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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26 06:39:47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4. 킨 특수임무부대
미군이 주목한 것은 진주-마산-부산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애초에 낙동강 방어선의 성립 자체가 이 곳을 노리는 6사단의 기동 때문이기도 했고, 낙동강만 건너면 험지도 별로 없고 도로도 잘 닦여서 바로 부산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었죠. 동해안 쪽에서 국군이 적이 산길을 통해 침투하고 있다느니 방어선이 계속 뚫리고 있다느니 하는 것도 무시한 채 (...) 미군은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붓습니다. 때문에 포항까지 뚫린 가운데서도 미군이 보낸 증원군은 영일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한 임무부대 하나 뿐이었죠. 대구 쪽의 1사단에 대해서야 지원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미 25사단의 신속한 이동으로 부산이 구출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상륙작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워커 중장이 신경쓸 단계는 아니었죠. 빨리 적에게 큰 타격을 줘서 반격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최후의 방어선이자 반격을 위한 준비일 뿐이었고, 국군이나 미군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최소한 38선은 수복해야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워커는 공격을 선택합니다. 방어는 이미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교적 개활지가 많고 낙동강이 있는 한 압도적인 화력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뭐 정작 강을 건넌 적들과 고지전을 계속 치르긴 했습니다만.

25사단이 마산에 배치됐을 무렵무터 반격작전의 구상이 시작됩니다. 그 중 하나는 5일부터 10일 사이에 마산-진주 방면을 공격하는 것, 다른 하나는 8월 중순까지 기를 모은 후 전면공격으로 여수까지 갔다가 순천-전주-논산을 통해 금강선까지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선택된 것은 전자였죠.

여기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습니다. 마산 방면에서 공격을 시작해 대구 방면에서 가해지는 적의 압력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것이었죠. 그 쪽 방면에 대한 증원이야 어느 정도 되고 있었지만 이건 방어만 계속하는 것일 뿐 전황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마산 방면의 적은 6사단 뿐, 전차를 주축으로 밀어붙이면 뚫릴 것이고 북한군은 그 곳으로 병력을 돌려야 될 것이고 그것도 깨뜨리면서 가다 보면 이긴다는 것이었죠.

당시 한국에 증원되고 있던 부대는 5연대와 1해병여단, 워커는 이들을 모두 25사단장에게 주고 29연대 역시 해체해 27연대와 35연대에 편입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강화된 25사단의 한 방 물량의 지휘권을 가진 이는 25사단장 킨이었습니다.

이렇게 킨 특수 임무부대(Kean TF)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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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중요한 건 정찰이죠. 대체 적의 6사단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25사단이 오기 전 24사단장 처치 소장은 정찰대를 파견합니다. 이 때 마산 정면에는 별다른 공격이 없었고 적의 모습도 제대로 찾을 수 없었거든요. 이를 위해 29연대의 1대대가 동원됩니다. 문제는 이들이 가는 길에 있었던 19연대 1대대에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나름 유유히 출발했던 정찰대는 곧 북한군의 매복에 걸립니다. 13~14대에 달하던 트럭이 모두 공격을 받았고 전차도 적의 적절한 박격포 공격으로 돈좌됩니다. 남은 병력이 후퇴하려 했지만 맨 뒤의 트럭이 철수로를 막아버렸죠.

그 때 자고 있던 19연대 1대대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투입됩니다. 대대장부터가 잠에서 깬 상태니 작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죠. 이들은 29연대 1대대에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지만, 그들 역시 사지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포로로 잡은 미군을 방패로 삼아 전진해 왔고, 어느새 우회해서 침투하고 있었죠. 밤새도록 치열하게 싸우면서 겨우 몰아내긴 했지만 미군의 피해는 컸습니다. 여기에 19연대의 좌측에 있던 민부대를 적으로 잘못 알고 팀킬을 한 것은 보너스였죠.

