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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01 00:42:57
Name nickyo
Subject [일반]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투쟁에 참여하고 나서 느낀 점
평소라면 서두를 길게 늘여쓰는 것이 제 특기이나, 이번에는 서두를 확 잘라내고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려 합니다.
최근 강남역 8번 출구 앞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지회분들이 노숙투쟁을 하고 계시죠.
임금과 고용불안에 관련한 꽤 긴 투쟁입니다만, 기존보다 좀 더 연대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역시 염호석 열사와 관련된 일이 기폭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의적인 임금탄압과 법적 노조 권리조차 지킬 수 없었기에 그 무거운 책임에 눌려 결국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부디 자신의 죽음으로 살아있는 동료들의 승리를 기원한, 어디에나 있을만큼 착하고 어디에도 없을만큼 숭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장례조차 유서대로 치르지 못한 염호석열사.. 장례식장의 생모에게 최루액을 뿌려가며 기어코 시신을 탈취한 경찰과 그러한 의사결정을 내린 생부, 그 이면으로 지목되는 삼성전자까지.. 저도 이 정도에서 '처음으로' 투쟁에 참가하고자 결심을 세운 기억이 납니다. 이건, 아니어도 너무 아닌게 아니냐고.


사실 투쟁? 시위?에 처음 참석한 것은 촛불시위였으나, 어떤 기업의 투쟁에 연대해 본 것은 나름 첫경험이었는데요. 저희 학교는 완전히 '비권' 총학이다보니 이러한 이슈에 대자보 한 장도 안 붙이는 대학입니다. 알면서 그러는건지, 혹은 모르면서 그러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차 하다가 취업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싶어 그럴지도 모르겠고.. 애매한 서울 4년제 대학의 입장이란게 뭐 그런거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전 완전 개인, 시민의 상태로 참석을 하게 됩니다. 대오 맨 뒷줄에 혼자 앉아서 구호를 잘 몰라 팔을 흔들면서도 열사! 정신! 계승! 투쟁! 을 어버! 어! 어러! 투쟁! 하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게다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는 눈초리는 마치 이거 사복 경찰 쁘락치아냐? 하는 묘한 의심이.. 뭐 생긴게 그러니 납득은 갑니다만. 요즘 비정규직 투쟁이 워낙 대중과 멀어지기도 했으니 그럴수도 있지요. 하지만 짧게나마 한 시민으로서 이 투쟁에 공감하고 응원하고 싶어 왔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면 처음 뵙는 분들도 웃어주셨습니다. 그 웃음이 참 값지다고 느꼈어요.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싸우시는 모습들이..



아무튼 그렇게 시위를 다녀오고나니, 뭔가 뿌듯함과 허무감이 동시에 공존하더이다. 뿌듯함은 일종의 '행동'에 대한 뿌듯함이었죠. 그러니까, 나도 사회 부조리를 향해 한 마디 더 했고, 행동했다! 하는 느낌.. 허무감은, 내가 그 머릿수 하나 채워서 대체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죠. 물론 시위 문화제는 너무 좋았습니다. 뭐랄까, 가슴이 벅차올랐고 어느정도의 슬픔을 공유하였으며 잘못된 것을 잘못됬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과정이 곧 제게는 해소의 과정이었죠.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학내 정치를 구성하고 총학을 설득하여 이 투쟁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우리 학교 이름으로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의 투쟁을 응원합니다' 같은 자보, 피켓을 들고 그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갔다면 꽤 도움이 되었겠죠. 공식적으로 어떤 단체가 연대를 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차마 그 정도의 적극성은 가지지 못하고 혼자 앉아있었단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나는 그냥 열라 좌파인 척 하고싶은건 아닐까? 말하자면, 시위대 뒤에 앉아서 투쟁을 외치고 민가를 부르는 자신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그저 '내가 투쟁도 참가한 사람이야'라는 자뻑을 얻기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죄책감이나 부채감에 대한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이나 다름없었죠. 그래요, 실질적으로 제가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건 그냥 저의 감정, 이를테면 삼성전자 서비스 센터 지회 투쟁 역사에 있었던 열사들의 죽음과 그 이면의 비인간적 행태들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이기였다는 것을, 그게 아주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혹여 너그러운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뭐 어떻냐고. 그렇습니다. '자기기만'을 뺀다면, 사실 결과론적으로 저는 딱히 핀잔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의사를 정당하게 표시했다는 점에서는 더 나을지도 모르지요. 다만 문제는 자기기만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들을 돕고 있는 것인가, 나는 여기 앉은 모든 분들의, 어깨에 피로가 가득 내려앉아도 동료의 죽음에 매일 밤 다시 장례를 지내며 승리까지 이를 악물고 어깨동무를 하는 이들을, 이 모든 이들의 가정에 휩싸인 어두운 그늘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여기에서 투쟁을 외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민망해지더군요. 저는 훨씬 더 무책임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던 셈이지요. 전장은 목숨을 건 이들의 터전이건만 저는 전혀 그런 각오가 없었던 셈입니다.




