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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7 02:09
아랫글에 삭제하라는 말씀은 단 한 마디도 없었는데... 그냥 수정을 하시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랫글에도 장문의 댓글이 많았는데 다 버려지는 셈이 되니...
17/01/07 02:13
글 삭제 버튼 옆에는 글 수정 버튼이 있어요 흐흐...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으실 때는 수정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쓰신 글에 달린 댓글들에는 피지알 규칙상의 문제를 지적하신 분도 있고 본문의 내용에 대해 논한 분도 계시는데 수정은 전자와 후자를 다 만족시키는데 반해 삭제 후 새 글 작성은 후자가 들인 정성은 없어져버리고 전자만을 만족시키니까요
17/01/07 02:16
저는 '너의 이름을'을 연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청춘남녀의 청춘물이라고 생각해요. 두 남녀의 행동 동기가 단지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작 언어의 정원에서 묘사하려고 했던 감정,이를테면 인간애가 그 동기였다고 봤습니다. 사랑이나 로맨스는 곁가지죠.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조연이 해줄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조연들을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나요? 조연은 여기서 주인공들에게 소중한 존재이기만 하면 됩니다. 자질구레한 일은 애초부터 트랜스한 여주/남주가 풀어줄게 아니죠. 아니 뭐 제대로 인간관계 형성하는 장면도 없는데 풀어주는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17/01/07 02:20
문제는 이 영화가 청춘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인간애, 같은 모습을 그려지는 모습들이 1도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썼다시피 조연들이 묻힌 이유도 철저하게 이건 두 사람에 관한 '연애물' 이기 때문이죠. 결국 의미없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의 나열들을 통해 어떤 의미가 도출되지 못하고 그저 아름답고 예쁘다 라는 모습밖에 못보여주었기 때문에, 공허해진다는 거죠. 어떤 성장이나 인간애 같은 좀더 두 사람의 연애물 을 넘어선 의미가 도출되지 못하는 건 말했던 것처럼 의미있는 사건이나 조연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17/01/07 02:22
특히 그렇기 때문에 미즈하의 아버지에 같은 인물들이 그냥 버려지는게 아쉽다는 겁니다. 너의 이름은이 청춘물이나 성장물, 혹은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도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방해요소가 등장하고 그걸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러한 모습을 못보여주죠. 말 그대로 그저 '하지마' '너 이상해' 라고 말만 외치는 허수아비에 그치니까요
17/01/07 02:30
글쎄요. 인물의 성장이라는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청춘물에서 인물의 성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인간애라는 부분은 충분히 묘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남주인공의 감정이 초속 5cm처럼 아련한 첫사랑일 뿐이었다면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유별날 정도로 노력하지는 않았겠죠. 그저 추억으로 고이 접혔을겁니다. 빙의로 인해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과 그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일반 영화처럼 자세히는 묘사되지 않았지만)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그 모두가 소중해 졌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노력하는 동기가 되었고 이정도면 충분히 인간애에 대한 묘사가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조연들과의 관계가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것은 주인공들은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을 할 뿐이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다른 인물이고 간섭할 수 있는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알바 선배가 잘 안된것도 그 때문이라고 봐요.
17/01/07 02:35
청춘물을 어떤 의미로 표현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청춘물은 성장물의 개념으로 많이 여겨지죠. 그래서 성장요소가 들어 있는 작품들은 성장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표면적 주제로 이름 붙겠죠. 그래서 시달소 같은 애니가 연애물이 아닌 성장물로 여겨지듯이요. 시달소 같은 부분은 분명 연애요소가 있음에도 여주인공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성장물로 불려지고. 너의 이름은은 연애물이 맞다고 보네요. 그리고 만일 타키가 미즈하 이외의 사람에 대해 걱정하거나 찾는 모습들, 혹은 안타까워 하는 모습들이 영화내에 나왔다면 모르지만, 그리고 어떤 인간 관계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면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단지 일련의 에피소들들을 가지고 아마 그럴거야 라고 추측하기에는 너무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17/01/07 02:48
청춘물이 일반적으로 성장물로 많이 여겨진다는 것 자체를 처음 듣긴 합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청춘물은 말 그대로 청춘들이 벌이는 일을 묘사하는 작품을 청춘물이라고 봤습니다.
