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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20 23:41:07
Name 지나가는회원1
Subject [일반] [스포 多]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본 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개인적으로 쓴 리뷰에 대해 나누고 싶어서 PGR 자게에 첫 글을 남깁니다.
아무리 자게가 가벼워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담되는 곳이네요.
페이스북에 먼저 썼던 글인 만큼 문어체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극 중 노무사로 출연하시는 분 너무 이뻐요. 게다가 주인공이라고 전체 분량의 절반을 화면에 잡아주는데 그게 참 보기 좋았습니다 크크


<1> 애국가와 함께 재생되는 영상에는, 주남 저수지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담은 게 나온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자랑할만한 것이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 있다.
하지만, 황지우 시인은 그것을 보고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를 썼다.

<2> 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태양이 움직이길래,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을 주장했고, 그것은 심지어 종교라는 사회적인 힘으로 정의 내려졌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정의를 의심하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지동설을 증명해낸다.

3> 애국가에는, 반도체를 만들고 있는 공장 직공들이 나온다. 보편적인 정서로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한 모습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노동집약적이며, 반도체를 만드는 데에 발생하는 화학적인 반응은 인체에 유해하기에, 반도체 직공들은 평생 한 번 들어보기도 어려운 희귀병에 노출되어있다.

<4> 초등학교를 나온 일개 택시기사가, 법무팀이 있는 회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그 법무팀이 전 세계에서도 유능하다고 손꼽히는 삼성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모델인 택시기사 황상기씨는, 그 불가능한 싸움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아, 억울하게 죽은 딸의 설움을 일정부분이나마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해성을 증명해 낸 첫 번째 승리이기도 하다.

<5>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는듯한 무모한 싸움은, 그 싸움에 지친 주변 사람들을 떠나가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극 중에서는 가족들이 다 떠나갔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 주인공은 투쟁하는 사람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내었다.

<6> 불가능을 이루어 낸 사람들이기에, 사람들은 통념적으로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모델인 황상기 씨를 굉장히 의지가 투철하고, 억센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로 본 황상기 씨는 지금도 택시 운전을 하고 있고, 극 중에서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술도 굉장히 잘 마신다고 김태윤 감독은 증언하고 있다.

<7>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아니 원제인 또 하나의 가족(삼성의 캐치프라이즈인 이유로 명예훼손과 감독의 기획의도에 따라 제목이 변경됨) 은 촬영 초기 단계부터 알고 있었던 영화이다. 내가 즐겨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세 번에 걸쳐 홍보방송을 해주었고, 소셜 펀딩을 홍보해주었으며, 나도 자금사정이 괜찮았다면 5만원이라도 소셜펀딩을 후원하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홍보하는 팟캐스트 방송국에서는 방송 제목을 이렇게 뽑아내었다. '잉여로운 감독의 의로운 의무'
그 당시에도 굉장히 소름이 돋았던 제목이다. 이 방송을 통해 드러난 감독의 삶은, 참 잉여로웠다. 7년간 백수로 보내다가 시작한 영화 제작,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촬영비, 촬영하다가 두려움을 느낀 배우가 도망가고, 촬영 파일을 만들었지만 배급사가 정해지지 않아 스크린에 올라가지 못할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삼성을 건드린 영상물을 배급한다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8> 또 하나의 가족은, 영화적으로도 상당한 완성미가 있는 작품이며 작품성도 제법 쏠쏠하다. 또한 자극적으로 소재를 활용했다면 충분히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론가들도, 이 영화가 말하는 화자들에 대해서 많은 입방아를 쏟아낸다. 어떤 평론가의 글은, 지방에 남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괜찮은 직장이 그런 곳 밖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윤 감독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9> 흔히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계는 초인 독재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살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이건 직감적인 것이라, 많은 사람들은 영화나 만화, 작품, 상상을 통해서 초인(영웅)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일어난 큼직한 변화들은 초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잉여'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의 손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 잉여는 기억되지 않는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최초의 의심은, 디씨인사이드 과학갤러리에서, '내가 저게 진짜면 고구마 한 박스 보내고 인증한다.' 라는 IP만 남은 한 잉여에 의해 시작되었으니까.
삼성이라는 초국적인 힘에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은 합리적이며 쉬운 선택으로 보인다. 그들이 가진 큰 힘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바꾸는 많은 사람들은 이름도 드러나지 않은 채로 '하지만'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조용히 시대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잉여들이다.

<10> 그렇기에,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서 쓴 리뷰의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고 싶었다.
'잉여들이 돌리는 시대의 수레바퀴, 그리고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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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天君
14/02/20 23:4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지나가는회원1
14/02/20 23:4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첫 자게글이라 이것도 은근 기대되고 기다려지네요
王天君
14/02/20 23:49
수정 아이콘
저도 영화 리뷰를 자주 올리는 편이라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크크 전 아예 자기 전에 올리고 하루 후에나 봐요
지나가는회원1
14/02/20 23:52
수정 아이콘
전 그럼 신경쓰여서 잠 못잘거 같아서... ㅠ.ㅠ
14/02/20 23:47
수정 아이콘
성시경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얼마나 더럽히는지 내가 보여줄 수는 있다."
지나가는회원1
14/02/20 23:48
수정 아이콘
참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크크
IntiFadA
14/02/20 23:50
수정 아이콘
우공이산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지나가는회원1
14/02/20 23:53
수정 아이콘
그렇죠. 사실 좀 바보같다면 바보같은 일인데, 이 사람 아니면 못해내었을 일이 아닌가 싶기도하네요.
아무리 삼성이라도 개인택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을거기도 하겠지만요.
yangjyess
14/02/20 23:53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입니다. 택시기사가 법무팀이 있는 대기업을 법적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나라. 그리고 7년간 백수로 보내던 영화감독이 그것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나라. 삼성을 건드린 영상물도 배급이 되는 나라.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간내서 꼭 지인들과 함께 보고 싶네요.
지나가는회원1
14/02/20 23:59
수정 아이콘
그닥 안 믿어지게 만들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나라긴 하지요.
조금씩 시대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다는게 어디겠습니까.
곧 막 내릴거라고 합니다. 이슈가 된거 대비해서 40만이면.. 메가플렉스에선 사실 손익분기 뽑기 어려우니까요.
빨리 보세요
멀면 벙커링
14/02/21 00:04
수정 아이콘
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이번주에 보고 왔는데 단순히 이슈만으로 관객을 끌어모을 그런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100% 만족할 그런 완성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정도면 이슈여부를 떠나서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잔잔하지만 영화보는 내내 지속적으로 제 가슴을 울리는 그런 영화더군요. 박철민씨 연기도 좋았구요.

오늘부로 누적관객도 41만명을 돌파했네요. 50만은 힘들더라도 45만정도는 충분히 찍어주길 바랍니다.
네잎클로버MD
14/02/21 00:10
수정 아이콘
70만 정도가 손익분기라 하더군요.
상영관만 제대로 확보했어도 이미 도달했을 수치라 봅니다.
개봉주 토요일에 충북지역 전체 CGV 중 한 관만 개봉했던데 12시 영화임에도 상영관이 가득 차더군요..
단지날드
14/02/21 00:41
수정 아이콘
올라간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영화 그러나 상업적으로 성공하기엔 뭔가 아쉬움이 있는 영화 저는 그렇게 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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