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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25 10:07:32
Name 글곰
Subject [일반] 奇談 - 아홉번째 기이한 이야기 (3)
  기담 때문에 자료수집을 해야 하는데....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네요. 인터넷서점에서 구하려고 해도 다들 오래된 책들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술서적이라 일반서적과는 달리 배송이 일주일 가량 걸리는 문제도 있고요. 한 수요일까지 책을 구하지 못하면 잠시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으. 혹시라도 차사본풀이 채록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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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종이 울리자 그는 발을 질질 끌며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젊다고는 해도 삼십대 초반쯤일까. 남자보다 약간 더 키가 크고 서너 살은 많아 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남자는 남자를 보자마자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린 채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뭡니까?”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잠시 후에는 부아가 나기 시작한 남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양복을 입은 남자는 인상만 쓰고 있더니 갑자기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졌다.

  “맙소사. 거울 본 적 없습니까?”

  “거울? 뭔 거울요?”

  몇 개월에 걸쳐 다듬어 온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을 보는 건 싫은 일이었기에,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는 의식적으로 거울을 피하고 있던 남자였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말없이 현관 안으로 들어오더니 구두를 벗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철제 현관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곧 화장실을 찾아 불을 켰다. 그리고 남자에게 손짓했다.

  “이리 들어와 보십시오.”

  “뭐하는 겁니까, 지금.”

  처음 만난 양복을 입은 남자의 황당한 행동에 짜증이 난 남자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의도는 위협이었을망정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오히려 힘없는 한탄조에 가까웠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손을 내밀더니 남자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남자는 한때 탄탄했던 근육이 무색하게 휘청거리며 속절없이 끌려갔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세면대 위의 거울을 가리켰다.

  “잘 보십시오.”

  “보이긴 뭐가 보인다고 그래요? 내 얼굴이나 보이지.......”

  짜증스럽게 대꾸하던 남자의 말이 문득 멎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한동안 면도는커녕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얼굴 옆에 일렁이는 듯 투명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그것을 응시했다. 자신의 얼굴 옆, 어깨 위로 보이는 것은 비록 투명했지만 그 윤곽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둥근 윤곽에 중간쯤에 움푹 들어간 곳이 두 군데 있고 그 아래로 쭉 뻗어나가는 직선. 그리고 다시 가로로 그어진 선. 왠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였다.

  “.......이거.......”

  갑작스럽게 다리에 힘이 빠지는 바람에 그는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세면대를 양손으로 부여잡아야 했다. 세면대를 붙든 팔이 와들와들 떨렸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부축해서 거실로 나갔다. 남자는 벽에 등을 대고 반쯤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려진 입 밖으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얼굴.......”

  “당신에게 씐 영입니다. 대낮에 이 정도로 뚜렷하게 보일 정도면 지독하군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주저앉은 채 속절없이 떨고만 있었다.

  “혹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얼굴입니까?”

  양복을 입은 남자가 묻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재차 물었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꿈에서요.”

  남자가 진저리를 쳤다. 꿈에서 나오는 핏빛 옷을 입은 여자. 그 여자가 틀림없었다.



  결국 여자는 결혼한 지 거의 십 년 만에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고급 주택가에는 소위 사모님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비교적 젊은 그녀를 모임에 끌어들이려고 빈번히 권하며 한참 동안이나 애쓰던 터였다. 그동안 난처해하며 매번 거절해 왔던 그녀 쪽에서 먼저 관심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사모님들은 다함께 환영의 깃발을 열렬하게 흔들어 댔다. 처음 모임에 참석한 장소는 근처의 커피숍이었다. 그녀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사모님들이 왁자지껄하게 환호를 보냈다.

  “아유, 잘 왔어.”

  “맞아 맞아. 젊은 사람이 기분전환도 하고 그래야지.”

  “나이가 몇이랬지? 서른둘이랬나?”

  “저어, 서른넷이요.......”

  “이야. 젊어서 좋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게 몇 년 전이유? 십 년 전?”

  “이거 왜들 이래? 누군 언제 안 젊어봤나.”

  “아이고 새로운 사람 왔는데 뭐가 이렇게 정신이 하나도 없어?”

  “맞아 맞아. 좀 소개도 해 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여기 다들 좋은 언니들이니까 맘 편하게 있어.”

  “그나저나 진짜 우리 모임 에이스네 에이스. 무슨 운동을 했기에 몸이 이렇게 좋아?”

  “아, 뭐 딱히 하는 건.......”

