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8/19 14:11:18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CF모델 지원(?)했다가 떨어진 이야기...
제가 모 제약회사에 입사했던 게 97년 말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에는 큰 일이 터졌었는데 바로 IMF사태라는 전대미문의 난리가 그것이었습니다. 신입사원 연수를 끝내고 나오니 나라 곳간이 거덜 났다고들 했습니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대한민국이 거꾸러졌다는 분위기였습니다.

IMF사태의 영향은 저 같은 신입사원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입사 다음해에는 전 직원이 상여금을 받지 않겠다는 "자발적"인 서명운동이 있었고 제일 말단이었던 저는 당연히 동참하는 것으로 알고 군말없이 시키는 대로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어렵다...똘똘 뭉쳐서 이 난관을 벗어나야 된다 뭐 이런 사회, 회사 분위기였습니다.

또 IMF사태는 회사의 광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약회사의 특성상 TV에 약 광고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제 많은 모델료 들여가면서 연예인을 데려다가 광고를 찍을 수도 없으니 사원들을 대상으로 모델을 선발해서 광고를 찍자는 안이 나왔던 것입니다. 사장이 오케이 했고 각 부서로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광고회사에서 사람들이 직접 각 부서를 방문해서 직원들 전체를 대상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니 직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카메라 테스트에 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던 어느 날 광고회사 사람들이 저희 부서에도 찾아왔습니다. 광고회사 직원들은 부서 한편에 공간을 마련하더니 뒤에 배경막도 설치하고 조명도 설치하고 카메라도 설치하고 그랬습니다. 이윽고 세팅이 다 됐는지 그쪽 사람이 "자 이제 한 분씩 나오시죠!" 이러더군요. 부장님부터 직급대로 한 사람씩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일단 카메라 앞에 서면 카메라 뒤에서 광고회사 직원이 이런 저런 주문을 했습니다. 옆으로 돌아서봐라. 카메라 앞으로 조금 걸어와 봐라 뭐 등등 이런 지시들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사람 당 약 30초에서 좀 길면 1분 정도씩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에이~! 솔직히 내가 어떻게 뽑히겠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전문모델도 아니고 사내모델인데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도 있었고 "이거 이러다가 뽑혀서 나중에 광고 찍게 되면 부모님에게도 말해야겠지?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말까?" 뭐 이런 생각도 꼬리를 물었더랬습니다.

제가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한 1초나 2초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겁니다. 카메라 뒤에서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던 그 광고회사 직원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습니다.

"됐습니다!"

"옆으로 잠깐 서보실래요?" 도 아니고 "카메라 앞으로 몇 걸음만 걸어보세요!"도 아니었습니다. "됐.습.니.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 대 이탈리아 전에서 토티에게 레드카드를 뽑아든 모레노 주심과 같은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였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서 "절대 어필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하~! 내가 이러면서까지 광고회사 다녀야 하나?" 라는 느낌까지 들었다는 건 아마도 저의 자격지심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뻘쭘해져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데 과장님, 대리님, 계장님이 억지로 웃음을 참고 계시더군요. 여직원은 그날따라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어깨가 좀 들썩이는 것 같기도 하고...이렇게 해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CF모델 도전은 처참한 결과와 함께 마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같이 입사해서 같은 부서에 배치 받은 여자 동기가 있었는데 당당하게 뽑혀서 실제 CF에 등장했습니다...)


