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의 과거는 툭 던져집니다. 어느 순간 불현듯 갑자기 떠오르는 일들과 시간들인 셈입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과 현재의 순간들이 약간은 뜬금없이 교차합니다. 근데 영화 상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나 라는 질문은 중요한 듯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남긴 여파들에 관한 이야기들 같거든요.
영화는 그래서 초반부의 갑작스러운 회상들에 비해 중반부 꽤 정리된 형태의 긴 회상을 보여줍니다. 그러고선 과거 이야기는 거의 없어요. ‘왜 저러지?’에서 출발해서 ‘그래서 그랬구나’가 중반부 조금 안되는 지점에서 밝혀지고 나면 남는 것들은 여파들입니다.
갑작스럽게 던져진 회상 속에서 ‘리 챈들러’에게 닥친 일들도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펼쳐진 일들입니다. 그 이후 챈들러는 견뎌내는게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렇다할 내색도 눈에 보이는 흔들림도 없이 최대한 견뎌내는 방식으로 버텨온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끝 직전에 견뎌낼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게 됩니다. 영화 상에서 다른 인물들이 상처가 없는 인물들은 아니겠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상처들을 견뎌냈기 때문은 아닐겁니다.
영화의 현재는 겨울이고 영화의 회상은 여름입니다. 정확하게는 행복했던 순간들은 여름이고 ‘그 사건’ 이후로는 계속 겨울로 묘사가 됩니다. 그리고 언 땅이 녹으면 형을 묻습니다. 7월이면 새로이 직장을 얻고 새로운 집에서 살게 될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여름을 기다리는 겁니다. 다시금 봄이 오게 될지 아닐지는 솔직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다시 인내하고 견뎌내는 게 전부 일수도 있겠죠. 맑은 날 출항한 배가 갑자기 사라지듯이 어떤 일은 어떤 실마리도 없이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견뎌내야 하는 것들인 동시에 단순히 견뎌내기만으론 한계가 존재하는 일들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P.S. 농담 삼아서 애플렉 형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무기력해보이는 표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영화에서 케이시 애플렉은 다채로운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끝끝내 무너지고만 그 순간까지 순간순간이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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