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환기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불을 턴다. 네 평 반짜리 원룸이 일주일에 한 번씩 깨끗해진다. 깨끗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인 내 시각에서야 깔끔하지만, 일반적인 주부의 시점으로 보면 여전히 더럽고 지저분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쨌든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네가 오기 전날 저녁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나의 좁은 거처를 청소한다.
언젠가 침대 아래에서 기다란 머리카락이 발견되었을 때 너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더욱 억울한 건 그 머리카락의 주인과는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너에게 상세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었기에 결국 나는 온종일 머리를 수그린 채 너의 말없는 질책과 소리 없는 분노를 감내해야만 했다. 이후로 나는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침대 아래는 물론이고 매트리스까지 청소한다는, 동년배 남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토요일이면 네가 온다. 시간은 대중없다. 아침 일찍 밀어닥치기도 하고 때로는 점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들어올 때의 태도만은 한결같다. 나와 너밖에 모르는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는 순간 나는 네가 도착하였음을 깨닫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언제나 그러하듯.
그러면 곧 기세 좋게 문이 벌컥 열릴 것이다. 너는 두 걸음 만에 방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사이에 신발 두 짝을 허공에다 걷어차고, 다시 똑바로 세 걸음 더 걸은 후 침대에 몸을 던질 것이다. 풀썩이는 소리와 함께 너는 끄응 소리를 낼 것이고, 그러면 나는 심드렁한 척 왜 그러느냐고 말을 걸 것이다.
너는 몸을 뒤척여 똑바로 누운 후 양손으로 깍지를 껴 뒤통수를 받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잠시도 못 기다리겠다는 듯 바로 말을 시작할 것이다. 일주일 사이에 있었던 온갖 짜증이 나는 일들과, 화나는 일들과, 공평하지 못한 일들과,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엄청난 속도로 쏟아놓을 것이다. 그러는 중간 중간에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양 다리로 허공을 걷어찰 것이다. 그럴 때마다 펄렁거리는 치맛자락이 보기 민망해 나는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별 말 없이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 맞장구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말하는 데 지칠 때쯤이면 너는 몸을 굴려 리모컨을 집어들 것이다. 일주일 내내 단 한 번도 켜지지 않았던 TV가 켜질 것이다. 너는 오직 너를 위해 버리지 않은 TV에서 오직 너를 위해 가입해 둔 채널들을 이리저리 돌려볼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료하다는 듯 하품을 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치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 것이다. 절대 그 한 번의 질문을 하는 데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며칠이나 공들여 연습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것이다.
“뭐 먹을래? 시킬까?”
너는 눈을 빛내며 치킨이나 피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잔소리 탓에 맛있는 걸 먹지 못한다고 한동안 투덜거릴 것이다. 나는 잠시 동안 맞장구를 쳐준 후 전단지를 꺼내들 것이다. 그리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업체의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배달이 오기까지의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너와 함께 TV를 보며 귀하디귀한 시간을 조금씩 낭비할 것이다. 네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뒷모습을 힐금거리며 일주일 사이에 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심스레 살필 것이다.
마침내 배달이 오면 너는 신나게 그것을 먹어치울 것이다. 점잔이나 겉치레 따위는 팽개치고 오직 맨손만을 사용하여 닭을 뜯고 피자를 씹어 먹을 것이다. 내가 하나를 먹는 동안 너는 적어도 세 개는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왜 안 먹느냐고 물을 때, 나는 오늘은 별로 입맛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결코 네가 먹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다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문득 방안을 살필 것이다. 베개 아래를 들추고 창틀을 쓸어 보며, 빨래바구니를 점검하고 세면대의 더러움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뭔가 단 하나라도 걸리는 순간 잔소리를 쏟아낼 것이다. 그렇게 입으로는 잔소리를 쏟아내며 너는 바지런히 손을 움직일 것이다. 구석에 처박아 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살짝 내려앉은 먼지를 깔끔하게 닦아내고, 냉동실에 처박힌 지 오래인 정체 모를 반찬을 내다 버리며, 너는 내가 공들여 청소한 나의 작은 공간을 한결 더 깨끗하고 화사하게 만들 것이다. 너의 손이 스쳐 지나간 곳이 이전과는 같지 않음을 나는 다시 한 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너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는 너의 쏟아지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웃을 것이다.
시간은 미처 손대기도 전에 쏜살같이 흐르고 어느덧 방 귀퉁이의 창문으로 석양이 비쳐들 무렵, 너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미안한 듯 입을 열 것이다. 그런 너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네가 말하기 전에 먼저 나설 것이다.
“슬슬 가야 하지 않아?”
“......응.”
너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간신히 대답할 것이다. 그런 너보다 더욱 망설이고 싶어지는 나를 감추기 위해 나는 먼저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거듭해 연습했던 것처럼 담담하게 말할 것이다.
“가자. 바래다줄게.”
너는 샐쭉해할 것이다. 입을 비쭉 내미는 모습을 볼 때 나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네 앞에서 태를 낼 수는 없기에 나는 고통을 참은 채 그대로 서 있을 것이다. 내 재촉에 못이긴 너는 내민 손을 잡고 결국 일어설 것이다. 너의 움직임은 느릿할 것이다. 발에다 신발을 꿰는 데만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서서 TV에서 누군가가 떠들어대는 공허한 소리를 들으며 아픔을 가라앉힐 것이다. 마침내 너의 준비가 끝나면 나는 문을 열고 나설 것이다. 너보다 앞장서서. 눈물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하루가 또다시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너는 문을 열기 전에 한동안 머뭇거렸다. 내가 의아해할 때쯤, 너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시 합치면 안 돼?”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기다렸다. 잠시 후 물었다.
“무슨 말이야?”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소리는 생경할 정도로 어색했다. 네가 발끝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랑, 다시 합치면 안 되냐고.”
나는 눈을 감았다. 비겁했다. 치사했다. 갑작스러웠고,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내게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애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신음소리를 참기 위해 앙다문 턱에다 힘을 주었다. 마침내 내가 눈을 떴을 때 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슬픔에 찬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단지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 그 말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스러지고 그곳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에 시야가 흐려져 너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미로 한복판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내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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