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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30 11:20:42
Name 한아
Subject [일반] 지루한 안전비디오 박살내기

세월호 사건을 접한 뒤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영상을 만드려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이번 일을 다룰 때, JTBC 뉴스9이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주거나 그 이면의 모습을 고발할 수도 있고, 영화 <타이타닉>처럼 각색과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들 가슴에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명 'Safety Video'라는 안전비디오의 지극히 일차적인 형태로도 사람들에게 안전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죠.


'안전비디오'라니... 어감부터 거부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쪽에서는 주기적으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비디오를 틀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체육시간에 다치기 않기 위해 선행해야 하는 것',  '학교에서 불이 났을때 행동 요령', '과학 실험 약품을 다룰 때 주의 사항', '자동차 안전 교육(북미권은 만16세부터 운전 가능)', '심폐소생술', '물에 빠졌을 때 대처방법' 등등 자주 있진 않았지만,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가짓수도 이정도 되는걸 보니 주기적으로 진행했던건 확실합니다. 그 비디오가 무엇이냐? 대충 이런 식이었죠.




과학실 안전 비디오



재미도 없는데 6분이나 됩니다. 끝까지 보실 용자분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이게 '안전 비디오'의 현실입니다. 일부러 영어권 영상을 올린 이유는 제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이런 비디오를 접해본 기억이 없으며(안전 교육이 없지는 않았죠. 훈련된 전문가가 구두나 시범으로 교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선진국'이라 할 지라도 안전비디오의 수준이 저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비디오 보고 싶으신가요? 트는 순간 보는 사람의 관심은 사라져버리죠.


 

대한항공의 기내 안전 방송
(시작은 3분 20초부터 입니다.)





비행이라는게 사실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니죠. 승객의 불안감이 가장 높을 수 있는 비행을 다루는 여러 항공사에서는 이런 안전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데요, 저는 항공사가 비행기 좌석과 서비스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편안함'까지 티켓값에 포함 시켜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 원재료 값만 아닌 '편안하고 안락한 자릿세'를 포함하는 것처럼요.


위의 비디오도 대한민국의 대표 항공사 대한항공에서 나름 신경써서 만든 영상입니다. 제가 앞서 보여드렸던 '과학실 주의사항'과 비교하면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에요. 누구를 대상으로 한 영상 같나요? 비행기를 타는 모든 승객입니다.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외국인, 처음 타 본 사람, 이미 많이 타 본 사람 등 가리지 않고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영상입니다. 하지만 비참한 현실은 이런 거 틀어주면 딴짓하는 사람들이 더 많죠.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는데 10초면 됩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영상 접해본 적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 승무원 데이빗 홈즈의 랩




유게에 상주하시는 분들이라면 꽤 오래 전에 접해보셨을 겁니다. 저도 유게에서 처음 봤거든요. 저가 항공의 선두주자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의 한 승무원이 출발전 승객들에게 랩으로 기내안전에 관한 안내를 합니다. 'stomp! clap! stomp! clap!'으로 호응을 유도해 집중력을 흩뜨러트리지 않고, 짧은 시간동안 재치있는 가사와 탭 특유의 라임으로 전달하고자 싶은 메세지를 전달하죠. 물론 영어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이나 랩에 익숙치 않은 나이 든 승객에겐 전혀 안전교육의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집중을 유발한다는 것을 크게 평가하고 싶네요.




베어 그릴스 아시나요? Man VS Wild 라는 외국 TV 프로에서 등장해 극한의 상황과 오지에서 생존해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서바이벌 전문가죠. 이 사람은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시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하지 않나요? 왠지 단백질을 사랑하는 베어 형님이라면 비상시 탈출에 대해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점을 이용해 만든 안내 영상이 있습니다.




베어 그릴스의 항공기 안전 안내




기내안전안내를 꼭 비행기 안에서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정말 참신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베어 그릴스가 누군지 모른다면 효과가 반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겠지만요. 이 밖에도 에어 뉴질랜드 항공사에서는 호빗과 엘프들을 안전 비디오에 출연 시킨다든지(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 관광이 뉴질랜드에서 상당히 인기죠.),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모든 연령대와 문화권에서 동일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게 이 '안전 비디오'들의 주 목적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없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애초에 아웃 오브 안중이 되는것보다 '봐주는 게' 낫잖아요. 많이 연구되고 있는 뮤직비디오나 TV 광고처럼,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짧은 시간내에 관심을 갖게끔 만들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건 이 '안전비디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영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죠. 너무 유명한 영상이라 많은 분들이 접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버진 아메리카 항공사의 기내 안전 안내 영상인데요, 버진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회사를 어떤 마인드로 운영하는지 아실겁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회장이 내기에 져서 여장을 하고 인증샷을 찍는다던가, 저가 항공사에는 힘든 전좌석 PTV 설치라던가...) 그를 바탕으로 정말 신명나고 감각적인 안전비디오가 탄생했죠. 




버진 아메리카




이 영상의 감독은 존 추 Jon M. Chu, 스텝업 시리즈의 감독이죠.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저는 여행 떠날 때의 설레는 느낌을 갖고 이런 영상을 접한다면 여행이 더 신나고 기대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안전에 관한 안내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승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멋진 뮤비 같거든요. 아무리 안전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보고 싶은 영상이죠. 여러가지 춤들과 랩들을 안전요소들과 결합시킨 점도 마음에 들지만, 하단부에 깔려 있는 자막도 재미있는 연출을 많이 했죠.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보게되는 기내 안전 영상에서 자막은 굉장히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이런 점까지 잘 활용했다는게 맘에 듭니다.


