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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3 00:10:07
Name 벨로시렙터
Subject [일반] 나와 임마, 술 한잔 하자.
한잔 마시고 시작하자.

오랫만이네 이 놈아.
왜 불렀냐고 묻지마라, 아무 생각없이 술이 생각나는 밤이 있는법이다.
야, 생각해봐라 매일같이 쳇바퀴 굴러가듯이 흘러가는 하루가 얼마나 덧없냐 이말이야.
술 좀 먹었냐고? 그래 임마, 니 놈 기다린다고 술 좀 먹었다.

이 자식아, 아무리 니 일이 바쁘고 그래도 연락은 좀 하고 살아라,
어떻게 내가 연락 안하면 먼저 연락하는일이 없냐.

그래그래, 너한테만 하는 소리가 아니고 나한테도 하는 소리고 내 주변에 모든사람들에게 하는소리다.
자, 짠!

오늘은 왜 이렇게 술맛이 다냐? 응? 술이 달면 그 날은 위험하니까 먹지말라고?
다 안다 다 알아, 걱정마라 오늘은 내 애마도 안들고 나왔다.
그냥 이렇게 조용히 마시다가, 조용히 집에 들어갈꺼니까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 이 말이야,


이상하지 않냐? 요즘은 참 옛 사람들이 그립다.
퇴근길에 고등학생들 교복입고 지나가는것만 봐도, 아 난 고등학교때 이런 사람을 만났고, 이렇게 놀고 했는데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드니까.

기억나냐? 고등학교 2학년때, 만우절을 그냥 보내면 만우절에 대한 모욕이라고 우리 반 단체로 수업 다 째고 튀었잖아,
그 다음날 담임이 부를 땐, 진짜 우리는 죽은거다. 라고 생각하고 갔잖아, 참 많이 맞기도 했다 우리...


기억나냐? 고등학교때 내가 좋아했던 그 애,
요즘 다시 연락한다?
에헤이, 미친놈이라고만 하지말고, 거 얼마나 아름답냐? 첫사랑과의 추억,
무슨 시 한 구절 같지 않냐?


그 친구 생각나니 한잔 더하자,
크, 좋다.


그 땐 왜 그렇게 철없이, 겁없이 사랑을 했는지,
요즘은 한살 한살 먹어갈수록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는거, 되게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오랫만에 만난 그 친구한테도 언제나 조심 조심하게 된다.
뭐 내 성격이 어디가겠냐만은, 그래도 두걸음 내딛을꺼 두드려 보고 한발자국 내딛을까 말까 고민하고
겨우겨우 한발짝 내딛는 그런 상태란 말이야.


야, 우리가 벌써 스물 네살이다 스물 넷,
내년이면 스물다섯이야, 이십대가 꺽인다고.
아쉽지 않냐? 이런 황금같은 20대의 절반을 군대에서 썩어나고, 거기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나머지 반을 보낸다는게?
그래서 가끔 진짜 여행같은거 확 떠나보려고 해도
내 발목에, 팔목에, 목에 묶여있는 이 족쇄가 왜 이렇게 주렁주렁 달려있는지,
떼어내려고 슬슬슬 사슬을 당겨보면 그 끝에, 사람이 있고 일이 있고, 사랑이 있더라... 이 말이다.


거 보면 참 사람들 대단해,
자기가 맡은 일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고, 주변 사람들도 있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롭게 훨훨 떠나는지 말이다.


그런 사람들보면 부럽기만 하다.
어찌 그리 자기가 하고싶은걸 하고 살 수 있는지.


떠나야겠다, 떠나고싶다. 아무리 맘속으로 외치고 외쳐도,
이게 참 마음대로 안된단 말이야.
하고싶은 꿈을 좇아서 살다보면, 현실에서
가지마라, 가면 안된다. 하고 붙잡고 있으니,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일 나하고 맞지 않으니까, 직장상사 나한테 꼬장만 부리는데, 확 그만둬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 참 놓치기 싫은데, 좋아한다고 이야기할까, 사귀자고 말해볼까, 생각하기전에 이미 내 여자가 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거 참 갖고 싶은데, 돈이 없고, 월급 받으면 다음날 카드값에, 휴대폰 요금에, 이런거 생각하기 전에 내 품에 들어와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다 임마, 다 욕심인거.
욕심이지, 그 놈의 내 욕심 채우려고, 관두고 싶은거 참고 일하고, 말하고 싶은거 참고 다물고, 사고싶은거 참고 모으는거.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결국엔 나중에 욕심도 채우고 하고싶은 일 하고 살 수 있고, 내 여자도 생기는거.
알어 임마....


