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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27 06:43:37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미래 (4)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특강으로 김애란 작가가 오셨습니다. 앞으로도 유명 작가들이 특강한다고 하네요. 국문과로서 마지막 학기가 참 즐겁습니다.

1. 사도세자의 아들

"아! 과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정조가 왕이 되고 처음 한 말입니다. 뭔가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말,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죠.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이런 분부를 내리고 나서 괴귀와 같은 불령한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추숭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께서 유언하신 분부가 있으니, 마땅히 형률로써 논죄하고 선왕의 영령께도 고하겠다"

반전은 너무 쉽게 찾아왔죠. 내가 사도세자 아들이긴 한데, 영조 말을 잘 따르니까 걱정 말고, 이 얘기 꺼내는 놈 있으면 디진다 -_- 이게 중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모씨는 딱 첫 구절만 가지고 와서 이게 모든 내용이었고, 노론들이 벌벌 떨었다고 했습니다. 몰랐을 리가 없어요. 일부러 그런 거죠.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마음 먹었던 일들을 시작합니다. 참으로 빠르고 간결한 처분이었죠. 시작은 김상로였습니다.
"임오년 에 다시 동궁을 설치한 후에 나에게 하교하시기를, ‘김상로는 너의 원수이다. 내가 강제로 치사시킨 것은 천하 후세에 나의 마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임오년에는 비록 다른 날에 감히 다시 제기하지 않았었지만, 임오년 5년 전의 때는 5년 뒤인 임오년의 조짐을 양성한 것이 곧 하나의 김상로일 뿐이다.’라고 하셨으니 삼가 머리를 숙여 명을 듣고서 가슴속에 명심했었다." (3월 30일)

김상로는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를 이간질한 자. 이것은 영조의 뜻으로 명분이 맞은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문성국이었습니다.

"내가 마음에 새기며 뼈를 썩혀 온 것이 단지 하나의 김상로만이 아니고 또한 문성국이 있다." (3월 30일)
"아! 이 달의 이 날을 당하여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목이 막히며 마치 살고 싶지 않다. 아! 나의 오늘의 심정으로 어찌 차마 호령을 발하고 시행하겠는가마는 아! 문성국의 하늘에 맞닿고 땅에 극하는 죄악은, 내가 마음을 썩히고 뼈에 새기며 분을 품고 애통을 씹게 되는 것이다." (5월 13일)
" 문성국이 그의 누이와 함께 우리 양궁을 참소하여 이간하였는데, 하는 말이 망극하여 더러는 ‘아무 날에는 아무 일을 하게 되고 아무 시에는 아무 일을 시행한다.’고 하여, 참소하여 이간하지 않는 때가 없었고"

이렇게 혜경궁이 증오했던 문녀, 숙의 문씨는 쫓겨납니다. 1차 계획이 끝났습니다. 상황을 정리해야죠. 그는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숭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그는 영조의 첫째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됐거든요. 여기에 덤으로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경모궁으로 올립니다. 여기까지는 신하들도 반대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도 아빠였는데요. 이와 함께 시작한 또 다른 계획도 있었구요.

"선대왕의 재궁이 아직도 빈소에 계시는 때에 흉악한 상소를 내어 현혹하는 짓을 하는 것은 그 세운 뜻을 따져 보건대 너무도 한없이 음흉하고 참혹한 짓이다. 임오년의 일은 단지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중략) 너의 상소 내용 가운에 ‘선왕의 본심을 밝힌 것이다.’라는 말은 더욱 천만 번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다. 선대왕의 하교에서 이르시기를, ‘임오년에 관계된 일은 혹 의리에 있어 충분히 옳은 것 같다 하더라도 이는 곧 나를 모함하는 것으로서, 단지 나에게만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 아니라 또한 너에게도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 (4월 1일)

사도세자를 추숭하자는 것은 겉으로는 자기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불충이라는 것, 정조는 이 관련자들을 처형합니다. 이 때 이응원이 비슷한 상소를 올리는데, 이에 대한 정조의 대답입니다.

