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2/16 22:59:29
Name 라디에이터
Subject [일반] 21세기 버스 안내 양
날씨 좋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일할때 쓰는 모자 덕분에 머리는 떡이 져버렸다 안 그래도 내세울 거 없는 외모에 떡진 머리라는 흉을 새기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다 싶이 물로 정리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려 회사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때 열심히 만 원의 행복을 실천하여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이라서 가진 거라곤 현금 만 원짜리 뿐이었다.

버스 탈 때 만 원짜리를 내면 기사님이 싫어하시겠지 생각하면서도 딱히 근처 슈퍼에서 먹고 싶은 것도, 살만한 것도 없어 용감하게 만 원짜리를 내기로 결심을 하였다. 어느덧 기다리던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하여 특유의 문 열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겨 주었다. 기사님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에 만 원을 돈 통에 넣고 기사님을 보고 말하였다.

"저 만원짜리 넣었으니 잔돈 9100원 주세요"

"만원짜리 밖에 없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그냥 그렇게 넣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을 하고는 나에게 앞에서 다른 승객들이 낸 버스비로 잔돈을 채우라고 말하였다. 20세기에 사라져버린 안내 양이 21세기 들어서 이렇게 부활하나 싶었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사람들이 탈 때 마다 돈통 투입구에 손을 뻗어서 돈을 받았다.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안 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버스기사님은 외면한채 앞만 주시하고 있었고 난 상황을 설명하고 버스비를 받았다.

버스비로 내는 돈도 다양했다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조합으로 900원을 만드는 사람들 깔끔하게 오백 원 하나 백 원동전으로 900원을 만드는 사람 그중에서 제일 깔끔한건 천 원을 내서 백 원 거슬러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버스비를 받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있던 도중에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며 쭈볏거리며 돈 통에 굳이 돈을 넣으려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투입구는 내 커다란 손이 막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동전 뭉치를 헌납하였다. 그렇게 돈을 받은 나는 900원이 맞나 확인을 하였다 10원 짜리 10개 50 원짜리 6개 백 원짜리 1개 뭐가 이리 동전이 많아. 짜증이 나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세어도 900원이 안되는 500원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저 멀리 버스 뒷자리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에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저기 500원밖에 안되는 돼요 400원 더 주셔야 해요"

그러자 얼굴이 빨개지신 아주머니는 황급히 동전지갑에서 400원을 꺼내주며 말하였다.

"내가 돈을 잘못 세었네 미안해"

돈을 받아 오면서 뭔가 깨달았다. 실수로 잘못 준게 아니고 일부러 틀린 돈을 돈 통에 넣으려고 했던 거구나.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생겨서 당황했겠다. 생각하고 다시 돈을 받기 위해 돈 통 앞에 서있으며 왠지 웃음이나 버스기사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사님은 나를 바라보며 씩 웃으면서 말하였다.

"잘했어"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02/16 23:11
수정 아이콘
저는 이른 아침에 버스 타다가 회수권을 두고 나와서 만원 꺼내니까 아저씨가 안된다고 얼릉 문연 가게가서 무슨 가게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 당시에는 편의점이 없었으니까 아침에 문연 가게가 많지 않았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거기도 잔돈을 500원짜리로 주셔서 하루종일 500원짜리 10개이상 지니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라디에이터
16/02/17 00:20
수정 아이콘
저 역시 그날은 주머니에 동전이 가득한채 있었어요 흐흐
신동엽
16/02/16 23:13
수정 아이콘
감동일 줄 알았는데 피식 하고 끝났네요 크크
잘 봤습니다.
라디에이터
16/02/17 00:2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6/02/16 23:20
수정 아이콘
굿 잡!
16/02/16 23:20
수정 아이콘
라디에이터 님께 배려를 강요하는 프로불편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구요...
뭔가 네이버 댓글에서 시나 소설쓰는 반전(反戰 말구 反轉요)문학가도 아닌데 괜히 기사님의 버스안내양 시키기가 찝찝하고 아주머니도 어려우신 분이 아닌가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네요.
제가 요새 컨디션이 안 좋아서 괜히 그렇게 느낀건지... 추천 찍으신 분들 웃고 가신 댓글 다신 분들 모두 존중합니다 ㅠ
라디에이터
16/02/16 23:45
수정 아이콘
아마도 버스에서 한번에 만원을 다 거슬러주면 잔돈이 모자를까봐 기사님이
그렇게 대처한게 아닌가 싶어요. 아주머니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냥 돈이 모잘라서
말한거 뿐이예요.
16/02/16 23:54
수정 아이콘
넹... 저는 잔돈 전부 동전으로 받은 적도 있고 이름 확인해놓으면 나중에 계좌이체 해주겠단 적도 있었는데 둘다 서로 불편한 일이니 어찌보면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렵네요.
정성껏 긴 글 쓰셨는데 초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ㅠ 사실 그래서 글을 살짝 일찍 봤는데 차마 첫댓글로는 못달겠더라구요...
yangjyess
16/02/16 23:22
수정 아이콘
오옹 크킄킄 재미있는 헤프닝이네요 킄
야광충
16/02/16 23:42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좋아요..
곡사포
16/02/16 23:44
수정 아이콘
산 사람을 태우는 무서운 여자는?