17/01/07 03:41
그리고 작품 내에서 남주인공이 미즈하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거나 찾는 모습은 과거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마을 모두를 구하려는 행동과 마을 인명부에서 여주인공의 이름과 친구의 이름을 찾는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을 뿐이죠.
17/01/07 03:09
우선 청춘물이라고 하면 반드시 성장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makka님의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별개로 미츠하의 성장은 이미 작중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미츠하는 영화에서 나온 장면만 보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던 중 집을 나가버린 이장인 아버지의 꾸지람을 대로변에서 듣고서도 주변의 쑥덕거림 속에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고, 쿠치카미사케를 만드는 중 반 친구들의 비웃음 섞인 힐난에 상처를 받는 등 미츠하의 몸에 들어간 타키가 책상을 걷어찬 이유가 되는 괴롭힘을 당해오면서도 전혀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었죠. 이 점은 일부 트페미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런 성장환경이어서가 맞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제쳐두고... 그랬던 미츠하가 타키와의 신체 교환을 통해 그간 꿈꾸었던 도쿄 생활을 하면서 타키의 몸 속에서나마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영화에서는 연출상, 시간상의 문제로 슝슝 지나갔습니다만 미츠하라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커다란 경험일 테죠), 사랑을 한 결과 혜성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밤의 도로에서 넘어져 데굴데굴 굴러 다쳤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아버지에게 달려가 결연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꾸지람을 들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과거와는 이미 충분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후 설득과 피난의 과정이 그려지지 않은 것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보다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감독 자신이 밝혔습니다만,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미츠하가 아버지를 직접 설득하여 피난 경보를 울리게 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지요.
요는 사람에 따라 이걸로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장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하면 어폐가 크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극초반의 남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뿐이던 미츠하와 마을 사람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그저 자신과 타키만이 소중할 뿐이라면 '나는 후타바를 사랑했지 신사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떠나간 아버지, 언제나 자신에게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를 설득해서 마을 전체에 피난 경보를 울리도록 할 이유는 없겠죠) 몸이 다쳐가면서 밤의 도로를 달려가 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를 노려보는 미츠하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영화보다도 소설에서 미츠하와 아버지의 관계가 보다 상세하게 묘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영화 역시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가지치기가 이루어졌을 따름이지 그러한 요소를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17/01/07 02:37
1. 107분입니다. 180분이 있어야 됩니다. 어쨌거나 미디어믹스로 대부분 보완이 되어있습니다.
2. 제가 생각하기로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뽑자면 '무스비'입니다. 결국 "운명의 붉은 실"로 이어지고, 떨어집니다. 작품내 시공간의 개념을 저것 하나로 설명하긴 했습니다. 청춘 러브스토리는 아무리봐도 양념..... 3. 이 작품의 주인공은 수엽이 아니라 삼엽이지요.. 미츠하입니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망인것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영화를 보는 개개인의 생각은 다 다른거니까요. 옛날의 4월 이야기도 그렇고, 제가 나름 좋아하는 유우키 유우나는 용사다도 그렇고 설명이 부족하긴 합니다... 웹판으로 발매된 전작을 봐야 확실히 연결되는 스토리라니 흑.
17/01/07 02:56
사실 걸작 중에 친절한 작품은 드물죠. 오히려 이른바 낯설게하기가 주창된 이래 불친절함을 지향하고 어떻게 안티 내러티브와 내러티브를 써먹을지를 통해서 발전해온 게 서사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17/01/07 04:25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것도 좋은 작품의 요소니까요. 근데 근래에 들어서는 불친절한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특히나 영상에 있어서는 생각을 하기 보단 눈으로 다가오고 귀로 듣고 바로 이해되는게 편하긴 하지요.
17/01/07 09:53
근래가 아니라 대중이 불친절한 작품을 싫어한 건 오래된 일이죠. 소위 통속 소설이라는 것들이 왜 통속적일까요. 불친절한 작품을 재밌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겠으나 재밌지 않더라도 불친절함 그 자체에 서사의 미학을 두는 것이 오히려 20세기 이후의 추세가 아닌가 하네요.
17/01/07 03:07
부제를 부재로 수정해 주세요.
