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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13 21:21:14
Name 바위처럼
Subject [일반] 쌍용차 대법원 판결, 그리고 카트.(스포없음)


쌍용차 해고무효 소송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했습니다.
정리해고는 정당하였다고 다시 판결이 뒤집어 진 것이죠.(1심 정당 2심 부당)
회계조작을 해가며 정리해고 명분을 만든 회사의 정리해고가 어떻게 경영상의 긴박한 위기로 해석하여 최후의 최후 선택지인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이 났는지는 범인의 머리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애시당초 노동자와 노사 사이에 적용되는 온갖 법들은 싸우기 시작한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살해시키는 것에 매우 유용하게 구성되어 있기때문에 헛웃음도 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인 법리인지, 정치인지는 그들만이 알겠지요.


영화 카트를 보았습니다. 상업영화로서 정말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특히 까르푸-홈에버 파업과 이랜드 파업을 중심으로 사건을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화가 바탕이면서 영화 내적으로도 개연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걱정하는 과도한 신파나 심각하게 작위적인 부분도 없었구요. 오히려 투쟁현장과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의 당사자들을 정말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간중간 감정을 마구 끌어올리려는 시도도 없었고, 현장에서 있을 법한 일들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영화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점(이걸 아쉽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무결하다고 하기도 좀 그러니)이 있다면 부당해고-노조결성-투쟁까지의 흐름이 너무 쉽게 표현되었다는 것.(실제 현실에서는 노조결성 지점부터 정말 많은 갈등이 생기니..) 그리고 상대의 대처가 현실적이지만 그다지 강하게 묘사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장에 나간 사람들의 실화를 들어보면 노조를 상대로 싸우는 용역들의 행태는 이 영화에서는 너무 착하게 그려졌다고 느껴졌으니...... 물대포도 사실 좀 약했고(포스터나 예고편 참고)...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저 물대포에 왜 쓰러지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았네요.


하지만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왜 잘싸우는지를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천천히 보여주며 만드는게 아닌 것처럼, 위의 단점들도 '상업영화'로서의 특징이지, 다큐였다면 단점으로 꼽혔을 것들을 억지로 꺼내본 것입니다. 영화는 촌스럽지도 않았고, 너무 이상적인 인간상만을 그리지도 않았어요. 다만 있었던, 있을법한, 지금도 있는 이야기들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영화적 개연성을 잃지 않고 잘 보여줬습니다. 2시간이 훌쩍 가버리더군요. 왠만하면 개봉일에 영화보고 이러는 사람 아닌데 오늘은 일찍봐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결말도 저는 참 좋았습니다. 영화관에는 엑소팬들이 굉장히 많아서 눈물 줄줄나는데 여중생들 사이에 낑겨 훌쩍대기도 참....어렵더군요. 그런데 엑소 그 경수?라는 친구도 연기 잘하더라구요. 배우들 밸런스가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일 놀랐던건 염정아씨.. 2001년 범죄의 재구성에서 그 엄청난 꽃뱀같은 포스는 어디가고.. 연기자는 이런거다 싶었어요.