버스안내양
라디에이터
16/02/17 00:20
수정 아이콘
아재요..
16/02/16 23:48
수정 아이콘
그 아주머니가 돈이 없어서 난감해하는 그런 스토리를 예상했는데..
16/02/16 23:50
수정 아이콘
제 친구도 고등학생때 이런적이 있었죠. 그 친구가 한 정거장 먼저 타기로 하고, 다른 친구들 대여섯명은 다음 정거장에서 타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만원짜리를 넣은겁니다. 동전을 탈탈 털어 수북이 받았지만 모자랐나봐요. 그래서 친구들 버스비를 거기서 빼려고 했는데 저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 전원이 교통카드를 찍었습니다. 그 친구의 애절한 외침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야 시옷비읍 찍지 말라고!!!!!!!!!
16/02/17 00:16
수정 아이콘
하지만 투입구는 내 커다란 손이 막고 있어서 크크크
아주머니에게 약간의 위로를 보내면서 라디에이터님 잘하셨어요~~
오마이러블리걸즈
16/02/17 00:19
수정 아이콘
한밤 중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크크크
잘 읽었어요!
마니에르
16/02/17 00:53
수정 아이콘
안내군 이시군요
빠니쏭
16/02/17 01:21
수정 아이콘
민폐네요 만원짜리를 넣고..
라디에이터
16/02/17 01:28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그래도 요새는 교통카드가 있어 햄볶네요
16/02/17 01:34
수정 아이콘
저도 실수로 버스에 만원넣은적이 (어~어~ 이러면서 바보같이 넣어버림) 있는데, 그때 버스의 요금함은 기사님도 열 수 없는 시스템이란걸 배웠습니다. 동전으로 수북히 거스럼돈을 챙겨갔었죠.
소야테
16/02/17 02:05
수정 아이콘
초등학생 때 학원에 가려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저금통을 깨가지고 10원짜리 100개를 봉투에 담은 후 요금통에 촤르르 쏟아부은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지폐/동전 분류하는 기계가 고장나서 기사아저씨한테 분노의 꿀밤을 맞았더라는...
숙청호
16/02/17 05:11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크크
16/02/17 08:55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좋습니다
16/02/17 09:49
수정 아이콘
글이 깔끔하네요. 그래서 다행이야
16/02/17 10:14
수정 아이콘
만 원밖에 없다 그러면

그냥 타세요~ 하는 경우도 많던데...
돌고래씨
16/02/18 08:13
수정 아이콘
잘했어 한마디에 빵터지네요 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660 [일반] 250년의 기다림, 카쿠레키리시탄 [41] 눈시10335 16/02/21 10335 12
63659 [일반] 아이돌 덕질... 스밍? 문투? 총공? [17] 자전거도둑6070 16/02/21 6070 0
63658 [일반] 정동영 "김종인 영입한 문재인, 부끄러운 줄 알라" [91] 에버그린11936 16/02/21 11936 8
63657 [일반] 늙다. [11] 헥스밤4433 16/02/21 4433 17
63656 [일반] 모로사와 치아키 별세소식 [13] 좋아요6611 16/02/21 6611 0
63655 [일반] 퇴근하고 저녁에 혹은 주말에 은행가서 계좌개설하기 [9] style8076 16/02/21 8076 1
63654 [일반] [스포주의] WWE PPV 패스트레인 2016 최종확정 대진표 [17] SHIELD6026 16/02/21 6026 2
63653 [일반] 박문성-스렉코비치 사건의 진정한 심각성: 박지성 경기도 안 보는 해설위원 [138] 사장31856 16/02/21 31856 69
63652 [일반] 트럼프의 승리로 공화당 지도부는 이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49] 군디츠마라12293 16/02/21 12293 2
63651 [일반] 이별 아닌 이별 [3] Igor.G.Ne4055 16/02/21 4055 0
63650 [일반] 대중 매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잡스 성공스토리의 이면 [60] 잊혀진꿈9215 16/02/21 9215 6
63649 [일반] 힐러리에게 골드만삭스에서 강연한 원고를 공개하라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110] 삭제됨14100 16/02/21 14100 3
63648 [일반] 그 날 홍대입구역에서(1) [6] 그래요3994 16/02/20 3994 6
63647 [일반] [프로듀스101] 투표 결과 관련 자료들 [36] Leeka6732 16/02/20 6732 0
63646 [일반] 나만의 저전력(미니)PC 활용을 소개합니다. [15] 자루스15213 16/02/20 15213 7
63645 [일반]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 [12] 임시닉네임3742 16/02/20 3742 3
63644 [일반] 새누리당의 내로남불 (데이터 주의) [77] 에버그린9651 16/02/20 9651 6
63643 [일반] 무슨 말을 하면 일단 부정하고 시작하는사람들. [28] arq.Gstar8289 16/02/20 8289 0
63641 [일반] 헐리웃 영화의 매출로 보는 한국 (극장)영화시장의 크기 [39] Rorschach11108 16/02/20 11108 4
63640 [일반] 재능기부? 후기 + 전기세 줄이기 [11] 6721 16/02/20 6721 1
63639 [일반] 말 끊는 사람..... [19] 성동구11092 16/02/20 11092 2
63638 [일반] 정알못이 쓰는 정치글 - 정의당편 : 신진사대부 [79] Mizuna8251 16/02/20 8251 8
63637 [일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사망했습니다. [47] Igor.G.Ne8462 16/02/20 846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