"나는 이응원의 무리를 오히려 이 외로운 새새끼나 썩은 쥐새끼로 여기고 있다." (8월 6일)
정조는 이응원과 그의 아비까지 붙잡아서 친국한 후, 안동을 그들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부에서 현으로 강등시켜 버립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 단계 올린 것 정도는 신하들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죠. 처음에 그 말 듣고 쫄았던 자들도 이 쯤에서는 안심했을 겁니다.

쉴 틈은 없었죠. 정조는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날짜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모든 일들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2. 목표는 홍씨가문

혜경궁 홍씨

"오늘날의 정후겸은 곧 심통원·김자점과 같은 사람인데, 가까운 처지에서 품고 있던 흉계는 또한 심통원이나 김자점에게도 없었던 것입니다"
"화완 옹주도 그런 아들과 그런 어미이기에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원수로 여기는 바입니다. " (3월 25일)

대사성 이계가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조는 우선 정후겸을 귀양보내고 화완 옹주는 이미 사저로 나갔으니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본심이 아니었죠. 불과 이틀 후 정조는 본격적인 얘기를 꺼냅니다.

"하찮은 정후겸에 있어서는 잡다하게 토죄하기를 청하여, 마치 시급하게 강도나 절도의 발생이 눈앞에 박두한 것처럼 하면서도 기세가 하늘에 닿아 있는 사람에 있어서는 감히 누구냐고 하는 자가 없어,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고 한 지 여러 날인데도 머뭇머뭇 거리며 두려워하여 쭈그러들고 있다." (3월 27일)

대간들이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모두 내쫓아버린 겁니다. 그 때 가서야 홍인한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올라왔고, 우선 귀양 보냅니다. 이 때 윤약연이라는 자가 상소를 올리는데, 일단 정후겸과 홍인한의 처벌을 요구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딴지를 걸죠. 정후겸은 죽이라 하면서 왜 홍인한에게는 약한 벌을 주라고 하는지요. 그는 홍인한은 망발을 한 것일 뿐이므로 죄가 약하다고 했습니다. 이 때 정조의 방침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아예 그를 역적으로 몰아 친국했고, 거기서 그와 그의 일당들이 홍국영을 해하려 했다고 실토합니다.

"더구나 홍국영은 국가가 고립되어 위태했을 때에 당하여, 척리와 근습들이 모두 딴마음을 먹는 사람들이었는데도 국가를 보호한 것은 유독 홍국영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한 쪽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어 공이 사직에 남게 된 사람인데," (6월 23일)

홍국영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죠. 아무튼 7월 5일, 정후겸과 홍인한은 죽습니다. 불과 몇 개월만에 이루어진 조치였습니다.

이 때 중심이었던 인물들은 김종수, 김귀주, 홍국영 등 이른바 "청명당"이라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의리를 외치는 이들은 영조 때부터 홍씨 가문을 공격해 왔고, 실패했죠. 다음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후의 벽파는 이들이 주류가 됐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홍인한까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홍봉한이 있다고 여겼죠. 하지만 여기서 정조와 생각이 갈립니다.

3. 홍씨와 김씨
홍봉한의 죄로 거론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 일물(뒤주를 직접 말하지 못 하고 일물이라 했죠)을 가지고 온 죄
- 영조의 병을 치료할 나삼(경상도에서만 나는 인삼)을 제대로 쓰지 않게 한 죄
- 세손 시절의 정조를 협박한 죄. 이른바 여시여시(如是如是)

여기에 홍인한과 정후겸의 배후에 홍봉한이 있었다는 것까지 붙죠. 특히 홍봉한을 공격한 것은 정순왕후의 오라비 김귀주. 세번째 여시여시의 죄는 그가 영조 시절에 올린 상소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그 말을 듣지 않았죠. 오히려 그 죄들을 변호해 주면서 혜경궁을 생각해서라도 벌을 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재밌는 건 이 때 은근슬쩍 한 가지 죄를 덧붙입니다.