각설하고, 카트는 올해 제가 주변에 거의 최초로 강추하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이런 주제(노동투쟁, 부당해고, 노사관계)등에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들에겐 '작위적'으로 느껴질수도, 혹은 개연성이 없다고 느낄수도 있습니다. 마치 SF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 하게 느껴질수도 있어요. '에이 쌍팔년도냐 저런데가 있게' 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 저는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런 노사관계의 갈등, 투쟁등을 그리는 것은 그 부조리함이 직관적으로 설명되지 않아서 영화로 표현하기는 굉장히 어렵죠. 이 부조리는 심층적인 구조가 첩첩히 쌓여서 등장하는 거고, 이 부조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금융과 자본의 관계,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 그리고 노동자와 인권, 시민권과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까지 다양한 관계성과 이론을 피해갈 수가 없으니까요. 촘촘하게 연계되어 구성된 부조리니까... 그런데 이건 영화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이걸 다 욕심냈으면 십중팔구 상업영화로서의 완성도는 곤두박질쳤겠죠. 밸런스가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영화와 실화에서 보여줬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따로 길게 써 볼 요량입니다. 5000자, 10000자로도 부족할 테지만.. 그냥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이 영화를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쌍용차가 2000일을 넘는 투쟁에서 또 큰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카트를 보면서 저를 포함한 대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살해자가 되가는걸까 하는 기분도 들었죠. 무관심, 냉소.. 불매로 함께 할 수 있는 싸움에서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뿐히 무시하는 행태. 저도 어딘가에서 그런 구매자였고, 누군가에게 그런 야속한 고객님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그런거 다 고려하면 할거 없고, 살거 없다지만.... 남들 죽는 꼴 무시하며 살아가는건 더 무서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을때가 되면, 그 사람들이 마음 한켠에서 떠오를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방관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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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天君
14/11/13 21:26
수정 아이콘
아이고. 이렇게 극장에 못가는 요즘 볼 영화는 늘어만 가고 ㅠㅠ
잘 봣습니다
그것은알기싫다
14/11/13 21:29
수정 아이콘
재판장이 서울남부지법 강인철 부장판사네요
도가니 사건때 국가상대로 피해자들이 낸 피해보상소송을 원고 패소 판결한 판사이기도 하네요.
판결이야 논리와 증거로 내야하는 것이지만 말이죠. 기분이 좀 묘하긴 합니다.
벌레이야기
14/11/13 21:39
수정 아이콘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니 안심이 되네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미생부터 웹툰 송곳, 카트까지 다양한 형태로 '노동'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쌍용차 문제처럼 현실은 별개죠. 어제던가요. 케이블업체 C&M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20m 높이의 전광판에 올랐더군요. 7월에 수리기사 109명이 해고됐고 그때부터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왔다고 하는데도 전혀 몰랐습니다. 무심한 저도 그렇듯, 사람이 허공에 매달려야만 이놈의 세상은 그 존재를 알아봐주나 봅니다. 전태일 열사 44주기, 우리 노동현실은 참 암담합니다.
새강이
14/11/13 21:42
수정 아이콘
저도 카트 보고 왔습니다..좀 영화 퀄리티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주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치킨과맥너겟
14/11/13 21:44
수정 아이콘
회계장부 조작은 밝혀진건데...해고가 정당하다니...도대체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멀면 벙커링
14/11/13 21:53
수정 아이콘
앞으로 적지않은 기업들이 직원들 해고시키고 싶으면 회계장부 열심히 조작하고 경영상 긴박한 위기에 처한 기업가 코스프레 연기 보여주겠군요.
리듬파워근성
14/11/13 21:56
수정 아이콘
어느덧 전태일 열사 44주기네요.
대학생이 되었을 때 전태일 열사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배는 너희가 노동전선에 섰을 때는 반드시 더 좋아질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저는 후배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자신이 없네요. 부끄럽습니다.
솔로10년차
14/11/13 22:03
수정 아이콘
법원이 정치를 해야하는 곳은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판결을 납득시켜나가야지 그저 법을 모르는 것들이라 치부하며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만이 지속된다면 사회가 위험해질겁니다.
사회정의보다 법조계의 관례가 우선시되는 것 '처럼'보이다가는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요.
花樣年華
14/11/13 22:22
수정 아이콘
이 나라 노답인증 어디까지 가봤니...
피즈더쿠
14/11/13 22:25
수정 아이콘
카트와 인터스텔라...이번주에 가서 봐야겠습니다.
치토스
14/11/13 22:45
수정 아이콘
어떠한 증거와 자료를 갖다대도 이미 답을 정해놓고 판결을 하는듯한 답정너 재판
광주인화학교 사건때문에 피해자들이 국가에 소송한것도 패소 시키더니 정말 싫어지네요 저 양반
WeakandPowerless
14/11/13 22:46
수정 아이콘
참 슬픈날에 그래도 이렇게 좋은 리뷰와 좋은 댓글 반응들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을방학
14/11/13 22:48
수정 아이콘
카트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꼭 보러 가야겠네요!
Judas Pain
14/11/13 23:39
수정 아이콘
회계조작에 따른 쌍용차 해고무효 소송 파기환송에 부쳐

