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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2 17:26:17
Name 언뜻 유재석
Subject [일반] [잡담] 인연론..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아니 아쉽다는건 상당히 애매한 표현이군요.

서운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저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혹은 간디나 테레사 수녀님도 아니거든요.

아쉽고... 서운하고... 화도 납니다.







살아가면서 몇개의 인연을 만들고 계신가요? 수백? 수천? 혹은 수만?





지금도 사회적으로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더 어릴적에 저는 인연을 둘로 나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에 맺은 인연과 사회에서 맺은 인연으로 말이지요. 어처구니 없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돈" 이었지요.

아직은 때가 조금이라도 덜묻은 10대때 맺은 인연들을 돌이켜보면 "돈"과는 얽히지 않은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니지요.

돈따위에 인연을 맺는 일을 죄악시 여겼습니다.

누구의 집은 40평에 아빠가 의사. 고로 『이 녀석과 친해지면 떨어질 떡고물이 다수』라는 생각으로 인연을 맺진 않았으니까요.

공통의 취미가 있고, 이야기가 통하며, 사상에 크나큰 문제가 없으면(조금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지냈습니다.




사회에 조금 일찍 발을 들이며 몸으로 체득한 역겨운 현실중 하나는 바로 "돈"으로 엮이게 되는 수많은 인연이었습니다.

이 빌어쳐먹어을 세상에선 모두 가면을 쓰고(그게 어디까지 가리는지는 그때마다 차이가 있더군요) 인연을 맺었습니다.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위한 보험인 셈이지요. 막연한 무언가가 아니라 『언젠가는 한번 기어코 써먹을』인연 맺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인연을 맺은 누군가에게 나도 『언젠가 써먹혀야 될 사람』이 라는 것으로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을 할 즈음에는 학창시절 인연=평생갈 인연, 사회생활 인연=언젠가는 버려질 인연 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풋내기 였던 시절을 지나고 보니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걸 느꼈습니다. 학창시절 인연이라고 "돈"에서 자유로울수 없으며

사회에서 맺은 인연이라고 그 깊이가 얕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영업 최전선의 뛰어든 녀석들은 항상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어쩌면 자존심도 무척 상했겠지요.

녀석은 빠르고 드리블이 좋은 윙어였고 저는 패스를 좋아하는 미드필더로 학창시절 수백시간은 같이 공을 찼을겁니다.

취미가 같아 오락실도 같이 다니고 좋아하는 핑클누나들을 보러다니기도 했지요. 그 때 우리는 누가 돈을 쓴다는 개념조차 없었을겁니다.

그냥 한번은 내가, 한번은 니가 였었죠. 그런데 이제 그 녀석은 나에게 보험과 연금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다른인연에게 내 미래를 맡겼노라』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무적인 관계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술한잔 할려고 해도 둘중 서로 나서는이가 없어집니다. 연락이 오기만을 바라지요. 아닙니다. 솔직히 바라지 않습니다.

휴대폰에 이름이 뜨면 반가움 이전에 『왜 또 전화를 했을까?』하는 의문이 먼저드는게 사실이니까요.

녀석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겁니다.





그 인연은 아마 처음은 분명 "돈"이 연관된 인연이었지요. 일 때문에 만난거니까요. 하지만 교류를 하면서 『이 인연은 좀 다르구나』

라고 느끼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먼저 마음을 열어주고 학창시절로 돌아가버린듯한 느낌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속 깊숙히

사회생활에서 맺은 인연=언젠가는 버려질 인연 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인연은

그런 마음의 혼란이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지금의 저는 그 공식이 『언제나 참』이진 않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연들이 얽히고 섥히며 풋내기일적 그런 사고는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물여덟의 나이, 점점 늘어가는 인연을 보며 안타까운 가정을 하나 해 보게 됩니다.

『인간의 인연이란 컴퓨터 하드디스크 처럼 용량이 정해진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말이지요.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면 용량의 한계로 기존의 인연을 지워야 하고 그 지워야 하는 인연을 직접 골라야 한다는 잔인한 생각입니다.

기똥차게 죽여주는 야동을 받아야 하는데 하드에 용량이 없어서 그동안 정들었던(?) 야동중 하나를 삭제해야 하는 심정일까요.

그리고 이 생각은 점점 가정을 넘어 확신에 가까워집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참 많은 서글픔을 안겨주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지워가는것 처럼 누군가도 나를 이렇게 지워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애초에 용량이 무한하다면 어땠을까?, 모자라면 추가로 용량을 늘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부질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더라구요.



아마도 그 녀석은 많은 인연을 만들어 갔을겁니다. 가면을 쓰고 만든 인연도 있었고 내 굳은 생각을 바꿨을때 처럼 진실한 인연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런 인연들을 담기 위해 인연의 하드를 조금씩 정리하는 중이었을겁니다. 아마 저와의 인연을 지우진 않았겠지만

몇번이나 우리인연에 커서를 대고 "Delete" 키를 누를까 망설였을겁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알아갈수록 실망스럽고 어떤 방향이 되었건 도움이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인연 오래오래 가자" 라고 직접뱉은 말 때문에 차마 누르지 않고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녀석이 아니기때문에..






확실한 대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생각이 들고 난 후 해결책 비슷한걸 하나 생각해내었습니다.

용량이 무한하지도 않고 추가 할 수도 없다면 지우지 않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구나 라구요.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걸 최대한 줄여야 겠구나 라구요. 그렇게 이전 데이터들을 보존해야 겠구나 하구요.