"내가 세손 때에 봉조하를 사사로이 만나보았었는데, 봉조하가 말하기를, ‘저하께서 앞날에 혹시라도 수은묘(사도세자)를 추숭하지 않는다면, 무신년의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추대하는 일을 하게 되는 수가 있지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의당 이렇게 될 듯한데 이렇게 될 때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그 뒤에 내가 대비전에 입시했을 적에 말이 추숭하는 의리에 미치게 되어 과연 그런 말을 들어 앙달했었다." (3월 27일)

홍봉한은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다는 거였죠. 그건 망발일 뿐이고 덮어 두겠다고는 했지만, 김귀주 쪽에서 하지 않았던 새로운 말이 나오는 거였습니다. 혜경궁은 자기 아빠가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며 정조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죠. 정병설 교수는 이 두 말 중에 정조가 거짓말 한 게 아니겠느냐고 추측했습니다.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에서 알 수 있듯 목표를 위해 거짓말도 꺼리지 않는, 마키아밸리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요. 어쨌든 이렇게 홍봉한의 죄는 덧붙여집니다. 그리고, 그에게까지 손을 뻗지 않겠다는 방침도 확실해지구요.

+) 이게 김귀주 쪽에서도 했던 말인지, 정조가 덧붙인 건지는 확실하지 않네요. 일단 김귀주의 상소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저 "내 말만 들으면 된다"는 식의 협박만 보이거든요. -_-; 헌데 정조는 그 후에 이 일을 계~속 거론합니다.

대신 정조가 손을 뻗은 것은 김씨였습니다.

"홍씨나 김씨는 모두가 이 자전(정순왕후)과 자궁(혜경궁)의 친척이니 또한 어찌 홍씨를 부추기고 김씨를 억누르겠으며, 김씨를 부추기고 홍씨를 억누르겠는가?" (9월 9일)
"김귀주의 죄는 특히 방자하여 꺼리는 것이 없을 뿐만이 아니다."
"홍인한을 이미 죽이고 김귀주가 자취를 접하게 된다면 어찌 하나의 척리를 제거하고 하나의 척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궁께서 이미 홍인한에게 은혜를 끊었으니 자전께서도 또한 어찌 김귀주에게 은혜를 끊지 않았겠는가?"

이 때 정조가 내걸었던 죄가 참 특이합니다. 세손 시절, 이른바 홍봉한의 여시여시의 죄와 홍인한이 대리청정을 방해했다는 죄, 이 때 정조는 정순왕후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김귀주는 이 때 정조가 했던 말까지 상소에 적은 거죠. 자기가 몰래 한 말까지 인용하는 마당에 힘을 얻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것이었습니다.

이 때의 공격은 간단히 말하면 영조대 최고의 외척이었던 홍씨 가문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귀주 역시 외척이었죠. 정조는 여러 차례 외척을 없앤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순조 때 가면 이 때 정조가 김귀주를 내친 것은 팔자 흉언을 알아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알았다면 직접 거론했겠죠. 하지만 정조는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정순왕후와 대립하기 싫어서라면 애초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죠. 이 때 김씨 가문은 몰락해서 혜경궁의 표현대로 "과부(누굴 말한 걸까요~)와 고아밖에 없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혜경궁이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을지 짐작이 가네요.

반면 홍봉한에 대해서는 언제나 온건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계속 붙였지만요. 그의 아들 홍낙임은 친국 과정에서 죄가 없다는 걸 확실히 했고, 홍봉한은 직접 불러서 손을 잡고 위로해 줍니다. 홍인한은 형을 배반해서 한 것이니 홍봉한은 거기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요.

이 때의 모습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역시 복수죠. 하지만 둘째는 철저한 외척 제거입니다. 영조의 탕평은 결국 자기 말에 충실히 따르는 자들, 이른바 탕평당을 낳았고, 그 중심에는 홍봉한이 있었습니다. 왕의 말을 듣는데 친척만큼 잘 들어줄 사람이 어딨겠어요. 정조는 이 탕평당이 과거의 어떤 당보다도 폐습이 많았다고 하며 이와는 다른 탕평의 길을 걷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봅시다.