저는 [너의 이름은]이 30분짜리 단편이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부분은 좋은데 중반 이후로는 앙상하고 지루해요.
17/01/07 03:10
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볼 때
톱니바퀴처럼 이야기가 맞물려서 흘러가는 작품들도 좋아합니다. 그런 작품들은 감상하면서 '이전에 어떤 복선이 있었을까', '이 대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등등 이야기의 다음 전개를 상상하거나, 등장인물의 행동을 분석하게끔 만들고 저는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작품안에서 해답을 찾아보죠.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아주 진합니다, 작품에 빠지면 후유증이 길어지는 작품들도 많구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이런 치밀한 설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적당한 설정들로 적당히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보니 뻔한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어질 전개가 훤히 보인달까요. 일단 이야기는 가볍고 여유롭습니다, 거기에 영상은 화려하고 음악은 아름답죠. 그래서 보이는 그대로 작품을 느끼고 즐기게 됩니다. 거기에 깊은 고민이나, 생각은 필요없죠. 물론 가벼운만큼 감동도 금새 식는 느낌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원인 두 가지는 위에서도 말한 적당한 설정과 뻔하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가 첫번째고 두번째는 중2스러운 포풍감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7/01/07 03:32
백프로 동의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두가지로 좋다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저 두가지로 싫어하더라구요 크크
그러나 두가지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배경은 이쁘고 음악과 어울리는것에는 동의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인기가
17/01/07 03:54
치밀하게 기획된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치고, 애초부터 치밀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정한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게 보통 영화라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작품의 주제 아래서 흘러가는 사람의 삶을 표현한다고 보거든요. 우연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어찌보면 뻔한 전개인 것은 사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17/01/07 09:57
뻔한 전개는 그냥 진부한 것이죠 서사의 세계에서는... 주제는 영원히 반복되지만 그 주제를 어떻게 굴려먹을 것인가는 반복을 넘어서는 순간에 고평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모든 작품이 고평가 받을 필요는 없고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만 해야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서사라는 장르에도 무수한 세월 동안 축적해온 미학의 역사라는 게 있죠. 물론 그 역사성은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비평의 관점도 다양하지만 진부한 것만큼 서사 장르에서 저평가 받는 기준은 없습니다.
물론 너의 이름은이 진부하다거나 뻔하다고 해서 그것만 보고 못난 작품이다, 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아
17/01/07 19:55
맞습니다. 다만 창작물이란 것이 장르에 상관 없이 서사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며 묘사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대부분 서사보다는 묘사에 중심을 둔 작품이 많구요. 그렇다고 서사가 항상 뻔한 감독도 아니구요.
17/01/07 04:28
본 지 며칠 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여운이 남는 제가 말하자면 이 영화는 뜯어보면 개연성이나 논리는 부족하지만 그 부분은 감성으로 채우는 거 같습니다. 왜 그들이 며칠 몸 바뀐 것만으로 그렇게 애절하게 됐는 지 저도 잘 모릅니다. 왜 아직도 이 영화가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지도요. 하지만 '그냥 좋아' 라는 감성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최고 같습니다. 혹시나 아직 안 보신 분이 계신다면 가볍게 보세요. 최고의 영화가 될 겁니다.