그래도 지금 당장은,
하고 싶은게 너무 많으네,

크, 혼자 따라 먹지 말라고? 임마, 그래도 혼자 먹는게 맛이고 멋이다. 넌 병풍 임마,
왜 사대부가에 병풍이 있는지 아냐? 혼자 술먹기 적적해서 그런거 보면서 먹을려고 있는거야 임마.
헛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다 이게 헛소리지,
임마 고맙다. 그래도 부르니 나와주네,
짜식, 아무리 연락해도 답없는 그 친구나,
내 성질 벅벅 긁는 직장 상사나
다 필요 없다 이거야
친구 하나면 된다 이거지.
친구 하나에, 술잔 하나, 이게 인생 사는법이거든.


그래, 지금 죽고, 내일 다시 걸어가야지.
일단 걸어야지 달릴 수 있는 법이거든,
새들도 날기전엔 달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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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김윤아씨의 노래를 틀어놓고 글을 적었더니 한없이 감상적인 글이군요.

이 글은 질문게시판에 있는 move-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move-님의 글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bug&page=2&sn1=&divpage=1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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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청년
10/08/03 00:21
수정 아이콘
엌 지금 몰래 집나가겠습니다 술 사주십니까? 으잌 크크크
저는 올해 반오십.... 뭐 이제 나이먹는거 그러려니 합니다..
기디지비
10/08/03 00:37
수정 아이콘
어 저랑 뭔가 비슷한느낌.........
순식간에 읽었네요

내일 친구나 만나서 저도 술먹어야겠습니다
아 남자 둘이 영화나 보고말이죠....
정수연
10/08/03 01:07
수정 아이콘
이런 야심한밤에.. 어쩜 이렇게도 제 맘을 후벼파는 글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저도 어느덧 26... 30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잠시나마 옛 추억에 젖어봅니다..

참.. 그때가 좋았어요...^^;
KillerXOver
10/08/03 01:29
수정 아이콘
글의 느낌이 30대가 쓰신 느낌인데요..흐흐..;;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잘 읽었습니다..^^

급만남으로 시작된..친구와의 술자리는 원래..
푸념과 허풍, 실없는 농따묵기가 쵝오의 안주입죠..;;
그게 우리네 사는 모습일 거구요..흐..
10/08/03 04:34
수정 아이콘
제 친구이십니까?
거하게 한잔하고 왔네요. 저력이라는게 있을지 모를 정도로 술도 약해지고 비실거리지만 오랜만에 친구랑 둘이서 3차까지 달렸습니다. 막상 집에 오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xx슬 한병 주세요!
벨로시렙터
10/08/03 09:49
수정 아이콘
출근 하고 나서 댓글을 봤습니다.

어젯 밤에 김윤아씨의 노래를 틀어놓고 글을 적었더니 한없이 감상적인 글이군요.

이 글은 질문게시판에 있는 move-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move-님의 글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bug&page=2&sn1=&divpage=1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7548)

-댓글 본문 첨부 했습니다 ^^

-많은 호응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거기다 추천이라니!!
탱구랑햄촤랑
10/08/03 10:37
수정 아이콘
저도 반오십인데,
댓글에 이정도 나이대가 많으신거 같네요_
딱 이정도 나이대에 많이 드는 생각인건지..

200프로 공감하고 갑니다 !!
waterword
10/08/03 11:10
수정 아이콘
자기소개란에
드래곤레이디 글귀 오랜만에 보네요 흐흐
사랑인걸...
10/08/03 21:43
수정 아이콘
와... 글 정말 잘 쓰시네요.

글 평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최근 읽어본 그 어떤 글보다도 제 기분을 저보다도 잘 표현하신 것 같아서 정말 전율이 오려고 합니다.
(아부는 아닙니다만 그래서 추천 눌렀습니다 :) )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시고-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안나는데 (전 빠른86이긴합니다만 흐흐)

언제 정말 이렇게 술이나 시원하게 먹었음 좋겠네요 ^^

전.. 한잔 하러 갑니다. "친구"와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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