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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02 10:00:01
Name 王天君
File #1 A_Chriot_in_the_sky.jpg (38.5 KB), Download : 60
Subject [일반] (스포) 하늘의 황금마차 보고 왔습니다.



밴드를 꾸려나가고 싶은 뽕똘은 돈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둘째 형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들은 첫째 형을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옥살이 이후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던 셋째 용필이 있었고, 오랜만의 재회도 무색하게 이 셋은 첫째형이 죽고 나면 집을 어떻게 얼마나 나눠가질 것인지를 두고 티격태격하기 시작합니다. 옥상에서 으름장과 건방짐이 오가던 중 앓아 누워 있던 첫째 형은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지고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입원을 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 의사를 앞에 두고 다시 싸우는 이 형제들에게 첫째 형이 갑자기 외칩니다. “ 우리 다 여행이나 가자. 따라오는 놈한테 집준다!”

잘 쳐줘야 아저씨, 넷 중의 셋은 반백살을 넘기거나 근접해가는 이 ‘안’젊은이들이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동시에, 굴러들어온 돌과 박힌 돌이 늘상 으르렁대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뽕똘이 키우고 있는 밴드 황금마차 역시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밴드 전원이 후리한 하늘색 면바지에 흰 색 면티 하나 유니폼 삼아 주섬주섬 짐을 꾸립니다. 갈 날이 머지 않은 어르신과 유산 상속의 꿍꿍이를 품은 나머지 형제들의 발걸음이 집 바깥으로 이어집니다. 투닥대는 멤버들을 간신히 다 태우고 자동차 한대가 부릉거리며 창 밖의 풍경을 뒤로 보내기 시작합니다. 구질구질한 노인네들과 별 볼 일 없는 청년들의 여행에 낭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뚜렷합니다. 4형제와 황금마차 밴드의 유람을 통해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고 하나가 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내내 싸웁니다. 술에 취해있는 셋째형은 막내 뽕똘을 내내 하수인 부리듯 막 대하고 욕을 퍼붓습니다. 뽕똘은 궁시렁거리거나 대들고, 한편으로는 둘째 형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둘째형은 셋째와 막내를 어르고 달래면서도 첫째형한테 자신이 상속자임을 어필하려고 은밀한 공작을 펼칩니다.  황금마차 밴드 역시도 말 속에 가시를 품고 찔러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그들의 여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의 갈등은 그들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동생들의 싸움에 진력이 났는지 첫째 형님은 치매끼에 몸을 맡기고, 음악소리를 따라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연주하던 황금마차 밴드를 우두커니 서서 보다가 나팔을 뺏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형을 추적하던 나머지 형제들도 난데 없는 나팔 쟁탈전의 현장에 당도합니다. 셋째는 적반하장으로 밴드를 혼내고 셋째의 주정과 밴드의 불만사이를 중재하느라 막내 뽕똘은 정신이 없습니다. 빼앗은 나팔을 들고 있는 첫째 형은 딱히 기쁨도, 쟁취의 영광을 표현하는 일도 없이, 그저 멍하니 이 분란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두 축인 ‘젊음’과 ‘늙음’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늙음이 처음으로 하는 일은 젊음의 흥에 분탕질을 치는 것입니다. 젊음이 가진 생기와 힘이 부럽고 미워서 그 원천을 빼앗고 싶었을 수도, 혹은 자신도 그 젊음을 되찾고 싶어서 나팔에 그렇게 매달렸는지도 모릅니다. 첫째 형뿐 아니라 셋째와 넷째 역시도 젊음에 동화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젊음이 딱히 늙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늙음이란, 아직 멀고 우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들의 자동차가 공동묘지 근처에서 고장나지 않았다면, 결코 머무르지 않았을, 생경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섞이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불만만을 표출하다 그렇게 엇갈려 늙음과 젊은은 이내 각자의 길을 갑니다.

뽕똘 사형제는 조금씩 서로를 챙기기 시작합니다. 술에 찌들어 체력이 엉망인 셋째는 힘에 부친 몸을 발걸음에 싣고가기 버거워 뒤쳐지는 일이 많아지고 그런 그를 둘째는 걱정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고기를 구워먹으며 셋째는 더 이상 술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고 첫째는 동생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놓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서로에게 신경질을 터트리고 맙니다. 딸 줄려고 만든 작은 인형을 첫째가 삼키자 뽕똘은 진력을 내며 악담을 퍼붓습니다. 아침이 되자 첫째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형제는 혼비백산하여 첫째 형을 찾아나섭니다.

