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언어체계는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한 원리에 의해 운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문장을 말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단순하게 그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화와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복잡한 과정들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진행이 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아래의 문장을 들었다고 칩시다.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했다.
여러분이 이 문장을 들었을 때 바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런! 대통령이 정말 정치를 잘 못했는가보네." 인가요? 아닙니다. 대통령이 정말 정치를 잘 했는데 정신이 이상한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답은 바로 "대통령이 죽었다."입니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했다."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바로 자연스럽게 "대통령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가 우리에게 부연설명을 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내용을 알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어떤 한 문장을 들었을 때 두 번째 문장의 내용을 바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 우리는 앞의 문장이 뒤의 문장을 [함의]한다고 합니다. 즉 위의 내용에서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문장은 "대통령이 죽었다."는 문장을 함의합니다.
이런 함의관계의 문장들을 하나 더 살펴봅시다.
a. 철수는 오늘 개 한 마리를 샀다.
b. 철수는 오늘 동물 한 마리를 샀다.
위의 문장 a는 문장 b를 함의합니다. 즉, 우리가 문장 a를 들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장 b의 내용을 알게 됩니다. 누가 우리에게 "저기 말이야, 철수가 오늘 개를 한 마리 샀거든. 그 말은 곧 철수가 오늘 동물을 한 마리 샀다는 거야. 이제 알겠지?" 라고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다른 두 문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a. 철수의 형은 방금 서울에서 돌아왔다.
b. 철수는 형이 있다.
위의 두 문장들의 관계에 있어서 문장 a는 문장 b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철수가 형이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철수의 형이 방금 서울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철수에게 형이 한 사람도 없다면 문장 a는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함의]나 [전제]나 같은 거 아닌가? 자, 보라고! 내가 [철수의 형은 방금 서울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너에게 들었어. 그럼 나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철수는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 누가 나에게 철수는 형이 있다는 사실을 부연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없지, 안 그래? 이런 게 바로 [함의]라며? 그럼 위의 관계도 [함의]네. 결국 같은 관계를 괜히 두 가지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 거로구만."
정말 그럴까요? [함의]와 [전제]는 같은 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용어만 다르게 사용하는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함의]와 [전제]는 다릅니다. [함의]는 앞의 문장을 부정할 경우 [함의]의 관계가 깨져버립니다. 반면에 [전제]는 앞의 문장을 부정하더라도 [전제]는 살아있습니다.
다시 대통령의 예를 들어봅시다. (이러다가 어디서 마티즈가 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a.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했다.
b. 대통령이 죽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관계는 [함의]입니다. 그럼 이제 문장 a를 부정해 보겠습니다.
a.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하지 않았다.
b. 대통령이 죽었다.
이제 우리가 문장 a를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문장 b의 내용도 알게 되는 지 봅시다. [무정부주의자가 대통령을 암살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바로 대통령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대통령이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지병으로 사망했을 수도 있고 멀쩡하게 살아서 오늘도 업무를 보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a를 들었을 때 b를 바로 알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지병으로 사망했다면 누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추가 정보를 주어야 합니다. [함의]의 관계가 깨져버렸습니다.
[전제]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a. 철수의 형이 방금 서울에서 돌아왔다.
b. 철수는 형이 있다.
자, 이제 문장 a를 부정해 보겠습니다.
a. 철수의 형이 방금 서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b. 철수는 형이 있다.
이제 철수의 형이 서울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철수는 형이 있다"는 [전제]가 깨졌나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철수는 형이 있다"는 전제는 유효합니다. 이렇듯 [전제]의 경우 앞의 문장을 부정하더라도 여전히 해당[전제]는 유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함의]와 [전제]는 서로 다른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내뱉는 문장 속에서도 이렇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함께 여러 가지 의미론적인 관계들이 성립되고 전달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놀라운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 듣는 것 이면에는 이렇게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사족 퀴즈)
다음의 문장들은 서로 [함의]의 관계일까요? 아니면 [전제]의 관계일까요?
1.
a. 영희는 철수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알았다.
b. 철수는 담배를 핀다.
2.
a. 콩고민주공화국은 알래스카보다 크다.
b. 알래스카는 콩고민주공화국보다 작다.
3.
a. 선생님은 철수가 시험 시간에 컨닝한 것에 대해서 나무랐다.
b. 철수는 시험 시간에 컨닝을 했다.
4.
a.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통과했다,
b.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은 없다.
5.
a. 철수 아버지는 도박을 다시 시작했다.
b. 철수 아버지는 예전에 도박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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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제 / 2. 함의 / 3. 함의 / 4. 함의 / 5. 전제....
근데 2번의 경우는 같은 문장인데 이 경우에도 함의라고 말할 수 있나 모르겠네요. 수학의 부분집합 같이 자기 자신도 포함되는건가요?
그리고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왜 교과서의 예제는 쉬운데 연습문제는 난이도가 어려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