양승태 대법원장 임명전 민변의 평가
http://m.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03

양승태 판사의 판례들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110051414491&code=115

양승태 체제 3년, 대법원 집중점검
http://www.hani.co.kr/arti/SERIES/627


0) 유신헌법-긴급조치 재판에서 모조리 유죄를 선고해서 합리화를 해주는 등, 체제 안전핀에 특화
1) 콩심은데 콩나고, 콩심은데 콩남.
2) 기득권은 3심까지 몰고가면 비용전으로나 판결방향으로나 이득
3) 저분 퇴임하시기 전까진 강자의 권리남용 부당함에 대한 법리 싸움은 가능한 피해야.

기본적으로도 보수적이지만 IMF시기 줄도산한 파산기업을 다룬 직책의 경험 때문에 일정한 문제는 있더라도 기존 체제(그것이 무에든)가 유지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인듯요. 악한 의도라기 보단 최종적으로 그것이 더 낫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겠지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기조로 느껴질 수밖에 없음.

필요한 대법원장이었는가? 작금의 한국이 체제안정성을 추구해야 할 시기였을까.
FIAT PAX
14/11/13 23:42
수정 아이콘
이러한 고독하고 지리한 현실을 고려하면 노조가 정치색을 띄지 않을 수가 없죠. 그 중에서도 목소리 큰 민노총 같은 곳이요.
관심가져주는 곳이 거기밖에 없으니깐

당장 pgr에서 9년이 넘어 10년이 다 되어가는 코오롱 불법파견/해고건, 뜨뜻미지근하게 해결 되었지만 5년을 끌었던 재능교육 사건
콜트기타의 숙련 근로자분들이 6년 넘게 '외로이' 싸우고 있는 건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그나마 웹툰,영화를 통해서라도 대중에게 전달 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14/11/14 00:09
수정 아이콘
조작된 장부도 진실이 되어 가장의 일자리를 없애버리는 작금이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모모리
14/11/14 00:19
수정 아이콘
저도 카트 정말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최근 본 영화 중 단연 으뜸이었어요. 아쉬운 점이 없었냐 하면 물론 아니었습니다만 상업영화로서 타협점을 잘 찾아낸 느낌이었습니다. 몰랐는데 엑소 멤버가 나오나 보군요? 어쩐지 여학생들이 많더라니...;
벌레이야기
14/11/14 01:25
수정 아이콘
엑소 디오가 출연합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연기가 좋았고,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아이돌의 출연이 반갑네요. 영화를 본 10대들이 마트 판매직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 같고 비정규직 노동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4/11/14 08:43
수정 아이콘
쌍차판결은 정말이지 우리나라가 사법부는 여전히 썩어있다는걸 여실히 보여주는것 같네요. 마침 수능날이랑 날짜도 겹쳐 묻히는분위기..
5년동안 투쟁해온, 세상을 달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네요.
영화 카트는 부분부분 연출이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여자감독만이 표현할수 있는 감정의 디테일이 맘에 들었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네요.
안보신분들은 보셔도 후회는 안합니다.
Go2Universe
14/11/14 14:34
수정 아이콘
댓글이 20개도 안되면 너무 슬플거 같아 20개 채울려고 댓글써요.
그래도 어쩌겠나요. 계속 살아나가야하는 것을.
2심이기고 기분좋았던 모습들만 자꾸 떠오르네요.
한들바람
14/11/14 15:37
수정 아이콘
저같은 인간한테는 제발 특권층들하고 맞상대할 일만 없어라 빌면서 사는 세상인거죠 법같은걸로 실제력을 이길수 없는 나라면 국민소득이 얼마든 후진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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