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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2/07 17:59:57
Name Marcion
Subject [일반] 은행권 vs 공정위 표준약관 갈등
0. 서론

최순실 사건에 묻힌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2016년 10월 19일 공정위는 은행 여신거래약관 개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중요한 내용도 많았지만 특히 쟁점이 되는 중요한 변경사항은 기한이익 상실에 관한 다음 두가지입니다.

1) 종전 정지조건적 기한이익 상실특약이었던 '예금 등에 대한 압류, 가압류, 체납처분 발송'(이하 '이 사건 특약') 중 '가압류' 제외
2) 위 특약에서 '발송'을 '도달'로 변경

통상 은행권이 공정위나 금감원의 약관 개정에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취하는데 비해
은행들은 이 사건 약관개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실제 사용 약관에 '공정위 약관과 다르다'는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약관규제법 제19조의3 제6항에 따른 조치입니다.

관련하여 양측 입장을 중립적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하나 소개해 둡니다.
(http://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13965)



1. 기한이익, 기한이익 상실특약의 개념

가. 기한이익
소위 '기한이익'이란 건 말 그대로 '기한이 존재하는 데 대한 이익'입니다.
가령 갑이 을로부터 2017. 1. 1. 금 100만원을 변제기 2018. 1. 1.로 하여 빌린 경우
갑은 2017. 7. 1.에는 위 100만원을 을에게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이익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익을 '기한의 이익'이라 합니다.

민법은 기한의 이익은 채무자에 있음을 규정하고(제153조 제1항. 이 규정은 사실 양창수 전 대법관 지적대로 배치가 많이 잘못됬습니다.)
채무자가 일정한 경우에 기한이익을 상실할 수 있음도 규정하고(제388조)
채무자가 자유롭게 기한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음도 규정하고 있습니다.(제468조)

나. 기한이익 상실특약의 개념
한편 국내 은행 여신거래에 통용되는 '여신거래약관'은
은행이 고객의 기한이익을 박탈할 수 있는 특약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약은 무척 많지만 결국 두가지 종류로 대별됩니다.
1) 정지조건적 기한이익 상실특약, 2)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특약입니다.
전자는 그 사유 발생 즉시 기한이익 상실의 효력이 발생하는 특약이고
후자는 그 사유 발생 후 은행이 기한이익 상실권을 행사하여야 기한이익 상실의 효력이 발생하는 특약입니다.



2. 기한이익 상실특약의 실제적 기능
이 사건 특약은 '정지조건적 기한이익 상실특약'에 해당합니다.
즉 대출채무자가 은행에 대해 갖는 예금에 대한 압류명령 등이 발송된 시점에
그 즉시 대출채권의 기한이익이 박탈되어 은행이 즉시 채권추심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약은 특히 예금에 대한 강제집행절차에 있어
은행이 다른 채권자들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일단 민법 상 '상계'의 요건인 '쌍방 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할 것'의 의미,
특히 민법 상 상계금지사유인 민법 제498조의 해석론,
특히 이에 관하여 최근 대법원이 제시한 몇가지 복잡한 법리에 관한 해설이 필요합니다.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2다72612 판결, 대법원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

이게 너무나 귀찮은 일이라 그냥 이 글을 때려칠까 생각하던 도중
아이쿠 이게 왠 떡이야! 누가 예전에 이 귀찮은 일을 다 해놓게 아닙니까.
(https://pgr21.co.kr/?b=8&n=34920)
이에 이 부분 설명은 위 호가든 님 글에 등장한 사례를 금액만 바꿔 그대로 써먹고자 합니다.


[기본사례]
마린의 계좌에 제3자의 압류(가압류 포함)도 있고, 마린이 은행에서 빌린 돈도 있는 경우로서
질럿이 마린에게 잘못 보낸돈 100,  제3자가 마린에게 받을 돈 50, 은행이 마린에게 받을 돈 150, 예금통장잔액이 150인 사안.

(1) 과거 특약 적용시
은행 150(상계권 행사로 대출, 예금 동시소멸. 끝.)

(2) 개정 특약 적용시
은행 75, 질럿 50, 제3자 25
(세 채권자가 모두 집행권원을 구비하여 예금에 대한 배당에 참가하였다고 가정)
* 가압류의 경우 은행이 별도의 기한이익 상실사유를 찾아 채권추심에 나설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음



3. 쌍방의 견해대립 및 사태의 추이 예상

가. 견해대립

(1) 공정위 측
한마디로 이 사건 특약은 채권자 평등원칙에 반하여 은행이 과한 특권을 누리면서(은행-고객의 다른 채권자 관계)
사유를 가리지 않은 기한이익 박탈로 인해 채무자의 권익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은행-고객 관계)
특히 후자는 약관규제법 제11조 제2호의 부당한 기한이익 박탈조항으로 볼 소지가 있다 할 것입니다.