김상로는 죽었고, 문성국도 죽었습니다. 문녀는 정말 왕 자리를 노렸다면 역시 하나의 외척이 되었을 여자였죠. 홍씨 김씨 모두 세력이 크게 약화됐습니다. 결국 목표는 외척이었던 거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김귀주는 죄가 없다시피합니다. 그가 내건 명분 역시 언제나 외척 척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역시 외척이었습니다. 그는 10년 후 유배지에서 죽습니다. 정조는 그가 죽자 죄를 사하고 관직을 돌려주죠. 정조가 팔자 흉언 때문에 그랬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 심심한데 얘기를 돌려보죠. 삼국지에서 조조는 전위와 자기 아들 조앙이 죽자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 그가 조앙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면? 이렇게 본다면 그의 통곡은 아들에게 향한 것일 겁니다. 단지 입 밖으로 전위 때문에 슬프다고 하면 되죠. 슬픈 감정과 이성적인 계산이 함께한다면?

3. 홍씨 가문의 발악, 그리고 홍국영
다음 해 7월, 정조가 있던 존현각 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사해 보니 지붕의 기와가 들춰져 있었죠. 열흘 후에 이들은 범행을 다시 시도하다 잡히는데 홍계희의 아들 홍술해의 아들 홍상범과 (헥헥) 홍술해의 처 효임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정조와 홍국영이었죠. 보시다시피... 홍씨입니다. -_-; 이 중 윤태연은 홍봉한에게서 종용받았다는 말을 했고 (근데 정작 반역에는 가담 안 했다니 확실히 무슨 소린지는...) 이택수는 홍봉한의 조카였습니다.

이걸 본다면 홍씨 가문이 정말 세손 시절에 정조를 없앨 생각했던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다음 편으로 보내구요. 이 과정에서 외척이 한 명 더 등장합니다. 정말 뜻밖에도 정조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홍국영이었습니다.

정조에게 아들이 없자 정순왕후는 빈을 간택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 때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를 밀었고, 성공하죠. 원빈(-_-;)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1년만에 죽었고, 무리수를 둡니다. 은언군 이인의 아들 상계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게 합니다. 바꾼 호는 완풍군. 국성인 완산(전주)과 자신의 본관 풍산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죠. 이 정도면 엄청난 무리수입니다.

정조가 그를 숙청한 방법 역시 특이했습니다.

"신은 구구하게 아뢸 것이 있습니다. 성심도 오늘을 기억하시겠지요. 오늘은 신이 임진년에 성명을 처음 만난 날입니다. (중략) 오늘은 신이 성명을 길이 헤어지는 날입니다." (3년 9월 26일)

이런 상황을 신하들은 받아들이지 못 했지만, 정조는 허락했습니다. 후에는 신하들도 정조의 뜻을 알게 되고 홍국영을 탄핵했고, 정조는 순차적으로 그것을 따르죠. 홍국영은 분을 이기지 못 했는지 정조 5년에 죽습니다. 심환지의 어찰이 사료로 드러난 정조의 막후 정치의 증거라면, 홍국영이 물러나는 과정은 겉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증거일 겁니다. 대체 뒤에서 뭘 했길래 그가 스스로 물러나게 했을까요?

세도 재상이라 불리던 홍국영. (세도정치란 말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외척을 무찌르고 정조의 최측근이 됐지만, 그 자신이 외척이 되려 했던 홍국영은 이렇게 물러났습니다.

4. 정순왕후

정순왕후

뭐 그 이후에도 역모는 참 많았습니다만 줄이고... 다른 얘기를 해 보죠. 홍국영이 조카라 불렀던 완풍군, 상계군 이담은 정조 10년에 죽습니다. 그 직후 왕대비였던 정순왕후가 뜬금없이 언문으로 하교를 내립니다. 역적들을 제대로 밝혀내야 된다는 거였죠. 그 때까지는 밥도 약도 안 먹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시 이담의 아버지 이인이 자식을 죽였다는 말까지 나돌던 상황이었습니다. 목표는... 이인이었죠.

