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2/03 15:05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제가 기억나는 일화는, 수련회 가면 다들 카드놀이나 동양화 놀이 한 번쯤 해보고 그러지 않습니까? 고2때의 수련회였던 그 날도 담요 비슷한거 깔아놓고 몇몇이서 카드놀이를 배팅을 수반해서 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아니셨던) 수학선생님께서 급습을 하셨습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아예 치울 시간은 없다는 판단을 모두가 동시에 내리고 눈빛을 교환 후 "돈만" 숨겼습니다. 뭐 그래도 카드놀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들어오셨음에도 인사만 하고 자연스럽게 두어판 게임을 진행했는데 몇 분 게임하는거 지켜보시더니 나가시면서 "됐으니까 돈 꺼내라. 적당히만 하고." 라고 말씀하시고 나가셨습니다. 뒷모습이 멋있으시더군요 크크크
17/02/03 15:37
수련회라는게 참 생소한게 고등학교 3년 내내 1학년 1학기에 수학여행 제외하고는 체육대회, 소풍도 아예 없었습니다. 심지어 고2부터는 음악, 체육, 미술, 교련 수업은 시간표 상에만 존재하고 실제론 국,영,수로 대체수업을 했었죠.
아마 그런 쓸데 없는 데 시간 보내느니 그 시간에 영어단어 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학력고사 시대라 그런가 봅니다. 그나마 그 수학여행도 1학년 1학기 4월달에 갔으니 애들끼리 친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간지라 3박 4일 내내 서로 뻘쭘허니 시간 보내다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적고 보니 참 지루하고 재미 없는 고교생활이네요.
17/02/03 15:39
기실 수련회에 대한 악평은 교사들이 흔히 보여주는 행동들도 한몫 거든 결과잖아요. 애들 구르는 동안 술 먹으며 논다거나. 전 근데 수련회 말고 묘한 경험이 하나 있는데요. 초4때인가 수련회를 갈 때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수련회를 했습니다. -_- 침구 하나씩 챙기고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는 거였는데, 어디 멀리 가질 않았다는 점만 빼고 수련회랑 똑같이 보냈습니다. 벌주고 굴리는 조교 역할을 담임 선생님들이 하구요(?). 그 조교들보다야 훨씬 살살 하시긴 했습니다만, 보통 초등학교에서 받던 체벌보다야 한참 높은 수위였고 기분 묘~하더군요.
17/02/03 15:50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다른 동료들 눈쌀에 못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다만 저 나이대 애들이 그렇듯 사고치는걸 막기위해선 누군가의 감시가 필요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들은 피곤해지겠지만 당연히 저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7/02/03 16:31
고2때 현장학습으로 몇몇 반만 여행을 갔는데 밤이 되자 하나둘 준비한 술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왠만한 맷집도 그 선생님 매를 세 대만 맞으면 개구리처럼 뻗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 정도의 완력 소유자셨고 (자리에 항상 10kg 아령과 완력기를 놓고 애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분이셨습니다.) 혹여 들킬까 선생님 방쪽에 돌아가면서 망보는 조를 세워놓고 새벽까지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숨죽여 술을 마셨지요. 저는 타지 가면 잠을 잘 못자는 편이기도 하고 술이 좀 센편이기도 해서 끝까지 남아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새벽 3시쯤 선생님 세분이 내려오시면서 복도쪽에서 한마디 하시더군요. "이제야 다들 자나보네요" 다음날 아침 일찍 전원 운동장 구보 시킬 때 깨달았습니다. '아... 다 알고 계셨구나'
17/02/03 16:37
전 고2,고3때 영어선생이 기억에 남네요.
자신이 인디언의 후예라며 아메리칸 색깔 치료법이라고 형광펜 세트를 들고다니며 아이들의 손에 형형색색으로 별의별 문양을 칠하고 다니던 분이었죠. 물론 강제적인 체벌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혹행위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없었습니다. 고3 스승의날때 애들이 손발 붙잡고 케이크를 담임 얼굴에 직통으로 떡칠 시켜놨는데 이게 간지라면서 그 상태로 종례까지 마치고 퇴근까지 했었습니다. 원체 인상적인 분이라 졸업하고 한번 찾아가서 밥까지 같이 한번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이 술을 먹을걸 그랬네요.
17/02/03 16:55
음... 지금 고3인데 수학여행같은걸 가본 적이 없네요... 갈만하면 그때마다 전부 사건터지고 그래서...
이런거 보면 마냥 부럽기도
17/02/03 17:13
전 고1수련회 때 대놓고 챙기는 쪽의 차별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애들이 안착했으면 따?비슷하게 당했을 수준이라 글 보고 순간 움찔했네요.
17/02/03 18:48
이사가 아닌데 갑자기 먼 고등학교로 전학가셨으면 2가지중의 하나겠죠
너무 사고를 많이쳐서 중학교때 애들이랑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다거나 아니면 워낙 성적이 우수해서 외지에 있는 명문고등학교에 입학시키셨던가 선생님은 멋지시네요 웬만하면 다른반 애들도 거해주시지
17/02/03 20:06
지금의 학교는 위의 사례나 댓글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수학여행에서 자율을 많이 주면 학부모들이 청와대 신문고에 담임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모른척했다고 민원을 넣고, 반대로 지랄같이 단속을 하면(가방이라도 뒤질라 치면) 인권을 탄압했다며 인권위에 민원을 넣습니다. 요즘엔 다들 학교에 항의 전화를 넣기 전에 청와대, 인권위 같은 곳에 바로 민원을 넣습니다. 시험문제를 쉽게 내면 변별력이 없다고 청와대에, 기말고사에는 조금 어려운 문제 두세개를 더 넣으면 내신을 망쳤다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이 교사가 이야기하는 진심을 정말 홈빡 이해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끄떡끄떡합니다. 교사는 울컥하면서 '역시 진심은 통한다'며 내심 이런 순간이 교사가 된 보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교육정에서 연락이 옵니다. 수업시간에 공부랑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서 진도를 늦으면 그 손해를 어떻게 감당할꺼냐며 청와대로 민원이 올라갔으니, 해명서를 문건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원평가 기간이 끝난 후, 평가란에 누가 썼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날 교사가 수업은 안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해서 본인의 혹은 우리 아이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필설로 남기지 못할 만큼 극악한 말로 한가득 써놓은 것을 보게 되면, 교사들은 이제 깨닫습니다.
'학교에 낭만은 없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수업만 하고 형식적으로 격려가 될 이야기만 해주고 나무라지 말아라. 괜시리 오지랍 넓어봐야 내 능력으론 어림없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상처받지 않을 강철멘탈일지도 모릅니다.
17/02/04 05:53
지금 민원넣는 세대가 아마 '내가 당해왔던걸 자식은 당하지 않게 하자' 라고 생각하고 또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세대니까요..
어느 직종에나 선배들의 업보를 후배들이 떠안는 면이 있긴 합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17/02/04 17:13
흔치 않은 좋은 선생님 이시네요. 보통 수련회가면 선생님들이 학생들 프로그램하는 장소에 있지도 않지요. 조교들한테 맡겨놓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놀지요. 학생들 프로그램에 함께 하셨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