(2) 은행 측
요약하면 이 사건 특약은 은행 입장에서 채권회수를 위해 정당한 것이며
그 대신 은행은 고액예금자에 대한 대출실행 시 금리를 깎아주고 있으므로 고객에게 부당한 것도 아니며
이 특약을 없앨 경우 은행으로선 상응하는 금리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고
해외에서도 이런 특약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학계에서는 양창수 전 대법관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 사태의 추이 예상

(1) 쌍방 합의
우선 공정위가 은행 의견을 일부 반영한 약관을 새로 내놓고 은행이 이에 따르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있을법한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에 은행이 백기항복을 하거나, 공정위가 뜬금없이 약관을 철회하는 등의 모습도 있을 수 있으나
조금 가능성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2) 공정위 시정조치 및 행정소송
공정위는 직권으로, 또는 약관규제법 제19조 각호의 자들의 청구를 받아
은행들이 쓰는 여신거래약관의 불공정약관 해당여부를 심사할 수 있고
불공정약관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시 약관규제법 제17조의2에 따른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은행들이 이에 반발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결국 법원이 약관의 공정성을 심사하게 될 것입니다.
근데 은행들과 공정위가 이렇게까지 척을 질까요?

(3) 민사소송
가령 어떤 채권자가 예금에 대해 추심명령을 받았는데 은행이 대출채권에 기한 상계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할 경우
위 채권자가 은행에게 추심금소송을 제기하면서
은행이 사용하는 약관이 무효이므로 은행의 상계권 행사는 민법 제492조 제1항의 상계적상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대법원 판례의 변제기기준설에 따른 상계요건을 갖추지 못해 지급금지채권에 대한 상계가 되어 효력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약관이 거래계에서 사용된 지 수십년이 지났기 때문에 약관의 효력문제에 생각이 미칠 채권자가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결국 법원이 약관의 공정성을 심사하게 될 것입니다.



4. 결론
공정위와 은행 간 큰 충돌이었던 CD금리 담합사건이 심사종결처분으로 허무하게 끝난 가운데
이번 기한상실특약 사건도 유사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
아니면 법원으로 사건이 올라가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까지 이를 것인지 사태의 추이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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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7 18:27
수정 아이콘
다른 것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선후관계를 무시하고 타 채권자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게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은행의 상계와 관련된 부분인데, 이게 여태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건가요?
타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처구니 없고 불합리한 상황인 것 같은데...
타임트래블
17/02/07 19:10
수정 아이콘
대신 은행은 그 어떤 채권자보다 저렴한 금리를 적용합니다. 사실 채무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인거죠. 담보로 설정하지는 않았지만, 담보가 있는 것과 같이 취급되어 금리면에서 유리하니까요. 만약 공정위 안 대로 하게 된다면 예금을 담보로 잡아서 인출하기 어려워지거나 다른 담보를 제공해야 해서 오히려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17/02/07 20:18
수정 아이콘
1) 일단 은행-고객 관계를 보면 은행은 예금을 우선 해먹는 대신 대출금리를 싸게 해줍니다.
고객은 어차피 여신거래약관이라는 걸 읽지도 않지만 이자를 깎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 없습니다.

2) 다음으로 은행-타채권자 관계를 보면
일단 채권추심에 식견이 있는 채권자 입장(금융기관, 대기업, 법률전문가 등)에서 본문의 현상은 말하자면 자연현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매년 찾아오는 태풍을 대비하듯이 채권자로서는 예금은 은행이 먼저 먹는 걸 당연한 걸로 여기고 채권회수절차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채권추심 같은거 잘 모르는 채권자들(대개 서민들)의 경우
일단 어떤 원리로 은행이 예금을 해먹는지 모르고 그냥 은행에서 예금이 없다니 그런 줄 알고 그냥 넘어갑니다.

3) 이런 관계로 이와 같은 약관이 불공정 소지가 있음에도 실제 문제제기가 이뤄진 예는 매우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제기가 아예 없진 않았는데
가령 담보부대출채권의 경우 가압류 발송사실만으론 기한이익 상실이 되지 않고
중대한 신용악화가 있을 것이란 추가적 요건을 갖추도록 하는 조항이 소비자단체, 은행권의 의견수렴을 거쳐 2002년 신설되었던 바 있습니다.
(오늘날 통용되는 여신거래약관엔 어김없이 그런 조항이 들어있습니다.)
한편 금융소비자연맹은 이미 2012년 경 여신거래약관 상 기한이익상실약정 및 은행 상계권행사에 관해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했던 바 있었습니다.
(http://www.kfco.org/activity/press.asp?mode=view&board_id=press&idx=504&pageno=1)
이번 공정위 약관 개정도 이러한 비판론에 따른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만 이런 식의 소위 '공익적 문제제기'는 아무래도 이해당사자들의 문제제기보단 격렬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17/02/07 20:27
수정 아이콘
추가적인 설명을 들으니 의문이 들던 점들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cadenza79
17/02/07 19:12
수정 아이콘
1. 글쓴이를 못보고 제목만 보고 먼저 눌렀는데 5줄 읽고 작성자가 누구인지 눈치챔.

2. 덕분에 저도 호가든표 떡 하나 날름 하나 했습니다. 전에도 봤던 내용이긴 한데 다시 보니 반갑네요.
Luv (sic)
17/02/07 23: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연필깎이
17/02/10 23:1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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