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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30 01:28:24
Name 아마돌이
Subject [일반] [반픽션 연애스토리] 봄, 여름, 가을, 겨울 (2)
첫 번째 여름 (2)

동아리 같은 거에 관심없다고 하던 영진이도 꽤 재미있었는지 같이가자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같이

가자고 했다. 다음 주에 만난 선배들은 내가 잔디밭에서 깨어났다는 말에 하나같이 미안해했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운동으로 힘든 몸에 술이 들어가면 더 빨리 취한단다. 선배들 입장에서는 괜찮아 보여서 택시

까지 줘서 보냈는데 택시 안에서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아직 밤에는 추운데다, 못된 사람을 만났으면 위험

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선배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선배들의 진심어린 모

습에 내 마음은 더 빨리 열려갔다. 일 주일에 한번 모였다 헤어지는게 다였고 연합동아리이다 보니 과방도

없고 학교에서 만나는 선배들도 거의 없었지만 학교를 다니는 내내 주말이 기다려졌다. 한주 한주 지나면서

70명에 달하던 신입생들은 한명 한명 줄어들기 시작했고 1달이 지나니 어느새 그 반절만 남아서 서로서

로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때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던 내 생각을

한 번에 바꿔준 그녀는 긴 생머리에 선천적으로 야리야리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왼쪽 송곳니에 덧니가

있었는데 미소를 지을 때  덧니가 살짝 보이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손바닥 만한 얼굴은 웬만한 연예인 싸다구 후려갈길 정도로 미인인데다 성격도 밝고 말도 잘해 벌써 몇몇 남

자 선배들이 살살 작업장 만드는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단지 운동을 참 못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자를 보

고 느껴본 적이 없던 생소한 감정은 아직 순진하고 어렸던 나에게는 너무 큰 풍랑이었지만 애써 곁눈질로

그녀의 이름이 효정이라는 것과 나처럼 생일이 1월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뒤풀이를 갔는데 어쩌다

보니 그녀가 내 앞에 앉게 된 것이 아닌가! 차라리 옆이라면 모를까 바로 앞자리는 시선을 피할 수도 없고 어

찌 됐든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게 싫을 이유가 없다.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니 어떻게든 친해져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분명히 아직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을텐데.. 그날 나와 그녀와의 대화에는

신기한 점이 있었다. 그 때 까지 나는 (특히 여자와의)대화를 썩 잘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렵게 생

각하지 않아도 그녀의 말은 뇌리에 박혔고 난 할 말이 쏟아졌다.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의 생각이 읽혔

고 난 그저 솔직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기만 하면 대화는 완성되었다.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최소한 그 때는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아쉬운 대화를 나누고 난 그 때부터

난 마음을 뺏겼고 효정누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효정누나의 마음은 나와 달랐겠지만 말 잘하는 누나에게도 나와의 대화는 썩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누

나는 감히 물어보지도 못한 나에게 스스럼없이 전화번호를 주었고, 유행하던 msn메신저 주소도 알려주며

앞으로도 나와 얘기 많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아마 나는 몰랐겠지만 그 때 나를 지켜보던 남자 선배들의 마

음은 나와 달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난 그런 사소한 것을 기억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날 나

는 평소와 다른 선배들의 강권에 주량을 한참 넘게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고 집에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한

참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나, 저 경호에요. 어제 재밌었어요 ^-^’

라고 문자를 써 놓고 전송 버튼을 50번도 더 눌렀다 떼었다 안절부절 못하다 실수로 눌러버리고는 하얗게 질

려버렸다. 아.. 좀 친한척 더 할걸 그랬나?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어봐야 좀 배려심 있어 보였을

까? 사람은 단 몇 초 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바로 답장이 와서 다행히 오만가지

생각에서 멈출 수 있었다.


‘난 술 많이 안먹어서 괜찮은데 넌 많이 먹더라. 잘 들어갔어? 나도 어제 재미있었어^^’

이게 내가 여자에게 받은 첫 번째 문자였다.

그날 누나와 msn으로 친구가 되고 난 후 나는 그녀에 대해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중학교 때부터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일종의 올빼미 기질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 효정 누나도 그렇다고 했다. 매일

새벽 4시 5시까지 대화를 나누었는데 비록 채팅으로 나누는 대화였지만 상대를 알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

있고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고 누나와의 대화는 사소한 이야기를 해도 항상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효정누나. 나 누나 좋아해요. 알고 있었죠?’


그리고 몇 주 후 나는 야심한 밤 채팅을 하던 도중 고백을 하고 말았다. 다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전화고백도, 문자 고백도 환영 받지 못하는 판에 채팅고백이라니.. 거기다 내 맘을 상대가 완벽하게 알아줄 거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라니.. 사실 바보가 아니라면 알았을 거라고 생각 하지만, 그 때부터 즐겁기만 했던 누

나와의 대화는 날카로운 면도칼처럼 내 마음을 조금씩 베어내기 시작했다. 난 귀엽고 함께하면 재밌고

좋은 동생이지만 남자로서의 감정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그 날부터 20번은 더 들어야 했다. 고백을 하지 말

았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채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하는 옛날 남자친구 얘기나, 나와는 하나도 비슷한 점이 없어 보이는 성시경 같

은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얘기가 그 날부터 내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얄궂게도 효정 누나는 운동을 참 못했다. 그렇게 못 할 수도 없는게.. 타고난 미모로 스쿼시좀 한다는 동아리

선배들이 앞다퉈서 과외하듯이 가르쳐 주는데도 영 늘지를 않았다. 그리고 2학년에 동아리 신입생으로 시작

하면서 기존 동아리 2학년 (여자) 선배들과 알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나가 동아리에 나오는 횟수가 점점 뜸해지면서 반대로 나와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누나와 나는 생각도 가치관도 생활 습관까지 비슷한데다 얘기가 너무 잘 통했고, 함께 할수록 가까워 질 수 밖

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커지는 감정 때문에 항상 힘들었다. 20번은 고백을 거절당했지만 수시로 영화도

보러 다니고, 술도 함께 마시곤 했으며 밤 늦게 둘이 노래방에서 놀고오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밤에는 언제나처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분명 효정누나는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어쩌면 제대로, 진지한 고백을 해 주길 바라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확신으로 바뀐 날 나는 마지막 고백을 준비하기로 했고, 이 고백까지 거절 당하면 다시는 누나를 안보리라 결

심했다. 그리고 일요일에 데이트 신청을 했고, 승낙을 받아냈다.





덧'  쓰고 몇 번 다시 읽어봤는데 그렇게 재밌진 않네요 ^^; 그냥 주말인데다 난데없이 뭔가가 쓰고 싶어져서 얼마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소설이라는 말은 빼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경험담에 살을 붙이고 살짝 꼬아서 픽션 50%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논픽션 80%가 되서 말이죠. 가을, 겨울편은 다음에 계속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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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eminence
13/03/30 15:52
수정 아이콘
풋풋하고 재밌네요 계속 올려주세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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