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양에서 여포, 연주 진류군 옹구현에서 장초, 예주 진국 고현에서 교유를 공격하는데, 모든 싸움에서 선두에 서서 공을 세워 광창정후에 봉해짐.
- 형주 남양군 안중현에서 장수를 치고,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할 때는 별장(別將)을 격파하고, 사견에서 휴고를 치고 예주 패국 패현에서 유비를 공격해 이들을 모두 격파하고 토구교위에 임명됨.
- 관도대전에서 우금과 함께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원소의 따로 설치한 군영을 들이치고, 연진 남서쪽으로부터 황하를 따라 하내군 급현, 하내군 획가현의 2현에 이르기까지 보취(保聚) 30여 둔을 불사르고 적군을 참수하고 사로잡음. 원소의 장수 하무, 왕마 등 20여 명의 항복을 받아냄
- 관도에서 조조가 오소를 기습할때 같이 힘을 다해 싸워 원소의 장수인 순우경을 사로잡아 참함.
- 조조를 수행해 원담, 원상을 여양에서 공격해 그 대장인 엄경(嚴敬)을 베고 행(行) 유격장군에 임명됨
- 황건적을 쳐서 깨뜨리고 청주 낙안군을 평정
- 조조를 수행해 남피의 원담을 쳤는데, 선두에 서서 원담의 동문에 진입. 원담이 패한 후 별도로 유주 어양군 옹노현를 공격하여 쳐부숨
- 조조가 한나라 황제에 표를 올려 악진과 우금, 장료를 칭찬. 이에 우금을 호위장군, 악진을 절충장군, 장료를 탕구장군으로 임명
- 고간이 반란을 일으켜 상당태수를 붙잡고 병사를 일으켜 호구관을 지키자 북쪽 길을 통해 병주 상당군으로 들어가 우회해서 배후를 쳐서 연달아 싸워 적의 머리를 벰. 고간이 굳게 지켜 공략하지 못했는데 조조가 친히 정벌하여 호관을 함락시킴
- 관승을 정벌하기 위해 악진을 이전과 함께 공격. 관승이 패주해 바다의 섬으로 달아났고 해안지대가 평정됨.
- 남군 공방전에서 문빙과 더불어 심구에서 관우를 격퇴하고 또한 관우의 치중을 한수에서 공격, 그 배를 형성에서 불태움.
악진은 관우, 소비(蘇非) 등을 모두 패주시켰고, 남군 일대 산과 계곡에서 거주하던 만이(蠻夷)들이 악진에게로 와서 투항함. 또한 유비를 쳐서 임저장 두보, 정양장 양대를 모두 대파.
- 악진이 관우와 청니에서 대치하자 익주에 있던 유비가 유장에게 다음과 같이 소를 올림
조조가 오를 정벌하니 오에서는 위급함을 근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악진이 청니에서 관우와 서로 맞서고 있으니 지금 가서 관우를 구원하지 않으면 악진이 필시 대승할 것이고], 그들이 군을 돌려 주의 경계를 침범한다면 장로보다 더욱 심한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장로는 스스로를 지키는 적이니 족히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장료, 이전과 함께 힘을 모아 손권을 무찔러 내쫓음
악진은 여러모로 조조 초창기에 공을 세우며 조조의 패업을 이끈 명장중 하나다. 활약상만 따지면 조인, 우금과 함께 조조 초창기 쓰리탑이라고 할만하다.
연의에서는 순우경이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한 찌질한 장수로 나오는데 실제 순우경은 원소군 내에서도 평가와 지위가 상당히 높은 장수였다.
원래 영제가 서원팔교위를 창설할 때 순우경은 좌군교위가 되어 건석, 원소, 포홍, 조조, 조융, 풍방, 하모과 함께 교위에 임명되었는데 즉 원소, 조조와 동렬에 섰던 장수이며
원소가 감군을 셋으로 나눠 삼도독을 세웠을때 저수, 곽도, 순우경이 제각기 맡았다.
