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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7 0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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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김재권 <심리철학> #2
책을 읽다가 '하향적 인과의 문제'라는 걸 소개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앗! 하고 재밌게 본 부분이었는데 소개하기까지 과정이 좀 기네요. 제가 정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책에서 인용하거나 책을 짜집기한 게 대다수일겁니다. 크크. 일단 (#1)물리주의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고, (#2)물리주의의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소개하고, (#3)다른 한 가지 관점의 문제인 하향적 인과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세 번에 걸쳐서 써볼 예정입니다. 최대한 짧게 쓸 생각인데, 그러다보면 숨은 전제와 용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 싶은 부분에 대해 덧글 남겨주시면 책을 찾아서 최대한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전공자가 계시다면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해주시거나 더 심도 있는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 물리주의의 두 가지 유형

(심적 존재를 배제하는) "존재론적 물리주의는 정립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결론이라기보다는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결과적으로, 심신 관계에 관하여 가정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문제는 속성들에 관한 것, 다시 말하면 어떻게 심적 속성들과 물리적 속성들이 서로 관계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논의의 주요 초점을 이루어 왔던 것은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 사이의 논쟁이다."(p358)

(1) 환원과 환원적 물리주의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의 사이의 논쟁이 중요하다고 하니 일단 환원이 뭔질 알아야 할텐데,  환원 자체는 과학철학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은 부분이고, 제가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그 부분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만 짚어보면 [A가 B로 환원된다는 것]은 B에 의해 A가 논리적으로 도출 가능하다, 혹은 증명 가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연수와 정수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자연수의 덧셈은 정수의 덧셈으로 환원가능하다는 식으로요.

그렇다면 환원적 물리주의의 주장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환원주의자 혹은 환원적 물리주의자는, 심적 속성들은 물리적 속성들로 환원될 수 있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물리적 속성으로 판명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리하여 이 견해에 의하면, 이 세계 안에 비물리적 속성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속성들은 궁극적으로 기초 물리학이 지지하는 속성들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p358)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환원적 물리주의가 요구하는 환원은 위에 든 예처럼 단방향적인 환원이 아니라 양방향적인 환원입니다. 양방향적인 환원의 예로는 열역학과 통계역학-온도와 평균운동에너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양방향적 환원을 도입했을 때의 장점은 [환원되는 A와 B가 관계맺는 방식을 설명할 때 매우 단순하게 A가 B이기 때문이라며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양방향적 환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환원적 물리주의는 심적 속성과 물리적 속성의 동일성을 주장합니다.


(2) 비환원적 물리주의

"그러나 지난 이십 년 동안 환원주의는 깊이 쇠퇴해 왔고, 가장 영향력있는 형태의 물리주의는 비환원적 물리주의로서, 즉 심적 속성들은 다른 "상위(higher-level)" 속성들과 함께 물리적 영역으로의 환원에 저항하는 자율적 영역을 구성한다는 견해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비환원적 물리주의는 (중간생략) "인지 과학"을 위한 영향력있는 철학적 기반으로서 작용하여 왔다. 그래서 오늘날 가장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형태의 물리주의는 존재론적 물리주의와 속성 이원론을 결합한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모든 구체적인 개별자들은 물리적이지만, 물리적 소립자들의 어떤 복잡한 구조와 구성은 "아랫-단계(lower-level)"의 물리적 속성들로 환원할 수 없는 속성들을 예시할 수 있으며 때때로 예시한다는 입장이다." (p358-9)

이 책이 96년에 쓰여진 책이니 벌써 이십 년 가량이 지났네요. 이 책이 쓰인 이후 최근의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환원주의가 대세인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논의를 계속 이어가면 환원적 물리주의를 거부하는 이유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수실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질에 대한 것입니다.

