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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27 17:04:21
Name 王天君
File #1 deadpool_dmc_2670_v068_matte.1045_rgb_wide_1a6509acc4d6759a0ae466905cc75396e151b233_s900_c85.jpg (90.5 KB), Download : 68
Subject [일반] [스포] 데드풀 보고 왔습니다.


빨간 타이즈에 숨쉴 곳 없는 마스크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총질 도중 떠벌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냐면, 데드풀이라고 하는데 원래 본명은 웨이드 윌슨이야, 내가 이 꼬라지로 다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아니 이게 싫다는 것도 아냐 멋지지 않냐? 아가리 싸물고 고막을 열어봐 킴 카다시안 둔부처럼 너어얿게, 난 퇴역군인이고 그냥 뒷돈 받고 잡일 해주는 양아치 인생인데 단골 바에서 쥑이는 여자 하나를 만났거든, 이 여자가 겁나 새끈한데 나랑 또 죽이 아주 착착 맞아요 앞으로든 뒤로든, 쿵덕쿵덕 찰떡궁합의 점성도를 날이면 날마다 몸으로 시험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할 줄 알았는데, 인생 못생긴 게 아주 오져 디진다 나는 이렇게 잘 빠지고 미남인데,말 하도 보니 혈압오르네, 내가 암에 걸렸어 암에, 그래 그거 비련의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그거 말야 질질 짜는 거, 도대체 햄보칼 수가 없어!! 생명보험도 없어서 10억도 못받아!! 그래서 이걸 치료하려고 누굴 따라갔는데 말야, 아 바빠 죽겠네. 탕탕탕 피융피융 우당탕탕탕

<데드풀>은 다른 히어로 영화들에 비해 더 막 나가는 구석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비교는 “히어로 영화” 라는 장르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것도 잘 쳐줘서 그렇지 그렇게 튄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키만 작지 잘 생기고 쉴 새 없이 떠벌거리는 <아이언맨>이 있고, 여기저기 깐죽 털면서 아크로바틱하게 노는 <스파이더맨>도 있고, 아예 멤버 전체가 허당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있지요. 잔인한 걸로 치면 이미 <블레이드>가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영화들에 비하면 영화 전체의 명랑하고 발칙한 색깔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캐릭터만으로 뭔가를 강조하기에는 큰 차별점이 없다는 거죠.

영화는 지저분한 대사와 수위 높은 고어씬들로 개성을 확립하려고 합니다. 이는 곧 대사와 고어씬들을 제외하면 별 다른 특징이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렇다고 대사와 고어씬들이 대단한 유효타를 날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말도 많고 욕도 세고 잔인한데 그게 그렇게 웃기지가 않다는 거죠.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욕 하고 뻔뻔한 사람이 재미있을려면 욕하고 뻔뻔한 게 금기인 상황이 전제로 깔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출발부터 그 전제를 뒤집고 갑니다. 이 영화는 욕하고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구는 무대야, 라고 당연하게 여기니 대사나 고어씬의 파격이 급감해버립니다. 멍석을 깔고 노니까 기대치를 못따라가는 거죠. 데드풀에게는 모욕적일지 모르겠지만, <엑스맨 오리진: 울버린>에서의 웨이드 윌슨이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납니다. 너스레를 떨 수 없는 진중한 분위기에서, 옆에 멀쩡한 캐릭터들이 계속 츳코미를 날리니까요. 그래서 타이즈 같은 거 없이도 해당 영화에서 웨이드 윌슨은 짧은 순간의 대사와 액션이 더 튈 수 있었던 거죠.

또 다른 이유는 대사의 자극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꾸준히 터집니다. 이런 자극더미에서 충격의 공백을 대사로 메꾸려하니 영화가 부실해집니다. (웨이드 윌슨의 맨 얼굴은 별로 혐오감을 주지도 못합니다) 피가 터지고 뭐가 터져나가는 데 아무리 더러운 욕을 한다 한들 그 충격이 얼마나 셀 수 있겠어요. 그래서 대사들만 주를 이루는 장면은 코메디도 파격도 별로 약빨이 듣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건 제작비가 딸리는 데서 나온 궁여지책이긴 할 겁니다. 그렇다 쳐도, 이 영화의 액션도 별 다른 재미는 없습니다. 공중제비만 열심히 돌지 총과 칼을 이용한 데드풀의 액션은 어딘가 전형적입니다. <이퀼리브리엄> 정도는 아니어도 총과 칼을 같이 다루는 합이 좀 싱거워요. 그래서 이 영화의 대결들은 탈 히어로 영화를 자처하는 작품치고는 좀 기시감이 많이 들죠. 콜로서스와 투닥거리는 장면의 느낌으로 모든 액션이 괴상하게 흘러갔다면 어땠을까요. 액션 히어로라기보다는 덜 떨어지지만 치트키가 적용되어 있어서 악당 입장에서 처리하가기 곤란한 그런 느낌  말이죠. 신체 재생능력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 부분은 아마 CG 처리 비용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캐릭터와 주제를 그려나가는 데서도 영화는 모범생 같습니다. 대사랑 고어를 제거해보면 이런 점은 더 명확해지죠. 데드풀이 싸우는 놈들은? 다 나쁜 놈입니다. 데드풀이 싸우는 이유는? 여자친구를 구하고 싶어서죠. 제 멋대로인척 하지만 결국 권선징악에 강자의 윤리에 얽매여 있는겁니다. 이 영화에서 무고한 피해자라고는 택시비 떼먹히는 인도 친구 뿐입니다. 차라리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기고, 이를 수습하느라 주변 사람들이 욕하고 바쁘고 해야 데드풀의 무책임함이 좀 두드러질 수 있었을 거에요. 신호위반도 하고 클락션도 크게 울려대지만 데드풀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하지는 못하는거죠. 결국 데드풀은 “멋있는” 캐릭터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해서 본격적으로 망가지질 못합니다. 중간에 실수도 하고 황당한 짓도 하지만 마지막은 성공하고, 해내고 마는 히어로로서의 숙명을 데드풀은 그대로 완수해내고 있습니다. 히어로 영화의 공식 그대로죠. 이 영화의 유머 카피인 “로맨스”도 좀 진지한 구석이 있어서 깬다기보다는 히어로 영화로서의 당위를 부여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맙니다.

