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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5 21:31:05
Name [fOr]-FuRy
Subject [일반] 그리움과 恨
“네 놈이 감히 내가 가는 길을 판단하지 마라. 어차피 네놈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테니..
내 그리움과 분노가 어떤 것인지..“ <웹툰 ‘무장’ 81화 중 권의 대사>

안녕하세요. PGR 유저 여러분. 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다. 현재 호주입니다. 친형의 지인을 통해 일자리 소개를 받아 무작정 호주에 왔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는 아예 안되는 관계로 일과 집을 반복해서 왔다갔다 하지만 호주의 날씨만으로도 한국보다 여유스러움이 느껴지는 건 오버일까요.

하지만 평생을 한국에서 지내다가 처음 외국에 오니 여러모로 낯선 점이 많습니다. 여기선 제가 외국인이 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 그 외 수많은 짜잘한 점들이 가끔씩 향수병에 젖게 합니다.
향수병에 젖어가다 보면 그에 더불어 예전에 느꼈던 각종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한이 모두 떠오릅니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좋지 않은 유년기 시절을 보낸 터라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분나쁜 일이 생기면 내면의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물론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현실을 인정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정석적인 답이겠죠. 하지만 불완전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트라우마라는 건 쉽게 사라지지 않죠.
수없이 자살이란 단어가 생각나고 제가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당할 때마다 더욱 극심한 내면의 고통에 시달립니다. 남들에게 표현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이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굴어야 간신히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알기 때문에 이 감정들을 더욱 더 억누르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판단이 잘못된 건지 잘된 건지요. 하지만 어떤 책에서 봤습니다. 삶의 의미는 사회나 국가가 찾아주지 않고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 저에게 더욱 쓰리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막장 인생을 만든게 제 자신의 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아쉬운 점은 가족을 떠나 국가와 사회가 약자를 조금만 더 배려하는 분위기였다면 이 상처를 조금은 치유할 수 있지 않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치열함을 넘어서 갈수록 살벌해지는 경쟁사회, 유교문화와 군대에서 파생된 뒤틀린 위계질서와 단체문화,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지 못하는 개같은 학교...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한국사회.. 이 모든 것이 저에겐 씻을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됬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애달픈 마음이... 이런 마음을 강자들이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평생 고쳐질 수 없는 약육강식의 사슬일까요.

안그래도 호주에서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욱 커져갑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그리음과 한을 안고 살아야 할텐데... 왜 하필이면 꿈이 창창한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을 데려가는지.. 차라리 평생을 잉여같이 살았던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지 왜 저런 앞이 창창한 사람들을 데려가는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쓰립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오죽할까요.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곪아 썩어 문드러진 단면이 가족들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오진 않을까요.

평생 지울 수 없는 한을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요. 이런 마음을 윗사람들이 과연 알까요. 정부가 알수 있을까요. 국가가 알 수 있을까요. 죽을 듯이 아프게 다가오는 그리움과 한..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요.
고통받는 약자를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 이 사회를 과연..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을까요. 이 머나먼 타국에서도 그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져 제 심장이 아프게 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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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fati
14/05/16 00:26
수정 아이콘
유년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라우마가 심한 것 같네요.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현재의 자신이 극복하기 힘든 처지에 놓여있다고 그것이 내 탓이네 사회 탓이네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골고루 섞여 있죠.
그러니 자책하는 마음은 과거를 반성하는 정도로 충분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마음은 경각심을 가지는 정도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부족한게 당연하다' 이리 생각하고 좀더 마음에 여유를 가지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이 사회를 걱정하신다면 이 사회를 누가 치유해주길 바라지 말고 현재 본인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상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 고통이 깊은 한 사람이였습니다..
[fOr]-FuRy
14/05/16 00:5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런 감정은 쉽사리 남들에게 털어놓기 어렵다 보니 제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몰아넣는 게 마음이 좀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살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도 못 드러낸다는 것이 더 가슴이 아프네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에 비례해 더 깊어지고 있네요.
Amor fati
14/05/16 11:29
수정 아이콘
모든 문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럴 때가 있었죠.
식상한 얘기지만 현재 왜 살아야하는지 모른다면 살아가야할 이유를 만드는게 우선인것 것 같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본다거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퀘스트를 달성하듯 도전해본다거나 아니면 가정을 꾸린다거나..
그러다보면 이거다 싶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님이 여유가 조금 생기다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들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일이나 연애에 몰두하다보면 다른 생각은 많이 줄어들더군요.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는 피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암튼 호주.. 솔직히 살기 좋은 곳이잖아요. 비록 초반이라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 나라만의 풍요로움을 맘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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