이처럼 '안전'하고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영상 분야에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안전 불감증'에 조금이라도 개선점을 제시할 방향을 찾아내 기분이 좋습니다. 아직까지도 안전비디오 같은 정보제공 및 안내목적의 영상은 다른 영상 분야에 비해 발전이 더디죠. 아무래도 특정 계층만 보게 되고, 수익구조가 나는게 아니니 투자도 많이 안하니까요. (한 번 만들어놓으면 몇 년이고 우려먹습니다.) 하지만 감각적인 연출자들이 이런 분야에 손을 뻗을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가능성이 보이지 않나요?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 작품성 뛰어나고 보는거 자체로도 즐거운 안전 비디오들을 접할 수 있을거라 기대해봅니다.




+ 요즘 너무 바빠 영화글 올리는게 늦어지네요. 다음 주는 전주 국제 영화제에 갈 것 같아요. 가능한 빨리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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끵꺙까앙
14/04/30 11:30
수정 아이콘
생각지 못한 접근이고 굉장히 유용하고 필요한 방안이네요.
내일은
14/04/30 11:32
수정 아이콘
뉴질랜드 항공의 호빗 영상도 추가되었으면 좋겠네요.
http://youtu.be/cBlRbrB_Gnc
14/04/30 11:38
수정 아이콘
이미 영상과 글 자체가 길기도 하고, 내심 이렇게 댓글로 추가해주시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버진 아메리카는 이 뮤비 전에도 애니메이션으로 기내 안전 방송을 만든 적이 있었죠.
http://youtu.be/eyygn8HFTCo

그리고 뮤비 형식이라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EL AL flight의 <UP> - http://youtu.be/3V6qx1uQ29g
파란아게하
14/04/30 11:32
수정 아이콘
의도에 적절한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opxdwwnoaqewu
14/04/30 12:01
수정 아이콘
2011년에 대만갔을때
공항에서 리치킹이 나오던데...
공상만화
14/04/30 12:02
수정 아이콘
찬양하라 티거피벨!
Amor fati
14/04/30 12:10
수정 아이콘
개개인의 안전의식을 고양하기에 좋은 방법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meAgain
14/04/30 13:00
수정 아이콘
이런 건 super sexy cpr 시리즈가 좋던데 말입니다...
꼭 비행이라든지 여행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말이죠.
김성수
14/04/30 13:50
수정 아이콘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지루한 안전비디오 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문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안전비디오를 틀겠다는 생각이 거의 소멸된 상태 아닌가 싶습니다. 몇개 올려보자면

위에 ComeAgain님께서 말씀해주신 sexy cpr이 역시 유명하기도 하고, [CPR] 쪽에 영상이 많죠.
sexy cpr - https://www.youtube.com/watch?v=4ArXuQwjj7Q
켄정이라는 사람에 관심이 없더라도, 비디오만 봐도 재밌는 캐릭터란게 느껴질겁니다.
Ken Jeong AHA Hands-Only CPR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n5hP4DIBCEE

비키니 입은 처자들이 우루루 나오는 [공항] 안전 비디오
Safety in Paradise - http://www.youtube.com/watch?v=SQDip9V49U0

[버진 아메리카]의 안전 비디오의 춤을 실제로 추고 있는 영상
Side by side - Virgin America Flight Attendant Safety Dance - http://www.youtube.com/watch?v=uB1TwudcTlc

[공장] 안전비디오에서는 이런 잔인함을 이용한 비디오도 많이 존재합니다.
german safety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G95n427P9-w
WSIB Safety Ad - https://www.youtube.com/watch?v=Qf_LWq88H5I

한편의 드라마처럼 만든 [어린이] 안전비디오(차내 열사병을 예방하기위한)
One Decision (Child Safety Film - Vehicular Heatstroke) - https://www.youtube.com/watch?v=XNDWN8KDVSM


어딜가나 유머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찾아가게 만드는곳에는 늘 재밋거리가 있습니다. TV, 공연, 인터넷, 친구와의 만남 모두 그러하죠.
디자이너나 관리자에게는 유머가 많은곳이 아니라 진지함으로 가득찬곳에서 유머를 이용할줄 아는 기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문화에서도 프리젠테이션에서도 상견례 자리에서도 말이죠.

이런 유머가 발산되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억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심지어 관리자들도 만족하더라도 스스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것 아니냐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억합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부터 억압하기 시작하죠. 그러다 보니 장려가 되지 않고 기피하게 됩니다. 보여주기식으로만 만드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실제로 사용자 경험을 주야장천 외치면서 우리는 시간, 판단, 지루함에 억압받고 이미 나와있던 것들을 답습합니다.

본인부터 깨려고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답습의 답습을 거쳐 성장은 커녕 퇴보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이것은 직업의식을 떠나 월급에도 직격탄을 날립니다. 유머를 받아주지 않는다거나, 바보스러워질것을 두려워하는것보다 잊혀질것을 먼저 두려워해야 할 것 입니다.

보다 안전과 유머를 모두 겸비한 비디오들이 많이 제작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14/04/30 15:16
수정 아이콘
본문보다 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많이 알아가네요.
김성수
14/04/30 15:18
수정 아이콘
헤헤..^^; 그러고 보니 저도 감사의 말을 잊었네요.
본문 잘 읽었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필요한 글이라는 생각도 했구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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