이 영화는 돌파구가 있었습니다. 데드풀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격뿐 아니라 제4의 벽을 넘나드는 구조적 특징에 있죠. 이 부분을 잘 활용한다면 훨씬 더 자유분방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스튜어트? 매커보이?” 라며 자기가 속한 엑스맨 세계관의 허구를 까발리는 데드풀의 특징을 활용하는 거죠. 그런데 <데드풀>은 이 가능성을 독백과 방백으로 한계짓습니다. 그러니 영화가 별로 참신할 것도 없게 되죠. 대신 이런 건 어떨까요. 영화 도중 촬영 스텝과 싸운다거나, 라이언 레이놀즈를 옆에 두고 자기가 진짜 존재하는 캐릭터인 척 한다거나, 감독한테 한 컷 더 가자고 징징대거나, CG 팀한테 밉보여서 와이어가 다 보이거나, 스턴트맨이 액션씬을 찍는 동안 라이언 레이놀즈가 쉬는 장면이 카메라에 걸려 데드풀이 막 화낸다거나, 시나리오 작가를 협박해서 내용을 바꾸거나, 중간에 영화 장르가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다거나… 이 영화는 히어로 무비라는 장르와, 영화 제작에 대한 메타 영화가 됐어야 합니다. ZAZ 사단의 못말리는… 시리츠처럼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면서 작품 전체를 혼란스럽게 휘저어놓았어야 했어요.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찔끔거릴 데 그쳐서 감칠맛만 납니다. 안티 히어로 영화를 표방하지만 결국 히어로 영화의 틀안에 머물러 있는 거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만큼 뽑아낸 영화이긴 합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의 본래 기질과 캐릭터의 궁합이 제일 잘 맞아떨어지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 결과물이 최고라는 생각은 안듭니다. 결국은 히어로 영화의 구속을 벗어날 수 없던 작품이 되버렸어요. 속편에서는 히어로 영화의 고정관념을 장르 바깥에서부터 부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전위의 가능성이 아주 큰 실험소재니까요. 히어로 무비계의 우디 앨런이 되지 마라는 법도 없잖아요?

@ 전 그래도 최소한 1분 정도는 영화가 아예 만화책처럼 컷컷으로 넘어가는 연출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2차원으로 세계를 뒤틀어버리는 장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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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욜롱
16/02/27 17:14
수정 아이콘
음 4차원 깨기도 사실 정도껏 해야지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서 아예 세트장임을 각인시키는 자치가 존재했다면 4차원 깨기라는 기믹에 너무 메달려서 오히려 무리수를 뒀다는 식으로 비판받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사실 드립 자체도 자막이 잘되었더라도 결국에는 미국인을 겨냥하는만큼 문화차로 인한 개그의 강도차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4차원깨기 강화 등은 결국에는 미봉책 내지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16/02/27 17:38
수정 아이콘
글 쓰신 걸 보니 극장서 본 미키마우스 단편이 생각나네요. 화면으 찢고 나오는 효과가 인상적이었죠.
Be[Esin]
16/02/27 17:50
수정 아이콘
순수 재미면에서 앤트맨보다는 낫겠죠?
작년에 워나크게 실망을해서...
王天君
16/02/27 17:52
수정 아이콘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앤트맨이 훨씬 좋습니다. 유머만 놓고 봐도 앤트맨은 타율이 엄청 높습니다.
저는 데드풀 보면서 딱 세번인가 웃었던 것 같아요. 그 중의 한번은 쿠키 영상이었고.
jjohny=쿠마
16/02/27 17:54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면, 쿠키영상이야말로... (후략)
Be[Esin]
16/02/27 17:56
수정 아이콘
Btv로 봐야겠군요크크
Galvatron
16/02/27 20:09
수정 아이콘
싫어요
16/02/27 20:17
수정 아이콘
덴드로븀
16/02/27 21:20
수정 아이콘
캐나다!
16/02/27 23:03
수정 아이콘
괴짜처럼 웃기고 잔인하고 4차원스러운게 데드폴의 정체성인거 같고 어느정도 그 매력을 보여주긴 했는데

그렇다고 엄청 웃기진 않고 엄청 잔인하지도 않고 관객들을 놀래킬 정도로 4차원스럽지도 않았던거 같아요.(쿠키영상뺴고)

전 데드폴이 관객들한테 말거는거 보다 [빅쇼트]의 인물들이 관객들한테 말거는게 더 신선하고 충격적었어요.
배글이
16/02/28 00:09
수정 아이콘
저는 최근에 본 마블영화중에 최고였습니다
윈터솔져 다음정도..
히어로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여친도 빵터지더군요
킹스맨느낌이 난다며..
오랜만에 영화관에 단체로 빵터지기도
하고요
16/02/28 02:16
수정 아이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영화 대사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마 영어 농담의 뉘앙스가 완전히 번역되지 않은 탓인듯 하네요.
서건창
16/02/28 11:30
수정 아이콘
대놓고 미국 정서의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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