(2a) 다수실현 가능성

(아래 논의에서 c-신경 섬유는 그냥 편의상 이름붙인 뉴런x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환원적 물리주의에 따르면 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통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환원적 물리주의자들은  "고통과 C-신경 섬유의 자극은 동일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생물체가 C-신경 섬유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적절한 생물학적인 구조로 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 생물체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두뇌와 매우 다른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물체들(예를 들면, 파충류나 연체 동물 등)이 있지 않을까요? 아마 이러한 종에서는 아픈 자극에 반응하는 뉴런들이 인간의 c-신경 섬유와는 다른 것들일 것입니다."(p127) 더 나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기계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외계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매우 다양한 물리적 및 생물학적인 구조들 안에서 임의의 심적 상태가 "다수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하나의 심적 상태와 하나의 물리적 상태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p128)

환원적 물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환원은 양방향적 환원이라고 위에서 설명해드린 바 있는데요, 그 양방향적 환원이 여기서 문제가 됩니다. 하나의 심적 상태를 M으로, 그에 대응하는 여러 물리적 상태를 각각 P1, P2, P3라고 표현해보겠습니다. P1->M의 환원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M->P1으로의 환원은 불가능합니다. P2나 P3도 마찬가지고, 이래서는 양방향적 환원을 주장할 수가 없게 됩니다. 대신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P1 또는 P2 또는 P3 <-> M] 이런 식으로는 양방향적 환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a]이러한 방법이 M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마찬가지로 M에 대응하는 P4나 기타P들이 무한대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b]이런 상황에서는 물리적 속성P들(가령 인간과 외계인과 기계이 각각 고통을 느끼는 매커니즘)이 유사성을 갖긴 힘들어보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속성P들이 갖는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응하는 심적 속성M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과학이론이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즉, 환원가능하다고 말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2b) 감각질(혹은 퀄리아)과 관련한 반론
맛이나 색깔과 같은 감각질은 본성적인 경험적 속성이며, 다른 어떤 것과 환원적으로 동일시되는 것 같지 않다는 반론입니다.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직관에 호소하는 반론입니다만 꽤 강력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https://pgr21.co.kr/?b=8&n=46815)로 대체합니다.

(2c)
위 두 가지는 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환원적 물리주의를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다수실현가능성과 감각질을 이용한 반박에 대해 환원적 물리주의가 대처하는 방법이 책의 말미에 나오신 합니다. 하지만 환원적 물리주의의 입장에서 비환원적 물리주의에 가한 비판에 대해 설명한 이후에 소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일단 미룹니다.  


(잡담1)
다수실현 가능성과 관련해  진화를 근거로 지구 내 생물의 고통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기계나 외계인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이 통할 것 같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고통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파충류나 기타 인간이 아닌 것들이 느끼는 고통이 다른 종류의 고통이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애초에 인간들끼리 같은 종류의 고통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가능합니다.

(잡담2)
비환원주의에는 수반 물리주의와 창발론이 있습니다. 수반 물리주의는 심신 환원은 거부하지만 심신 의존성(과 그에 함축된 심신 수반 원리)는 인정합니다. 반면 창발론은 심적 속성들이 물리적 속성들에 의해 창발되지만, 물리적 속성들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로부터 예측될 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냥 이런 게 있다는 얘기입니다.

(잡담3)
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두 가지 반론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내용과 잡담까지 모두 반박가능하며 이미 반박된 반론일 것입니다. 주요한 반론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될 예정이고요. 따라서 덧글을 통해 위 주장들에 반론에만 너무 골똘하지 마시고 (크크) 떠오르는 공격에 대해 반대입장이라면 어떻게 다시 반론할지도 고민해보시고 그 점도 같이 적어주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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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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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실현 가능성을 예전에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었는데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갑자기 확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추천.