신하들은 이에 대해 정조에게 상소하지만 정조는 당연히 거부했고, 대비전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대비의 말이 이거였죠.

"조정에서 하는 일이 왜 이처럼 한심스럽단 말인가? 겉으로만 크게 떠벌리고 내용을 조사하는 방법은 지나쳐 버렸으니, 오늘날 신하들의 죄는 나라에 관계될 뿐만 아니라, 결단코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탕약과 수라를 들겠는가?"
"탕약을 들고 안 들고는 경들이 염려할 바가 아니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말이죠. 재밌는 점은, 김귀주 등 김씨 가문이 몰락할 때 그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지고보면 이 일은 그녀에게 아무런 득이 없습니다. 정조의 동생 하나를 죽이는 것? 그런 뜬금없는 복수는 이상하죠. 아무튼 왕보다 높은 대비가 밥도 안 먹는 건 큰 일입니다. 신하들은 다시 정조에게 가죠. 그리고 정조는... 단식으로 맞섭니다. -_-; 살 빼려면 조선시대로...

"그의 아비에 있어서는 겨우 사람 형체만 갖추어 병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그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경들이 나로 하여금 이 서제 하나를 보존하게 할 경우 나도 정성껏 자전에게 청하면 결말을 짓겠다는 분부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식 대 단식. 이런 팽팽한 대치를 깬 건 이담의 외할아버지 송낙휴였습니다. 정말 의외의 사실이 알려지죠.
"담이 살았을 때 스스로 말하기를, ‘김 정승(김상철)이 살면 나도 살 것이고 김 정승이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구이겸이 황해 병사로 있을 때 후히 선물을 바치고 편지에 소인이라고 지칭한 것을 일찍이 목격하였습니다. 담은 평소에 병이 없었는데, 김 정승에 대해 말한 후 며칠 있다가 갑자기 죽었으니, 의심스럽습니다" (10년 12월 5일)

구이겸은 구선복의 아들, 이인이 얼마나 관련됐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이담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잡혀 오고 국문이 시작됩니다. 이걸 대비에게 보고했는데, 대비는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죄인을 잡아냈다고 하는데, 관상을 보았다는 것과 반정한다는 등의 일을 기어코 시원스럽게 밝혀내어 나라의 형세를 안정시키라. 그러면 탕약을 들겠다" (12월 7일)

이담이 죽기 전 해에 문양해의 역모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지리산 신인을 거론하면서 역모를 계획했죠. 별 관련 없었던 둘 사이의 관계가 국문 과정에서 밝혀집니다. 밖에서 문양해가 군사를 일으키면 안에서 구선복이 호응하기로 했다는 것이죠.

대체 어떻게 알아낸 정보였을까요? 정순왕후는 이 일을 모두 알고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적이 그녀 덕분에 확실히 잡힌 거니까요. 이 과정에서 단식 투쟁 끝에 이인은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편에서 얘기했듯 정조는 그를 만나겠다, 정순왕후는 역적을 만나면 안 된다로 싸웠죠. 이 일들을 통해 정순왕후는 여자 요순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존호까지 받게 됩니다.

본편의 흐름과는 별 상관 없는 것이지만, 결론으로 가기 위해 잘 기억해 둡시다.

4. 벽파

이래저래 쓰고 있지만, 솔직히 결론은 모르겠다입니다. 정조 이 양반의 속내는 정말 모르겠어요 -_-;

이런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벽파입니다. 정조의 뜻에 반대해서 의리를 내세웠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일 뿐입니다. 벽파의 면모를 보죠.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김종수, 그는 정조의 스승으로 외척 척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뭔가 재밌는 게 홍봉한, 김귀주, 홍국영까지 이들을 내쫓을 때 모두 활약한 게 김종수죠. -_-; 김귀주 때는 그나마 옹호하는 모습이 보였지만요. 정작 그 김귀주가 내세운 것도 어디까지나 세손, 정조 보호였습니다. 홍국영 역시 벽파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청명당 출신입니다.