  쉴 틈 없이 오가는 수다 속에서 그녀는 정신마저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오후 네 시에 시작한 모임은 여섯 시가 되자 식사 장소로 옮겨졌고, 여덟 시가 넘자 다시 자리를 옮겼다. 그녀들은 익숙한 듯 저마다 몰고 나온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 일사불란하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자동차의 행렬이 향한 곳은 화려한 번화가 뒷골목의 룸살롱이었다. 발레파킹 담당에게 차키를 던져준 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입구로 우르르 들어서자, 딱 달라붙는 감색 양복을 입고 왁스로 앞머리를 꼿꼿이 세운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허리를 직각으로 깍듯이 굽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모님들은 그녀를 한가운데에 앉히고는 실장이라는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앞 다투어 말을 쏟아냈다.

  “새 멤버가 왔거든. 여기 젊고 예쁜 사람 보이지? 제일 물 좋은 애들로 데리고 와.”

  “맘에 안 들면 다시는 안 올 거니까 서비스 제대로 해야 해.”

  “얼굴만 잘 생긴 애들은 안 돼. 허벅지 굵은 애 있지?”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까르르 하고 사방에서 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는 그녀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옆에 앉아있던 최 사장네 사모님이 -모임의 회장 격이었는데 그녀와 띠동갑이었다-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씩 웃었다.

  “자기, 이런 데 와서 그렇게 딱딱하게 있지 마. 재미있을 거야.”

  그녀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문이 열리더니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줄지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훤칠한 키에 매력적으로 생긴 남자들이었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것도 같았다. 거의 십여 년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네.’

  파트너가 투철한 봉사 정신과 매력적인 영업용 미소를 남긴 채 돌아간 후, 그녀는 홀로 호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독일산 자동차 한 대를 구입했다. 오후에는 백화점으로 가 고급스러운 옷 두 벌과 구두, 그리고 명품가방 하나를 덧붙였다. 남편의 카드로.

  남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귀신이라니. 그런 게 진짜 있는 겁니까.”

  남자는 기가 죽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남자는 힘없이 한숨 비슷한 것을 내뱉었다.

  “뭐 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왜 하필 나한테.......”

  “그게 문제입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지독한 영은 상당히 드문 편입니다. 게다가 조금 특이한 케이스네요.”

  특이하다? 그럼 정상적인 귀신은 어떤 건가 싶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몇 가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얼굴인가요?”

  “아니요. 전혀.”

  남자가 강하게 부정했다.

  “언제부터 이 영이 들러붙은 겁니까?”

  “아니, 언제부터라고 해도 내가, 아니 제가 그걸 어떻게.......”

  양복을 입은 남자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질문을 바꿔야겠군요. 꿈에서 저 영을 보았다고 하셨죠?”

  “예.”

  “그럼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습니까?”  

  “어디 보자....... 대략 이 주쯤 된 거 같네요.”

  “이 주일이라. 꽤 되었군요.”

  심각하던 양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남자는 몸을 살짝 떨면서 꿈속에서 보는 장면을 이야기했다. 꿈을 꿀 때마다 그 귀신이 피칠갑을 한 채로 다가오는 바람에 지금은 아예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야기를 들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골똘히 뭔가 생각하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꿈을 꾸기 시작한 날을 기억하십니까?”

  남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쉽게 잊힐 리 없었다.  

  “그럼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한 자세히.”

  남자는 난처했다. 연상의 유부녀인 애인 집에 가서 섹스를 했다는 건 소위 불알친구들과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면서 자랑거리로나 할 만한 이야기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곳도 자못 심각한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에 전화 너머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무조건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

  반 년 가까이 만나 오는 동안 그녀는 항상 자신감 있고 쾌활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능력 있는 직장 여자상사 같다고 그는 생각하곤 했다. 어딘가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난처해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날 아침이 처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남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능한 자세히. 그러다 보니 결국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여자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해야 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다만 단 한 번, 베개에서 부적을 꺼냈다는 부분에서 잠시 흠칫하더니 입을 가린 채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남자는 다소 당황하면서도 내친 김에 이야기를 끝까지 계속했다. 말을 마치자 목이 바짝 타들어가면서 한순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켰다. 물에서는 어렴풋이 쉰내가 났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부적이라니. 정말 그런 게 가능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한테 묻는 건가? 하지만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또박또박 존대를 쓰던 사람이 갑자기 반말을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양복을 입은 남자가 흠칫하더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예.......”

  남자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두어 번 젓더니 뜻밖에도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앉기도 어색하고 일어서 있기도 어색해 하릴없이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멍하니 텅 빈 냉장고 선반을 쳐다보았다. 전화가 연결되었는지 양복을 입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원입니다. 좀 심각한 일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예. 축귀(逐鬼)가 필요합니다. 지독합니다. 게다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빙의시킨 것 같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다시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예. 저는 누구 짓인지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전화를 끊더니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낡아 보이는 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몇 줄을 휘갈기더니 내밀었다. 남자가 받아 보니 어딘지 모를 주소였다.  