결국 그 뒤로 저는 삼성전자 집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으려 했죠. 투쟁모금 후원계좌, 식사비 후원계좌, 양말한켤레 나눔행사 , 식사 배식 자원봉사 등.. 투쟁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것이 훨씬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요. 저는 여전히 비정규직이 잘못되었고, 삼성의 노조설립 불가 정책이 잘못되었으며, 삼성의 하도급인 서비스센터의 건당 임금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 투쟁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그 자리에서 한 개인으로 투쟁하기 보다, 내 삶의 투쟁속에서 얻은 잉여물을 그들과 나누어 그들의 싸움에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저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부조리와 잘못된 것에 대해 목소리를 외치는 현장을 많이 지나치셨을 겁니다. 많은 분들은 함께 그 곳에서 싸우고 싶어도 몇 가지 걸림돌이 아주 크게 다가오지요. 생활의 문제, 평판의 문제, 비용의 문제, 순수성의문제 등등.. 거리에 나서기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들은 너무나 많고 그것들은 심지어 쉽게 해결되려 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침묵하기에는, 외면하여 침묵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대로 있기에는 이제 너무나 우리의 삶이 핍박받는 처지에 놓여지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만인이 만인을 증오하고, 만인이 만인을 핍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산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어쩐지 하루 하루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에는 여유가 사라지고, 초조함과 불안함이 커져만 가고 있는건 아닐지. 저는 그래서 동시에 이렇게 제안합니다. 무언가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하면, 행동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꼭 거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까만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들고 힘껏 목소리를 외치는 것만은 아닐것입니다.




저는 삼성이 백혈병문제와 서비스센터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모든 삼성제품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요. 누군가가 삼성제품을 쓴다고 한다면 나는 이래서 삼성제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오지랖넓게 말하고 다닐겁니다. 뭐야 이 밉상은? 하는 눈치가 보여도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제가 삼성전자를 한시적으로 피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야만 저의 불매운동이 갖는 함의가 남겨질 것이라는 생각에요. 그리고 알바비가 들어오는 대로 투쟁지원금을 낼 생각입니다. 저는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는 전장의 전사는 될 수 없을지언정, 그들의 싸움이 정당하다 생각하여 이렇게 응원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행동입니다. 모든 민중은 언제나 정치적일 수 있으며, 그 방식은 시대에 맞춰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만일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간다고 느낄때, 그리고 내가 이것을 바꾸고 싶으나 그 방법이 아득하며 무력감에 휩싸일때. 우리는 쉽게 포기할 수도 있지만 과감히 싸우는 이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의 찬성보다, 적극적인 반대가 무섭듯. 각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가 믿는 다양한 투쟁의 전선에서 민중이 더 옳은, 더 나은, 조금 더 '정당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쩌면 곧 다가올 투표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꼭 투쟁만이 남아있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지켜나가며,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가치를 위해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당한 상품을 거부할 수 있으며, 우리 대신 싸우는 이들을 응원할 수 있습니다. 혹은 적극적인 투표나 민원, 선언등을 통해 더 큰 불을 만들 수 있을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모든 부조리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타협할 수 밖에 없다며 체념하는 대신, 변화를 위한 작은 번거로움을 이겨내기를 스스로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 바람이 여러분에게도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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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ya Stark
14/06/01 00:53
수정 아이콘
며칠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강남을 갔다가 서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사회부조리에 대응하는 것이 아직은 작은 출발이지만 결국 쌓이면 바뀌게 된다고 저도 맏고 있습니다.

모든 중심에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我無嶋
14/06/01 01:07
수정 아이콘
가끔 글쓴분의 글을 읽다 드는 생각은 생각이나 마음과 현실적인 상황이 탈구된 상황들이 자꾸 지속되니까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신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조금은 부드럽게 생각하셔도 될거 같아요. 투쟁에 참여한다는 자기위안보다 잉여생산을 공유하고 불매하고 투표하는 것이 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것에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에 함께하는걸 자기기만이었다고 스스로 비판하는건 좀 자신감 없는 결론아닐까요. 연성적으로 투쟁의 당사자들과 투쟁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대를 만드는 과정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보내오는 금전적 지원과 봉사는 무척 중요한 기반이지만 심리적 위안을 만들어주는건 투쟁에서든 일상에서든 눈을 맞추고 대화하고 공감을 만드는 거니까요. 둘 다 해보고 더 좋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한 것 뿐이지 자기기만이 아닐거예요.
14/06/01 01:15
수정 아이콘
위안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유있을때는 둘 다 하면 되긴 하네요!
我無嶋
14/06/01 01:17
수정 아이콘
뭐 그렇죠! 크크크. 후원자의 방문만큼 사랑받는게 있겠습니까 :)
포포탄
14/06/01 01:24
수정 아이콘
사실 운동하시는 분들 마음은 복잡할 것 없죠. 그냥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것을 확인하고 싶은 뿐...
작금의 시대는 그 작은 단서마저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14/06/01 07:28
수정 아이콘
출근길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비정규직, 같이 철폐해야죠!
아케미
14/06/01 07:54
수정 아이콘
투쟁사업장에는 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죠. 자기 사정에 따라 참여하면 되니 너무 자책하실 필요는 없어요.

...라고 하지만 저 역시 '미안해서 못 가겠는' 집회가 너무 많아요. ㅠㅠ
14/06/01 20:02
수정 아이콘
미안해서 못가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지요. 신분의 변화로 인하여 아예 갈 수가 없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

요즘따라... 피가 들끓어 오를 때가 많네요. (하지만 난 갈 수가 없잖아? 난 안될거야 아마 T_T)
쪼아저씨
14/06/01 10:24
수정 아이콘
저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신 분인데 생각이 참 깊네요. 괜시리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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