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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09 20:40:13
Name 자전거세계일주
Subject [일반] [야구 계층] 어느 골수 야구팬이 살아가는 방법
  “야, 어제 광주 경기 봤어? 세상에! 김주형이 9회말 대타 역전 쓰리런 치는데, 와, 내가 살다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진짜 선 감독 약 빨았나 싶었지. 아니, 9회 2대 1로 지고 있고, 마지막 기회인데 2안타 친 이범호를 빼고 김주형을 넣어? 오승환인데? 오승환 올해 18경기 방어율 제로인데? 스트레이트 볼넷이랑 수비 실책으로 1사 1,3루,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잖아. 누가 봐도 이런 기회는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거지. 제 아무리 철가면에 돌부처라 해도 느낌상 왠지 분위기 넘어왔다 싶었어. 왜? 다음이 이범호니깐. 두 번째 타석에 솔로 홈런도 있었고 말야. 세 번째 타석 직선타만 아니었어도 3안타 경기였거든. 타격감 좋았지.
  
  아니 그런데 그 상황에서 김주형이 나오더라고. 어라? 이건 뭐지 싶었지. 나오자마자 TV 화면으로 병살타의 기운이 쫙 퍼지는데, 와, 이건 뭐 조건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 나오더구만. 화면에 선 감독 멀뚱한 표정 비쳐질 땐 그 양반 머릿속을 한 번 헤집어 보고 싶더라구. 이순철 코치 표정도 굳어있던데 그럴 거면 왜 냈는지? 차라리 신종길이라면 이해는 해. 하다못해 땅볼 쳐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수비 실책으로 1루는 가지 않을까 뭐 그런 스웨터 보푸라기만한 가능성은 있으니까. 진짜 이범호 교체는 미스터리였어.

  하, 근데 대타면 초구를 일단 한 번 노려봐야 되는 거 아냐?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138km짜리 한복판 직구를 그냥 부드럽게 흘려보내는데 거기에서 소름이 쫘악 돋았지. 아주 그냥 내가 득도한 기분인 거야. 기아 팬들을 모두 노스트라다무스로 만들어 주는 경이로운 플레이가 나왔잖아. 아니 지금 1위팀 마무리가 1년에 고작 서너 번 있을까말까 한 실투를 던졌는데도 그냥 쿨하게 쌩까는 게 말이나 되는 플레이야? 내 장담하는데 이범호였다면 그 공에 최소한 희생플라이는 쳐서 동점은 만들었겠지. 오케이, 어쩌면, 만약에, 정말 어쩌면 김주형이 변화구를 노렸다 치자.
  
  근데 다음 공이 또 손에서 빠졌거든. 오승환답지 않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야. 슬라이더였는데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이미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었지. 근데 김주형이가 힘차게 배트를 돌리더라고. 농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허공을 가르는데 배트 휘젓는 소리가 중계 화면에 들리더라니깐? 이 정도면 경기 끝난 거지. 오승환이 두 번 실수도 없는 투순데 세 번은 절대 할 리가 없지. 자꾸 이범호 생각에 안타깝고, 화나고. 그 들뜨던 관중석에 찬물이 쫘악.
  
  그리고 3구 바깥쪽, 4구 몸 쪽 볼이었는데, 솔직히 네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였다고 봐. 원래는 삼진 아웃 줘도 할 말 없는 공이었어. 암튼 나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와. 5구 때 승부가 들어왔거든. 바깥쪽 빠른 직구였어. 근데 어라? 김주형이가 맞추네? 그냥 플라이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공공 쭉쭉 뻗어가네? 그것도 우중간으로? 이건 뭐지 싶었지. 설마했지. 와, 진짜 완전 펜스 넘어갈 땐 반전 소름 죽이더라! 관중들도 어색했던지 함성이 2초 뒤에 나오더라니깐, 크크크.
  
  근데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니 주형이 눈 감고 막 치더라고, 밀어 친 게 아니라 밀려 쳐진 느낌, 얻어걸린 느낌, 막 그냥 우격다짐으로 넘긴 느낌, 뭐 그런 거. 하하, 야, 김주형 덕분에 1위 팀한테 올해 처음으로 위닝 시리즈 한 번 했다는 거 아냐. 진짜 걔 인생경기였어. 정말 대박이었다. 뭐, 이런 날도 있어야 낙이지. 근데 현욱아, 넌 왜 별 말 없어. 요즘 야구 안 봐?”
  