이렇게 보면 벽파는 오히려 정조의 친위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_-; 보통 벽파와의 전투에서 정조는 고립됐고, 그들의 입김이 너무 세서 그에 맞서기 위해 장용영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위세가 영조 때의 홍봉한과 비교가 되기는 할까요? 홍봉한, 홍인한, 정후겸을 1년도 안 돼서 무력화시킨 게 정조였고 김귀주가 세력이 제대로 쌓기도 전에 보내버렸으며, 홍국영이 외척이 되려 하자 역시 바로 보내버린 정조입니다. 이런 정조가 별다른 힘도 없는 벽파에게 휘둘렸을까요?

오히려 김종수는 김귀주와 홍국영과 동지였으면서도 그들의 처벌을 주도할 정도로 정조의 뜻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김종수의 뒤를 이은 심환지는 어찰에서 밝혀졌듯 정조의 뜻에 충실히 따랐죠. 그들이 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김종수가 죽었을 때 정조는 그 후배들이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탄했죠. 장례식장이 쓸쓸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한중록에서는 김종수를 "망나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조가 그렇게 말 했다면서요.

이렇게 강경했던 김종수,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지 않은 한 편지 죽지는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종수는 오래 살았죠. 정조가 그를 보호했기에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거죠. 정조 자신도 "내가 그를 몇 번이나 죽음에서 구해줬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정조의 정책, 특히 수원 화성을 짓는 등의 일에 반대를 많이 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그를 보호해 준 것입니다. 심환지를 통해 배후에서 조종까지 하면서요.

그들에게는 확실한 색이 있었거든요.

노론 벽파, 소론 시파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소론인 서명선은 벽파였고, 노론인 정민시는 시파였죠. 김조순부터 해서 규장각을 통해 키워진 시파도 많았습니다. 이런 시파들은 왕의 뜻에 따르는 이들이었죠. 영조 때 홍봉한을 중심으로 한 탕평당, 이른바 북당에서 이어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 외척은 없었습니다. 이 때에 이르러 노소론이 재편된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수가 적었던만큼 시파와 벽파 구분은 노론을 중심으로 봐야겠죠. 소론 역시 둘로 나뉘었지만, 수가 적은만큼 시파가 많았습니다.

왕의 뜻에 따르는 시파, 왕에게 반대하고 의리를 외치는 벽파,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하죠. 역시 왕의 뜻보다는 자기의 의리를 주장하는 무리들. 그게 남인이죠.

안으로 보면 채제공이 정조의 뜻에 따랐다 할 수 있지만, 겉으로 보면 그는 결국 왕의 말을 어기고 목숨을 걸고 자기들의 의리를 내세운 것입니다. 시파와는 다른 벽파와 남인의 속성, 흔히 조선시대에 신나게 욕하는 당파성이죠. 정조는 이 둘을 철저히 보호했고, 키웠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정조가 남인에게서 바랬던 것은 자기가 부정해도 사도세자 추숭을 외쳐라입니다. 그리고 벽파에게 바랬던 것은, 철저히 나를 비판하라는 거였죠.

심환지의 어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화완 옹주에 관련된 거였는데요. 정조는 23년에 화완 옹주를 용서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관대한 명령을 통해 사도세자의 추숭에 한 발 더 다가가려 한 거였죠. 이 때 심환지는 극렬히 반대합니다.

"신이 인군을 믿고 섬기는 것은 오직 이 의리가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신들은 죽으면 죽었지 감히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정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을 돌리라 했지만, 심환지는 자기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조는 그를 파직시킵니다.

... 이게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에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정조가 시킨 거죠. "이렇게 저렇게 해라. 그럼 내가 너를 파직시키겠다"는 것까지요.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아예 정조가 시킨 내용 그대로 심환지가 상소를 올린 적도 많았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정조의 말에 반대하는 거였죠.