개인적으로 색맹인지라 저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같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같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된 1인이라서, 다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네요. 다만 모든 생물체는 시스템 간의 유사성이 존재하니까 감각간에도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야 있겠습니다만..... 지렁이가 인간에 의해 밟혀 죽을 때 '우와아아아 아프구나!' 라고 '생각'할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14/05/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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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지 않았던 부분 중에 type-token 개념에서 비롯된 개별자 물리주의와 유형 물리주의가 있습니다. 유형 물리주의는 어떤 심적 속성[들]과 어떤 물리적 속성[들]이 동일하다는 주장이며, 개별자 물리주의는 심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건은 또한 어떤 물리적 속성을 가진다는 주장입니다. 책에선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1) 색깔을 가지고 있는 모든 대상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2) 색깔과 모양은 동일하다.

참/거짓을 배제하고 (1)은 개별자 물리주의에 대한 비유이고, (2)는 유형 물리주의에 대한 비유입니다. 유형 물리주의는 개별자 물리주의를 포함하지만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개별자 물리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개별자 물리주의에 따르면 "심적 속성들이 체계적으로 물리적 속성들과 상관 관계를 맺는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으며, 더더구나 심적 속성들이 물리적 속성들과 동일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p109)습니다. 따라서 흔히 받아들일만한 심리-신경 동일론은 유형 물리주의의 입장에 서있으며, 그것을 환원적 물리주의라고 합니다.

OrBef님은 우리가 같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다고 말씀하셨으니 (유형 물리주의의 입장에서도 커버되는 주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별자 물리주의의 입장에 서있다고 볼 여지도 있을 것 같습니다. OrBef님이 생각해보실 만한 문제인 것 같아 책에 실린 개별자 물리주의와 환원과의 관계에 대해 옮겨봅니다. (옮기는 입장에선 거의 20년된 책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을까 염려되긴 합니다.)

심성과 몸의 본성 사이에 성립하는 속성 대 속성간의 체계적인 관계는 강력한 물리주의에게는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속성들에 관한 이러한 문제는 심성을 좀더 기본적인 물리적 및 생물학적 속성이나 과정으로 "환원"시킬 수 있느냐는 논쟁에서도 제기된다. 개별자 물리주의는 일종의 비환원주의다. 그 이론은 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사이의 속성 대 속성간의 관계에 관해서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지만, 이 관계는 심적인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별자 물리주의는 심신간의 환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관해서 어느 쪽으로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개별자 물리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심신 환원론이 잘못되었고 개별자 물리주의가 물리주의 이론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심신 환원의 문제에 개입한다.(p112)
14/05/1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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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색깔과 모양은 동일하다

