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3/29 17:47:42
Name 글곰
Subject [일반] 남자, 프로포즈하다
  남자는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만난 지 대략 반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남자는 서른하나였고 여자는 스물아홉이었습니다. 주변에서 결혼 언제 할 거냐는 압력이 슬슬 강해지고 있던 시기였지요. 남자가 느끼기에 여자는 그에 대한 호감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으며, 아무래도 멋지고 우아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청혼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프로포즈라는 건 응당 남자의 몫일 터였죠. 그래서 남자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애당초 남자란 족속들의 계획이란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지만, 놀랍게도 이날 남자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답니다. 마침 만난 지 200일 기념이라는 핑계가 있어서 이벤트를 준비하기 어렵지 않았지요. 숨겨진 프로포즈의 명소라는 모 미술관 겸 식당의 독방 하나를 따로 예약하고, 코스 요리에다 장미꽃 장식과 촛불을 곁들였습니다. 고전적이지만 또한 효과적인 방법이었죠.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여자의 얼굴에는 감동이 차올랐고 남자는 속으로 득의양양해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지요. 남자는 나름대로 신경 써 고른 반지를 비장의 무기로 내밀었고, 여자는 감동에 눈물까지 살짝 비치며 반지를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올 것만 같은 명장면이었지요! 오케스트라의 우아한 연주가 BGM으로 깔리지 않은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 : 그 때 당신이 나를 그렇게 좋아했었죠. 아 정말 이놈의 인기란.  
  아내 :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자기가 더 좋아했으면서. 프로포즈도 먼저 했잖아요.
  남편 : 하도 나랑 결혼하고 싶어하니까 내가 먼저 프로포즈한 거죠. 내가 남자니까.
  아내 : 난 애당초 결혼은 생각도 없었거든요? 나 독신주의자였던 거 몰라요?
  남편 : 아니 그럼 청혼은 왜 받아들였어요? 생각도 없었다는 사람이.
  아내 : 그야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거절해요?
  남편 : 아니 그러니까 그게 당신이 나를 더 좋아했다는 증거라니까요?
  아내 : 더 좋아하는 사람이 청혼하는 거지. 그럼 싫어하는 사람이 청혼하나?
  남편 : 내가 없었으면 지금도 장모님께 시집가라는 잔소리나 듣고 있었을 테니 당연히 내게 고마워해야죠?
  아내 : 결혼을 안했으면 당신이 아침에 어디 밥이라도 먹고 살았겠어요? 참치캔이나 까 먹고 있겠죠.
  남편 : 암튼 당신이 날 더 좋아했어요!
  아내 : 당신이 나를 더 좋아했다고욧!

  진실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펩시보다콬
13/03/29 17:49
수정 아이콘
지금은요? 지금이 중요하죠 네...
13/03/29 18:02
수정 아이콘
지금은 당연히 와이프가 저를 더 좋아하죠.
제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정말 좋아하면서 애를 제게 맡깁니다?!?!
tannenbaum
13/03/29 17:51
수정 아이콘
아~ 달달하다
13/03/29 17:55
수정 아이콘
저는 300일에 프로포즈 했었지요.
근데 아직 존댓말을 쓰시나봐요?
13/03/29 18:01
수정 아이콘
원래는 존대하다 지금은 반존대입니다. 제가 존대하는데 와이프는 반존대니 왠지 손해보는 느낌에.... 헤헷.
덴드로븀
13/03/29 17:57
수정 아이콘
전 중국으로 날아가서....
저글링아빠
13/03/29 17:57
수정 아이콘
Aㅏ... 어떻게 부부간에 이런 대화가 가능하지.

아직 애가 없으신가....
13/03/29 18:00
수정 아이콘
애가 태어나지 전의 대화였습니다.
지금은 애가 5개월째라...........
honnysun
13/03/29 17:57
수정 아이콘
달달하군요. 좋아요.
대통령 문재인
13/03/29 18:00
수정 아이콘
존댓말 커플 매력적이네요. 좋은거 배웠다.. 헤헤
KillerCrossOver
13/03/29 18:03
수정 아이콘
결론 났네요. 서로 안좋아하시는게 분명합...