17/01/07 07:15
글 잘 봤습니다.. 밑에 글이랑 다른사람이 쓴걸로 느껴질 정도의 제대로 성의있는 글이네요~~
전 이 감독 작품은 초속 오센치 후에 처음인데 초속 오센치는 보다가 졸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감명깊게 봤습니다. 하지만 글쓴이님의 생각에도 공감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치명적인 단점인가봐요.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구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 치명적인 단점이 감성으로 승화된 것 같습니다. 주제가 운명적인 사랑이기 때문이죠. 개연성과 설명은 없고 우연이 반복되지만 그게 바로 운명 혹은 인연일 수 있는 거니까요. 운명이나 인연은 그래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17/01/07 07:16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전 글도 그랬지만 써주신 단점 부분은 공감하는 부분도 많네요. 크크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도대체 두 사람은 왜 그렇게 사랑하게 된걸까? 그 짧은 시간에 서로 몸을 바꿔가며 지낸 것만으로 그렇게 애절함에 불타는 사랑이 된걸까? 운명이라서? 무슨 뚜렷한 에피소드가 있었나?" 그런데 다른건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글쓰신분하고도, 댓글 다신분들하고도 좀 의견이 달라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네요. 학창 시절에 첫사랑하고 무슨 대단한, 진짜 영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에피소드가 있어서 사랑하고 좋아하고 애타셨나요. 원래 원래 저 나이대 남녀는 서로 정말 사소한 무언가라도 일치하는 코드가 있으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계속 만나게 되는것만으로도 감정이 생깁니다. 저도 그랬고, 제 주위에도 그런 케이스가 많고, 과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제가 중2때부터 알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내내 연애한 첫사랑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냥 첫 자리 배정때 뒷자리에 앉아서 그랬습니다. 뒤에 앉아서 머리카락 가지고 장난치고, 이런 저런 잡담하다보니까 어느새 그렇게 되더군요. 저 스스로도 눈치 못채는 사이에요.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5월쯤에 반 남자애들하고 수련회가서 서로 누구 좋아하냐고 진실게임하다가, 친한 친구가 걔 좋아한다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속이 답답해지고나서야 깨달았죠. 몸이 바뀌는 경험이 어느정도의 친밀감과 공감대 형성을 하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적인 사랑을 느끼게 할 정도는 된다는 얘기에요. 무슨 대단한 에피소드가 없어도 충분합니다. 이성이랑 얼굴 한번 못 보고 펜팔만 해도 연애 감정 생기고, 대화 한번 못하고 얼굴만 봐도 연애감정이 생기는데, 그 대상의 몸으로 살아보고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데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제가 보기엔 더 말이 안됩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연애 감정은 일시적이고 사사로운것 아니냐. 호기심에서 오는것에 가깝지 않냐. 그렇죠. 그래서 학창 시절의 풋사랑은 쉽게 타오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사랑을 타오르게 하는것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고, 아주 어릴때는 그 두려움을 잘 느낄 겨를이 없거든요. 같은반 여자애 남자애가 좋아도 내가 지금 쟤랑 안 만나면 쟤가 어디 없어지는것도 아니고, 다른애랑 잠깐 만난다고 해도 나랑 못 만나는건 아니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게 될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보통은 쉽사리 안 불타오르는거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둘의 감정의 도화선이 될 '단절'은 누구나 납득할만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죽음과 망각. 둘다 인간인 이상 결코 피할 수 없고,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으며, 예방하는것말고는 나중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가장 두려운 바리케이트니까요. 이 영화에서 다른건 몰라도 저 둘이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가 되게한 동기, 그게 관계와 애정이 이상해보일정도로 과도하게 발현되는 사유는 충분히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몸이 바뀐다는 서로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꽤 오래했다는 사실 그자체' 이며, 후자는 '영원한 단절에 대한 두려움' 이죠. 사랑을 해본 사람,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한 이성적 사랑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맺은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해 그리워하고, 그것이 아예 재회할 수 없는 추억이 되는것이 두려워 누군가를 미친듯이 찾아본 사람으로서 그것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네요 크크 https://pgr21.co.kr/pb/pb.php?id=freedom&no=60189&divpage=14&ss=on&keyword=better
17/01/07 12:46
Q. 영화 잘 봤는데요, 사실 저는 몸이 바뀐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 갑자기 생겨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인공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이 생겨나는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이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굉장히 많은 관객들의 의견을 들었는데요, 타키와 미츠하가 좋아하게 되는 순간을 그리지 않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순간을 저는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난 뒤에 나중에야 아 좋아하게 되었구나, 하고 깨달게 됩니다. 그런 감정을 우리가 컨트롤 하고 당시에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돌아보니 어, 나 좋아하네. 좋아하고 있었던거야? 하기 때문에 미츠하와 타키도 나중에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말이 지금 하신 말씀과 꼭 같네요 흐흐 사랑은 저 스스로도 눈치 못채는 사이에 찾아 오는 거죠. 사실, 첫째로 잘생기고 예쁜(ㅡㅠ), 둘째로 주변인들과의 인간관계와 반응을 보건대 분명 좋은 사람인, 셋째로 그 사람과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부정기적으로 하루 웬종일(어떤 의미에서는 두 개의 몸으로 둘이 함께 있는 것보다도 더) 가까이 지낸, 넷째로 세상에서 셋도 없고 넷도 없는 단둘만의 특별한 고립 상황(서로 상대방의 몸에 갇힌다는)에 처한, 다섯째로 그런 상황에서 휴대폰 메모 기능으로, 노트로, 때로는 몸으로(!) 온갖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교환한 청춘 남녀입니다. 저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훌륭한 소년소녀니까요. 미츠하가 학창 시절의 저랑 바뀌었으면 안 반했겠지만 타키와 바뀌었으면 충분히 반할 만도 합니다. 크흑.