이 문장은,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색깔과 모양은 동일한 사건의 다른 면이다 정도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그렇다면 제 생각은 유형 물리주의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만 type-token 이야기를 예전에 읽어 보면서 '에에잇 이게 다 뭔 소리야 으아아아아 아마 난 안될 거야'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 지라, 제가 올바로 이해한 것인 지는 잘 모르겠네요.
14/05/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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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 것 같지만.. type-token은 존재의 차원에서는 인간이라는 유형과 김재권 등의 인간 개별자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사건의 차원에서는 고통이라는 심적 유형과 우리가 아파하는 개별적 순간들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유형물리주의는 고통이라는 특정 심적 유형과 그에 대응하는 특정 물리적 유형의 동일성을 말하고, 개별자 물리주의는 어떤 1회의 고통에는 그에 대응하는 어떤 물리적 사건이 있다는 것만을 말합니다. 개별자 물리주의에 의하면 심적인 속성들과 물리적인 속성들 사이에 의존관계나 심지어 상관관계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책에서는 녹색임(색깔)과 동그람(모양)의 예를 듭니다. 개별자 물리주의에 의하면 어떤 개체가 녹색이라는 색깔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동글거나 네모난 모양 속성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 말합니다. 반면 유형 물리주의에 의하면 어떤 개체가 녹색이라면 동그란 모양이어야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수실현 가능성은 녹색인데 동그란 모양도 있고 세모난 모양이 있을 수 있다면서 [녹색]이라는 색깔과 [동글거나 또는 세모남]이라는 모양 사이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건지 의문을 던지며 유형 물리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같은 종류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는 주장이 굉장히 넓은 주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해보면 유형물리주의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원을 체계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시스템간의 유사성과 감각간의 유사성을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변형된?) 유형물리주의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 확실한 것 같기도 합니다. 디테일하게 따져들어야 의미가 있는 부분이겠지만 그럴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크크. 그래도 덕분에 재밌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5/1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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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주의 영역에 어찌어찌 들어가는 듯한 세계관을 가진것처럼 보이는 저로서는(항상 이 부분에대해 분명한 '입장'을 확립하는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ㅠㅠ)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글입니다.
잡담 부분에 대해서 기대해 보면 ,
'마리'관련한 '사고실험'의 문제는 조건자체가 가능한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태어난 이후 '핵심적'시기를 '흑백'세계에서 살다 나가면, '다른색상을 볼'능력 자체를 해당 '개체'가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인듯 합니다.
자신의 뇌에선 '관찰과 학습으로 알고 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심지어 해당 반응을 야기하는 '경로'도 신경계에서 다른 기능으로 '전용'되어 있을터라서요......
'신경계'의 화학적/물리적 구조상 다른종의 개체가 느끼는 '고통'이 동일한 개념인지 알 수 없는데다가, 동일한 종의 개체가 느끼는 '고통'역시 동일할지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서요 ㅠ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서로다른 종류의 '고통'들이 서로다른 '물리적 상태'로 환원된다면, 물리적 환원이 이와같은 사유로 기각되기는 어렵지 않던가(라고 어디서 본 듯 한데요.....)
여튼 더욱더 다음 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4/05/1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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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밌어서 보고 있긴 하지만 저도 제가 어느 입장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히! 입장을 선택할 수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입장을 선택해봐야 달라질 게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뭐 학문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재밌게 지켜보는 걸로 만족할 생각입니다. 크크.

(2) 메리의 방은 감각질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호소하는 사고실험입니다. 논리라던가 과학법칙이라던가 인식의 발생적 측면과는 전혀 무관하지요. 그런데 지적해주신 부분도 재미있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지각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시는 것 같은데, 비슷하게는 야생에서 자란 아이가 언어를 완전히 습득하진 못했다는 얘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여러모로 컬러풀하기 때문에 실험으로 증명하긴 힘들겠네요 크크. 어디 논문같은 걸 찾아보면 누군가 그런 발상을 더 심화시킨 흔적이 있을 것 같긴한데, 저는 논문 찾는 법도 모르고 크크크 그냥 머리속에만 담아두겠습니다.

(3)
말씀하신 바를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서로 다른 종류의 고통들이 서로 다른 물리적 상태로 환원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환원이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없어보이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고는 무엇에 대해서도 일반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게 일어난 (1)[A시기의 고통과 그에 대응하는 물리적 상태]와 (2)[B시기의 고통과 그에 대응하는 물리적 상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한다면 (1)과 (2)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A시기의 고통과 그에 대응하는 물리적 상태]의 동일성(양방향 환원가능성)만 확보할 수 있을텐데, 이를 통해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무작정 다이다이뜨면 이렇다는 얘기고, 책 뒷부분에는 환원적 물리주의에서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아마 소독용 에탄올 님이 말씀해주신 것과 비슷한 입장에서 비환원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살짝 우회해서 대처하는 방법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14/05/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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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하며 다음 내용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종류의 논의를 보면 어느순간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솔직히 세상 모든 것은 전부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체계안의 모든 대상을 범주화해서 이런저런것은 우리 같은것으로 취급하자고 서로 윙크를 교환한후에 대화를 진행하죠.
그렇기 때문에 "얼마만큼 같아야 동일하다고 해야 할지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두리뭉실 넘어가게 되면 결국에는 상대의 말에대해 완전히 착각하게 됩니다. 최소한 상대방의 윙크가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 감이라도 잡아야 뭔가 내안의 사고체계와 상호작용을 할텐데 말이죠.