그 외에 27연대에서 보냈던 정찰대 역시 적의 보급차량을 발견해 타격을 주긴 했지만 그들 역시 매복에 걸려 전차들을 잃고 돌아와야 했죠. 북한군은 그 틈을 타 계속 밀고 왔는데, 다행히 적절히 철수하고 역습을 가해 큰 타격을 줬습니다. 거기에 27연대에 배속됐던 해병대, 김성은 부대 역시 적에게 타격을 줘서 전원 일계급 특진하기도 했죠. 이것이 진동리 전투로 연대장 마이켈리스는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합니다.

결과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이 때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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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킨 특수임무부대의 병력은 2만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전차가 100여대, 야포도 100여문이 되었죠. 이들의 임무는 진주로의 진출, 개전 이후 최초의 사단급 공격작전이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5~6일부터 UN 공군이 이 방면을 최대한 지원하기로 돼 있었구요.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소규모 정찰전, 북한군의 매복이 짜증나긴 했지만 이 정도 대병력을 버틸 순 없을 거라 여겼죠.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6사단은 그저 8월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8월 6일 밤, 함안으로 정찰 갔던 24연대 L중대가 북한군의 매복에 전멸합니다. 공격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아군의 진지를 감제할 수 있는 고지들에 북한군이 나타났죠. 미군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8월 7일, 킨 특수임무부대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시작은 순조로운 것 같았습니다. 북쪽의 35연대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가며 다수의 적을 사살했고 북한군 6사단 지휘소가 있다고 판단했던 곳도 넘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을 맡았던 5연대 전투단은 안개가 낀 상황에서 오히려 북한군에 공격당합니다. 북한군은 근처의 고지들을 점령해 포 사격을 가해 왔고, 이 상황에서 적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면서 혼전이 시작됩니다. 이 때 미 해병대가 나타나지만 이들 역시 혼전에 빠지게 됩니다. 이른바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날씨는 너무나도 더웠습니다. 이 때 날씨가 섭씨 44도, 고지를 올라가던 해병대는 전투로 인한 피해의 6배를 더위 때문에 잃습니다. 일사병이었죠. 포위된 5연대전투단의 상황은 더 열악해서 공중에서 보급품을 세 차례나 투하해 줬지만 1차는 적진으로 갔고 - -; 2차는 중간에 떨어져 쓰지 못 했으며 3차에서 겨우 성공합니다.

여기에 미군 전차가 기동하면서 아군 통신선을 끊어버린 건 덤입니다. (...) 이 때문에 이 방면의 지휘는 해병연대장이 직접 맡게 되었고 잘 진격하고 있던 35연대에는 정지 명령이 떨어졌죠.

그래도 8일이 되면서 상황이 나아졌고 킨이 직접 이들을 독려하면서 야간 공격을 시도합니다. 최초였죠. 설마 미군이 야간 공격을 벌일 거라 생각 못 했던 북한군은 물러났고, 그 이후에도 차근차근 적에게 피해를 주면서 전진했죠. 다만 지도가 옛날 거라서 길을 잘못 들긴 했지만요.

다시 시작된 진군, 이번엔 좀 나았습니다. 중간에 적 모터사이클 연대를 발견해 피해를 주었고 진주고개를 점령했을 때가 11일, 킨은 12일까지는 무난히 사천을 점령할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해병대와 5연대전투단을 다시 빼 간 것이었습니다. 이 때가 동해안에서 국군 3사단이 포위되고 포항에 적의 공격이 계속될 때였죠. 여기에 민부대와 김성은 부대 역시 국군에 복귀시키기로 결정이 난 상태였습니다.

이 때 예비대로 돌려진 5연대는 봉암리에 있었는데 킨은 이들에 대대 하나와 포대 하나만 이동하고 나머지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연대장은 위험하니 전 부대가 같이 이동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 때 무선이 또 끊겨 버렸죠. 결국 명령대로 하긴 했지만, 그가 걱정했던 위험은 더 크게 다가와 버렸습니다.