17/01/07 12:59
헉 실제로 감독이 저렇게 답했군요. 저 댓글은 순수 100% 저의 감성을 대입한것이며 절대 감독의 답변을 컨닝한것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근데 제가 한 말이랑 너무 비슷해서 컨닝 안했다고 해도 설득력이 너무 없긴 없네요 진짜 안했는데 크크크...
저것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한 알콩달콩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저 정도 수준이면 빼박이죠. 제가 학창 시절 좋아했던 아이하고 저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면... 그 인연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저는 진짜 영화보다 더한짓도 했을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게 생겨난 연애 감정이 단절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트하는것은 정말로 흔한 일이고, 특별한 계기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든 빨리 대쉬해서 사귀고 싶은 이유는, 내 또래의 성인 여성은 혜성이 떨어지거나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도 내 손이 닿지 않는곳으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인데, 어린 시절에는 그걸 알기가 어렵죠. 실제로 어린 시절 보던 시시한 (?) 연애 만화의 고백의 계기에도 헤어짐이 많잖아요. 제가 어릴때 재밌게 본 순정 만화로 예를 들면 천사소녀 네티에서 셜록스가 고백하게 되는 계기는 샐리가 옆에 있다는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손에 닿지 않는 존재를 쫒아다니며 느꼈기 때문이었고, 우리 아기는 외계인에서 주인공 커플이 고백하게 된 계기는 동거 종료였죠. 그만큼 청소년기의 연애감정은 헤어질때가 되어서 감정이 에스컬레이트 아는 케이스는 흔하디 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거 같아요.
17/01/07 13:16
흐흐 길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 정도의 특이 감성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이 감성은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보시지 않아도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는 부분이죠! 그 점에서 제가 정말 좋았던 장면 중 하나는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미츠하의 모습이었네요.
아래 하신 말씀에도 전부 공감합니다. 아마 둘의 헤어짐이 어느 날 갑자기 혜성이 떨어지는 밤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것이었다면, 둘의 기억 상실 또한 그렇게 이루어졌다면, 혹은 둘의 헤어짐이 그들 사이의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면 아마(하지만 제 생각에는 결코) 이만큼의 애절함을 가지고 서로를 찾아 다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로 들어주신 고백의 계기 또한 그렇지만 사랑의 점화 역시 그렇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어린 소년소녀의 이야기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그들을 갈라 놓은 요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더 불타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죽음을 선택할 만큼이요. 마찬가지로 미츠하와 타키 역시 갑작스러운 죽음은, 망각은, 헤어짐은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고, 사랑이 더 불타오른 것이겠지요. 여러 모로, '이야기'로서는 결점도 가지고 있지만 '사랑 이야기'로서는 오히려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었고 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17/01/07 16:07
물론 이러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굳이 굻직한 에피소드나 다른 여타 의미로 파생될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이 없어도 문제될 건 없죠. 오히려 이러한 가벼운 사건들의 연속들로 인하여 후반에 더욱 힘을 실어 준것일 수 있고요. 그런데 이게 결국 또 무스비 만능론으로 이어지는게 문제라고 생각하네요. 두 사람은 사실 어떤 소소한 일들에 의해 서로를 좋아하게 된게 아니라, 무스비 라는 운명이 있기에 서로가 사랑하게 된것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거든요. 왜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 = 무스비, 즉 운명이니까 식의 무스비 만능론, 그러니깐 운명과 우연에 계속해서 기대는 전개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죠
17/01/07 16:48
- 그럼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닌가?