예를들어 지난 글에서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두 존재는 없다는것에서 지적한바 있습니다만, 결국 일단 먼저 선결되어야할점이 무엇을 같다고 할지 무엇을 다르다고 할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위에서 고통과 감각질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심적상태의 동일성", "고통을 느낄수 있는가" 에서도 무엇이 동일한 경험이라고 할수있는지 심적 상태의 동일성이란 얼마만큼의 유사성을 전제하는것인지 아무런 힌트가 없습니다.

그냥 직관적인 느낌으로 퉁치기에, 제게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윙크를 받아 찡긋하고 사고를 진행하기가 참 버거운 것 같습니다.
14/05/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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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나 과학 모두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제 생각을 밝혀봅니다. 동일성에 대한 기준은 가정된 모델에 의거해 실험을 하면서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지 선결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타인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지금 우리는 알 수가 없기도 하니 무의미하기도 하고요. 심리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몇몇 과학적 발견을 가지고 논리와 직관을 바탕으로 그저 이렇게 않을까 가정하고 모델을 만들어 볼 뿐이지요. 특히 지금 제가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잘 봐줘봐야 과학이 수행해야 할 작업의 일종의 밑그림이나 콘티 정도의 단계로 비유하면 적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밑그림이나 콘티에 디테일을 바라긴 힘들겠죠. 디테일을 세워놔봐야 중간에 바뀌기 마련이겠고요.
14/05/2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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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철학자들은 그 동일성이 문제가 안되게끔, 즉, 동일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논증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동일성이 문제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면 저도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14/05/26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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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고싶은 이야기는 몇몇 있지만, 바쁜 시기라 깊이 생각 해보질 못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어쩌면 제가 아직 철학자들의 언어를 이해하기위한 준비가 부족한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동일성의 문제는 과학등으로 나중에 채워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고체계의 모델이 이미 가정해야만 하는 내용입니다. 과학이론을 세우고 실험 설계를 하고 그런 작업을 하려면 애초에 뭘 말하는지를 알아야만 가능합니다.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이를테면 당신과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당신이 어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무엇인가 나의 아프다는 말이 이럴것이다 라고 유추하는 일련의 정신작용이 있겠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저와 의사소통을 할것입니다. 아마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인류 개체들이 "아프다"라고 말할때 공유하는 일련의 정신작용이 있을것이고 그런것들의 집합을 "고통"이라고 말해보자. 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제가 생각해볼때 가장 평범하고 Naive 한 형태로 "고통"이라는것을 정의해본겁니다. 사실 이정의는 그럴듯해보이지만 처음부터 내가 느끼는 어떤 특정한 느낌에다가 남과 상호인증이 될때 그것들을 모아놓고 그게 뭔진 정확히 몰라도 "고통" 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붙여놓은것에 불과합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벌레가 꿈틀거리는것을 고통으로 보지 않는겁니다. 하지만 마치 고통을 느끼는것처럼 보인다 라고 생각해서 고통이라는 개념의 동일성을 확장해볼수 는 있을겁니다. 저렇게 꿈틀거리고 발버둥치는것을 고통이라고 하자라고요.. 하지만 이것은 앞서 정의한 고통과는 다르게 정의된 대상입니다.

