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우리 생에 마지막 년 월 일이 같은 날이라며?"
"그래? 12년, 12월 12일. 13.... 아 맞네 진짜 그렇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뭐하는건지.."
"흐; x까지 말고, 시험 공부나 해 임마. "

참 이상하게도 평소에 아무렇게 했던 그 모든 일들 (엄청나게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일 조차)은 시험기간만 되면 모조리 다 재미있어질까요? 평소엔 무겁다며 보지 않던 뉴스며, 참치떼를 잡는 어부의 다큐멘터리며, 취향에 잘 맞지 않아 보지 않던 드라마까지.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들 변하는지.. 또 시험기간에는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런 짓이 굉장히 생산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상하게 공부는 손에 안 잡히는데. 해야만 하는 건 안되는데, 지금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건 마치 꼭 지금이어야 하는 것처럼, 열심히. 재밌게 합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추천을 하는 것도.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거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하지만 시험기간에는 뭔가를 하는 그 모든 것이 전부 즐겁고 재밌는 일이니까요.  취향입니다..글을 보고 펌프질을 받기도 했구요. 그런 김에 한 번 써봅니다.

1. '러프'  아다치 미츠루 작
사실은 아다치 미츠루만큼 왔다갔다 하는 작가도 별로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작품에 따라서 퀄리티 차이가 상당한 작가다 보니 추천을 해주고도 이상한 소리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러프'를 추천했을 때는 다들 군 말없이 재밌다며 보더군요. 그런 작품입니다. (물론 러프를 보고 나서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있다가  '미소라'라든가 '카츠' 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은 종종 봤습니다.) 이미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실만한 작품이라 딱히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헤헤. '러프' '터치' 'H2' '미유키' 로 말해지곤 하는 아다치 4대명작..중 개인적으로는 첫 손에 꼽는 작품입니다. 안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보세요. 영화는 보지 마시구요.

2.'엠마' 모리 카오루 작
모리 카오루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된 이유는 그림체가 이뻐서 였습니다. 되게 뭐랄까.. 엠마를 처음 본 순간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가 처음 등장했다!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도 조...좋아합니다. 엠마.그리고 아미르) 그리고 거의 보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였어요. 로맨스 이야기야 수 많은 책에서 봐왔던 소재고. 20세기 초를 다룬 만화책도 가끔 봐왔던 저였지만, 그 시기 영국의, 그것도 메이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리 카오루의 작품을 보면, 분명히 격동의 시기를 사는 사람들인데 그 안에 있는 평화로움이 느껴지곤 합니다. 해피해피- 한 기운이 책 전체에 가득하달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무난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그 안에는 위기도 절정도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답니다. 그래서 참 놀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볼 때마다 역시 한 번 꼭 보세요.

3.'꼭두각시 서커스'  후지타 카즈히로 작
엠마와는 전혀 다른, 미형이라곤 절대 생각할 수 없는 화풍을 가진 후지타 카즈히로의 작품 꼭두각시 서커스입니다. 전작인 요괴소년 호야를 보지 않고 꼭두각시 서커스 먼저 보았는데. 사실 처음엔 뭐지? 왠? 펜선만 잔뜩 가득한 이상한 그림이 나오는거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상함은 정말 얼마가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한 7권쯤 넘어가고 나니. 어느새 그 다음 권 그 다음 권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을 찾는 제가 있었죠. 그런만큼 흡입력 있고, 멋진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권대 후반때가 가장 재밌었던 것 같지만.. 그 후에도 꼭 볼만한 엘레오놀과 가토의 행복을 자동으로 빌어주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림체만 참고 보시면. 어느새 그 그림체도 개성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실 겁니다.  

4.'하멜의 바이올린' 와타나베 미치아키 작
역시, 그림체가 가장 큰 장벽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그림체라곤 생각안하는데 추천해주면 다른 사람들은 항상 그림체가 뭐 이래? 하면서 안보게 된다고 하더군요. 음.. 약간은 순정만화 틱한 그림체라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는 별로 들지 않았던 걸까요.,. 여튼, 이 만화책을 보면서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전부 음악 악기라는 점입니다. 지명도 음악 악기구요.
음..만화책의 줄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둘러싸고 대마왕 오케스트라를 잡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하멜 일행의 이야기.. 쯤 될까요.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고 또 흔한 이야기지만 굉장히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류트 왕자의 스페르첸드 왕가 지키기..는 정말 눈물날 정도지요. 아쉽게도 이 작품이 연재될 당시 타이의 대모험이 같이 연재되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각만큼의 인지도도 유명도도 잘 얻지 못한 작품입니다. 2부도 잘 안풀려서 만화가 인생을 접게 되었다는 말이..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5. '모래시계' 아시하라 히나코 작
이번엔 순정만화 추천!.. 사실 만화책을 보면서 치유가 되거나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그런 마음을, 그런 생각을 '모래시계'는 하게끔 합니다 . 아시하라 히나코의 작품이 대개 그렇지만 글쎄요. 특히 이 작품은 뭐랄까..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작품이랄까요. 늘 힘들거나 지쳤을 때 모래시계를 보면서  '힘내세요, 지지마세요" 를 외치곤 합니다.
꼭 정말 꼭 한 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작품이네요. 진짜로.

6.'천재들의 합창' 오 수 작
이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그런 작품이 있었나? 정말? 무슨 작품이야?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만한 작품입니다. 찾아보니 94년도에 첫 권이 나왔네요.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즐겨봤던, '무술소년 꼬망' 이전의 가장 웃겼던 '키드갱'보다 더 많이 웃었던, 그런 작품입니다. 천마초..맹미조..지금은 되게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름들이 그 당시에는 왜 그리 멋지고 이쁘다고 생각했을까요. 정말 정말 재밌는 작품입니다. 근데.. 근데...이건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꼭 한 번 구해서 보시라고 하고 싶은데 저도 못 구한 작품이라...그..그래도 정말 한 번 보세요! 지금 보기엔 굉장히 유치한, 피식하는 개그지만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입니다. (본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헤헤..)

7.'오년생' 키오 시모쿠 작
'현시연'으로 유명한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현시연과 비슷하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맞으나 현시연은 그나마 조금 밝은 편이라면 '오년생'은 정말 좀 어두운 편입니다. 특히나 이 작품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딱 제 시기의 사람들이 할만한 고민을 다루고 있어서 보면서 그래... 후.. 난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할만큼 씁쓸하게 본 작품입니다. 하지만 글쎄요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가고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 번 더 보고 싶은 그런 작품입니다. 한 번 더 봤구요.만화가 만화같지 않아서 좋은, 싫은, 그런 작품입니다.


...사실은 이 글을 쓰기전에는 더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이 생각나고 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고 나니 전혀 생각이 나질 않네요. 글도 예상외로 너무 길어졌고. 다음 번에 또 다시 한 번 이런 글을 쓰는게 재밌어지는 시기가 오면 그때나 한 번 더 써볼까합니다. 헤헤.. 한번쯤. 만화책 보시면서 올 연말 즐겁게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만화책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