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1/07 15:59:47
Name makka
Subject [일반] 언어의 정원 -감각에 대하여 - 약스포
언어는 미끄러진다. 차고 희고 어지러운 것들에 쉽게 차가워져 흘러내리는 빗방울 처럼 언어는 쉽사리 미끄러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언어를 내뱉는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닌 장마처럼 흠뻑 내려야만 그제서야 강처럼 쌓이는 비처럼 수 없이 많은 언어들을 그렇게 쏟아내고 나서야 그제서야 그나마 우리는 상대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은 알 수 없다. 우리가 서로의 감각이 동일하다고 믿는 미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은 또 그렇기 때문에 공유되지 못한다.
함께 보고 함께 듣고 함께 느끼고 함께 맛보는 일들이 정말로 그렇게 동일하다면 우리에게 언어라는 것이 필요할까?
그렇기에 언어는 쌓인다. 서로가 공유히지 못하는 감각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언어는 쌓인다.

공원의 정자 안에서는 그래서 두 사람의 감각이 공유되는 공간이다. 그 곳에는 서로가 언어를 주고 받기 때문에, 서로의 감각이 공유된다. 두 사람이 도시락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발을 만지며 촉각을 공유하는 감각을 서로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감각은 언어로 공유된다. 언어는 쌓인다. 마치 강 같이 흐르는 장맛비에 온몸이 흠뻑젖는 것처럼 쌓여야 언어는 그제서야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해진다. 언어는 감각의 공백을 매우기 위한 작업이다. 언어는 서로의 감각의 공백을 매우기 위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맛을 느낄 수 없던 여자는 남자의 도시락에서 맛을 느낀다. 그건 언어를 통한 감각의 이행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여자의 집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함께 감각을 공유하던 공간은 이제 단지 공원의 정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감각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덧 서로의 감각에 대한 공유는 현실까지 뻗어와 있다.

언어의 정원은 어느 덧 공원 한켠 작은 공간에서 자라나 서로의 공간까지 침범해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한 없이 행복해진다. 각자 외로이 떨어져 느끼던 감각들이 서로가 함께 공유되는 공간인 언어의 정원에 도달했기에.

말하지 않는 것은 알 수 없다. 말은 감각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언어는 쌓인다. 장마처럼. 우리가 서로가 함께 공유했다고 믿는 감각들은 기표와 기의처럼 미끄러지기만 한다. 그렇기에 장마처럼 쌓인 언어만이 서로를 그나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한때의 장마처럼 그것이 쉽사리 지나가고 사라지는 위태로운 정원일지라도 말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1/07 16:19
수정 아이콘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인데... 글이 멋져서 한 번 봐야겠습니다.
아라가키
17/01/07 16:33
수정 아이콘
페티시 취향이 있어서 제일 좋게 봤습니다. 가장 발이 이쁘게 나온 애니였지요.
유자차마시쪙
17/01/07 18:50
수정 아이콘
쪼아요~
Atticgreek
17/01/08 00:07
수정 아이콘
아름답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다시 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9879 [일반] [여행기] 꽃보다 라오스 (이미지 스압) [13] 한박7140 17/01/07 7140 2
69877 [일반] 보수와 진보. [10] 개돼지5051 17/01/07 5051 2
69874 [일반] 전직 외교관이 말하는 위안부 합의의 숨겨진 의미 독해법 [34] 고통은없나11541 17/01/07 11541 3
69873 댓글잠금 [일반] 정당의 주인은 당원입니다. [93] 삭제됨7809 17/01/07 7809 5
69872 [일반] 몬스터, 최고로 인상 깊은 결말(스포) [22] Samothrace22758 17/01/07 22758 3
69870 [일반] 완전국민경선제, 과연 나쁜가? [394] 이순신정네거리12012 17/01/07 12012 4
69869 [일반] 국내자동차 제조사별 판매율 (수정) [31] 삭제됨8589 17/01/07 8589 0
69868 [일반] 언어의 정원 -감각에 대하여 - 약스포 [4] makka3973 17/01/07 3973 2
69867 [일반] 최근 본 것들 중 제법 웃겼던 정치 기사들 [12] 삭제됨6011 17/01/07 6011 1
69866 [일반] 내 인생 최고의 TV애니메이션 BEST 20 [40] 삭제됨11165 17/01/07 11165 1
69865 [일반] [사다코 대 카야코 ]누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단 말인가.. [17] 꿈꾸는드래곤6971 17/01/07 6971 3
69864 [일반] 더불어민주당에 필요없는 '완전국민경선제','체육관투표' [188] wlsak14671 17/01/07 14671 21
69863 [일반] 신카이 마코토와 내 인생(너의 이름은 결말 스포?) [6] SEviL4993 17/01/07 4993 9
69862 [일반] 주관적으로 선정한 슈퍼 히어로 무비 베스트 5 (문상 추첨 결과) [40] Jace T MndSclptr7816 17/01/07 7816 1
69861 [일반] 너의 이름은은 실망이다. -약스포- [52] makka8114 17/01/07 8114 5
69860 [일반] 민주당의 갈길은 '진짜보수'다. 스스로 야권에 묶이지 말라. [37] 뜨와에므와7682 17/01/07 7682 17
69859 [일반] '너의 이름은' 은 대실망이네요. [74] 삭제됨8204 17/01/07 8204 3
69858 [일반] [모집] 삼국지를 같이 공부하실 열정적인 전공자분들을 모집합니다. [41] 靑龍6830 17/01/06 6830 5
69857 [일반] 4조원 들인 서울~강릉 KTX, 상봉역에서 모두 출발 두고 논란 [58] 군디츠마라14164 17/01/06 14164 0
69856 [일반] 삼성과 LG... 될 놈은 되고 안 될놈은 안된다 [94] ZeroOne14465 17/01/06 14465 1
69855 [일반] 심리학으로 '별' 따기: 고통스러워도 연구를 계속 하는 이유 [35] 윌모어6934 17/01/06 6934 17
69854 [일반] 박스오피스 1위 '너의 이름은' 추천합니다. [94] wlsak9771 17/01/06 9771 4
69853 [일반] 이걸 만든 사람들의 자손들인데... [31] Neanderthal9523 17/01/06 9523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