유튜브에 없을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있네요. 동영상 시작 후 9분 40초부터 나오는 광고가 바로 문제의 그 광고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홍승식
17/08/19 14:23
수정 아이콘
호모 사피엔스만 모델로 쓰는 감독인가 봐요.
Neanderthal
17/08/19 14:24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제가 그 광고회사 직원이었더도 저를 뽑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ㅠㅠ
gallon water
17/08/19 14:26
수정 아이콘
엌크크 됐.습.니.다.
흑백cf라니 덜덜
Neanderthal
17/08/19 14:29
수정 아이콘
너무 단호하시더군요...--;;
tannenbaum
17/08/19 14:30
수정 아이콘
우리 네덜란드님 못생겨서 어뜩해 ㅜㅜ
(차오루짤)
Neanderthal
17/08/19 14:39
수정 아이콘
운명이죠...--;;
앙겔루스 노부스
17/08/19 19:31
수정 아이콘
이거 친구분이 사장인 클럽 갔다가 수질관리 당한 분의 동병상련...
닉 로즈
17/08/19 14:34
수정 아이콘
아버지께서 화덕을 만드셨던 친구가 있었는데 화덕에 화상으로 얼굴 한쪽이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워낙 성실하여 취업에 성공했는데 그걸 얘기하려는게 아니고 어느날 그 회사의 취업홍보 팜플렛을 봤는데 그 친구의 사진이 나와 있었어요 화상을 입지않은 다른 쪽 측면 사진으로.
Neanderthal
17/08/19 14:40
수정 아이콘
화상만 아니었다면...정말 미남이었나 봅니다...
17/08/19 14:41
수정 아이콘
그 여자동기와 사랑에 빠졌다 이런 애프터 스토리는 없나요?
Neanderthal
17/08/19 14:41
수정 아이콘
단호함이 저 광고회사 직원 못지 않았죠...--;;
한 성격 했었고...
17/08/19 14:48
수정 아이콘
학부 때 잠깐 인강 강사 알바 제의를 받고, 비디오테스트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후기는 없습니다.
Neanderthal
17/08/19 14:53
수정 아이콘
동지라고 불러도 되나요?...--;;
tannenbaum
17/08/19 15:03
수정 아이콘
저 회사 다닐때도 사내잡지 커버모델 뽑았거든요...
근데.... 응모조건이 남자는 175이상....
저는 아예 응모도 못했다능...
에이~ 더러운 세상.
키작은게 죄냐!!!
Neanderthal
17/08/19 15:03
수정 아이콘
단지 키 때문이었나요?...--;; 흠흠...
tannenbaum
17/08/19 15:09
수정 아이콘
일단 그런걸루 해요.
17/08/20 00:46
수정 아이콘
제가 탄넨바움님을 직접 뵌 적이 있는데..... 흠흠...
살려야한다
17/08/19 15:36
수정 아이콘
명예로운 탈락..
켈로그김
17/08/19 15:14
수정 아이콘
사회생활은 열심히 하는건 중요치 않고 잘하는게 중요하죠.
생긴 것도.. 열심히 생긴거보다는 잘생긴게... ㅡㅡ;;;;
죄송합니다;;;
...남 일 같지 않아서;;;
Neanderthal
17/08/19 15:16
수정 아이콘
단 하루만이라도 장동건처럼 생겨봤으면...--;;
tannenbaum
17/08/19 15:19
수정 아이콘
전 지창욱.
steelers
17/08/19 15:22
수정 아이콘
전 다니엘 헤니
세츠나
17/08/19 16:16
수정 아이콘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안뽑혔나? 라는 생각을 잠시라도 하다니 이제 캠릿브지 효과로 아이디만 봐도 자동적으로 네덜란드로 읽혀서 힘듭니다...
Neanderthal
17/08/19 16:23
수정 아이콘
저도 고향인데 아직 못 가봤네요...--;;
바람이라
17/08/19 17:55
수정 아이콘
전 직업이 피디인데 촬영하고 나중에 편집하다보면 설치캠 영상에서 연예인 옆에서 열심히 뭐라 설명하고 있는 원시인이 한 명 보입니다. 그게 누구인지는 차마 제 입으로는...
Neanderthal
17/08/19 17:58
수정 아이콘
저를 그렇게 자주 보신다고요?...--;;
바람이라
17/08/19 18:20
수정 아이콘
어험... 그게 아니라 제가... 혹시 저희 형제 아닐까요
AeonBlast
17/08/20 00:44
수정 아이콘
네덜란드의 훈훈한 기럭지도 안되는군요. 역시 문제는 얼.. 아닙니다.
