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에 대한 설명은 밑에서 하겠습니다.
+) 유게에서 여기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급히 썼는데, 너무 멋대로 하는 거 같다면 죄송합니다. 자중하겠습니다 (__)
1. 전 篆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처음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널리 퍼진 편이죠.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문자를 새로 만드는 것도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니었거든요. 발해도 그랬다고 하고, 요나라부터 일본까지 오랑캐들은 자기들의 문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자를 본땄지만요. 세종대왕 역시 중국부터 인도까지 많은 연구를 했죠. 여기서 뭔가를 따 왔다고 해서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옛부터 이어지던 문자를 모방한 거냐는 거죠. 그 근거로 흔히 나오는 것이 세종대왕과 최만리의 대화, 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문입니다.
所以古人因聲制字(소이고인인성제자)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이통만물지정 이재삼재지도) 만물의 정을 통하고 삼재의 이치를 실었으니
而後世不能易也(이후세불능역야) 후세의 세상에서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이거랑
象形而字倣古篆(상형이자방고전) 꼴을 본뜨되 글자가 옛날의 전자와 비슷하고
이거죠. 이 옛 글자라는 게 "조선의 옛 글자"라는 거죠.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C%B5%9C%EB%A7%8C%EB%A6%AC&keyword=%EC%B5%9C%EB%A7%8C%EB%A6%AC
최만리와의 대화는 너무 기니 링크로 옮깁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 이상한 게 느껴집니다.
우선 정인지의 서문입니다. 너무 기니 해석한 부분만 옮기겠습니다.
http://bitchen.egloos.com/4174267
"그러나(然) 사방의 풍토가 다르고 소리의 기운이 또한 이에 따라 다르다 대개 외국말이 그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글자를 빌어서 통용하고 쓰고 있는데 이는 마치 가는 구멍에 큰 괭이를 맞추어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찌 백성이 통달 할 수 있으며 막힘이 없겠는가"
"요컨대 다 각각 처해 있는 곳에 따라 편리케 할 일이지 억지로 똑같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악과 문화 즉 도덕과 예술 문화가 중국에 찬란하였던 하나라와 견줄만하나 다만 우리말들이 속된 말이고 같지 않아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려움을 걱정하고 그 뜻을 아는 것이 힘이 든다 옥사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을 서로 통하기가 힘드고 옛날 신라의 설총이 비로서 이두를 만들어 관청과 부처와 민간에 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맨 위에서 말한 "옛 글자"가 우리나라 글자라면 왜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글자를 빌렸다"고 할까요? 또한 "우리가 하나라랑 맞먹는데 말이 같지 않아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하고 그 때문에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다고 하죠. 뒷 부분입니다.
"지금에까지 행하는 데 이르러 부 다 중국에 글자를 빌리어 쓰고 있으나 혹은 걸리고 혹은 막히어 다만 비루하고 상고할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 사이에 이르러서는 곧 만분의 일도 잘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맨 위의 말을 무시하고 그 뒷부분만 읽어봅시다. 여기에는 "원래 우리에게 문자가 있었다"는 뉘앙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기다 맨 위에서 "옛 글자가 있다" 와 "사방의 소리가 다른데 소리가 있지만 글자는 없어서 한자를 빌려서~" 이 사이를 연결하는 글자는 然(그러나) 입니다.
최만리와 세종대왕의 대화 역시 마찬가집니다. 최만리의 말입니다.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최만리는 새로 만든 글자가 중국의 것과 다르다는 것에 크게 딴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옛 글자를 본땄다고 하지만 그것과도 다르다"는 거였죠. 여기서 의문이 들죠. 새로 만든 것도 중국과 다르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럼 저 "옛 글자"가 중국 게 아니었다면 그 "옛 글자"부터 문제삼아야 되지 않을까요? 저 말을 반대로 바꾸면 "옛 글자"와 같으면 상관 없다"는 게 되니까요.
정인지의 서문에서도, 최만리의 말에서도 나오는 옛 글자는 전문篆文입니다. 이게 뭔지 알아보죠.