은 농담이고 부럽습니다요 :)
설탕가루인형
13/03/29 18:03
수정 아이콘
저 쪽지로 모 미술관 겸 식당의 독방 좀 소개해주시면 안될까요?
13/03/29 18:11
수정 아이콘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다만, 프로포즈용으로 예약하면 돈이 꽤 많이 깨집니다.
13/03/29 18:04
수정 아이콘
아....

남자 : 음 이제 우리도...결...
여자 : 해야지. 그런데 프로포즈니 뭐니 하면 죽는다.
남자 : 넵.

이 차이는 뭘까요 ㅠㅠ
13/03/29 18:05
수정 아이콘
저는 잘생겼기 때문에 와이프가 프로포즈를 원했던 겁니다. 그림이 되잖아요!
13/03/29 18:07
수정 아이콘
분명 머리숱은 적으실 겁니다.
13/03/29 18:11
수정 아이콘
타인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자세입니다.
덧붙여 한달에 오만원 정도면 탈모를 막을 수 있습니다!
13/03/29 18:31
수정 아이콘
어떻게 하는데 5만원밖에 안드나요??
Marioparty4
13/03/29 18:07
수정 아이콘
이 댓글 때문에 본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흑흑
2막2장
13/03/29 19:52
수정 아이콘
좋아요+1
Marioparty4
13/03/29 18:04
수정 아이콘
염장 글 싫어하는데 이런 글은 또 좋네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부럽다, 배아프다, 이런 느낌 이전에 행복한 가족 동화를 보는 기분이라 정말 좋습니다.
13/03/29 18:35
수정 아이콘
연애 염장글과 결혼 염장글은 다른 맛이 있지요.
유부는 부럽지 않습네다.
13/03/29 18:21
수정 아이콘
남자 프로토스하다 로 보고들어온..;
체셔고양이
13/03/29 19:02
수정 아이콘
+1
허브메드
13/03/29 18:31
수정 아이콘
남자친구 끼리도 누가 더 좋아하냐고 묻나요

어차피 의리 아니겠습니까
그리움 그 뒤
13/03/29 18:42
수정 아이콘
저의 경우에는 제가 결혼을 미적거리자 헤어졌던 여자인간 분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더군요
와서 하는 말이 나 지금 결혼준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집도 계약했다.
근데 너 생각나서 도저히 그 결혼 못하겠어서 오늘 그쪽 부모님 찾아뵙고 죄송하다고...결혼 못하겠다고 하고 왔다...라고 하더군요
.
.
네....결혼해 드....리겠습니다.
울 마눌님....요즘 참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때 미쳤지...라며....
13/03/29 19:54
수정 아이콘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군요...
포포리타
13/03/29 18:47
수정 아이콘
저같은 경우에는...

음....

일단 제 자존심을 만졌기 때문에 제가 끈질기게 구애했습니다.
후후... 와이프는 저랑 결혼한 것에 후회 안하는 것 같습니다만..
전... 힘들어 죽겠습니다..
Darwin4078
13/03/29 19:02
수정 아이콘
이런거 쓰지마요.
프로포즈도 안하고 결혼한 저는 TV에서 프로포즈 장면만 나와도 움찔합니다. ㅠㅠ
영비천
13/03/29 19:39
수정 아이콘
저는 요즘 프로포즈링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둘이 커플링 같은걸 한적도 없어서.. 반지 사이즈 물어볼 수 도 없고 어림짐작으로 맞췄다가 안맞으면 어떡하나 싶네요.
이럴때는 어떡해야하나요 그냥 확 물어봐야하나..
13/03/29 20:02
수정 아이콘
미리 반지를 사주는 척하고 반지가게로.....
신지드
13/03/29 22:11
수정 아이콘
넉넉한 사이즈로 하시고 나중에 줄이거나 바꾸시는게 어떨까요?
가게에 가시면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실지도 모릅니다.
13/03/29 23:11
수정 아이콘
문제는 명품이면 한번 정하면 교환이 안되더라구요;;;;;
명품사실꺼면 확실히 사이즈 재서 가야됩니다
이쥴레이
13/03/29 19:47
수정 아이콘
프로포즈 했고 결혼한지도 어연.. 2주일이 지났는데.....