자정이 지났을 때 봉암리 계곡에는 5연대본부와 포병대대들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에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죠. 근처에 지원하기로 했던 병력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오지 못 합니다.

적의 공격에 직접 노출된 포병은 그 포를 제대로 쓰지도 못 하고 큰 피해를 입습니다. 사상자만 370명, 이후 이 곳은 "포병의 무덤" "피의 계곡"이라 불리게 됩니다. 다행히 날이 밝으면서 또 해병대가 지원 와 북한군을 격퇴했고 이들은 겨우 철수하는 데 성공했죠.

북한군은 이렇게 아군의 주력과 직접 부딪히는 대신 최대한 약한 지점을 찾아 계속 공격해 왔습니다. 전차는 적의 공격에 당했고 보급로는 곳곳에서 차단됐으며, 아군은 곳곳에서 끊겨서 진격보다 서로 도와주는 데 급급했죠. 이런 상황에서 진주까지 진격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 컸던 것이 적의 공격이 그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동해안은 40km나 후퇴한 후에야 겨우 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대구 방면에서도 적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죠. 거기다 당장 미군이 맡고 있는 영산 방면, 이른바 "낙동강 돌출부"에서는 적의 공격이 더 거세져갈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작전을 지속하는 의미가 없었죠.

워커 중장은 13일, 킨 특수임무부대를 해체합니다. 배속됐던 부대는 미군은 낙동강 돌출부로 가거나 8군 예비로 남았고, 국군은 국군으로 돌아갑니다. 진격했던 부대들도 모두 마산으로 돌아갔죠. 해병대가 이동을 완료한 16일, 이들은 정식으로 해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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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전에서 가장 간과했던 것은 역시 화력만 있으면 북한군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6사단은 역시 -_-; 달랐죠. 이들이 단독으로 미군의 공격을 막아낸 겁니다.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의 사상자만 수천 단위로 보고 있으며 배속됐던 전차와 모터사이클연대 역시 큰 피해를 입었죠. 하지만 이들이 계속 물러나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노출된 아군의 배후를 찌르며 견뎌냈다는 점이 큽니다. 정말 미군의 계획대로 이들을 뚫을 수 있었다면 낙동강 전선은 유리하게 흘러갔을 테니까요. 양측의 피해는 무시하고 상황만 본다면 그 세계최강 미군이 대군을 만들어 맘 먹고 짰던 계획을 한 개 사단으로 가지고 논 것이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낙동강 방어선이 방어에 유리하긴 하지만 역시 아군의 역공에도 마찬가지로 장애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전차가 아무리 강한들 그걸로 무작정 밀어붙일 수도 없다는 것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낙동강에서 방어한다는 것은 결국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몰린 상황에서 반격을 어떻게 해야 되냐의 문제가 걸리게 됐죠. 38선까지는 너무 멀었고, 이런 식이라면 반격 과정에서 피해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죠.

하지만 역시 북한군의 피해는 컸고, 실패하긴 했지만 미군은 이걸로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그 때까지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여기에 마산의 위기는 이걸로 확실히 벗어난 셈이기도 했습니다. 양측의 피해만 본다면 어쨌든 승리였구요. 거기다 뭐라도 시작은 해 봐야 되니까요.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됩니다. 8월 15일에 북한군 신편 7사단이 진주에 도착, 6사단을 지원하게 됐거든요. 미군은 방어만을 계속합니다. 증원군은 계속 도착하고 있었고, 9월 중순으로 예정된 인천상륙작전만 기다리게 됐죠.

한편, 미군이 병력을 마산-진주에 올인하는 동안 북쪽의 낙동강 돌출부에서는 북한군과의 힘겨운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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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8/26 08:14
수정 아이콘
정말 북한의 위력이 대단했네요 -_- 잘 읽었습니다~
서린언니
12/08/26 10:09
수정 아이콘
곧 지옥의 다부동 전투가 나오겠네요...
blue wave
12/08/27 11:05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습니다. 북한의 6사단 무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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