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부는 날, 상해를 향하는 비행기 안이였다. 착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창 밖은 비구름만 보였다. 비행기의 바퀴가 내려가는 소리는 들렸지만, 창밖을 아무리 내려봐도 태풍이 너무 거세 땅이 보이지가 않았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나?"]
순간, 태어나서 몇번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불안이 몰려왔다. 좌로든 우로든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었다면 아찔할 수도 있는 상황, 시야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운데, 비행기는 그래도 어찌어찌 착륙에 성공했다. 어떻게 가능했을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장비의 도움을 받아서, 미리 방향을 정해두고 그 방향 그대로 착륙에 성공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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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첫 방향을 잡아두고도, 도중에 시야가 흐려지니 혼란에 빠져, 애초에 우리가 정해두고 가던 방향을 망설일 때가 많다. 손에는 나침반을 들고 있으면서도, 시야가 사라지면 갑자기 다른 곳으로 우왕좌왕 틀어진다. 눈앞에 보이는 시야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토록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째서인지 잘 가던 방향도 갑자기 틀린것만 같고, 조금이라도 시야를 확보할듯한 방법을 들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들어보게 된다. 좀처럼 나아갈 확신이 없어 혼란스러울 때, 내 방향이 옳은지 종잡을 수 없을때, 주변에서 이런저런 단서를 구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서라기보단 주관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같은, 책임지지 않을 방향만을 제시한다.
과거 나침반이 없던 여행자들은, 구름이 드리워 별과 달이 보이지 않는 저녁이 오면, 여행길을 멈추곤 했다고 한다. 방향을 한번 틀리면,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아가 될 위험을 감수하고 확실하지 않은 방향을 걷느니, 차라리 휴식을 취하며, 방향이 확실할 때를 대비해 충분히 힘을 아껴두고자 하는 것이다.
"휴식은 더 멀리 가기 위함이다" 라고 했던가.
그 누구도, 시야도 없는 암흑 속에서, 가던 방향을 버리고 새 길을 개척하지는 않는다. 앞길이 확실하지 못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던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멈춰서서 여유를 가지고 시야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던가, 그럴 수 없다면 처음에 정한 방향을 믿고 계속 나아가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첫 방향이 가장 옳을 때가 많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개척은, 일단 안전하게 다음 정류소에 안착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명절때만 되면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점은, 다른 사람들은 벌써 저만큼 갔는데, 난 과연 '제대로 가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런 고민을 참지 못하고 털어놓을 때면,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방향들을 제시해 주시곤 하지만, 막상 따라해보려고 하면 뭔가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당연할만한 것이, 사람들의 조언이 참고는 되지만,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그 누구도, 우리가 그동안 걸어온 길과 그 결과로 정해진 방향을 전부 알지는 못하고, 우리 자신이 얻어낸 결론보다 더 우리 자신에게 어울리는 답을 정해주기는 힘들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이지만, 사람들마다 어울리는 방식과 저마다의 페이스가 있는데, 왜 굳이 비교를 하려고 했을까 싶다. 사실 사람들마다 자신이 빛나는 타이밍이 있는 법인데, 지금 당장 시야가 별로 좋지 않다고 너무 조급해 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향하고 있는 정류소가 보잘것 없다고 해도, 일단은 힘내어 현재의 목표에 충실해지고 싶은 요즘이다.
난 제대로 가고 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