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아사하라 쇼코 및 옴진리교 간부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옴진리교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주제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의 르포르타주를 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형 집행 이후 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기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1, 2권을 모두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만큼, 기고문 또한 열심히 읽고 번역을 해봤습니다.
나름대로 뜻을 왜곡하지 않고 읽기 편한 번역을 지향했지만, 다소 모자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현재는 일본어 기사 링크에는 접속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만, 저는 일본어 원문을 읽고 번역했습니다.
링크는 영어 기사 링크로 연결됩니다.
기고 : 가슴 속의 무거운 추 -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옴진리교 13인 사형집행
옴진리교의 전 간부 등 13인의 사형이 이번달 집행되었다는 것을 듣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씨 (69) 가 마이니치 신문에 글을 보내왔다.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에 충격을 받은 무라카미씨는, 피해자와 유족을 인터뷰하여 정리하고, 재판을 여러번 방청하는 등, 깊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
[가슴 속의 무거운 추] 라고 제목을 붙인 기고에서, 형의 집행에 대한 복잡한 생각, 재판에 대한 인상, 남겨진 과제에 대하여 솔직하게 술회하고 있다.
사형이 가진 의미
지난 7월 26일, 7월 6일에 이어 두번째 사형집행이 일제히 이루어져, 이것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전 옴진리교 신도 13인 전원이 처형되었다.
그야말로 눈깜빡할 새에 집행된 것이다.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사형제도 그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거운 죄이고, 당연히 그 죄는 처벌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체제=제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다를 터이다.
그리고 죽임이 궁극적인 처벌의 형태라는 생각은, 세계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미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건의 경우도 놀랄 정도로 많아서,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과오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 기술적으로도, 원리적으로도 -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은, 문자 그대로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제도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언더그라운드] 라는 책을 쓰며, 1년을 꼬박 걸려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의 피해자와 돌아가신 분의 유족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분노를 실제 눈앞에서 보아온 나로서는, [나는 사형제도에는 반대입니다.] 라고,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해서는 간단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 범인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사형을 집행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일부 유족의 마음이 나에게도 아플 정도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휘말리면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 다소의 개인차는 있더라도 - 인생의 진로가 멋대로 뒤바뀌어지고 말았다.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다양한 의미로 더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을 터이다.
나는 내가 쓴 책을 다시 읽고 울거나 한 적은 아직 없지만, 이 [언더그라운드] 라는 책만큼은, 필요해서 다시 읽어볼 때마다, 몇몇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넘치곤 한다.
그 인터뷰를 하고 있을 당시의 공기가, 거기에 있던 분위기나 소리나 숨결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숨이 막혀오게 되는 것이다.
혹여 센티멘탈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책을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자연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싶지 않은데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한명이라도 많은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또 나 자신도, 이 한권의 책을 쓰는 것을 통하여, 내 안에서 무언가가 확실히 변화했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유족의 의견은 어디까지 반영하여야 하는가
다만, 유족의 의견이라는 것은 꽤나 어려운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아내와 아이를 잃은 남자가 증언대에 서서, [이 범인이 증오스러워 참을 수 없다. 사형 한번으로는 모자라다. 몇번이고 사형시켰으면 좋겠다.] 라고 울면서 증언했다고 하자.
배심원의 판단은 아마 사형판결 쪽으로 어느정도 기울 것이다.
그에 반해, 같은 남자가 [이 범인은 내 손으로 목졸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증오스러워 참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으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사형판결은 피해달라.] 라고 증언한다면, 배심원은 아마 사형판결은 아닌 쪽으로 어느정도 기울 것이다.
이러한 [유족의 의견] 으로, 한 인간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은, 과연 공정한 일일까?
나로서는 그 부분을 도저히 깔끔하게 나눌 수가 없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갈등은 숨겨져 있는 채로
나는 [언더그라운드] 를 출판한 뒤, 도쿄지방법원과 도쿄고등법원에서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관련 재판을 방청했다.
일 때문에 여행을 간 적도 많아 물론 모든 재판을 방청한 것은 아니지만, 도쿄에 있을 때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방청에 임했다.
특히 하야시 야스오 (전 사형수)의 재판에는 관심이 있었기에, 그쪽을 주로 따라다녔다.
내가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사린가스를 살포한 히비야선 (나카메구로행) 의 차량이 가장 많은 수의 피해자를 냈고, 그 중 8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인터뷰한 피해자 중에도, 그 차량에 차고 있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실행범들이 사린가스 용액이 들어 있는 2개의 비닐봉지를 뾰족한 우산 끝으로 찌른 것에 비해, 그는 자신이 나서서 비닐봉지를 3개로 늘렸고, 그것을 찔렀다.
