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를 피부로 느낀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오후 10시 20분경 성수역에서 건대입구역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려고 했습니다. 지하철 추돌 사고가 나서 정상 운행이 안될 건 알고 있었지만, 을지로입구 - 성수역 노선 외에는 운행 하고 있다는 얘기를 pgr에서도 보았고, 일단 역사에 올라가서 아니다 싶으면 돌아나오면 되니까 일단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개찰구 부근 지하철 전광판을 보니 한양대역에서 지하철이 오고 있었고, 딱히 건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인원을 막는 직원도 없었습니다. 안심하고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올라갔는데(한양대역부터-강변역까지는 지상철입니다) 지하철 타는 입구 1-1 부근부터 소란스럽더군요. 5~6명의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성수역 역무원 2명을 둘러싸고 따지고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그 곳을 지나가면서 귀를 기울여 내용을 들어보니 지하철이 꽤 오랫동안 오지 않고 있는데 왜 공지를 안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단은 그런가보다 하고 제가 집에 갈 때 최단 출구로 연결되는 6-3으로 걸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100명 이상에다가 꽤나 오래 기다린 눈치였습니다. 저도 약 5분 정도 기다렸는데, 전광판을 보니 아까 한양대역에서 출발했던 그 지하철은 5분동안 반 정거장 와있더군요. 그 이후로 다시 5분 지나니 그제서야 뚝섬역에 도착했습니다. 1정거장 오는데 10분이 걸린 것이죠. 10분 동안 기다리는 사이 50대 아저씨들의 항의는 거세졌고 이윽고 공지 방송이 나왔습니다. 공지 내용은 이랬습니다.

"성수역에서 건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상왕십리역 열차 사고로 인해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 이 방송이 황당했습니다. 저만 해도 1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열차가 언제 오는 건지 오긴 하는 건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없고, 알아보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뭐 어쩌라는 건지요. 기다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러더니 다시 5분 뒤 정확히 같은 내용으로 방송이 또 나왔고, 다시 3분 뒤에는 더욱 황당한 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 상왕십리역 열차 사고로 인해 성수역에서 건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하지 않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뭐 환불해주겠다는 말도 없고, 저는 15분 정도 기다렸지만 추측컨데 다른 사람들은 30분 정도 기다렸을 겁니다. 다들 어이 없어하며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밑에 내려와서 개찰구에 카드를 찍기 직전에 다시 방송이 나왔습니다.

"잠시 후 건대입구행 열차가 들어오니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 한 20초 뒤에 열차가 오더군요. 저를 포함해 약 100여명의 사람들이 탔습니다. 그런데, 불이 꺼지더니 열차 내 방송이 다시 나오더군요. 이 열차는 성수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라구요.

다시 나왔습니다. 역내에서는 또 희한한 공지를 해주더군요. 그 열차가 신설동쪽에서 왔던 모양인지, 왕십리역 방향으로 가실 승객들은 반대쪽으로 건너가셔라 라는 방송이었습니다.

30분 넘게 기다리고, 가라고 해서 가고, 오라고 해서 온, 건대입구방향 승객들이 황당해하며 성수에서 멈춘 열차 앞에 서있는데 그런 방송이 나온 겁니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그냥 나와 택시 탔습니다만, 절반 가까이는 왕십리쪽으로 건너 갔습니다. 자기들 얘기로 오해했기 때문이죠. 전 그냥 나왔는데 환불해준다는 얘기도 없고 이건 뭔가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 성수역 역무원들은 서비스 의식이란 게 있는 걸까요? 전광판은 1정거장 당 10분씩 걸리는데 무슨 희망고문도 아니고 왜 그걸 켜놨으며, 어떤 식으로 통신을 하길래 언제 지하철이 오는 지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알아보지도 않고 얘기해서 오보내질 않나, 이용도 못하고 30분을 기다리는데 환불해주겠다는 말도 없고.

상왕십리 추돌 사건도 왜 일어났는 지 이해가 안됐는데, 왠지 이해가 될 듯도 싶습니다. 이거 우리나라 공무원 축소판이라고 이해해도 되는 걸까요? 정말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댓글을 통해 역무원이 공무원이 아니라 공사 직원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 부분 분별하지 못한 점 사죄드리며, 이를 분리하여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