왜이리 길게 느껴지죠......


한 몇년전에 결혼한거 같아요... ㅠ_ㅠ

아웅..........
13/03/29 19:51
수정 아이콘
저도 2주 지났는데... 저는 아직 결혼 안한거 같아요... 신혼스러움을 못느끼는 ㅠ_ㅠ
13/03/29 20:02
수정 아이콘
저 내일 프로포즈하고 다음주 결혼 예정인데 ㅡ.ㅡ;;;;
시라노 번스타인
13/03/29 20:52
수정 아이콘
하아... 언제 결혼하지...
인생의 마스터
13/03/29 23:01
수정 아이콘
프로토스는 남자의 종족이지요.
13/03/30 02:06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싫어요. 님 고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978 [일반] 제가 생각하는 한국 영화 최고의 장면은...(욕설, 폭력장면 주의) [68] Neandertal10663 13/04/01 10663 1
42977 [일반] 페이스북은 이렇게 쓰자 [83] 절름발이이리10941 13/04/01 10941 11
42976 [일반] 자삭......ㅠ [49] 삭제됨7298 13/04/01 7298 1
42975 [일반] 만우절 ㅋㅋㅋㅋㅋ [233] 동네형21653 13/04/01 21653 5
42974 [일반] 부스럭거리다 [13] 삭제됨4394 13/04/01 4394 1
42973 [일반] 안철수씨의 새 정치? [311] 10336 13/04/01 10336 0
42972 [일반] 연애의 온도를 보고(스포일러 왕창 포함) [22] 메모박스13851 13/04/01 13851 0
42967 [일반] 김종훈 전 후보자 워싱턴포스트 기고글 원문+번역 [93] 안동섭9396 13/04/01 9396 7
42966 [일반] 상견례를 마치고 왔습니다 [27] 쉬군5824 13/04/01 5824 1
42965 [일반] <귀국 보고서> 주진우, 김어준 “우리가 도망갔다고?” [84] 어강됴리10138 13/04/01 10138 9
42964 [일반] 지식채널e - 그르바비차 [17] 김치찌개4807 13/04/01 4807 0
42963 [일반]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 <지하철타고 이곳저곳 둘러보는건 어때요?> [3] 김치찌개5221 13/04/01 5221 2
42962 [일반] 다시 한번 한국포병 포쏘는 직사말고 곡사큰거는 다 모아봤습니다. [32] 김치찌개6353 13/04/01 6353 1
42961 [일반] 김종훈 전 미래부장관 후보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 [98] empier7181 13/04/01 7181 1
42960 [일반] 우리 역사의 숨겨진 진실 [49] 눈시BBbr13260 13/04/01 13260 0
42959 [일반] 나도 고백하고 싶다 [33] Mentos6426 13/04/01 6426 5
42957 [일반] 이번 주에, 고백하러 갑니다. [106] The xian9631 13/03/31 9631 12
42956 [일반] [야구] 개막 2연전 각 팀별 간단 감상 [52] giants7987 13/03/31 7987 1
42955 [일반] 날씨좋은데 여자분 집까지 바려다 주다가 망했네요.ㅜ.ㅜ [54] Eva01010486 13/03/31 10486 12
42954 [일반] 한국어 안의 한자어 이야기 [41] 안동섭6301 13/03/31 6301 22
42953 [일반] 수꼴과 종북에 대한 자아해설 by 진중권 [36] 어강됴리8222 13/03/31 8222 0
42952 [일반] 층간소음 끊이지 않는 전쟁... [50] WraPPin8918 13/03/31 8918 0
42951 [일반] 다시보는 류현진 한국에서 마지막 경기 H/L+인터뷰 눈물. [12] 은하수군단7982 13/03/31 7982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