Neanderthal
17/08/20 00:45
수정 아이콘
단신 네덜란드인도 있습니다...ㅠㅠ
이혜리
17/08/20 10:41
수정 아이콘
CF보니깐 진짜 아무나 써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노루모라는 제품은 처음 들어보는군요.
가족들이 이래저래 많이 아파서 약은 정말 많이 접하고 사는데 말이죠.
Neanderthal
17/08/20 10:45
수정 아이콘
그 아무나에 저는 확실히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못생긴 강호동이 들어간다고 보면 되니까...ㅠㅠ
이혜리
17/08/20 14:32
수정 아이콘
크크 아 여성분 보려다가 아 뭐야 안보이자나 빼액하고 단 댓글인데 유탄에 글쓴분이 맞아버렸구나!
시오리
17/08/20 14:30
수정 아이콘
두번 죽이는 멘트 아닙니꽈 !!!
Neanderthal
17/08/20 14:32
수정 아이콘
이미 저의 HP는 닳을 대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3419 [일반] 질문게시판 컴퓨터 견적글에 분노를 금할수 없습니다. [208] 레슬매니아17800 17/08/24 17800 1
73418 [일반] (과학)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예요! [29] 글곰13306 17/08/24 13306 16
73417 [일반] 마음의 편지 [9] 황신4381 17/08/24 4381 37
73416 [일반] 허리 디스크 관련 개인적인 견해 [94] 메레레23886 17/08/24 23886 54
73415 [일반] 강남패치 운영자 1심서 징역 10개월 실형.txt [43] 아라가키11368 17/08/24 11368 5
73414 [일반] 삼성 갤럭시 노트 8이 공개되었습니다... [90] Neanderthal15504 17/08/24 15504 5
73413 [일반] 아주 소소하게 누군가의 히어로가 되었던 이야기 [32] 솔로몬의악몽8877 17/08/23 8877 81
73412 [일반] 경남FC VS 대전시티즌 축구 관전기 [17] 마제스티4524 17/08/23 4524 2
73411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5) 대의멸친(大義滅親) [21] 신불해9046 17/08/23 9046 56
73410 [일반] 해외 장기 거주자가 한국왔을때 꼭 해야하는것 [56] KamoneGIx27734 17/08/23 27734 11
73409 [일반] 릴리안 생리대 파문 [93] 삭제됨17063 17/08/23 17063 3
73408 [일반] 천재의 잘못된 유산 - 갈레노스 의학서 (Galenos) [26] 토니토니쵸파8919 17/08/23 8919 10
73407 [일반] 플룻을 배워봅시다. [33] 낙타샘4975 17/08/23 4975 12
73406 [일반] 정치뉴스 3개 (국정원댓글, 5.18 폭격대기 조사 등) [25] 바스테트8849 17/08/23 8849 13
73405 [일반] 논란이 되고 있는 인조비(장렬왕후) 어보 국가몰수건에 대하여 제가 찾아낸(?) 몇가지 이야기 [88] 꾼챱챱30748 17/08/23 30748 39
73404 [일반] [뉴스 모음] 박근혜 정부 백서 발간 외 [22] The xian12610 17/08/23 12610 51
73403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4) 다모클레스의 칼 下 [25] 신불해8199 17/08/22 8199 52
73402 [일반] 자유게시판 운영위원 자리를 내려 놓으며. [95] BIFROST11784 17/08/22 11784 118
73401 [일반] 좋소. 그게 바로 되팔렘이오. 아래에 가면 더 많이 있소! [37] 길갈14362 17/08/22 14362 4
73400 [일반] 잡았다 요놈!!! [31] 세인트9522 17/08/22 9522 7
73399 [일반]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가 없앴어" [46] Broccoli13740 17/08/22 13740 1
73398 [일반] 연봉 2천만원 이상 근로자에 연 12만원 소득세 부과 법안 발의 [300] 홍승식21711 17/08/22 21711 3
73397 [일반] (단편) 악마에게 영혼을 팔다 [32] 글곰6695 17/08/22 6695 2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