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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4/25 14:27:32
Name handmade
Subject [일반] [8]어렸을 때는 착해서 같이 놀아줬는데 지금은 싸가지가 없어서 안 놀아준다. (수정됨)
마음의 상처 1. 어렸을 때는 착해서 같이 놀아줬는데 지금은 싸가지가 없어서 안 놀아준다.
마음의 상처 2. 니가 그따위로 말하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이 새X야!

두 개의 마상성 대사는 제가 커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마상성 대사 중 두 개에요. 둘 다 어렸을 때 들었는데 아직도 당시의 상황까지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저의 대화습관의 단점과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던 외로움에 적나라하게 비수를 꽂았기 때문입니다.

첫 대사는 저와 같은 동네에서 컸던 2살 많은 누나의 대사입니다. 제가 5살 때쯤부터 함께 놀았으며, 저 대사를 친건 제가 11살 때였죠.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저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그걸 보던 동갑 여자애가 [너 왜 혼자 놀아?] 라고 물었죠. 마침 지나가던 그 누나가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며 던진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착해서 같이 놀아줬는데 지금은 싸가지가 없어서 안 놀아준다.”

두 번째 대사의 상황은, 중학교 2학년 때, 쉬는 시간에 저를 포함한 3명의 친구와 노가리까던 도중의 일입니다. 친구 중 하나가 “야! A 게임이 B 게임보다 더 낫지 않냐?” 라고 말했고 저는 “아닌 것 같아. B 게임이 너 나은 것 같다. A는 그래픽이 어쩌구, 트레일러 영상이 어쩌구, 스토리가 어쩌구, ~~. 근데 B는 블라블라~~~. 그래서 B가 더 좋아!”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 놈 왈 “니가 그따위로 말하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이 새X야.”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런 소릴 듣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네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예절 교육에 철저한 분이라 어디 가서 책잡힐 짓도 안했고, 중고딩 시절에도 욕도 거의 안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죠. “내가 어떻게 말한다는 거야? 뭐가 싫은데?”

하지만 그 누나도, 그 친구 놈도 명확한 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답답했죠. 저 스스로도 교우관계가 원만치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열등감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타인이 말도 안 해주고, 저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하철 공익의 특수한 휴가인 ‘대체휴무’ 때문에 무려 부 역장과 한판 벌이게 됩니다. 부 역장은 대체휴무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더군요. 덕분에 저의 휴가가 부당하게 짤리게 될 상황이었죠.

저는 이 무식한 부 역장에게 대체휴무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잡고 설명에 들어갔는데, 채 3마디도 못하고 부 역장의 “아 뭐라는거야! 아무튼 한 달에 4번만 쉬면 되는 거 맞잖아!” 라는 말에 욱해서 “아니거든요! 어차 저차해서 5번입니다. 애시 당초 대체휴가는 한 달 기준으로 헤아리는 게 아니에요!” 라고 들이박아 버렸습니다. [부하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말이죠.]

그런데 저의 논리적인 설명에 부 역장이 밀리는 상황이 되자 부하 직원 중 하나가 공익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질문하였고, 저의 말이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부 역장은 감정이 치밀어서 휴가를 결재해주지 않고 퇴근해버렸고, 다음 근무조의 부 역장이 결재를 해주었습니다.(근데 그 부 역장도 대체휴무에 대해서 정확히 몰랐던게 함정)

다음 날, 어떤 젊은 직원이 저를 불러서 말해줬어요. [사람이 말을 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감정과 지위와 체면 등을 논리보다 더 우선해서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넌 논리만 내세웠어. 그러면 사회생활하기 힘들다.]

그 말이 저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맨 처음의 마상 대사 2개는 모두 저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봅니다. 2살 많은 누나에게 가르치듯 말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화의 맥을 끊었던게 분명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내에서 손가락 꼽히는 독서가였고, 말도 나름 잘하고, 잡학다식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끼리 하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틀린 말]이나 [나의 생각과 다른 말]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교정하려 했습니다.(물론 어렸던 당시는 다름과 틀림을 잘 구별도 못했을 테구요.) 말투는 부드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즐거웠던 상대방의 감정을 분노나 열등감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왜 잘 몰랐을까요?

가만 보면 저의 어머니 직업이 교강사 쪽이신데, 저와 말투가 정말 비슷합니다. 그리고 저는 딱히 현실 말싸움에서는 거의 져본 적이 없었고, 만약 지더라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는 기쁨이 쪽팔림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https://pgr21.co.kr/pb/pb.php?id=humor&no=349773&divpage=61&ss=on&sc=on&keyword=%EC%95%84%EC%8B%B8

위 링크의 로또 관련 대화가 저의 어릴 적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친구가 없지는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 소수의 무리가 항상 있어서 그들과 깊게 사귀곤 했죠.

아무튼 공익근무 이후 대학에서 그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농담과 대화 핑퐁에 능숙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예능도 많이 봤는데 당시 많이 참고했던게 개그맨 이수근이었습니다. 이 분은 정말 그런 부분에서 천재인 듯...