= 아니, 영화에서 두 사람은 운명의 만남을 한 것처럼 나온다. 다만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왜 ‘미츠하’의 몸이 하필 ‘타키’와 바뀌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고 했다. 미츠하는 누군가와 꿈속에서 몸이 바뀌어야만 했다.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살아나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상대가 왜 타키여야 했는지는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 왜 그렇게 생각했나. = 타키가 아니면 안된다고 못박으면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결정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캐릭터들과 자신이 서로 뒤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나리오 회의에서도 “왜 타키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에 필연성이 있으면, 이야기의 가능성이 좁아진다. - 그렇다면 이들의 만남은 그냥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인 것인가? = 나는 그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http://m.huffpost.com/kr/entry/13926174#cb 그 점은 '능력의 한계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독이 부러 의도하고 만든'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여기서 어쩔 수 없다 함은 안 좋게 보시는 시각을 거두고 좋게 받아들이시라는 뜻이 결코 아니라, 감독이 버릴 요소와 살릴 요소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었으니 누군가는 안 좋게 보고 누군가는 좋게 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린 문제가 되었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이구요. 어떤 작품이든 감독의 의도에 따라 버릴 부분은 버리고 살릴 부분은 살리게 되는데, 제 생각에 이 작품은 구구절절한 이유를 부러 빼놓고 가서 개연성을 희생하더라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그 자체에 거의 모든 비중을 할애한 것이 연출의 속도감 측면에서나 감정 전달 면에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신다면 그 역시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너의 이름은은 분명 '이유'를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결점이 있는 영화라고 봐요. 다만 이것은 옳고 그름 혹은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의 여부의 문제라기보다 나에게 맞는 작품 맞지 않는 작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7/01/07 16:58
왜 두 사람이 선택되었나가 아니라 제가 말했던 건 어떻게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었냐에 대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끈이 이어준 운명의 상대고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짝이죠. 두 사람이 왜 선택되었나, 어떻게 선택 되었냐의 문제를 제쳐두고 서라도, 두 사람이 왜 사랑하게 되었나. 혹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에서 그저 운명, 즉 무스비로 이어지죠. 그런데 이 무스비는 단지 운명의 상대에 대한 결정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사건과 모든 해결방식에 등장하고. 이게 즉 무스비 만능론이죠. 그렇기에 너의 이름은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그것을 넘어선 어떤 새로운 의미의 발전을 할 수 없었다고 보고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어, 그런데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의 해답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분명 영화는 조금 더 나아간 질문과 의미를 갖출 수 있었다고 보는데, 본문에 썼던 것처럼, 어떤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다른 특별한 의미의 도출이 아닌, 단지 운명론과 우연에 기댄 사랑 이야기에 그친다는게 아쉽다는 거죠.
17/01/07 17:02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이건 본문에 썼던 것처럼 신카이 마코토가 가장 잘하는 것이고 가장 장점인 거죠. 모든 개연성과 스토리를 무시하고 나아가더라도 두 사람만의 사랑에 충분히 집중하여 여운을 터뜨리는 그런 방식이요. 그런데 이건 본문에 썼던 것처럼 장점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한계이기도 하죠. 그 한계들이 계속해서 이런 사건이 많은 기존 작들, 구름의 저편이나 별을 쫒는 아이에서 나왔던 단점이기도 하고요. 너의 목소리가 어떤 신카이마코토의 대중성을 확보한다거나, 그의 장점을 충분히 잘 살린 영화인것은 분명 하지만, 그 동안 신카이 마코토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아쉽다는 것이죠.
17/01/07 17:06
왜 사랑하게 되었느냐는 작중에서 납득할 만큼 나온다고 느꼈습니다.
두 사람이 첫째로 잘생기고 예쁜(ㅡㅠ), 둘째로 주변인들과의 인간관계와 반응을 보건대 분명 좋은 사람인, 셋째로 그 사람과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부정기적으로 하루 웬종일(어떤 의미에서는 두 개의 몸으로 둘이 함께 있는 것보다도 더) 가까이 지낸, 넷째로 세상에서 셋도 없고 넷도 없는 단둘만의 특별한 고립 상황(서로 상대방의 몸에 갇힌다는)에 처한, 다섯째로 그런 상황에서 휴대폰 메모 기능으로, 노트로, 때로는 몸으로(!) 온갖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교환한 청춘 남녀라는 점에서요. 이 점은 이 리플타래의 첫플인 제이스님의 리플에도 소상히 나와 있구요. 이것은 단순히 무스비라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는 이미 작중에 표현되었다고 봐요.
