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꾸준히 봤는데 귀찮아서 뭐 아무것도 한게 없더라고요. 마지막 글이 '너의 이름은.'....;; 흐흐 뒤늦게 나마 그래도 까먹기 전에 대충이라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같이 최근이든 아니든 이런저런 영화보신 것 얘기해봤으면 좋겠어요.
언급 된 영화 다 스포 있을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정말 좋았던 영화인 동시에 정말 힘든 영화 였던거 같아요. 시스템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영화로 그 담담함이 저에겐 더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영화가 먼저 울거나 혹은 관객보고 울라고 만들지는 않는 영화 였던거 같거든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단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주인공이 건물 외벽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 장면일겁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있다는 장면인 동시에 그 한 사람을 위한 ‘여러 사람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빌리 엘리어트>
공교롭게도 영국 배경 영화를 연달아 보게 되었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는 말 그대로 ‘그 모든 순간들을 안고 날아오르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상에서 어떤 어려움, 혹은 부재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캐릭터 속에서, 서사 속에서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그 마지막 성취의 순간을 실패 (혹은 패배라고 표현해야 할까요?)와 같이 배치해 놓은 것, 그리고 그 날아오르는 순간을 위해 형과 아버지가 탄광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저에게는 참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이 영화가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이유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보내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그 모든 순간을 지나서 끝끝내 날아오름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때문일 겁니다. 유머러스함과 인물들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기에 기억되고 사랑받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아나>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과거의 클리셰에 대한 A/S를 하나?’ 였습니다. ‘겨울왕국’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소재나 ‘주토피아’의 차별-역차별 이야기 같은 측면에서 디즈니는 기존 자신들의 작품을 약간 비튼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는 방법을 주로 활용해왔습니다.
다만 ‘모아나’의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의 변형이 딱히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모험을 동경하는 소녀’와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영웅’이라는 두 캐릭터성은 단단하지만 정석적이기도 하구요.
그런 점에서 모아나는 기존 디즈니 클리셰를 정면으로 돌파한다기보단 우회하는 느낌입니다. 그냥 대충 ‘우리 그런 식은 아니야~’로 퉁치고 넘어가는 느낌이 있어요. 어떤 최대의 적, 혹은 이겨내야 할 고난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각각의 적과 고난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느낌도 좀 있습니다. 가는 길에 만나는 것, 해야 할 일이 서사로 묶여있다기 보단 개별의 사건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데 즐거워요. 제가 ‘정글북’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거 같은데 어찌되었건 모험 영화에서 두근거리는 순간, 즐거운 순간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즐거운 순간, 두근거리는 순간이 적어도 저에게는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Let It Go’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좋은 시각적 효과를 보여준 장면, 좋은 뮤지컬 넘버를 들려준 장면이 모두 있었던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렛잇고 장면에서 얼음성이 올라오는 장면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컨택트>
영화제에서 보고-소설을 읽고-개봉 후 다시 본 케이스인데요. 일단 드는 생각이 ‘단편은 영화화하긴 너무 짧고, 장편은 영화화하기 너무 긴건가?’ 였습니다. 원작이 워낙 간결한 단편이라 영화가 각색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했는데 각색은 일단 반반인거 같습니다. 이야기의 크기를 넓혔을 때 전해지는 분위기는 좋았는데요. 커진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은 조금 아쉬웠던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이 더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매체로 옮긴 거잖아요. 그래서 뭐 괜찮은 거 같아요. 크크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영상 그 자체 였었습니다. 직선과 곡선을 강조하는 장면에 더해 어떤 소리, 어떤 음악을 들리게 하느냐가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시카리오 때도 느꼈던 건데 빌뇌브 감독이 어떤 공간을 꾸며 놓고 그 안에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들여놓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거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몰입해서 영화제에서 상영 끝나고 나선 어안이 벙벙했어요.
영화가 소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이성과 감성의 비율일 겁니다. 영화 상에서는 학술적인 부분들을 나레이션으로 뛰어넘은 느낌이 좀 있고요. 그 반대로 채워 넣은 부분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결정론적 우주’에서의 개인의 선택과 감정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영화와 소설에서 기본적인 과정은 그대로 인데 뉘앙스가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영화의 언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가 떠오르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라고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해야한다.)
영화에서 캐릭터의 동선이 대체로 복도에서 정면으로, 카메라가 뒤에서 따라가면서 잡는 장면들이 꽤 기억에 남더라고요. 특히 몇몇 복도들은 옆의 문들이 전부 닫혀있기도 하고. 영화 전체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더 킹>
저는 ‘검사외전’과 ‘내부자들’을 안봤습니다. (‘검사외전’은 이번 설 특선에 TV로 보긴 했네요.) 그러니까 사회비판이라는게 뭐 물론 정치인이나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만, 불신은 어디에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냥 ‘걔네는 나쁜 X들이다!!!’라는 얘기는 만취하신 아저씨한테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 아니냐란 생각을 좀 했었고, 분명 ‘베테랑’ 근처까지는 되게 재밌게 봤던거 같은데 그 이후론 관심이 좀 끊기더라고요. 그리고 뉴스가 터졌고…
여튼 ‘더킹’이 그런 점에서 가지고 있는 최대의 강점은 디테일함입니다.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도 디테일하고 그 대상이 저지른 일도 굉장히 디테일합니다. 특히 몇 년간의 현실과 서사를 묶어놓았기에 그 부분에서 얻게 되는 디테일도 있습니다. 세세한 장면들의 풍자들도 있구요.
스타일도 인상적입니다. 화려한 시각효과와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이미 많이 말씀하셨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떠오르는 지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캐릭터들을 대놓고 조롱하다가 영화의 끝에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영화로 비슷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네요.
다만 영화의 휘발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러니까 디테일한 비판도 있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딱히 기억이 잘 안나요…. 캐릭터성이 약한가? 혹은 서사가 약한가?란 생각이 좀 들어요. 주인공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의 임팩트가 약한게 서사의 문제인지 혹은 그 총 앞뒤에 있어야 할 캐릭터들이 약해서 인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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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디오 누나한테 비디오좀 추천해달라고 했을때 빌리 엘리어트 추천해주면서 자신이 20번 넘게 돌려본 영화인데 너무 좋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나중에 제가 20번 넘게 돌려보고 있더라구요.
마지막 엔딩장면도 좋긴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들과 아빠가 런던을 가면서 물어본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