근데 조금만 노력하니까 저도 꽤 하더라구요? 너무 가볍기만 한 농담을 던지는 것은 싫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농담을 던지고, 평소에 재치있게 말하는 스타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PT할 때는 설명충의 근간을 살리되 유머를 가미하는 방식의 PT로, 400명이 넘는 큰 과에서 PT최고수로 통했습니다. 바이어 경력이 있는 교수님이 “나 보다 잘한다.”라고 칭찬했을 때는 얼마나 좋던지 크크크크.

이렇게 되니까 여학생이 먼저 저에게 다가와서 인사하고, 발표 수업에서 인기인이 되는 등 인싸 비슷한 상황을 누릴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상황을 돌아보면 참 많이 변했죠?

만약 이런 점을 좀 더 빨리 깨달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가질 수 있을테고 자존감도 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많이 아쉽네요.

제가 보기엔 이곳 피지알에도 옛날의 저와 비슷한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부분은 본인의 설명충 기질을 현실에서 충분히 풀어내지 못하기에 피지알을 좋아하시겠지만.....

만에 하나, 현실에서도 피지알에서처럼 말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약간 바뀌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일상적 대화는 강의 스크립트가 아니고, 재치 발랄한 말투는 일상의 윤활유가 되어줍니다. 본인이 그렇게 바뀌면, 재미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기도 하구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더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뭣 보다 인맥이 좋아져서 입수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저는 바뀌어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변화의 의지가 있는 분들이여~~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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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5 15:10
수정 아이콘
돌려서 말했더니 뭘 그리 비꼬냐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최소한 일 하는 곳, 일 하는 중에는, 형식상의 예절이라도 지키는 상대한테는 좀 감정 풀이를 미뤄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 본인부터 잘 해야 하는거지만요.
handmade
19/04/25 15:15
수정 아이콘
하...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긴 합니다. 감정보다 내용을 중시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19/04/25 15:57
수정 아이콘
실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박박 우기다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주제에 '논리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관계와 예의와 감정이 어쩌고 저쩌고' 를 시작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도 끝까지 자기가 틀린거 인정 안 하죠) 심지어 이걸 지적하면 더 화를 내는데, 기분나쁜건 이해하는데 뭐 사과할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자업자득이지 왜 나한테 성질이야???
------------------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건 보통 너희들 볼 때만 그렇다고 술자리에서 친구놈들에게 말했더니, 역시 넌 나쁜놈이라며 욕과 술을 주더라구요.
Synopsis
19/04/25 15:25
수정 아이콘
근데 마상이 무엇일가요. 유추해보건데 마음의 상처가 되려나요? 줄임말을 잘 모르는 아재를 위해서 앞으로도 이런 좋은 글, 단어만 좀 풀어서 많이 써주세요
handmade
19/04/25 15:38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맨 처음에 마음의 상처라고 써놔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설명이 부족했군요 ㅠㅠ
아웅이
19/04/25 15:30
수정 아이콘
자소서의 단점극복 썰 같은 느낌이 드네요. 크크
handmade
19/04/25 15:38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잠이온다
19/04/25 16:05
수정 아이콘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논리와 이성이 감정보다 훨씬 도움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저도 감정적으로 화나고 짜증나는데 이럴땐 하는일도 잘 안되고 공격적이라 분란을 만들기도 하고,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감정적이 되고...

정치분야가 감정을 가장 배제해야한다고 보는데 투표는 가장 감정적인 영향이 커서, 영 안좋은 상황도 나오고....

감정이 좋은 점이 뭔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거겠지만요.
19/04/25 16:43
수정 아이콘
생물학적으로 감정의 장점 중 하나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거죠. 개인적인 에너지 효율/이점만 보면 자식에 많은걸 투자해가며 기를 이유가 없죠. 생물학적으로 감정을 프로그래밍 해서 개인적 효율 보다 종 전체의 종속에 도움이 되게 감정을 집어넣었죠.
물론 이 프로그래밍 과정은 자연 선택으로 인해 이루어진거고요.
별바다
19/04/25 18:03
수정 아이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제 친구중에도 극한의 설명충 기질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깊이 알면 인성도 좋고 디게 착한데 치명적인 단점이 눈치가 좀 많이 딸리는;;편이라 상대방의 기분을 잘 못 헤아리더라고요 말하다 보면 좋다고 자기 이야기만 계속 하는데 신나서 떠벌이는긜 보면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크크
이런 걸 소위 말하는 '찐특' 이라고 하나요
하튼 그 친구도 눈치를 좀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아...
19/04/25 18:10
수정 아이콘
사회 생활하다가 치이면 어느 정도 고쳐지게 되더라고요. 상황에 한정적일 수는 있지만요.
19/04/25 18:32
수정 아이콘
저도 원글님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근데 단점이 하나 있는데, 원래 성격대로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대화를 할 때 진심으로 즐겁진 않더라고요. 일종의 접대를 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다보니 원래 성격대로 대화해도 되는 친구와 나머지 친구 풀이 갈리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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