그것 또한 피해자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 하야시 야스오라는 자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어째서 그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일까?
나는 그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전해듣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근원에서 직접 알아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하야시 야스오는 꽤 복잡한 감정을 끌어안고 있는 인간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여기서 [그는 이러한 인간이다] 라고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재판에는 몇번이고 발을 옮겼지만, 피고석에 앉아있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진정한 마음을 살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쪽이냐고 하면,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껍데기 속에 담아두고, 남의 눈에는 띄지 않게 하려는 태도를 조용히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긴 도피생활 중 몸에 밴 강한 자기 방어적 태도 같은 게 거기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상반된 여러 감정을, 제대로 통합시키지 못한 채, 풀어내지 못한 채 자신 안에서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다만 자신들의 행위를 뉘우치며, 심리 진행에 시종일관 협력적이었다고는 들었다.
옛 친구나 지인의 증언을 취합해보면, 원래는 적극적이고 성실한 사고방식의 솔직한 청년이었던 듯 하다.
약한 부분도 있고 마음 속에 상처도 품고 있었겠지만, 스스로를 컨트롤하려는 의지도 나름대로 강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잘 활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것은 이 재판에서 판결을 받은 많은 전 옴진리교 신자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증언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수행] 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문맥이, 그들의 부족한 생각을 솜씨 좋고 효과 있게,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극히 사악하게 끌어내고 만 것이다.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 관하여, 내가 자주 생각하곤 하는 것은 법정에 언제나 반드시 그의 어머니가 출석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저게 하야시의 어머니야] 라고 가르쳐 주었다.
몸집이 작은 여성으로, 자주 내 앞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재판 도중, 그리 놀라지도 않은 채, 아마도 피고석의 아들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모습이 법정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판결 선고 당일 뿐이었다.
아마 자식이 극형 판결을 받는 것을 각오하고, 그것을 실제 귀로 듣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리라.
아직 건강하게 살고 계실지, 이번 사형 집행 소식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실지,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키무라 판결은 한줄기 광명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 관하여, 또 하나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담당 판사였던 키무라 키요시씨가 무척 공정하고 정중하고 심리를 운영하셨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실행범은 사형, 운전 담당은 무기징역] 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던 상황에서(하야시 이쿠오=수형자/무기징역 확정=이라는 예외는 있었지만), 심리를 진행하는 것은 여러 곤란이 수반됐을 것이라 생각하나, 방청하는 와중 [이 사람이라면 사형 판결을 내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고 느끼게 될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방법원에서도 고등법원에서도 아연해지거나 머쓱해지는 광경을 종종 보아왔다.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이 사람은 일반적 상식에 약간 결함이 있는게 아닌가] 하고 놀랄 정도의 인물을 보기도 했다.
[이런 재판을 받고 심판 당하게 된다면 죄는 절대 짓지 말아야겠다] 하고 묘하게 실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서 키무라 판사의 판단에 한해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판결문도 요점이 분명하고, 평온한 사람의 정이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무릇 스승을 잘못 고르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하니, 이 의미를 생각해보면 하야시 피고 또한 불행하고 불운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중략) 하야시 피고를 위하여 참작할 사정을 최대한 고려하더라도, 극형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는 훌륭한 판결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희망의 여지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 기나긴 재판을 통해서, 마지막에야 간신히 스며들은 희미한 광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열세명의 죽음을 딛고 생각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형 판결을 난생 처음, 실제로 법정에서 듣자, 그로부터 며칠은 제대로 현실 생활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가슴에 무언가 하나, 무거운 추가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 선고된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음은 법정 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옴진리교 사건 관련 사형수, 13명 전원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통보를 받고, 역시 그때 같이 가슴 속의 추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표현할 말을 잘 찾기 힘든 무거운 침묵이, 내 안에 있다.
그 법정에 나타났던 죽음은, 마침내 그 몫을 취해간 것이다.
13명의 집단처형 (이라고 굳이 부르고 싶다) 이 올바른 결단이었는지 어떤지, 백인지 흑인지를 여기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르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주변에 아직 감돌고 있다.
다만 한가지,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사형 집행에 있어서, 옴진리교 관련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거기에 [이걸로 사건의 막을 내리자] 라는 무언가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면, 혹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사형이라는 제도를 더욱 당연한 것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러한 전략의 존재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된다.
옴진리교 관련 사건에 관하여, 우리들이 -- 그리고 물론 나 자신도 -- 거기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 아직 잔뜩 있고, 13명의 죽음에 의해 그 접속의 문이 닫힌 것도 아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죽음을 딛고, 이제는 죽은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불행하고 불운] 하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