본문에서 말한것과 같은 고통을 유발하는 어떤 종류의 특정한 물리적인 신경섬유를 가정하는 과감한 상상을 하려면, 처음부터 고통의 정의를 거기에 맞게 해야만 합니다. 인류개체들의 뇌검사를 해서 바늘로 찌르던가 했을때 공통적으로 활성화 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고 합시다. 더 나아가 그 신경세포를 전기 자극하면 고통의 느낌을 받는다고 합시다. 더 나아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신경세포들이 존재하는지 곤충이나 식물에서도 찾아보는 시도를 할 수 있겠죠. 여기서 실험에 탐구하는 신경세포들이 앞서 제가 정의한 고통이라고 부르는것과 어떤 연관성은 생각해볼수 있을겁니다만
내가 "고통"이라고 부르고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어떤 느낌이나, 고통시점에 활성화 되는 신경세포는 사실 완전히 다른 대상입니다. 그걸 동일시 할 지 말지 여부는 어떤 철학적 관점이나 사고 모델에서 정해야할 문제이지 실험으로 알수있는건 아니죠. 그래서 그런지 위 본문에서 논의한 식으로 다수실현가능성을 들어 양방향 환원이 불가능하다 라는 엄청난 주장을 하기에는 좀 무리수같아 보였는게 제 솔직한 느낌입니다.

ps. 여담이지만 저는 가끔 보게되는 감각질 관련 주장들을 솔직히 논증이라고 할수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는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과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요.
14/05/2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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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부분에선 환원적 물리주의의 입장에선[인류개체들의 뇌검사를 해서 바늘로 찌르던가 했을때 공통적으로 활성화 되는 신경세포들]의 유형과 그에 해당하는 반응을 싸잡아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고통이라고 부를 것 같긴 합니다만 만족할만한 답변은 아니겠죠. 이걸 어떤 기준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으니까요.

이 부분은 아무래도 철학자들이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 기억에는 모든 과학 이론들이 동일성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 이후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에 완벽한 기준을 요구하는 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같고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과학사나 과학철학 등을 공부할 때 관련 사례를 읽게 되면 게시판에 소개해보겠습니다. 답변드릴만한 내용이 이 책에도 없고 제 머리 속에도 없네요. 찝찝한 기분만 남겨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감각질 관련 주장은 논증이라기보단 직관에의 호소에 가깝겠죠. 신존재와 감각질은 믿음(내지 직관)이라는 점에선 유사합니다. 하지만 신존재는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책임을 지지만, 감각질은 물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 차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환원적 물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선 실제로 부담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아무래도 감각질에 대한 믿음이 다수의 직관에 의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존재에 대한 믿음은 소수의 직관에 의지하기에 입증책임을 져야하는 것 같고요. 시간이 지나면 감각질이 없다고 직관할 수도 있으니 입증책임이 비환원적 물리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14/05/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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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뭔가 혼란스럽게 글을써서 전달이 잘 안된것 같습니다.

"내가 "고통"이라고 부르고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어떤 느낌(A) 이나, 고통시점에 활성화 되는 신경세포(B)는 사실 완전히 다른 대상입니다."

라고 썼는데 의미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 A와 B로 표기를 추가했습니다. 제 뜻은 느낌들 제각각, 신경세포 제각각들의 동일성을 엄격히 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된 두 개념 간을 "고통"이라는 동일한 개념으로 연결지을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는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의도하는것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심적속성으로 정의된 고통과 물리적속성으로 정의된 고통을 연결하려는 것이냐는 인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나 그 양자(A,B)간에 어떤 종류의의 느슨한 연결이 있다는것은 짐작할수 있지만, 그 어떤 실험이든 과학이론이든간에 본질적으로 B 세상에 대한것이고 만약 A방식으로 정의된 고통과 연결시키는 어떤 모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A와 B사이의 환원가능성 같은 개념을 지지할수도 반증할수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과 관련한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사실 남보다는 뛰어난 사고력을 가지고 범인들보다 오랜시간을 들여서 고민하는것일텐데, 아마도 행간에는 제가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철학적 전제들이 있기때문에 제가 쉽게 논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련텍스트들을 좀 더 읽어봐야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번에 링크걸어주었던것같은 한글pdf논문같은 자료들을 찾을수 있는곳을 알려주시면 시간이 언제 날지 모르겠지만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14/05/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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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아 관련해서는 물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책임을 지는것은 물론이며, 이미 그 이전 단계에 퀄리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혹은 그것을 이용하여 어떤 논증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이 논의의 대상이 될수 있는 개념 즉 객관화 시킬수 있는 개념이라는 입증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것 같습니다.