정조가 벽파까지 떠안고 갔다는 것은 흔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 소극적이죠. 그들이 강했고 노론의 중심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수준으로요. 하지만... 이런 모습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벽파를 만든 것은 정조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자기가 외치는 의리를 위해, 때로는 정조의 지령을 받아 "당파싸움"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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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뭔가... 한 큐에 끝냈네요. 뭔가 뒤쥭박쥭(-_-)이지만 그러려니 합시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정작 추숭을 하려 했던 이들을 벌 준 정조. 추숭을 원하는 이들을 벌 주면서 세자를 모함한 자들을 숙청한 정조. 홍씨 가문을 철저히 없애면서 홍봉한은 살려 줬던 정조. 남인이 세자 추숭을 외치게 하면서 정작 겉으로는 그것에 반대했고, 속으로는 추숭을 원했지만 추숭 반대 세력인 벽파를 키운 게 정조였죠.

복잡해집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일지요.
일단... 이걸 한 큐에 정리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은 영조 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홍봉한, 홍인한, 김귀주, 그들이 세손이었던 정조에게 어떤 것을 했을지 얘기해 보죠. 그들에게 정말 죄가 있을지, 있다면 무슨 죄일지에 대해서요.

한 방에 끝내서 과거와 미래편이 얼추 맞을 것 같네요. 다음 편들은 다 번외편입니다. 번외편 준비는 많이 했는데 -_-; 얘기는 어느새 둘 다 끝으로 가고 있으니... 번외만 두 개씩 올라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번외편 하나 더 생각해 버렸어요 (...)

미래편은 그렇게 영조시대까지를 다룬 후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정리하고, 저의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조에 대한 총평이 될 것 같네요. (문체반정 같은 건 못 다루겠네요. 너무 많아져요) 그리고 과거편은... 뭐 끝이 정해져 있지 않나요. 과거편은 그의 마지막 날 전까지를 모두 정리한 후, 영조와 세자에 대한 총평으로 결론 맺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날로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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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7 08: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흠... 진짜 헷갈리네요. 이도 저도 아닌데 심지어 중용도 아닌 것 같고... 뭐지? [S2]
11/09/27 08:20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중신들에게 있어서 제일 곤란한 건, 자기랑 반대파에 있는 임금이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임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폭군은 논외로 하고...) 당최 무슨 생각인지를 알아야 애교를 떨든 알아서 기든 배짱을 부리든 할텐데 말이죠.

추노 최고의 유행어가 생각납니다.
'어심을 읽으시게나. 어심을.' [S2]
Je ne sais quoi
11/09/27 10:28
수정 아이콘
아.. 너무 복잡합니다. 정조때문에 이덕일의 책에 빠져들었고 정조때문에 결국 그 책들을 모조리 팔았는데, 아직도 머리속에는 좀 남아서 계속 읽으면서 헷갈려서 정리가 안 됩니다. 알아도 복잡한 걸 모르니 정말 어렵네요.
시네라스
11/09/27 16:13
수정 아이콘
눈시BB님의 글들은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는 정말 어렵네요, 이때 역사가 이렇게 복잡했었다니. 정조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지...
루크레티아
11/09/27 17:42
수정 아이콘
뒤죽박죽일 수도 있었던 것이 일단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에 이르는 정쟁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세력의 집권이 불러오는 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영조는 당파를 없앤다고 탕평책을 실시했지만, 이는 탕평당이라는 당파를 오히려 하나 더 만든 꼴에 지나지 않았죠. 그래서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에 까지 이르는 광경을 보고 마음을 그야말로 단단히 다잡아 먹었을 것입니다. 이쪽을 치면 저쪽도 치고, 이쪽을 아끼면 저쪽도 아끼는 식으로 말이죠.

문제는 그것이 정조의 뜻대로 하기에는 사도세자 문제로 인하여 영조가 이룩해놓은 왕권의 강화가 다시금 꽤나 후퇴했다는 점, 단순히 신하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친모와 계모까지 얽힌(차라리 친모만 얽혔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자기가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는 대비의 친족이 건재했다는 점은 정말 정조에겐 재앙입니다.) 외척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있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결국엔 결정적 한 방을 날리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결론은 '정조에겐 곧 영조가 그냥 재앙.' 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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