  “아…. 나 뭐 사실 그닥 야구에 흥미가 없어져서. 야구 끊은 지 오래 됐어.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데 신경 쓸 겨를도 없고.”
  “그래? 난 또 너 여태껏 야구에 미쳐 사는 줄 알았지. 너 MBC 어린이 회원이었잖아. 암튼 미안하다, 야구 얘기만 해서. 어젠 진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내가 좀 흥분했나 봐. 어? 야구 시작하네? 야, 오늘 김진우-주키치 선발이구만. 재밌겠네, 요즘 엘지 잘하던데. 4위야, 4위. 잘하면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 갈 것 같아.”
  “있잖아, 너 야구 보고 싶으면 그냥 편히 야구 봐, 나 내일 업무 준비 때문에 어차피 일어나야 해. 괜찮아.”



  야구광인 단짝 친구와의 이른 저녁 식사를 끝낸 현욱은 터벅터벅 그림자를 끌고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노총각 혼자 사는 방, 장마철이 막 끝나 눅눅함이 짙게 배어 나온 반지하방엔 퀘퀘한 냄새가 진동했다. 방에 불을 켠 그는 적막함이 싫어 습관처럼 TV부터 켠 다음 소녀시대 브로마이드가 걸린 문 옆 옷걸이에 양복을 벗어 걸어두었다,

  그리곤 옷장에서 조용히 검정색 유광 잠바를 꺼내 입었다. 숨 죽은 풍선 막대도 꺼내들었다. 뚫어져라 TV 화면을 쳐다보던 현욱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혹시나 가끔 두산 모자를 쓰고 외출하던 옆집 귀요미 여대생이 들을까, 인생의 좌우명을 마법의 주문 외우듯 한 글자씩 나지막이 외치기 시작했다.



  











  “무!”
  “적!”
  “엘!”
  “지!”

  그의 눈에선 언젠간 살만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으로 반짝반짝 별이 빛나고 있었다. 2013년 7월의 어느 날.

  - 서술형이라 반말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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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09 20:46
수정 아이콘
오승환의 135km 직구는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집니다..흐흐
농담이고 엘지팬들이 주변에 많아서 십분 이해가 가네요.
자전거세계일주
13/01/09 20:56
수정 아이콘
138km로 수정...그래서 '1년에 서너 번 밖에 없는 실투'라고 적었지요..오승환..무섭습니다..^^
13/01/09 20:50
수정 아이콘
우린 여기서 김주형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해봅니다.....대체 뭘까....뭐하는놈이길래...눈감고도 홈런을치는가...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에게..
것도 실투는 봐주면서까지....조만간 메이져에서 보는건가요
자전거세계일주
13/01/09 20:58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기아 팬들이 난리난거죠..기적이 일어난 거니..김주형은 저도 포기했습니다. 나비만 믿슙니다. ㅠㅠ
Practice
13/01/09 20:53
수정 아이콘
어쨌든 삼성은 1위 팀이고, 7월에 들어서야 기아는 삼성에게 첫 위닝 시리즈를 가져간단 말이로군요. 이 예언 맘에 듭니다(?!)
자전거세계일주
13/01/09 20:59
수정 아이콘
본문에 무려 김주형에게 끝내기 홈런 맞는 오승환 땜에 혹여 라이온즈 팬들 심기불편할까봐 당연한 설정(?)을 장치해 두었습니다. 헤헤.
불곰왕
13/01/09 20:55
수정 아이콘
전 김주형에 두번다시 기대하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작년만해도 '오늘 여기서 치면 내가 니 과거는 다 잊어주마' 를 수도없이 되뇌었지만
올해는 속지 않을꺼에요 올해 김주형이 안 터진다는데 제 라파에를.... 은 무린가;;
하여간 그렇습니다.
신종길은 한번만 더 믿어볼려구요 2011년 마지막엔 그래도 잘 했으니까
좌우간 - 엘롯기 올해 잘해봐요 ^^
자전거세계일주
13/01/09 21:02
수정 아이콘
저 타이거즈 팬입니다. 주변에 두산팬이 젤 많고, 다음이 엘지팬.
"기아 없이는 못 살아 기아 없이는 못 살아 기아 없이는 못 살아 정말정말 못 살아"
runtofly
13/01/09 22:32
수정 아이콘
저도 짐주형 포기했어요... 스윙은 좋은데 자신감이나 수싸움이 안되는듯...
그리움 그 뒤
13/01/10 10:45
수정 아이콘
라파에 걸어도 크게 무리가 없어보입니다.ㅠㅠ
13/01/09 21:13
수정 아이콘
삼빠로, 첫 두줄 읽고