일단 "객관화 시킬수 있는 개념"이라야 논리적인 문답이나 사고실험을 할것이며 그런것을 통해 개념이 충분히 명료해진다면 그 이후에야 물리적인 실재가 될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토해볼수 있겠죠.

제가 느끼기엔 퀄리아는 객관화시키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이며 누군가 시를읊고 내가 그 감상을 이야기 하는것정도의 의사소통만 가능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14/05/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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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인지, 아니면 퀄리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네요.
1) 전자라면 타당한 비판입니다. 비환원주의도 충분히 가능한 입장이죠.
2) 후자라면 퀀텀 님도 이미 비환원주의의 입장으로 왈가왈부하는 데 참여하신 것 같습니다. 크크.

후자가 맞다면.. 누구나 생각할 법한 '양자(A,B)간에 어떤 종류의 느슨한 연결'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데, 그나마 가장 말이 되는 설명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어떤 것이든 불확실한 가설 위에서 논의하는 셈인데, 과학이 발전하다보면 당연히 이 가설이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고, 이런 논의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이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 밖에 없어보입니다. 파악할 수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14/06/01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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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제 답글들 전체에서 퀄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된 주제입니다. 혹시 혼란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2]. 제 주장을 간력히 요약하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본문에서 제시한 철학적 논증들이 비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반증이 되는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이런 방식이로 증명 혹은 반증이 된다는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딱히 본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껏 보고들었던 퀄리아 관련 논증들은 그게 신앙고백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 있는거 같지 않으며, 솔직히 문학적 표현과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두번째 퀄리아 토픽은 본문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아예 독립된 맥락으로 다루거나 아예 제껴두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3]. 제 생각이 비환원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라고 말씀히셨는제 저는 솔직히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온 우주의 모든것이 물리적인 속성에서 비롯된다라는 명제는 하나의 믿음이지 과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증명될 가능성이 없는 명제입니다. 물론 저는 이걸 믿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고통, 의심, 사랑, 자존감, 신뢰 등 마음과 관련된 이런것들도 결과적으로 내몸을 구성하는 모든 물리적인 입자이 어떻게 모여 어떻게 움직이 있는가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히 해둘것은 이때 어떤게 원인이냐 라고 묻는것은 꽤 많은 경우 참거짓을 떠나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정해지는것은 처음부터 공리를 명확히 해둔 논리의 세계에나 어떤 가정하의 과학체계내에서나 명확해 보이지 현실 물리세계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보통입니다.

예를들어 현대 입자물리학의 성과로, 물체의 온도라는 개념은 입자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된다는것은 인류가 알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온도의 원인이 입자의 움직임이라고 할수 있나요? 반대로 온도가 높으면 입자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라고 말하면 틀린것인가요? 저는 둘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를 통해 어떤게 원인이냐고 묻는 건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잘 전달 되었으면 합니다.

물리적인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는 많지만 어째든 시공간속에서 물리적인 상태가 동일하다면 심적속성이든 뭐든 무엇으로 봐도 완벽하게 동일하다라고 말할수 있으며 본문의 용어로, 심신수반을 믿는다고 말하면 될것 같군요.

하지만 제가 처음에 제기한 "동일성의 문제"등이나 몇가지 이유로 이건 신앙과 같은 믿음의 문제이지 사실상 증명도 반박도 불가능한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4]. 3에서 말한것은 어떤의미로 엄격한 의미로의 환원주의를 뜻할것이며 제가 평소 믿고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의미의 환원주의와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경우 인류가 알게된 과학적 사실에 따라 심적속성이라고 불리는것들은 개념 자체가 변화합니다.

