악행들을 곱씹어보니 '그래도 싸다..' 란 결론밖에 안 나오네요. 아무튼요.
뭐, 썰은 여기까집니다.
이 글을 쓰면서 놀라웠던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되는 악행들이 지금까지 제 의식 깊숙한 곳 묻혀져 있었다는 겁니다. 글 쓰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이것들은 제겐 죽은 기억이었거든요.. 가벼운 기분으로 옛 기억을 더듬다 본의 아닌 제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곱씹어보니 '리틀 사탄' 시절 제 행동들의 원인은 '컴퓨터' 자체에 있다기 보다, 나보다 게임에 대해 잘 알고, 더 잘하고, 이해하긴 어렵지만 재밌는 얘기들을 하는 형들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각종 패악질을 부렸던 것도 형들이 내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는 불만이 밖으로 표현된것 같다.. 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뭐. 이제와선 부질없는 얘기지만 말입니다.
무튼.. 혹시나 사촌이나 조카몬에게 고통받는 분들은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받는 고통들은, 사실 어린시절 쌓아왔던 업보스택이 지금에서야 되돌아 오는 걸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리고 조카나 사촌들에게 필요한건 컴퓨터도, 피규어도 아닌 당신의 관심이란 사실을요. (날림 마무리 죄송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