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글을 쓰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귀차니즘이 제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에 와서야 글을 쓰게 되네요. 저는 전직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고, 현재는 동호인 지도와 스케이트 장비 제작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도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도록 쉬우면서도 자세하게 쓰려고 합니다.
보시고 나서는 좋은 댓글 달아주시면 힘이 날 듯 하네요.
그럼, 시작합니다.
1) 바이킹의 설립
Jaap Havakotte는 1948년 네덜란드에서 바이킹사를 설립합니다. 그는 그 스스로가 마라톤 스케이터(당시에는 겨울온도가 더 낮아 운하와 강이 완전히 결빙되면 전 국가적인 축제로 마라톤 스케이팅 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으나 완주하는데는 보름 정도가 걸렸다고 하네요.)였으며, 자신의 기술로 날을 갈아 사용하는 몇 안되는 선수였습니다.
초창기 바이킹 사는 스케이트를 수리하고, 날을 갈아주는 일을 주로 맡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당시의 스케이트 제조 기술자 Mr. Lassche 가 합류하며 성공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전의 Viking 사가 수리와 날 연마에 중점을 둔 작은 스케이트 샵이었다면, Lassche의 합류는 명실상부한 스케이트 제조사로서의 전환을
가능케 해 준 일이었지요. 그들은 한동안 좋은 파트너로서 존재하다가, Mr. Lassche 가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하면서 관계가 끝납니다.
'Viking Schaatsenfabriek BV' 라는 토종 한국인인 저로서는 발음하기도 힘든 사명을 걸고 서서히 사업을 키워간 바이킹.
서서히 바이킹의 이름이 커져 갈 무렵 바이킹의 제품을 사용한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네덜란드인이 아닌 러시아 인이었지요. 1960년, 미국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 Boris Stenin 가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냅니다.
성공신화의 서막을 알린 바이킹에 새로운 기술자 Ard schenk와 Kees Verkerk가 합류합니다. 뛰어난 스케이트 제작자이자 강철 전문가였던 이들은 스케이트 날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올림픽인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전 종목에서 Viking 사의 블레이드(스케이트 날)와 부츠를 사용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합니다.
이 사건은 스피드 스케이팅 관련자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고 바이킹사의 입지는 확고해지게 되지요.
그 때의 영광을 만들어낸 블레이드가 맨 윗 사진의 블레이드입니다. 은색에 앞, 뒤가 뾰족한 모양이지요. 오늘날의 모델과 디자인은 같으며,
다만 성능이 약간 차이가 있지요.
이 정도가 되자 전 세계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은 바이킹 사의 제품을 원했고, 바이킹 사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합니다. 바이킹의 제품들은 스피드 스케이팅 씬에서 표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부츠와 블레이드의 디자인, 부츠와 블레이드를 붙이는 방식을
거의 모든 회사가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저가의 스케이트조차 바이킹 사의 제품과 디자인은 동일했지요.
아래 사진의 부츠가 당시의 부츠와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블레이드의 색상은 은색이고, 블레이드와 부츠를 연결해주는 부분(브라켓이라고 하지요.) 가 더 높습니다. 요즘은 당시의 디자인과 완전히 동일한 제품들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바이킹 사는 제품 라인업의 대부분을 동일하게 유지하며, 소재 개발에 힘을 집중합니다.
2) 새로운 세상: 모든이가 두려워한 변화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명색이나마 경쟁자로 존재했던 많은 업체들이 한계를 드러내며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남은 업체들도 블레이드에 대한
생산은 포기한 채, 바이킹 블레이드에 호환될 수 있는 부츠들만 생산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 시점까지 블레이드 생산을 포기하지 않은 두 업체가 있었으니, 랩스(RAPS)와 잔드스트라(ZANDSTRA) 였습니다.
바이킹 사는 경기용 스피드 스케이트 부츠와 블레이드에 집중하고 있었고, 다른 부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지요.
중부~북부 유럽에서는 아직도 한 겨울 야외에서 열리는 마라톤 스케이팅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트랙에서 벌어지는 경기용 장비는 바이킹 사의 독점구도가 계속이어졌고, 랩스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라톤 스케이팅 용 장비를 판매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정도 맞아떨어집니다.
깔끔하게 관리된 인공얼음에 비해 야외의 얼음은 질이 떨어집니다. 경기를 할 용도로 만들어지는 아이스링크의 얼음은 만드는 데 쓰여지는
모든 물을 정수하여 작은 모래나 먼지 등을 모두 걸러내어야만 합니다. 반면 온갖 바람과 모래와 이물질, 부유물 등이 뒤섞인 운하나 강의 얼음은 빙질이 떨어지고 강도가 더욱 강해집니다.
랩스는 이 점을 공략하여, 블레이드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예비 블레이드를 즉각 부착할 수 있도록
블레이드 교체가 쉬운 스케이트를 출시합니다. 결과는 성공이었죠.
랩스는 바이킹과의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으며 마라톤 스케이팅 장비업계의 강자로 군림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경기용 스케이트 제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죠.
잔드스트라는 당시 막 발전하고 있던 쇼트트랙에 관심을 두고 블레이드를 제작합니다. 쇼트트랙이 경기의 특성상 얼음이 파인 곳을 계속해서 활주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 스케이트 날의 높이를 높이고 날 두께를 1.2mm로 늘려 제품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러나 잔드스트라의 구상은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일단 날의 활도(날이 잘 미끄러질 때, 활도가 높다고 합니다.)가 바이킹 블레이드보다 떨어졌습니다. 또한 바이킹의 1mm 두께 블레이드와 비교할 때, 1.2mm 두께의 블레이드는 선수를 지치게만 만들 뿐이었지요.
결국 쇼트트랙 스케이터들은 바이킹 사의 스피드 스케이팅용 블레이드를 쇼트트랙 스케이팅 용 부츠에 맞게 부착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잔드스트라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한편 라이벌 업체들을 거의 제압한 바이킹은 새로운 구상에 착수하게 됩니다. 스케이트 부츠와 스케이트 날이 분리되는 스케이트였죠.
정보를 재빠르게 입수한 랩스는 단시간에 상당한 수준의 시제품을 만들어 내고, 바이킹에 공동으로 성능 실험을 실시하고 공동으로 특허를
낼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랩스보다 시제품 개발은 늦었지만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던 바이킹은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30여 년 동안 스피드 스케이팅을 지배한 바이킹과 마라톤 스케이팅의 강자 랩스의 아이디어는 바로 클랩스케이트. 스피드 스케이팅에 새로운 대 변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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