원소의 최중요지인 오소를 단독으로 1만군을 지휘하며 방어하고 있었다는것만 봐도 원소군내에서 상당한 위치의 장수였다.
안량, 문추가 무예는 더 뛰어났을지 몰라도 장수의 역량은 순우경이 위였으며 장합은 아직 원소군에서는 순우경에 비해 풋내기 였을 뿐이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술에 취해 자다가 털리는 추태를 보였지만 실제는 그냥 정상적으로 열심히 싸우다 조조군의 화공때문에 어쩔수없이 패배한것이다.
연의에서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하는것과는 달리 오히려 조조가 순우경을 마음에 들어 친하게 굴며 어쩌다 패했는가라고 묻자 "승패는 하늘이 결정했을 뿐 어찌 질문에 의미가 있겠는가." 라고 당당히 말하며 굽히지 않다가 참수당했다.
원소군의 주력장수 순우경을 잡아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악진의 전공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큰 임펙트는 역시 촉의 최고 장수 관우를 격퇴시킨것으로 남군공방전에서 악진은 관우를 모두 패주시키고 관우의 치중을 공격해서 배를 불태우는 전공을 세웠다.
오죽하면 유비가 유장에게 구원하지 않으면 관우가 악진에게 패배할것이라고 했을까... 설령 어느정도 엄살이 섞이긴 했겠지만 그래도 악진이 끝발이 되니 그렇게 말하면서 유장을 설득했던 거라고 본다. 형편없는 잡장이라면 그런 말이 애시당초 통하지 않았을테니...
여러모로 임펙트도 크고 공도 다대하고 또 우금처럼 항복이라는 까일거리도 없고 장합처럼 장비에게 쳐발린적도 없다.
장료, 서황, 장합처럼 항복한적도 없고 조조 초창기부터 조조를 지탱해온 단 한번의 실패도 없었던 장수가 악진인데 이상하게 저평가를 받는다.
태조가 무공(武功)을 세울 때 양장(良將-좋은 장수)으로는 이 다섯 명이 으뜸이었다. 우금이 가장 의중(毅重-굳세고 엄중함)하다고 일컬어졌으나 죽을 때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장합은 교변(巧變-교묘하게 변화에 대처함)하다 칭해졌고 악진은 효과(驍果-용맹과 과단성)로 이름을 드날렸지만 그들의 사적을 살펴보면 전해들은 것과 부합되지 않는다. 간혹 설명이나 기록이 누락된 곳이 있어서 장료와 서황처럼 상세하게 갖추어지지 못했다. - 진수
진수의 평가를 보면 오대양장중 악진은 용맹과 과단성으로 이름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오대양장에서 우금과 더불어 저평가를 받는다.
우금이야 말년에 항복을 했다는 흑역사가 있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악진은 단하나의 흑역사나 실패도 없는데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잡은 그 순우경조차도 삼국지 코어팬 아니면 잘 모르는 갸우뚱한 인지도라서.
원소 포함 휘하 장수들 모두 그런 안습한 대접과 명성도를 갖고 있는데 역시 삼국연의의 영향 덕분인거 같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순유경을 잡은게 조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거 자체를 인지못하기에. .
서황과 더불어 본의 아니게 저평가(?) 받는 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료가 워낙 임펙트 있어서 그렇지 합비 대전 당시 이전, 장료와 함께 강동의 쥐새끼를 몰아낸 3명 중 한명이었죠. 조인, 우금, 장료가 워낙 해먹은게 많은데다 뭔가 포스가 부족하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크크
악진 저평가의 팔할은 연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 주요 장수로 언급되긴 하나, 그에 비해 캐릭터가 개성이 없고 부장 정도의 이미지로 묘사되기 일쑤여서.. 정사를 보고 나서야 악진이 저평가되었다는 점을 정말 잘 알 수 있죠.
다만 아쉬운대로 창천항로에서 등장한 악진은 정말 멋있었어요. 말단부터 커리어를 쌓아가는 성공한 실력파 군인.. 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