17/01/07 17:12
문제는 그게 어떤 의미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달달하지만 공허하다고 하는 것이죠. 두 사람이 나열된 의미없는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들은 흐믓하지만 그걸로 끝이죠. 그것이 어떤 영화내의 의미나 다른 새로운 의미들로 발전하지 못하죠. 단지 헤프닝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가벼움은 장르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도 보지만, 분명히 더 나아갈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하거든요. 왜 두사람이 사랑하게 되었냐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나, 어떤 장면들을 통해서 더 특별한 의미로 도출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죠.
그렇기에 운명론과 우연론에 기댄 이 작품이 단순한 사랑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또 계속 말하지만 그게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그건 신카이 마코토의 강점이고 잘하는 것이지만 한계이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게 아쉽다는 것이죠
17/01/07 17:30
makka 님//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시네요. 저는 그 장면들이 단지 흐뭇한 해프닝으로만 끝난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츠하와 타키가 보낸 시간들이 그 하나하나 쌓여서 서로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토대가 되고, 혜성과 함께 찾아오는 갑작스런 단절이 사랑을 키우는데 으레 작용하는 연료로써 그것을 타오르게 만들었다고 보거든요.
저는 그 하나하나가 결코 작품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 시간이 토대가 되어 만들어져서 죽음과 망각이라늗 방해 요소로 완성된 것이라고 봐요. 때문에 두 사람이 단순히 인연이니까 사랑한다는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저는 너의 이름은이 여러 결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간의 감정의 전달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다고 보는지라... 이 부분에 한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각각 교환했음에도 서로 달리 보게 되는 부분이 없다면 언제까지 이야기해도 평행선일 따름일 테니 불쾌하지 않으시다면 이만하려 합니다.
17/01/07 18:03
저 신경쓰여요 님// 제가 말하고 있는 문제라는 건 그러한 에피소드들이 이러한 달달한 사랑 영화에 어울리냐 아니냐의 문제 같은게 아니라 그게 어떤 새로운 의미로 도출될 수 있는냐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달달한 사랑 영화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현재 너의 이름은이 보여주는 한계는 완성도 높은 사랑 이야기 그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게 한계라는 겁니다. 그건 본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것처럼 혜성이 어떤 도호쿠 대지진이나, 너의 이름이라는 질문이 재난의 피해자같은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위로나 애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완성도 높은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 처럼, 어떤 상징들로 이루어져서 충분히 여러 방향으로 해석 가능할 만한 작품은 절대로 아니고, 영화라는 작품이 단순한 수작을 넘어 명작의 반열로 올라가기 위해선 이러한 복층의 상징을 통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유기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아직도 계속해서 반추되고 작품성을 인정받고 다양하게 아직도 해석되고 있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본문에서 계속해서 말했던 것처럼 사랑 이야기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 우연과 운명에 기대고 스스로 가볍게 풀어내는 것으로 이러한 해석의 여지, 다양한 의미 도출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아쉬운 점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가 정말로 재난에 대한 애도나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너의 이름은?' 의 질문이 되려고 했다면 더 많은 영화적 의미를 도출해내려고 했다면 단순히 말했던 것 처럼 헤프닝처럼 흘러가는 에피소드가 아닌 분명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장면들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17/01/07 18:31
makka 님// 두 사람이 각자의 몸에서 생활하며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으로서 상대에 대해 알아가고 감정을 교환하는 에피소드에서는 두 사람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이상의 의미를 넣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mekka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으로 중요한 과정이에요.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가 들어갈 지점은 그 에피소드로 인해 태어난 사랑을 힘으로 삼아 두 사람이 온갖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결코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 하고, 마을 사람들을 구해내려 애쓰고, 결국 살아남아 미래를 함께하는 모습)에 있죠. 실제로 이 과정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를 잘 전달했기 때문에 유수의 해외 언론들이 너의 이름은이 재난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평가한 것일 테구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의 몸에서 생활한 시간들(이 시간들이 온전히 서로의 사랑을 키우는 데만 집중된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태어난 사랑이 이후에 찾아올 역경을 헤쳐나가는 무기가 되어주었으니까요)과 혜성 낙하라는 갑자기 찾아온 역경으로써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재난 극복을 위한 희망이라는 메시지 또한 그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과 엔딩에서 잘 전달되었다고 보구요.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의 몸에서 생활하는 동안 겪은 에피소드들은 그저 달달함만을 전하는 의미 없는 해프닝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랑을 키움으로써 혜성 낙하라는 역경에 맞서 싸울 힘, 그럼으로써 희망을 관객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힘을 배양하는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7/01/07 10:47
더 읽으면 관람에 방해가 될 듯하여,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을 들어 '소통의 부재'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부분까지만 보았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아서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다만, '소통의 부재'와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답변이 될 수 있는 감독의 인터뷰 한 소절을 적어드립니다.