예를들어 내가 바늘에 깊이 찔렸을때의 느낌과 몽둥이로 맞았을때의 느낌이 있이며 그때의 뇌파변화를 연구하여 두가지 감각에 대한 차이점을 연구할수도 있으며, 동일한 강도의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 신경이 활성화 되는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연구할수도 있고, 그사람이 어떤 언어적수식어를 통해 그 고통을 표현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을겁니다. 더 나아가 다른 생명체가 보여주는 인간과 유사한 고통 반응을 연구하며 해부학적인 유사성이나 신경회로에서 전달되는 전기신호의 유사성에 대해 연구할수도 있겠죠.

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특정 신경섬유가 고통을 유발한다고 했을때 해당하는 과학 모델하에서 고통이란 단어의 정의가 "신경섬유가 유발하는 심적 상태" 로 되어 있는것입니다. 만약 해당 신경섬유가 없는 생명체가 있는데 고통과 비슷해 보이는 반응을 보이면 거기에 맞추어 고통이란 단어의 정의도 변화하고, 또 신경섬유의 정의도 변화합니다. 거기에 더해 고통에 대한 반응조차 고정된것이 아니라 인류가 진화하면서 조금씩 변화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A와 B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어떤 연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B에 대해서만 연구하지 A와의 연결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것이 정확하겠죠.
또한 저는 물리세계에 대한 발견과 탐구(B)와 어떤 심적속성 (A)와 연결시키는 어떤 가설이 과학발전을 통해 유의미하게 판병된 사례가 역사상 과연 한번이라도 있는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5]. 쓰는 용어의 숨은 의미가 많이 달라 의사소통이 좀 더딘 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혹시 철학의 전통에 비추어 심하게 다른 용례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4/06/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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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퀄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제껴둘 수 있을진 잘 모르겠는데..일단 제껴두기로 합시다. 그리고 본문은 비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반증이 아니라 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반증입니다. 이건 오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증명 혹은 반증이 된다는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부분이겠죠.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3]의 말미에 있는 [신앙과 같은 믿음의 문제이지 사실상 증명도 반박도 불가능한 명제라고 생각합니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명제에 대해 참거짓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더라도 그 명제로 구성된 논증에 대해서는 [논리적 구조]를 이유로 타당함과 타당하지 않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거짓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2
수반과 환원은 다른 개념입니다. 그리고 퀀텀 님의 입장은 수반은 받아들이지만 환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보이고, 그런 점에서 비환원원주의인 것 같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정의된 두 개념 간을 "고통"이라는 동일한 개념으로 연결지을때 발생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지적하시기 때문에 그렇고, (제가 보기엔 비슷한 내용이지만) "퀄리아는 객관화시키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환원되지 않는다, 환원될 수 없다, 환원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등등으로 비환원주의에서도 태도가 나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맥락에선 그 구분이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일단 첫번째 두번째 글과 더불어 세번째 글(https://pgr21.co.kr/?b=8&n=51913)을 (1)수반과 환원이 어떻게 다른지 (2)비환원적 물리주의와 환원적 물리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보시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4 
[3]과 [4]를 어떤 맥락에서 쓰신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3]에 등장하는 '원인'에 대한 얘기가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는 [2]에서 언급하신 첫번째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일단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들이 떠오릅니다. 포괄적인 순서대로 써봤습니다. (1)A와 B를 연결시키는 가설이 유의미하게 판정된 사례가 없어도 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긴 힘듭니다. (2)모든 이론에는 가설이 있었을테니 색과 파동의 관계에 대한 가설이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3)심적속성의 개념이 변화하는 것이라고해서 논의가 무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질량과 같은 개념도 지금은 뉴턴이 사용하던 것과 그 의미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나름의 설명을 제공했고, 그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4)미치오 카쿠의 최근 저서를 읽다가 뇌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면 어떤 심적 현상이 떠오르는지 연구를 하는 어떤 대학의 인지과학 연구실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지과학도 과학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과학은 A와 B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연구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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