차가 고장나 리어카에 악기를 싣고 길을 가던 황금마차 밴드는 즉흥 연주를 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을 자기 집이라 착각하며 골목길에서 헤매던 첫째는 다시 한번 음악 소리에 이끌려 밴드의 뒤를 따라가고,  사라진 형의 발자취를 쫓아 온 뽕똘 4형제도 다시 밴드와 마주칩니다. 첫째 형을 모셔가려하지만 첫째 형은 같이 가기를 거부하며 고집만 부립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밴드의 누군가가 트럼펫을 불기 시작하며  뒷걸음질치자 첫째가 뭐에 홀린 듯 트럼펫 연주를 따라가기 시작하고, 남은 밴드와 형제들도 그 음악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젊음과 늙음은 더 이상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재회했고, 서로를 이끌고 따라가며 그렇게 어우러집니다. 첫째가 헤매던 골목길에서 어느 할머니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놓고 연주하는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그 장면은 젊음과 늙음이 그렇게 나누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희망에 대한 암시일지도 모릅니다. 무표정하게 밴드를 응시하던 할머니는 황금마차 밴드의 음악에 함께 즐거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집 안에 박혀 버섯처럼 숨어있던 늙음이 최소한 세상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삶과 세상을 향해 다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늙으면 집구석에 처박혀있는 존재가 아니라, 흥겨운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호기심을 내보낼 수 있는 존재로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직도 그렇게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백사장을 거닐며 밴드의 음악에 취해 여러 구경꾼들과 함께 흥을 만끽하던 첫째 형은 춤을 추다 갑자기 쓰러집니다.

병원으로 서둘러 간 형제들은 큰 형의 중세가 정말로 위독해졌음을 알게 됩니다. 여전히 물려받을 집을 두고 물밑 협상과 서로의 권리를 앞세우던 이들 형제도 큰 형에게 사랑한다는 비디오 메시지를 보내며 비로서 싸움을 멈춥니다. 그리고 리어카에 형을 싣고 가던 뽕똘은, 치매 때문에 아직도 자신이 결혼하지 못한 줄 걱정하는 큰 형에게 자신의 딸을 보여주겠다 결심합니다.

뽕똘의 딸은 영화가 보여주는 화합을 상징하는 최후의 숙원이자 미처 다 풀지 못한 갈등입니다. 그의 딸은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뽕똘이 손수 만든 아기자기한 인형도 좋아하지만, 헤어진 그의 아내는 뽕똘이 딸을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고이 만든 인형들은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큰 형에게 딸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뽕똘은 고개를 돌립니다.

이제 큰 형은 자신의 생이 끝나감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자신의 집에서 그는 생의 어떤 때보다도 흥겹고 즐거운 순간을 맞이합니다. 영화는 그의 죽음을 비통하게 표현하는 대신, 천상병 시인의 소풍처럼 마지막 순간을 모든 이가 다 같이 하나가 되는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신나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황금마차 밴드가 있고, 그의 곁에서 얼싸 안고 춤을 추는 동생들이 있으며 그가 미쳐 보지 못했던 뽕똘의 귀여운 딸이 무대 중앙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하늘의 끝으로 황홀하게 떠나는 첫째 형의 죽음을 두고 영화는 모든 것을 합칩니다. 서로 싸우던 형제, 밴드, 늙음과 젊음, 그리고 보지 못했던 뽕똘의 딸이 포함된 비현실과 현실, 삶과 죽음까지도 하나로 화하며 그렇게 영화는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가장 신명나는 순간으로 뒤집습니다.

흥겨운 영화입니다. 뮤지컬 영화로서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노래도 좋고 신납니다.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바라보고 보여주고자 하는 점이 좋네요. 그리고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영화는 제주도란 공간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스크린에 할애합니다. 화려하고 제일 큰 섬이 아니라, 사람이 부대끼고 나이를 먹어가는 공간으로서의 정취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네 삶이 다 그런 것처럼, 그렇게 울고 소리지르면서도 나중에는 풀리고 마는 넉살과 살가움에, 영화를 보며 간만에 진짜 사람 내음을 느껴보네요.

@ 한글 자막이 뜨는 한국 영화는 다찌마와 리 극장판을 본 이후로 처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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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icWolf
14/10/02 10:26
수정 아이콘
포스터가 딱 제 스타일인데...
이 영화 어디 걸려있던 걸 못 본거 같네요; 혹시 특정 영화관에서만 하는 영화인가요?

스포일러 때문에 리뷰글을 읽어 말어 이러고 있네요;;
王天君
14/10/02 14:57
수정 아이콘
메가박스에서 많이 열긴 했는데 지금은 좀 내렸을 거에요.
이런 영화는 좀 많이들 봤으면 좋겠는데 제가 게을러서 항상 감상문을 늦게 올리네요 ㅠ
애패는 엄마
14/10/02 12:42
수정 아이콘
전혀 몰랐던 영화인데 만든 사람들의 면면이 구미를 당기게 하네요.
지슬 감독에 지슬 출연 배우들이 주요 배우들이고 킹스턴 루디스카에 돈스파이크 음악에 국가인권위원회 제작에 진진배급이라니
딱 좋아할 사람들은 좋아할 영화로 만들어질 재료는 다 갖췄는데 근처에 개봉한데가 거의 없네요
프랭크, 순천, 족구왕 등도 보고 싶은데 마찬가지고
SuiteMan
14/10/02 13:10
수정 아이콘
영화 한편을 거의 다 본것같네요;; 말씀하신것과 다르게 너무 슬픈 영화일것 같아요..
王天君
14/10/02 14:54
수정 아이콘
하나도 안 슬픕니다. 오히려 큰 형이 죽는 순간이 제일 신나고 흥겨워요. 최루끼가 하나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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