- '별의 목소리'나 '초속 5센티미터' 같은 전작에서는 헤어진 남녀가 그대로 헤어진 채 끝났다. '너의 이름은'은 왜 해피엔딩이 된건가. = 내가 나이가 들면서 바뀐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2011년의 대지진이 큰 계기였던 것 같다. 2011년 이전의 일본인들은 "일본 사회는 이대로 계속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규모도 축소되는 등 사회가 쇠퇴하는 징조는 있었지만, 일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오고가는 행동이나, 너무 늦어버린 기차 같은 설정 말이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에서도 풍부한 의미를 더하려 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보다 '첫사랑을 잃고 살아간다'는 느낌이 더 중요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이후 그러한 전제는 무너졌다. 마을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마을로 남을 수 없다.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 극중에서 타키는 입사 면접에서 "도쿄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그런 감각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리는 이야기는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 마지막으로 생을 획득하는 것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문 : http://www.huffingtonpost.kr/kenji-ando/story_b_13926174.html
17/01/07 11:08
"별의목소리"부터의 팬으로서 공감하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본문에 쓰신 그의 장점들이 그의 작품들을 대중들과 멀어지게 만든 측면이 있고, 그래서 상업작가로서는 오히려 단점이기도 했죠. 그걸 극복해서 대중성을 확보하려다보니 그 단점이자 장점도 희석하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아직도 "초속 5센티미터"를 신카이 마코토의 커리어 베스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볼때마다 속이 쓰립니다. 그래서 좋아하지만, 또 그래서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어렵겠죠.
17/01/07 11:34
아직 이번 작품은 보지 못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봐온 것들은 그 순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뭔가 나중에까지 가슴을 울리는 그런게 없더라고요.
영상미가 화려하지 않아도, 대사가 적어도, 단지 몇 장면, 몇 대사 만으로 인생에 영원히 기억되는 작품들이 있죠. 워낙 이번 작품은 호평이 좋아 다를지 모르겠는데...
17/01/07 12:47
작품을 너무좋게 보았지만 공감도 합니다. 어찌보면 극장용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라고도 봐요 그래서 사실 소설판이 나와서 좀더 디테일하게 감정의 묘사, 나아가 주변인물들의 감정 묘사도 알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네요.
(츠카사와 오쿠데라 선배는 왜 싸웠을까요? 전혀 단서가 없지요?)
17/01/07 13:15
크크크 제목 재밌네요 빵터졌습니다 크크
저는 왠지 실사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또 흥행할 것 같아요.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코드들을 잘 버무린 애니같앙
17/01/07 13:46
전 설사 감독 자신은 저렇게 생각한다해도 관객들한텐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설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하다못해 스마트폰 다이어리를 보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을 증대시키는 과정 정도라도요.
그런대로 재밌게 봤지만 스토리 아귀 잘 맞는 스타일 좋아하는 저로서는 호감가는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더군요.(사고막는 장면 등등....)
17/01/07 17:51
여태까지 나온 작품들을 전부 봤는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특징이 소통의 부재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지만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신선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이번에 확 주목받았으니 다음작품에서도 비슷한 감성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비판을 받을 것 같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오프닝 노래 나올때 오글거린 것 빼고는 좋았네요. 초반부 지루해질만하면 한 번씩 웃겨서 잘 넘겼고, 그 이후부터는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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