나니?


저런적이 있었나싶어서 한창 네이버서 오승환 김주형 검색하고...찾은 결과가
재작년에 기아갤러리에서 나온 글
"포텐 다 터진 오승환보단 아직 포텐 안터진 김주형이지"
KillerCrossOver
13/01/09 21:22
수정 아이콘
모바일로 보고있는데..


액정에 왜 자꾸 땀이 떨어지죠....ㅠㅠㅠㅠ
13/01/09 21:36
수정 아이콘
그거 땀 맞나요.,...
13/01/09 21:28
수정 아이콘
하아.... 일곱번째 문단에서 "너 야구보고싶으면 그냥 편히 야구 봐"라는 말에서 느끼는 이 기분은 뭘까요...ㅠㅠ
13/01/09 21:36
수정 아이콘
이 글에서 엘지는 아직 안떨어졌네요,....
13/01/09 21:40
수정 아이콘
만약 NC와 한화가 기적을 일으켜서 가을야구를 간다면...
그땐 3.3혁명때보다 더 엄청난일이려나요?
방과후티타임
13/01/09 22:08
수정 아이콘
올해에 NC랑 한화가 둘다 가을야구하면, 3.3혁명보다 2.69배 더 엄청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3/01/09 21:42
수정 아이콘
엘지를 한화로 바꿔도 될듯하겠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요즘 엘지 잘하던데. 4위야, 4위"
이부분에서 막히네요 ㅠ.ㅠ
한화가 4위를 하고 있을리가 없잖아..
불량공돌이
13/01/09 21:46
수정 아이콘
롯팬입니다.
첫줄에 '김주형이 대타 역전 스리런'까지 읽고 고개를 갸웃. 그런적이 없을텐데?
둘째줄에 '오승환 올해 18경기 방어율 제로인데?' 까지 읽고 '아... 이 글은 굉장히 슬픈글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글링아빠
13/01/09 21:57
수정 아이콘
엘지가 4위인 걸 보니 아직 시즌 초중반인가보군..이라고 생각하니 오승환이 아직 18경기밖에 못나왔군요.. 역시 ^^;;
리얼리티 쩔어서 (김주형 3점홈런 빼구요.. 그거야 남의 사정이라.. ^^;;) 슬퍼요..

지은이 분이 타이거즈 팬이라는 건 함정.. 아.. ㅠ_ㅠ
Walk through me
13/01/09 22:32
수정 아이콘
기아팬으로 이 글을 읽고 폭풍 쓰나미가 몰아치네요.

김모 선수, 신모 선수, 기대를 그냥 접고 보는게 속편합니다만 그게 참 안되네요. 에휴..........
올해 그냥 가을에만 야구 했으면 참 좋겠네요 -_-
이퀄라이져
13/01/09 23:50
수정 아이콘
이러면 안되는데 이젠 정말 김주형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화가 나요....
라리사리켈메v
13/01/10 02:03
수정 아이콘
한상훈이출동한다면?
설탕가루인형
13/01/10 08:44
수정 아이콘
저는 무적엘지가 창피하지 않습니다!
창피하려면 프런트와 선수들이 창피해야죠~
올해도 열심히 응원해볼랍니다. 하지만 안되겠죠...흑흑
13/01/10 10:27
수정 아이콘
돈주고도 보기 힘든 야왕의 작전 때문에 지나가는 한화팬도 울고 갑니다.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크크
13/01/10 13:12
수정 아이콘
프야매에 21세기 엘지 우승덱이 등장하는 그 날까지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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