2. 전문篆文
여기서 말하는 전은 전서, 옛날 서체의 한 종류입니다. 그 기원이 진나라(소전)부터 주나라(대전)까지 소급되죠.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데도 다양한 방법을 쓰는 서체죠. 다시 위로 올라가서 제가 업로드한 그림들을 봅시다. 첫 번째 그림이 남송의 정초가 쓴 육서략에 나온 전서를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오른쪽을 보면 - 에서 - 을 더하면(加) =가 된다. 이런 게 있습니다. 山 두 개를 더하기도 하고 百 두 개를 더 하기도 하네요. 두 번째 그림이 이런 전서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 외에도 이런 방법들이 더 있고, 그 방법의 수는 총 20개에 달합니다.
到 : 상하로 뒤집음 反, 向 : 좌우로 뒤집음
이걸 훈민정음, 지금의 한글에 적용해 볼까요?
기역에서 한 획을 더 한 게 키옄입니다. 디귿에 한 획을 더 한 게 티읕이죠. 이건 加입니다.
비읍 두 개를 합쳐서 쌍비읍을 만듭니다. 이것은 상배相背입니다. 쌍기역, 쌍디귿 다 마찬가지죠. 아 이것도 상배가 아닌 가로 봐야 될지도 모르겠네요.
모음도 마찬가지입니다. ㅗ와 ㅜ 는 도到, 상하로 뒤집은 것입니다. ㅏ와 ㅓ는 반反, 좌우로 뒤집은 거죠.
세종이 여기서 얼마나 힌트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죠. 합용병서처럼 이걸 응용했거나 아예 독자적으로 만든 부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인지가 말 했고 세종대왕과 최만리가 싸운 옛 글자 篆은 분명 중국에 옛날부터 존재했고, 글자를 만드는 방식이 훈민정음을 만든 형식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옛 글자"라고 하니 "우리의 옛 글자"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거죠.
3. 소리를 본 따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所以古人因聲制字(소이고인인성제자)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이 부분이겠죠. 한자는 표의문자고 한글은 표음문자니까요.
그런데... 저 因聲이라는 부분이 표음과 표의를 나누는 것일까요? 한자 역시 처음에는 단순했어요. 나중에 표현할 게 많아지니까 조금씩 추가하면서 현재의 형태에 이르게 된 거죠. 부수라는, 소리 부분과 뜻 부분으로 나누는 것 역시 그것이구요. 글자 자체가 모양을 본 딴 상형자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훈민정음 역시 마찬가집니다. 기역은 어떤 모양이니 니은은 어떤 모양이니 하는 게 그거죠. 저 말을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구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저게 표음문자를 뜻 한다 하더라도, 뒷부분을 생각하면 우리의 옛 글자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이 다르다 하나, 음에 따르고 해석에 따라 어조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사온데,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변한 것이고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최만리가 말한 것 중 하나입니다. 앞부분을 정리하면 "옛 글자 베꼈대놓고 전혀 다르다"고 최만리가 말 하니 세종대왕은 "음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건 이두도 똑같잖아?"라고 반박했고, 그에 대한 재반박이죠.
"소리에 따르고(依音) 해석에 따라 어조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정인지의 서문에 나온 因聲制字(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다) 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여러 글자를 함꼐 써 음과 해석을 변하게 했으니 글자의 형상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표음문자에 대한 말임을 알 수 있죠. 그들이 말한 "옛 글자"가 표음문자였다면 싸잡아 말하지 훈민정음만 따로 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4. 결론
세 줄 요약 비슷하게 해 보겠습니다.
최만리는 훈민정음을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반박했습니다. 만약 "옛 글자"가 중국과 관련 없는 우리 거였으면 그것부터 딴지를 걸었을 것입니다.
정인지는 옛 글자 얘기를 하면서 그 다음에는 우리한테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글자를 빌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 게 잘났으니까 우리 걸 버렸다느니 하는 건 전혀 없이 "소리는 있지만 글자가 없어서"라고 하고 있죠.
다른 나라들에서 각자의 문자를 만든 거나 일본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나, 우리의 구결문자에서 알 수 있듯 이전에 문자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 밑 반포 과정에서 그건 (있다면 연구는 했을지언정)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