  “택시를 타고 이 주소로 가십시오. 석길대 큰무당을 찾으시면 됩니다.”

  “무당....... 이라고요?”

  남자가 그악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정색하며 말했다.    

  “분명히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이 주일 되었다고 하셨죠?”

  “에에, 화요일 밤이었으니까 정확하게 이 주일이긴 한데.......”

  “보름입니다.”

  “뭐가요?”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이 말입니다.”

  남자는 숨이 턱 막히는 바람에 미처 입을 열지 못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바짝 다가서다니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다시 말했다.  

  “오늘이 지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십시오. 당장이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더니, 자기가 바로 그런 꼴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이지 일단 한 번 시작하고 나자 남자들을 만나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돈이 있는 한은. 여성 전용 룸살롱의 실장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허리를 조아렸고 호스트바의 바지사장들은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었다. 그녀는 모임 회원들과 함께 도도하게 고개를 든 채 젊은 남자들의 행렬을 기다렸다가 그저 손가락을 까딱해서 선택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후 술시중부터 재롱잔치와 장기자랑, 침대 속의 봉사까지 그 모두가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녀는 그저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한두 해가 지나자 차츰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녀가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았고, 팁을 내밀면 항상 남자들은 없는 꼬리라도 만들어서 흔들 기세였다. 그 어디에도 긴장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임에 가는 것도 어느덧 시들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장소는 교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적지조차 정하지 않은 채 드라이브를 하던 그녀의 눈에 문득 그 레스토랑이 들어왔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배가 고팠기에 그녀는 차를 세우고 들어가 대강 파스타를 주문했다. 오후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는 식당 안은 조용했다. 잠시 후 서빙을 담당하는 젊은 직원이 다가와 포크며 나이프 따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세팅 중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나이는 이십대 중반쯤일까. 그럭저럭 괜찮게 생긴 남자였다. 특히 손가락이 길고 손톱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내밀어 서빙남의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을 때에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곧 세팅을 마친 남자가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내가 미쳤구나. 남자에 환장했나? 대체 뭘 한 거야?’

  부끄러운 바람에 당장이라도 일어나 나가고 싶었지만, 주문하자마자 나가겠다고 하는 것도 민망한 노릇이라 그녀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다시 서빙남이 주문한 파스타를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외면한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파스타 접시가 놓이는 소리가 나고, 다시 저편으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시선을 테이블로 돌렸다. 접시와 포크 사이에 종잇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전화번호와 퇴근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 때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그녀는 훗날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레스토랑 인근에 차를 대 놓은 채 저녁까지 기다렸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남몰래 좋아하던 아이에게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내밀던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괜히 콤팩트를 꺼내 눈 주변과 뺨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이라인을 정리한 다음에 립스틱을 새로 발랐다. 서빙남의 퇴근시간까지는 네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그 시간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흘러가 버렸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자 그녀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데이트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과 다른 점이라면, 데이트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근 모텔로 향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무수히 접했던 술집 남자들에 비해 테크닉은 부족했고 시간은 짧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기꺼워하며 남자의 몸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다음날 헤어지면서 그녀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이틀 후에 서빙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조그만 선물을 하나 보내고 싶다는 남자의 말에 그녀는 웃으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다시 사흘 후에 그녀에게 등기우편이 도착했다. 우편물 속에는 서빙남과 그녀가 벌거벗은 채 뒤엉킨 노골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매우 선명하게 잘 보이는 고해상도 사진이었다. 동봉된 메모지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금요일 정오까지 현금으로 금삼천만원정. 아니면 남편에게도 송부.'

  그녀의 세계가 부서졌다. 다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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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4/08/25 11:12
수정 아이콘
잘 읽고 있습니다~
아케르나르
14/08/25 11:53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고 있어요.
사악군
14/08/25 12:3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전주의
14/08/25 13:17
수정 아이콘
오늘에서야 시리즈 새로 쓰신거 보고 3편을 순식간에 읽었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14/08/25 15:12
수정 아이콘
아 현기증이 납니다.. 엉엉

근데 시리즈 연재하실때 다 써놓고 나눠 올리시는건가요 아니면 올릴때마다 쓰시는건가요
14/08/25 15:15
수정 아이콘
다 써놓고 올립니다. 예전에 한번 쓰면서 올렸더니 앞뒤가 괴이하게 꼬여버리는 통에 다시는 안 그러려고요.
14/08/25 18:12
수정 아이콘
써놓고 올리신다니..웬지 연재가 빠르게 올라올꺼 같아서 기쁩니다.. ^^;;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4/08/25 15:33
수정 아이콘
글곰님,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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