물론 높은 확률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제게 참 많은 인연들이 생기게 될 건 불보듯 뻔한 일 입니다만

최대한 노력하려고 합니다.

퇴근길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몇일 전 전화 목소리 안좋던데 괜찮니?"라고 해주고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데 갑자기 우리엄마 생각이 났다며 "어머님 편찮으신데 없으셔 오빠?" 라고 걱정해주고

"형 외롭다" 라고 문자보내면 "지X말고 나이트나 가자 열여덟아" 라고 반갑게 대해주고

"술먹고잡다. 하지만 난 개털" 이라는 문자를 보내도 눈썹 휘날리게 달려와주던 인연들을 함부로 삭제 할 수 없습니다.

천성이 그렇질 못합니다.






인연이란걸 생각할때 저는 개그프로에서 자주 쓰이는 둘이 양쪽에서 탄력좋은 노란 고무줄을 잡고 긴장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서로 누가 놓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그럼 모습을요. 그 고무줄을 잡고 있는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팔과 손이 항상 긴장해 있어야 하고

한 눈을 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신뢰한다면 조금 한눈을 팔아도 괜찮겠지요) 그러다 지친, 혹은 다른 고무줄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쪽에서 먼저 고무줄을 놓아버립니다. 손은 유한하니까요.(하드디스크 처럼) 놓은 사람은 괜찮습니다.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쪽에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반대편은 그럴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신뢰해서 팽팽하게 늘어진 만큼, 그리고 상대방을 신뢰함으로써 한눈을 판 만큼

아주 따갑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됩니다. 마치 지긋지긋한 치통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참 이상하지만

자신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 그 고무줄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혹은 상대방이 다시 잡아줄거라는 기대에?

이유는 그 때마다 다르겠지만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네... 저는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아니『놓지 못합니다』가 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아니 아쉽다는건 상당히 애매한 표현이군요.

서운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저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혹은 간디나 테레사 수녀님도 아니거든요.

아쉽고... 서운하고... 화도 납니다.







맥주를 마시려고 했는데 소주를 마셔야 겠군요.





『요 녀석... 예전에는 그렇게 잘도 불러내더니..니가 안불러주니 술 먹자는 사람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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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2 17:38
수정 아이콘
이제 겨우 20대 초반을 만끽하고 있는 나이지만...

인연이고 인연이 아니고의 유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일이라는게 워낙 알 수 없는거잖아요. 정말 평생갈 것 같은 사람과는 작은 실수로 관계가 끝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처음에는 이 사람과 별로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랜시간동안 많은 것을 공유한 사람이 되서 평생동안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있구요. 그래도 돈이라는게 사람을 한순간에 바꿔버릴 수 있다보니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깨지는 모습을 보자면 항상 안타깝습니다. 돈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고, 그렇다고 너무 신경써도 문제가 생기니...
thunder3000
10/08/02 17:45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했던건과 비슷하시네요!!
하지만, 전 머리가 하드디스크처럼 유한한 용량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한정적이여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10대 였던 시절 재미있게 지냈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고,
저는 이러한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변사람들의 생각이 충격적으로 느껴졌었습니다.
'난 이사람을 놓지 않으려고, 같이 지내려고, 항상 같이 웃고 떠들고 울고 즐기려고 하는데, 다른사람들은 그렇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요.
이러한 생각의 작용으로 저 자신이 다른사람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인연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게 너무나 싫어서요.
그리고 사실 지금도 싫습니다 ^^;;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사귀었던 사람이던, xx친구마냥 고민이 까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던
제 인생에 있어서 단 1초라도 소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죠.
점점 힘에 부쳐지는게 느껴지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생각하려고, 싸이에 방명록 한줄이라도 써주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람이 절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지만, 저에게는 소중했던, 소중한 사람들이라서요(많이 이기적이죠 ^^;;)
Kaga Jotaro
10/08/02 18:00
수정 아이콘
간만에 언뜻 유재석 님의 글을 보는듯하여 반갑게 클릭했는데, 내용을 찬찬히 읽으면서 공감가는 마음에 기분이 참 묘하네요.
저도 28살, 비슷한 고민, 비슷한 상황을 겪고있는 요즘입니다.
못 놓겠더군요.
KnightBaran.K
10/08/02 19:46
수정 아이콘
인연은 본디 불교 용어입니다. 전생에 빚이 있어서, 아니면 엮인바가 있어서 그것을 갚거나 받고, 혹은 풀기 위해서 이번 생에 다시 만나게 되지요. 그러니 줄 것이 있어서, 혹은 빚이 있어서 오는 인연 거부하지 말고 줄거 줬고 받을거 받고 지나가는 인연에 굳이 집착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 편하지 않을까요?

그게 안된다면 그 보험, 연금 얘기를 했다는 친구분께 과감히 전화해서 술 먹자고 하세요. 보험이나 연금은 내가 못 들어주겠지만 술은 사겠노라고. 그런 것을 상대 친구분도 더 원하지 않을까요.
Who am I?
10/08/03 08:37
수정 아이콘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몰입'했으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뜨끔하게 하는 글이네요.

그래도 언제든 그네들이 '여기 아직 있습니까?'라고 물어왔을때
'당연하죠!'라고 대답할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중이긴 해요 전. 아하하하하;; (변명;)

'기억'만으로도로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긁적--a
제시카는진리
10/08/03 10:48
수정 아이콘
인연이라.. 오랜만에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재석님도 반갑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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